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2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집권 2기 연두교서 연설을 하는 오바마 대통령. ⓒphoto AP
지난 2월 12일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집권 2기 연두교서 연설을 하는 오바마 대통령. ⓒphoto AP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12일 2기 연두교서 외교 관련 연설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종전과 다른, 알 카에다 세력과 연계된 극단주의자들이 아라비아반도에서 아프리카에 걸쳐 출현하고 있다. 이들 그룹들의 위협은 점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위협에 맞서 우리의 자식들을 보내 관련 지역들을 점령할 생각은 결코 없다. 그 대신 예멘·리비아·소말리아 같은, 자국의 안전을 지키려는 나라들을 도와줄 것이다. 말리 같은 나라처럼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나라들과 연계해(allies) 나아갈 것이다.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우리의 능력이 되는 한 미국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직접적 행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미군과 니제르군과의 군사협약

오바마는 새로운 테러리즘이 ‘아라비아반도에서 아프리카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수사학적 독트린은 없지만, 반테러와 관련된 중심무대를 아프리카로 잡았다는 것이 외교 관련 연두교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의 연두교서만을 본다면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는 그 아래 단계의 과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연두교서에서 오바마의 북핵 관련 발언은 “(북한의 핵 개발은) 스스로의 고립화만 자초할 것이다” “(북한·이란의 핵 개발과 관련해) 지금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외교적 해결에 있다” “우리는 그들(북한과 이란)이 핵 개발을 멈추도록 만드는 필요한 조치를 시행할 것이다” 등 딱 세 마디에 그쳤다. 그나마 세 마디 발언 중 두 개는 이란과 묶어서 도매금으로 넘어갔다.

아프리카가 오바마 집권 2기의 외교 테마로 결정된 배경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풀이될 수 있다. 미국의 안전과 함께 에너지를 보호하고 무고한 인명살상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적은 알 카에다 아류(亞流)만이 아니다. 테러리즘을 넘어선 더 큰 그림이 드리워져 있다. 바로 중국이다. 오바마는 연두교서에서 중국을 비난하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역·외환·인권에 관한 대중국 단골메뉴가 이번 오바마 연설에서는 한마디도 없다. 과연 미국이 중국을 괜찮은 파트너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일까. 1월 29일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에서 이뤄진 미군과 니제르군 사이의 군사협약은 그 같은 ‘환상’을 깨는 첫 단추이다. 구체적 내용은 비밀에 싸여 있지만 ‘지역(Region)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위협에 공동대처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양국 간 군사협약의 기본정신이다. 주목할 부분은 ‘지역’이란 말이다. 니제르가 아니라 지역 간 안전보장을 위해 양국이 손을 잡은 것이다.

아프리카에 드론 띄우기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니제르는 남쪽으로는 나이지리아, 북쪽으로는 말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역’의 의미는, 니제르와 함께 최근 이슬람 과격파 등장이 ‘눈부신’ 주변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월 28일자 기사에서 두 나라 간 협약의 중심은 드론을 통한 정찰활동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말리와 가까운 니제르 내 지역을 미군이 교두보로 확보해 드론을 띄워서 첩보활동, 나아가 테러범 암살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드론만이 아니라 조종사를 태운 실제 비행기도 운용해 지역 내 정찰활동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리 테러조직이 세계 미디어에 데뷔하는 즉시, 전격적으로 이뤄진 군사협약이다.

드론을 통한 말리와 주변국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이 지역에 상당한 이권을 갖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위협이라 볼 수 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총성 한 발에 무릎을 꿇게 된다. 외신을 통해 간헐적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은 식민지 종주국인 유럽 전체를 합친 것보다 크다. 중국은 2008년부터 매년 ‘차이나아프리카 협력(CFC)’이라는 타이틀의 국제회의를 베이징에서 개최하고 있다. 아프리카 정상 모두를 초대해 최고급으로 대접하면서 경제·정치·문화적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이 주된 취지이다. 회의의 최고 중심 테마는 ‘돈’이다. 고상한 수식어가 아니라 곧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현금이 차이나아프리카 협력의 핵심이다. 지난해 중국은 아프리카 정상들 앞에서 3년 내인 2015년까지 200억달러의 돈을 아프리카에 풀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텍사스에 본부를 둔 민간연구단체 스트랫포(Stratfor.com)는, 민간자본을 포함할 경우 2010년 이래 지금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투자 규모는 총 100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망한다.

투자 내용은 석유·가스·광산·구리 개발과 철도·댐 건설과 같은 분야가 900억달러로 수위를 차지한다. 최근에는 잠비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75억달러를 투자해 광산 개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선진국이 주로 벌이는 농업개발, 원조, 현지기업 지원 관련 투자는 전체의 1%에도 못 미치는 8억달러 선에 불과하다.

