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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인 뉴스]  160만달러짜리? 미국서도 말 많은 특별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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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243호] 201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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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160만달러짜리? 미국서도 말 많은 특별사면

정시아  언론인 

▲ 2001년 3월 1일 미 하원 정보개혁위원회에서 열린 클린턴 전 대통령의 마크 리치 사면 관련 청문회에서 존 포데스터(맨 오른쪽) 등 전직 백악관 참모들이 증언을 하고 있다. photo AP
최근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이 실시한 사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들의 법감정을 무시하는 ‘봐주기 사면’으로 법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주조를 이룬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상의 권리행사이므로 근본적으로는 적법한 행위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대통령제의 귀감이 되는 미국 헌법에서 유래한다. 미국 대통령의 사면권은 미국 헌법 제2조2항에 명시돼 있다. 대통령은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을 상대로 한 범죄(Offences against the United States)에 대하여 사면할 권한이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다만 사면 대상은 연방범죄에만 해당한다. 주가 관할하는 민형사 사건은 대통령의 사면 대상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서 사면, 제한적인 사면, 감형, 과징금 감액 등 대통령의 관용에 의한 형량 감소라는 은전을 입은 사람은 약 2만명 수준이다. 미국 대통령 대부분은 임기 중 헌법상의 사면권을 행사하여 수백 명에서 수천 명씩을 풀어줬다. 여야 정치인들이나 주지사, 각종 단체 등에서 사면이나 감형 등을 요청하면 응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대통령의 사면이나 감형조치 등이 늘어나자 1981년에는 법무부에 대통령의 사면업무를 전담 보좌하는 사면국이 설치되기도 했다.
   
   
   끊임없는 사면 논란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되었다. 당시 헌법제정자들 중의 한 사람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반란이 발생한 경우 적절하고 중요한 시점에 반란자들에게 사면을 제안하면 나라의 안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많은 헌법제정자들이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할 때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해밀턴은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할 것을 강조하였다. 중요하고 미묘한 상황에서 ‘신중함(prudence)과 훌륭한 상식을 갖춘 대통령 한 사람이 다수로 구성된 의회보다는 사면을 결정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는 것이 해밀턴의 주장이었다. 결국 해밀턴의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미국 헌법에 대통령의 사면권이 들어가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들은 사면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였다. 초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농민들이 만들어 파는 위스키에 세금을 부과한 정부에 저항하여 폭동을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였다. 미국의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백인 농민들을 공격한 인디언 200여명을 사면하였다. 링컨이 암살당한 후 대통령직에 오른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1868년 크리스마스에 남북전쟁 중 미국에 대항하였던 남부동맹군에 대하여 대대적인 사면을 단행하였다. 뒤이어 18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도 남부동맹군 가운데 지도부 500명을 제외한 모두를 사면하였다.
   
   미국의 팽창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에 저항하며 필리핀 독립전쟁을 이끌다 사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던 필리핀의 세비아노 아키노 장군을 사면하였다. 세비아노 아키노는 현재 베니뇨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의 증조할아버지이며,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살해된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의 할아버지다. 니노이 아키노의 부인으로 필리핀 민주화를 이끈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세비아노의 손자며느리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늘어나면서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구제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사면.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였던 포드는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사임하자, 1973년 10월 닉슨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지명됐다. 그리고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나자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미국 역사상 선거를 거치지 않고 부통령, 대통령직을 차례로 역임한 인물은 포드가 유일하다.
   
   
   포드와 닉슨의 사면 스캔들
   
   포드가 닉슨 사면을 발표하자 미국 내에서는 두 사람 간의 협잡의 결과라는 비난이 크게 일었다. 즉 포드가 닉슨에 대한 사면을 약속하여 닉슨으로 하여금 사임토록 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포드 대통령 자신도 현직 대통령으로 의회 청문회에 나서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닉슨은 훗날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 “인사 청문회 통과가 쉬울 것 같아서 그를 지명했다”고 술회했다. 역사가들과 언론인들도 하나같이 협잡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부정한다. 훗날 일부 역사가들은 “포드 대통령이 닉슨을 사면하지 않았으면 미국은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을 것”이라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닉슨 사면에 반대하였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조차도 나중에는 “포드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음을 역사가 증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닉슨 사면은 포드의 지지도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려 2년 뒤 대선에서 도덕주의를 내세운 민주당의 지미 카터에게 패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포드 대통령은 베트남전 기간 동안 징병기피자 5만명에 대한 조건부 사면도 동시에 실시하였다. 포드 대통령은 또 2차대전 중 미군에 반전을 고무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여 ‘도쿄의 장미’로 불렸던 일본계 미국인 에바 도쿠리도 사면하였다. 도쿠리는 반역죄를 저지르고 사면을 받은 유일한 미국인이 되었다.
   
   포드를 물리치고 당선된 카터 대통령은 징병기피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면을 단행하였으며,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자 일부도 사면하였다.
   
   카터의 무능함을 통렬히 비난하며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도모하였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는 이란 콘트라 게이트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중남미의 우파 반군단체를 지원하기 위하여 이란의 이슬람정권과 불법적인 무기거래를 했다는 것. 그러나 이 사건의 주요 관련자들인 캐스퍼 와인버가 국방장관, 로버트 맥팔레인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은 다음 대통령인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닉슨에 불법적으로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옥시덴탈 석유사의 아먼드 해머 회장도 사면했다. 그런데 해머 회장은 사면되기 직전에 공화당에 11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드러나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역대 대통령 최악의 사면은?
   
   미국의 낙관과 긍정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도 사면을 둘러싸고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2001년 1월 퇴임 직전에 마약소지 혐의로 수감되었던 이복동생 로저 클린턴을 사면하여 범죄기록을 지워주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퇴임 2시간을 남겨두고 사면권을 행사했는데, 대상자들 가운데에는 탈세 등 50여건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에서 스위스로 도피한 금융재벌 마크 리치도 들어 있었다. 리치의 전 부인이 민주당과 클린턴에게 160만달러 상당의 정치자금과 선물을 기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봐주기 사면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또 클린턴 부부의 금융스캔들인 화이트워터 사건과 관련된 수전 맥두걸도 사면 대상자에 들어있었다. 이처럼 사면 대상자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상원 법사위에서는 사면의 정당성을 따지는 청문회가 열렸으며 뉴욕 검찰은 수사를 벌이기도 하는 등 클린턴은 퇴임 첫해 동안 사면의 대가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클린턴 스타일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시 “앞으로는 사면을 엄격하게 실시할 수 있도록 사면에 대한 기준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클린턴의 무분별한 사면을 비난하던 부시 대통령도 퇴임을 앞두고 사면을 단행하였다. 2007년 7월 초 CIA 비밀요원 신분노출사건으로 2년6월의 실형판결을 받은 전 부통령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에 대해 대통령 직권으로 징역형만 면제해주는 일부 사면을 단행했던 것. 부시의 보좌관 출신인 리비는 정부 고위관리들 가운데 누가 중앙정보국의 비리요원인가를 발설한 핵심인물로 지목받았으며 위증 및 사법방해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부시의 사면으로 리비는 징역살이는 면했지만 25만달러의 벌금형과 2년간의 보호관찰은 면제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엄격한 사면을 원칙으로 정해 현재까지 단 16명만을 사면하였다. 사면 대상자들 가운데 그와 인연이 있는 정치적인 인물들도 없다. 그러나 대통령들이 개인적인 신세를 진 인물들에 대한 사면은 대개 임기 끝나기 직전에 행해지므로 오바마 대통령도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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