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
[2242호] 2013.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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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첫째 위생, 둘째 재료, 셋째 맛 최악의 음식점은 양심 속이는 집”

방문객 3600만명 음식 파워블로거 박태순씨

박영철  차장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식도락가들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외식컨설턴트인 박태순(50)씨는 1월 22일 주간조선과 만나 “야후의 한국 철수로 인해 중단된 블로그 ‘건다운의 식유기’를 오는 3월 독립 사이트(www.bestdine.kr)로 부활시키겠다”고 말했다.
   
   건다운(gundown)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박씨는 음식 분야 우리나라 최고 파워블로거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2006년 4월 23일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야후에서 운영한 블로그 ‘gundown의 食遊記(식유기)’는 6년8개월 동안 3600만이 넘는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일 평균 약 1만5000명이 방문한 셈이다. 그것도 포털 1위 네이버나 2위 다음이 아닌 야후에서 이런 실적을 낳은 것을 감안하면 놀라움이 더 커진다. 그는 한국블로그산업협회가 주최하는 2009년 대한민국 블로그어워드 취미·여가 부문에서 최고상인 우수상을 받았고,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야후코리아에서 톱블로거로 연속 선정됐다.
   
   그는 작년 말 뜻밖의 암초를 만난다. 야후가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 이후 그는 자료 백업 작업을 진행하면서 야후 블로그의 내용 일부를 다음 블로그(blog.daum.net/gundown)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현재 다음 블로그에는 식당 기사만 2142곳에 달하던 야후 블로그 콘텐츠의 극히 일부만 올라와 있다. 그는 “콘텐츠는 전부 백업 받아놨지만 옮기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이참에 아예 새로 사이트를 열기로 결심하고 준비작업 중이다.
   
   
   토목공학 전공한 건설맨
   
   자타가 공인하는 음식 분야 대한민국 최고 블로거의 한 명이지만 그는 처음에는 음식과는 무관한 길을 걸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1990년 1월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다양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그는 1995년 말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청계천 고가 보수공사 공무팀장을 맡고 있었을 때입니다. 저는 기술자로서 자부심이 강했는데 상처를 많이 받은 거죠.”
   
   그는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반년 정도 현지적응을 한 후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1년 반 거주하면서 8개월가량 양식당을 운영했다. 이게 그가 음식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식당은 잘됐지만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그만두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식당 운영 경험은 나중에 그가 음식 블로거로서 활동하는 데 자양분이 된다.
   
   그는 1997년 10월 무렵 현대건설에 복직했다. “별 생각 없이 귀국 인사차 들렀는데 제가 그만둘 때 좋은 인상을 받으셨는지 다시 받아주셨습니다.” 평소에 “사람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는 현대건설을 그만둘 때 업무 인수인계를 철두철미하게 했는데 이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대건설이 어려워졌다. 할 수 없이 2003년 현대건설을 퇴사하고 현대건설이 출자한 인천국제공항철도로 옮겼다. 그러나 이 회사도 복잡한 내부사정 때문에 오래 못 다니고 2006년에 그만뒀다. 그 후로는 전기제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사회생활 면에서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아저씨였다. 그러나 음식 분야에서는 다르다. 인지도 면에서 대한민국 1위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회인이었던 그가 어떻게 최고가 됐는지 살펴보자.
   
   그가 음식과 인연을 맺은 것은 현대건설에 복직한 후인 2001년 여름이었다. “어느 날 동아일보를 보니까 어떤 분이 맛칼럼을 썼는데 거침없이 지적하는 거예요. 맛집 관련 기사는 늘 좋은 것만 언급하는 걸 보고 질렸는데 이거다 싶었습니다.”
   
   관심이 생긴 그는 잇앤쿡(eatncook)이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곳에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고수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양식 장어를 먹어봤는데 사료를 어분이 아니라 육분을 먹였더라’ ‘육분을 먹여도 정제된 소를 써야지 돼지를 썼더라’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람인가 귀신인가 싶었어요.”
   
   
   어머니의 싱거운 요리가 미각 키웠다
   
   그는 가입 후 쭉 ‘눈팅’만 하다가 그해 가을에 처음으로 글을 남겼다. “미국 거주 경험을 살려 ‘한국 가족의 미국 뷔페 방문기’라는 콘셉트로 썼는데 이게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해 12월에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칼국수집에서 열린 잇앤쿡의 오프라인 송년회에도 참석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음식계 입문은 늦은 편에 속하지만 몇 달 만에 잇앤쿡의 중심 자리를 꿰찼다.
   