중국이 아프리카를 흔들고 있다

미군의 아프리카 서부전선 교두보가 될 니제르는 현재 중국이 석유개발 관련 투자를 벌이고 있는 나라다. 2010년 이래 투자액만도 최소한 20억달러를 넘어선 상태이다. 니제르의 바로 아래인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투자가 가장 두드러진 지역이다. 석유 개발, 철도 건설, 의류 공장에 관한 중국의 직접 투자가 활발하다. 2010년 이래 총 100억달러 정도의 투자가 이뤄진 상태이다. 20세기 초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버블경제는 아직 아프리카 전역을 맴돌고 있다. 중국이 뿌려놓은 엄청난 현금이 아프리카 대륙을 흔들어 놓고 있다. 엄청난 현금 덕택에 아프리카인의 고용창출이 현저히 올라가고 있다. 단기적이기는 하지만 보통 아프리카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경우 2만5000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위상은 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물론 미국도 한참 넘어선 단계이다. 미국과 니제르 사이의 지역 간 안정을 위한 군사협약은 바로 이 같은 상황하에서 발생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한 프랑스와 미국의 허니문 관계이다. 프랑스군이 말리의 무슬림 테러집단 토벌작전을 벌이러 갈 때 보여준 미군의 협력이다. 지상군을 직접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정보교환과 병력의 항공수송 지원에 남다른 노력을 보인 나라가 미국이다. 프랑스는 미군의 아프리카 내 드론 파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반대를 하거나 묵시적 찬성이 아니다. 미군이 알제리에 드론 배치를 원하자 프랑스도 찬성을 하며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가까운 시일 내에 알제리를 기반으로 한 드론 비행단도 출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은 테러리즘을 비롯해 외교문제에 관해 사사건건 대립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의 협력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반테러리즘과 안전한 에너지 확보라는 차원과 함께, 중국을 의식한 연대(連帶) 강화라는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아프리카는 경제를 키워드로 한 협력관계지만, 미국은 과거 식민지 종주국과 함께 군사협력을 통한 영향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의미이다.

아프리콤의 본격 활동 시작되나

현재 아프리카에서의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미군 부서는 아프리카사령부(AFRICOM)다. 육군·해군·공군·해병대를 포함한 9개의 미국 군사조직 중 하나가 아프리카사령부이다. 이곳은 육군처럼 독립된 군사운영 체계를 가진 단독 작전권을 갖고 있다. 본부는 미국이 아닌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 내 미군기지에 있다. 돈을 기반으로 한 중국 정부의 압력과 테러리즘을 걱정해 아프리카 그 어떤 나라도 아프리카사령부 유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작전 범위는 아프리카 내 53개국으로 이집트만 유일하게 빠져 있다. 이집트는 국방부 내에 있는 중앙사령부, 즉 센트콤(CENTCOM) 관할이다.

아프리카사령부가 활동에 나선 것은 불과 5년 전인 2008년 10월부터이다. 당시 백악관은 아프리카사령부의 출발을 ‘아프리카와의 협력을 통한 안전, 인권, 교육, 민주주의, 건강의 향상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직속상관에 해당하는 국방부는 보다 분명한 목소리로 신생조직의 의미를 강조한다. “아프리카사령부는 대륙 전체에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고 좋은 정부를 세우기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아프리카 각국의 안전을 구축하고 지도력 향상을 돕는 조직이 될 것이다.” 백악관이 개인의 안전에 방점을 둔 데 비해 국방부는 국가적 차원의 안전에 주목하고 있다.

아프리카사령부는 현재 군인·민간인·어드바이저를 포함해 약 3600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직접 아프리카로 가서 전투를 벌이는 병력이 아니다. 쉽게 말해 아프리카 53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정자 역할이 아프리카사령부의 주된 기능이다. 만약 병력을 파견할 경우 어떤 식의 편성과 화력 작전을 할지에 관한 논의가 아프리카사령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말리 테러조직에 대한 대응과 이후의 구도에 관한 논의도 아프리카사령부가 중심이 돼 이뤄졌다. 드론을 통한 아프리카 전역에서의 정찰 공격 활동 개요도 아프리카사령부에서 이뤄진 것이라 보면 된다.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대비

중국과 관련해서 아프리카사령부를 해석할 경우 구성원인 외교전문가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3600명의 구성원 가운데 민간인의 상당수가 전·현직 외교 전문가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사 공사급으로 이뤄진 원로외교자문단(SFS) 자격으로 아프리카사령부에 직접적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창을 앞세운 조직이지만 펜이 받쳐주는 이중구조인 셈이다. 말리·니제르·알제리에 대한 미군의 개입은 군사적 관점에 의한 결정만은 ‘결코’ 아니다. 원로외교자문단의 영향력하에서 정치·외교적 목적도 함께 갖고 있다.

오바마가 간접적으로 밝힌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대테러전 확대’는 내년 말로 못 박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한번 늘어난 군사력은 한순간에 줄어들 수가 없다. 3만4000명을 본국으로 귀국시켜 ‘무장해제’할 경우 관련된 비즈니스가 초토화된다.

현대전을 통해 미국은 1명의 전투원을 지원하는 병참인원을 최대 10배로까지 늘리고 있다.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최첨단 무기생산도 활발하다. 아무리 오바마라고 하지만 3만4000명을 실업자로 만들고 관련 산업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는 없다. 또 다른 전쟁이 필요한 것이다. 올해 초 아프리카에서 터진 테러 소식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나타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상황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만이 아니라 비대해진 미군 공급을 돌릴 수 있는 새로운 전선으로 아프리카가 부상한 것이다. 추측건대 올해 미국 언론들의 외신면 상당 부분은 아프리카 테러리즘에 맞춰질 것이다. 아프리카사령부는 냉전 당시의 나토(NATO),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버금가는 21세기판 첨단조직으로 불릴 것이다.

이슬람 테러단체와 평화, 아프리카인의 인권과 민주주의 같은 통속적 수식어도 넘치겠지만 핵심은 석유·가스와 같은 천연자원이다. 혈안이 돼 아프리카 전역을 뒤집어놓고 있는 중국의 야심을 견제하자는 것이 앞으로 오바마가 보여주려는 주된 외교 방향이다. 연두교서만으로 본다면 북한의 핵문제는 아프리카나 중국 이슈에 밀리는 내일의 문제로 남아 있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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