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위치한 더함공동체교회의 예배 모습. 이 교회는 교인이 90명이 넘을 경우 분가하는 것을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photo 더함공동체교회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위치한 더함공동체교회의 예배 모습. 이 교회는 교인이 90명이 넘을 경우 분가하는 것을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photo 더함공동체교회

서울 중구 을지로 2가에 있는 향린교회는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향린교회는 지난 1월 6일 오전 11시 창립 60주년을 맞아 매우 특별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기존의 교인 중 80여명의 교인들이 새로 교회를 설립해 나가는 것을 기념하는 ‘분립(分立)예배’를 치렀다.

향린교회의 현재 출석 교인은 360여명으로, 신도 수가 수만 명에 달하는 다른 대형 교회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하지만 교회 설립 당시부터 ‘교회가 커지면 분가(分家)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분립도 거기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사실 향린교회의 ‘분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교회는 설립 40주년이었던 1993년 서울 송파동 강남향린교회를 분가시켰다. 향린교회는 강남향린교회에 김경호 목사를 파송하며 예배처 마련과 함께 5년간 목회자 생활비를 제공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교인들에게는 강남향린교회로 출석하도록 권유했다.

강남향린교회는 1999년 화훼마을 화재로 어려움을 당한 400여 주민의 복구 작업을 주도하고, 빈민가정 자녀를 위한 방과후학교 ‘꿈나무학교’를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와 소외계층을 품는 사역을 펼치며 3년 만에 자립했다.

향린교회 측은 적정 규모 이상이 되면 교회를 분립하는 것을 ‘분가선교론’이라 부른다. ‘분가선교론’은 교회 창립자 중 한 사람인 고 안병무 선생이 주창했다.

아예 목사가 교회를 떠나기도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위치한 더함공동체교회도 설립 당시부터 분가를 계획한 교회 중 하나다. 이 교회는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 위치한 예인교회에 출석하던 목회자와 교인 몇 명이 뜻을 모아 지난 2011년 10월 설립한 교회다. 더함공동체교회는 ‘건강한 작은 교회’라는 말로 교회를 소개하고 있으며, 정관에 아예 분가를 명시하고 있다. 이 교회 정관 9장 4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더함공동체교회는 분립을 통한 건강한 작은 교회로 더 넓게 성장해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분립은 청장년 등록 교인이 최소 90명이 넘은 이후 운영위원회가 내외부적 상황을 판단해 분립 계획을 수립해 총회에서 의결해 시행한다. 단, 청장년 등록 교인이 150명을 넘어도 분립이 되지 않을 때는 담임목사가 분립하는 것을 원칙으로 계획을 수립해 총회에서 의결해 시행한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 어려워하는 것은 담임목사에게 의존도가 높기 때문인데, 이 교회는 그럴 경우 교회의 건강함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해 아예 목사가 교회를 떠나는 것까지 명시했다. 더함공동체교회의 이진오 목사는 전화 통화에서 “(더함공동체교회는) 단순히 물리적 분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유기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교회 분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언덕교회 역시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됐을 때는 분가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교회의 경우 아예 교회 정관에 분립 원칙부터 분립 시 교회 비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장소는 어느 곳으로 정할지 등 세세한 부분까지 명시했다. 언덕교회의 정관 중 재산과 관련된 부분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분립 시점에서 사용 중인 기본 자산은 모두 기존 언덕교회에 귀속한다. 기존 언덕교회는 귀속 자산 중 일부를 분립되는 교회에 증여할 수 있다. 분립 시 새로 분립되는 교회의 원활한 출범과 정착을 위하여 분립 시점의 특별 적립기금 중 90%까지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교회들처럼 ‘분가’하거나, ‘분가’를 계획하는 교회가 점차 늘고 있다. 분가 기준을 몇 명으로 하느냐는 교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정관에 분가를 명시하고 있다.