   그만한 까닭이 있다. 우선 그는 먹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명성이나 사교 등 딴 생각을 품고 블로그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그는 음식동호회 활동을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이 아예 없었다. 또 하나는 자기보다 한 수 위의 고수들하고 어울려 다녔다. “바둑으로 비유하면 6급들끼리 100판을 둬도 6급밖에 안 됩니다. 10판을 둬도 초단하고 두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초심자는 책을 보고 배우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어서 음식 실력이 늘 것 같습니까? 초보자가 책만 읽으면 테두리에 갇힙니다.” 그도 나중에는 책도 보면서 공부했지만 처음에는 산지식을 배우는 데 주력했는데 이것이 주효해 실력이 급속히 늘었다.
   
   DNA와 사회경험도 도움이 됐다. 그는 음식을 잘하는 모친을 뒀다. “어머니는 음식을 싱겁게 하셨는데 덕분에 음식 재료가 가진 본질적인 맛을 어려서부터 잘 알았습니다. 화학조미료를 안 쓰신 것은 물론이죠. 음식 블로거의 필수자질 중 하나가 화학조미료를 잘 감별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감사하죠.” 접대가 많은 업종인 건설회사를 다닌 것도 미각수련에 도움이 됐다. “해외출장도 많이 다녔고 전국 각 도에서 현장근무를 1년씩 안 해본 곳이 없습니다.”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동호회 사람들과 같이 다니면서 하루에 열 끼를 먹은 적도 있습니다.” 돈과 시간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었겠다고 부러워하거나 비아냥거릴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n분의 1로 밥값을 냅니다. 중국집을 가면 열둘이서 요리 열두 개를 시켜 요리 하나를 열둘이서 나눠 먹습니다. 요리 열두 개를 고루 맛보고 밥값은 요리 하나 값만 내면 됩니다. 시간도 마찬가집니다. 골프 치는 사람들 하루 종일 시간 깨먹는 데 우리는 그 시간을 음식에 쓸 뿐입니다.”
   
   그는 잇앤쿡에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음식을 대하는 태도도 배웠다. “회원 연령대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어요. 남자는 27세 이하는 안 받았습니다. 자기가 번 돈으로 먹어야 음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 동호회에는 기업체 사장, 회장도 많았지만 밥값은 철저히 n분의 1로 냈습니다. ‘음식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이죠. 2차 가서 내는 거야 뭐라 안 하지만 후기에 누가 ○○사장님 2차 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글을 올리면 ‘끼리끼리 인사하세요’ 하고 제지합니다. 처음에는 명함도 못 돌리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집이 어디세요’ 이런 것도 못 묻게 합니다.” 굉장히 엄격하지만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맛보다 음식 대하는 태도부터
   
▲ 지난해까지 운영했던 야후 블로그 ‘건다운의 식유기’.
그는 이곳에서 좋은 스승도 많이 만났다. 고 예춘호 의원의 아들인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로부터는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고, ‘맛있는 TV’를 처음으로 시작한 MBC 최진섭 미래전략실 부실장에게서도 좋은 음식과 음식점을 고르는 법 등 많은 것을 배웠다.
   
   2004년 잇앤쿡은 아쉽게도 재정문제로 사이트를 닫았다. 그는 엠파스로 둥지를 옮겨 블로그를 시작한다. 그는 맛집을 선정하면서 가격 대비 가치가 뛰어난 집, 이른바 ‘싸고 맛있는 집’을 집중적으로 발굴해 소개했다. “비싼 집이 맛있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 집을 맛집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방문객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야후코리아는 그를 영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2006년 4월 그는 야후코리아로 옮겨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다. 야후는 영입 초기 메인 페이지에 그의 블로그 기사를 노출시키는 성의를 보였고 많을 때는 하루에 10만명이 방문하는 성과를 거뒀다.
   
   열정과 태도, 미각을 고루 갖춘 그가 파워블로거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단순히 맛집만 소개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음식문화를 바로잡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음식문화를 바로잡자
   
   우선 그는 불결한 음식점을 혐오한다. 그는 ‘음식은 첫째 위생, 둘째 재료, 셋째 맛’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사람이 맛만 따지고 위생을 외면하면 짐승하고 다를 바가 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화장실이 불결하거나 요리사가 근무시간에 담배 피우는 음식점은 아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청결한 환경에서 자라 옛날 사람보다 저항력이 훨씬 약한데 불결한 음식을 먹으면 식중독에 걸리기 쉽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식당 위생등급을 그 식당의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하게 하는데 우리도 도입해야 합니다.” 위생 면에선 문제가 많았던 피맛골이 철거될 때 그가 “잘가라 피맛골 또 보지 말자” 하고 환영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는 맛없는 집은 용서해도 양심을 속이는 집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언론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내 생애 최강의 거짓말은 쇠고기 원산지 단속에 걸린 유명 설렁탕 체인의 서울 을지로 본점 사장이 ‘시중에서 한우를 도저히 구할 수 없어 수입소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서울 장충동에 긴 역사를 가진 제과점 주인이 경악스러운 주방의 불결함을 지적하는 단속반원에게 ‘너무 깨끗하면 사람이 못 견뎌서’라고 태연히 대답하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황당함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후벼 파는 수준이다.” 자신의 블로그에서도 이런 집은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Hall of Shame’이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수치의 전당’으로 번역되는 이 코너는 양심을 팔아먹은 불량식당을 고발하는 곳이다.
   
