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 핵폭탄인 B61. 한국에도 배치됐던 전술핵무기로 1991년 철수됐다.
미국의 대표적 핵폭탄인 B61. 한국에도 배치됐던 전술핵무기로 1991년 철수됐다.

55년 전인 1958년 1월 주한미군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신무기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전술핵무기를 운반하거나 쏠 수 있는 어니스트 존(Honest John) 로켓과 280㎜ 자주포 M-65가 그것이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전술핵무기가 배치되며 한반도 핵무기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전술핵무기는 보통 위력이 0.1~수백㏏(1㏏(킬로톤)은 TNT폭약 1000t의 위력에 해당)인 핵무기를 말한다. 전투기·폭격기에서 투하하는 폭탄은 물론 각종 포에서 발사되는 포탄, 미사일·로켓·어뢰 탄두, 병사가 메고 운반할 수 있는 핵배낭, 전차부대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핵지뢰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전략핵무기는 위력이 수백㏏~수Mt(1Mt(메가톤)은 TNT폭약 100만t의 위력에 해당)에 달해 전술핵무기보다 파괴력이 크다. 보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전략핵무기에 해당한다.

어니스트 존은 주한미군이 보유했다가 1970년대에 한국군에 넘겨줬다. 흔히 미사일로 알려져 있지만 유도장치가 없는 로켓이다. 사거리 37~48㎞로 W-31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W-31 핵탄두는 2㏏, 20㏏, 40㏏ 등 세 종류가 있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핵폭탄의 위력이 15~22㏏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보다 강한 핵탄두도 장착될 수 있었던 셈이다. 총 1650개의 어니스트 존용 W-31 탄두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80㎜ 자주포는 ‘원자포’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2대의 트랙터에 견인돼 시속 50㎞로 이동할 수 있으며 총무게는 85t에 달했다. 사격에만 22명의 요원이 필요했고, 위력이 다른 세 종류의 핵포탄을 운송차량에 싣고 다녔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과 비슷한 위력의 포탄을 32㎞ 떨어진 곳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다. 총 20문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16문이 독일과 우리나라에 주둔 중이던 미군에 배치됐었다.

어니스트 존과 280㎜ 원자포가 한반도 전술핵 시대를 연 뒤 미사일과 포탄, 폭탄, 핵지뢰, 핵배낭 등 다양한 전술핵무기들이 주한미군에 속속 배치됐다. 핵무기의 소형화가 진전되면서 280㎜ 원자포보다 작은 203㎜(8인치)·155㎜ 곡사포에서 발사될 수 있는 핵포탄, 서전트·랜스 지대지 미사일, 초소형 핵무기인 데이비 크로켓도 포함됐다. 155㎜ 핵포탄은 2㏏ 안팎의 위력이 있었다.

주한미군 전술핵무기는 1967년쯤 950기로 정점을 기록한 뒤 1980년대 중반 150여기로 줄었다가 1991년 말 노태우 정부 당시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 및 미 정부 방침에 따라 완전 철수됐다. 철수에 앞서 1991년 군산 미공군기지에 배치된 F-16C/D 전투기는 핵폭탄 탑재 및 조작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훈련은 편대 단위의 일반적인 핵 공격 훈련과 단독 타격 훈련으로 나뉘어 실시됐다. 이때 주로 사용한 것이 B61 전술핵폭탄이다. B61은 미국의 대표적 핵폭탄으로 위력은 0.3~350㏏까지 총 9가지 형태가 생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B-52, B-2 같은 폭격기 외에 F-15, F-16, F-18 등 전투기에서도 투하할 수 있다.

전술용과 전략용이 있는데 전술용으로는 B61-3, B61-4, B61-10이 있다. 이들의 폭발력은 0.3㏏, 1.5㏏, 5㏏, 10㏏, 60㏏, 80㏏, 170㏏ 등으로 다양하다. 전략용 핵폭탄으로는 B61-7이 있는데 최대 340㏏급 등 네 가지 형태의 폭발력이 있다. 강력한 핵폭발에 의한 항공기 및 조종사의 피해를 막기 위해 B61에는 대부분 낙하산이 달려 있다. 땅에 떨어지는 속도를 늦춰 항공기와 조종사가 멀리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전술핵무기에는 이런 폭탄, 포탄, 미사일 탄두 외에 병사가 등에 지고 옮길 수 있는 초소형 핵무기인 핵배낭, 도로에 거대한 구덩이를 내 적 기계화부대 등의 진격을 저지하는 핵지뢰, 바다에서 적 수상함정이나 잠수함을 공격하는 핵어뢰 및 핵기뢰도 있었다. 하지만 핵포탄, 핵지뢰, 핵배낭, 핵어뢰, 핵기뢰는 1990년대 이후 대부분 폐기됐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 미국이 보유한 전술핵무기는 총 1620발 수준으로 줄었다. B61 계열의 핵폭탄 1300발, 토마호크 크루즈(순항) 미사일용 핵탄두(W80-0) 320발 등이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실시 이후 1991년 철수했던 주한미군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정몽준 의원(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여러 차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2010년 11월엔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국회 답변을 통해 미군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문제를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

사실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카드는 2000년대 초반 북한 핵위기가 불거진 뒤부터 군 내부에서 은밀히 검토돼왔던 사안이다. 군 소식통은 “실제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우리도 핵으로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 핵에 강하게 대응하라고 압박하는 성격의 카드였다”고 말했다.

현재 한·미 양국 정부는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는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한반도 내 특히 지상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위배될 뿐 아니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핵 없는 세계’ 정책과도 상충되기 때문이다.

또 전투기나 폭격기에서 투하하는 전술핵폭탄이나 토마호크 미사일용 핵탄두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전술핵무기가 이미 폐기됐다는 점이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약화시키는 요소다.

이에 따라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배치하더라도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나 이지스함에 탑재된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이들 함정을 한반도 근해에 배치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B-2 스텔스 폭격기, B-52 폭격기, F-15E·F-16·FA-18 전투기로 운반되는 B61 계열의 핵폭탄도 활용될 수 있다. B-2·B-52 폭격기는 괌 앤더슨 기지에서 출동하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정부와 군 당국은 핵탄두 토마호크 미사일을 장착한 미군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수시로 한반도 근해로 출동하기 때문에 우리 땅 위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옵션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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