이 교회들 외에도 경기도 부천의 예인교회는 교인이 250명을 넘으면 분가할 것을 계획하고 있고, 경기도 고양시의 너머서교회는 150명이 기준이다. 정확한 숫자가 집계된 적은 없지만 ‘분가’를 원칙으로 삼는 교회가 전국적으로 50여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 분가는 최근 교회 대형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6월 연세대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이 주최한 ‘2012 미래교회 콘퍼런스’에서도 기성 교회의 교인이 일정한 숫자가 되면 교회를 분립하는 ‘분가선교’가 한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최근 들어 분가하는 교회가 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분가하는 교회들은 대형화를 지양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교회가 사회적으로 비판받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교회의 대형화를 꼽는다. 1970년대 급속 성장한 한국 기독교는 이 시기를 전후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규모의 대형 교회들이 여러 개 생겨났다. 대형교회를 일궈낸 목사들 역시 성공한 목사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교회 대형화 대안으로 등장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대형교회의 예배 모습. 이 교회는 출석 교인 수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hoto 조선일보DB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대형교회의 예배 모습. 이 교회는 출석 교인 수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hoto 조선일보DB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회 대형화는 한국 기독교의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한국에 있다’ ‘세계 10대 교회 중 몇 개가 한국에 있다’는 말이 기독교 내에 유행처럼 퍼졌던 것은 한국 교회가 대형화를 얼마나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형 교회들 역시 “교회의 대형화가 선교와 구제에 효율적이다”며 교회 대형화의 순기능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형화의 폐단이 하나둘 드러났다. 특히 대형 교회의 정치권력화는 한국 기독교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더함공동체교회 이진오 목사는 이와 관련, “최근 종교인 과세문제와 관련해서도 정치권이 종교의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왔는데 ‘눈치를 본다’는 말 자체가 교회가 얼마나 부패한지를 보여주는 단어”라며 “교회는 섬김과 나눔이 본질인데 오히려 권력화되어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의 대형화는 교회 세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재 세습 논란이 일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는 대형 교회다. 김동호 높은뜻선교회 목사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교회가 대형화하고 목사들이 누리는 게 많아지니까 목사 지망생들이 늘어난다”며 “목사가 늘어나면 갈 자리도 부족해지니까 자연스레 자식에게 좋은 자리 물려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교계의 또 다른 화두인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쪽도 대부분 대형 교회들이다. 교회 대형화는 또한 헌금 사용의 적절성이나 목회자의 역할에도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대형화에 필수적 요소인 건물 신축이나 증축에 대부분의 헌금이 투입되거나, 이를 위해 목사의 역할이 마치 기업 경영자처럼 변질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대형화에서 비롯된 여러가지 문제들은 결과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고, 이는 교인 수의 감소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겨난 것이 50~100명 규모의 ‘건강한 작은’ 교회를 세우자는 운동이다. 건강한 작은 교회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분가’다. 이런 규모의 교회는 교인 수가 증가하지 않아서 작은 교회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커지면 분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소형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교회들은 분립을 원칙으로 할 경우 그동안 대형 교회에서 드러났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한다.

특히 부동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건축헌금’ 명목으로 무리하게 돈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대신 이 돈은 주변의 이웃을 돕는 데 사용된다. 실제로 분가하는 교회들은 자체적으로 소유한 건물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요일마다 인근 강당, 레스토랑, 카페 등을 대여해 사용한다. 혹은 상가 건물을 전세나 월세 형태로 임대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평일에는 대부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북카페나 모임 장소로 활용한다.

일요일만 예배용 건물 대여

부천 예인교회의 경우 부천시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건물 한 층을 일요일마다 빌려 쓰고 있으며, 인근 상가에 작은 공간을 임대해 교회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고양 너머서교회도 일요일마다 인근 병원 강당에서 예배를 하고 있다. 더함공동체교회는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지만 원하는 지역 주민들이나 인근 학교 학생들에게 장소를 대여해주고 있다.

교회가 작아져야 교회 본래의 존재 이유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도 분가하는 교회 측의 주장이다. 이들은 교인 수가 너무 많으면 교육이나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고, 무엇보다 교인들 간에 유기적 연대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현실적 이유도 있다. 앞서 김동호 목사가 했던 지적처럼 목사가 되고자 하는 신학생은 많은데 갈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도 작은 교회가 대안으로 떠오른 하나의 이유다. 세습이나 청빙과 같이 목사 자리를 물려받지 않으면 결국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 개척은 목회자 본인이나 교인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된 지 오래다. 개척 과정에서 교회 안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주요 교단의 재정보고 등을 보면 한국 교회 목회자의 약 80%는 면세점 이하의 사례비로 생활하고 있다. 모교회가 개척자금을 지원해도 자립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성인 50명 모이면 교회 운영 가능

그렇다면 목회자의 80%가 면세점 이하로 생활한다면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들은 어떻게 생활할 수 있나. 목회자의 생활이 어렵다면 이런 시도 자체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런 질문에 대해 더함공동체교회 이진오 목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목사의 대답은 다소 파격적인 것 같지만, 현실적인 분석을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통상적으로 성인 1명이 1년 동안 평균 100만~150만원의 헌금을 낸다고 가정하고 목회자의 연봉이 2000만원이라고 가정한다면 50명의 성인이 모일 경우 교회 운영이 가능하다. 50명 정도의 성도가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대여하거나 세를 얻는 데는 1년에 1000만원 정도가 들어가고 교육이나 운영비가 1000만원 정도, 나머지를 이웃들을 돕는 데 사용하면 그 정도 규모는 운용이 가능하다.”

분가하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 중에는 평일날 자기 직업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분가하는 교회’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한 자성 끝에 나온 하나의 대안이다. 과연 기독교 내의 이러한 시도들이 교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들을 얼마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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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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