   
   “거짓말 못해” 신랄한 비판
   
   지금까지 글에서 짐작했겠지만 그는 글을 신랄하게 쓴다. 칭찬할 때도 그렇지만 비판할 때는 고소당하지 않나 하고 읽는이가 걱정스러울 만큼 세게 쓴다. 고소도 4~5건 당했지만 다행히 별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글이 팩트(fact·사실)에 입각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양심적으로 행동한 것도 크다. 그는 블로거로 활동한 이후 지금까지 밥을 얻어먹은 적이 없다. 시식회 초청을 받아 갈 때도 주최 측에 ‘기사를 쓰고 안 쓰고는 내 맘이고 내용도 간섭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간다. 그는 “13년째 이런 식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내가 거짓말은 안 한다는 것은 잘 안다”고 말했다.
   
   그가 맛집들의 상업성을 지적한 영화 ‘트루맛쇼’(2011년 6월 개봉)에 출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김 감독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고심 끝에 출연을 수락했다. “맛집 블로거들이 죄다 출연을 고사하더라는 거예요. 상업성에서 가장 자유로운 선생님 아니면 출연할 분이 없다고 하도 사정을 하길래 할 수 없이 나가게 됐습니다.”
   
   그가 대중에게 얼굴을 공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얼굴이 알려지면 맛집 취재에 지장이 많습니다.” 한번 얼굴이 알려지자 더는 얼굴을 숨기기 어려워졌다. 그는 이제 종편 jTBC의 ‘미각스캔들’에도 출연하고 있다.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제의를 받고 그는 ‘선정적으로 만들지 않고 담담하게 팩트만 전달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아 수락했다.
   
   기고활동도 재개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조선닷컴에서 ‘건다운의 맛있는 중식이야기’를 연재해 호평받았다. 최근에는 푸드조선으로부터 연재 요청을 받아 글을 쓰고 있는데 첫 원고는 1월 말이나 2월 초에 조선닷컴에 게재될 예정이다.
   
   오너셰프를 소재로 식당 책도 쓰고 있다. “기존의 식당 책과 차별화된 책을 쓰려고 합니다. 요즘 오너셰프 식당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바람직한 경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오너셰프 식당 중 덜 알려졌지만 내공이 뛰어난 10곳 정도를 골라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3월 출간 계획이다.
   
   
   오너셰프 소재 책 출간 계획
   
   그는 뛰어난 외식컨설턴트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식당 경영을 해본 경험도 있어 소비자와 고객 쌍방의 관점을 조화시켜 비결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한우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거나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등급이 더 높은 고기를 공급하는 것보다 된장찌개 질을 높이는 게 비용이 훨씬 적게 들지만 고객 만족도는 훨씬 높아집니다. 소비자는 고기보다 고기 먹고 먹는 된장찌개에서 감동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죠.”
   
   음식 블로거가 된 이후 좋은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음식철학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이버 공간에서 공격도 많이 받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음식애호가 중에는 까칠하고 자기주장과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단골집을 비판하면 자신의 인격이 공격당했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어떤 유명 냉면집에 갔다가 화학조미료를 많이 썼는지 제가 밥 먹고 나서다가 그집 앞 전봇대를 붙잡고 구토하고 손발이 저렸다고 블로그에 썼더니 그집 단골들이 발끈한 거예요. 그럼 나는 조미료 맛도 구별 못하는 미맹(味盲)이란 말이냐 하면서요.”
   
   그는 사인(私人)이지만 공인(公人) 수준의 영향력을 가진 존재가 됐다. “영향력이 커지니까 책임감이 커져서 블로그 하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다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에 위안을 삼습니다.”
   
   그는 3월에 오픈하는 사이트가 자리 잡으면 앞으로 제대로 된 레스토랑 평가서도 내볼 생각이다. “개인 이름으로 내는 게 아니라 회원들과 공동으로 평가작업을 해서 사이트 이름으로 책을 낼 겁니다. 한국의 자갓 서베이(Zagat survey)가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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