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강창건(59) 조리장은 제주 다금바리 요리의 거장이다. 그가 손질한 다금바리를 맛본 국가 지도자로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있다. 지난 2000년 사상 첫 남북 국방장관 회담차 제주도를 찾은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앞에도 그가 손질한 다금바리회가 올려졌다. 이후 그가 직접 손질해 포장한 다금바리는 비행기와 헬기, 배편을 거쳐 평양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까지 갔다. 2006년 세계 슬로푸드 운동본부는 그를 세계 100대 요리사(Chef)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강씨가 손을 댄 다금바리가 세계적 유명세를 탄 것은 1991년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그의 다금바리를 맛보면서다. 1991년 한·소 정상회담 당시 강씨는 정상회담 오찬을 맡을 요리사로 극비리에 차출됐다.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위해 마련된 오찬장은 제주 서귀포 중문컨트리클럽 내에 있는 클럽하우스였다. 당시 강씨는 유일하게 외부 식당 사람으로 차출된 요리사였다.

이미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기 수개월 전, 한·소 정상회담 준비차 극비리에 제주도를 방문한 소련 외교부의 차관급 인사는 당시 우리 측 외무부의 고위 관료들과 함께 그가 운영하는 식당(제주 진미명가)을 직접 찾아가 다금바리를 맛봤다고 했다.

강 조리장에 따르면 고르바초프가 맛볼 다금바리를 준비하면서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중압감이 극심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소련은 적성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의 정상이 그가 손질한 다금바리를 먹고 혹시 잘못될 것을 염려해서였다. 그는 “혹시 독극물이라도 들어가면 나는 어찌되냐”며 “왕의 시해는 항상 요리사의 손끝에서 일어나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에 그는 청와대를 상대로 대뜸 ‘7개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재료, 식칼, 도마, 집기, 행주, 무갱, 조수 한 사람을 내가 직접 오찬장으로 준비해 가겠다”는 조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군사정권 치하로 사회적 분위기가 엄할 때다. 그가 ‘7개 조건’을 대뜸 내밀자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반응이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미 극비리에 신원조회 등을 다 끝낸 청와대에서는 할 수 없이 그가 내건 ‘7개 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가 조리한 다금바리는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만난 오찬장 테이블에 제주 특산 돌돔 등과 함께 올려졌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강 조리장이 다룬 다금바리회를 러시아에서 직접 공수한 보드카를 반주 삼아 맛있게 먹었다고 전한다.

고르바초프에게 선보였던 다금바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귀에도 들어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0년 강원도 백담사에서의 25개월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하산한 직후 이순자 여사와 함께 제주도를 찾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 전 모 인사가 그의 식당을 찾았다. “귀하신 분이 내려오는데 고르바초프 밥상에 올렸던 것과 똑같은 다금바리를 서귀포 육군휴양소(현 서귀포호텔)로 와서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며칠 뒤 제주도에서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타고 나서였다. ‘마라도에서 다시 똑같은 요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배에 전 전 대통령이 탔던 것. 이후 전 전 대통령과 함께 배를 타고 마라도로 간 강씨는 마라도의 한 민박집 주방을 빌려 다시 다금바리회를 떴다. 그의 다금바리를 맛본 전 전 대통령은 이후 추운 겨울에 가죽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 이순자 여사 내외는 그가 손질한 다금바리 팬이 됐다. 이순자 여사의 회갑잔치도 제주도에 있는 그의 식당에서 열렸다.

이후 강 조리장의 다금바리 요리 솜씨는 북한에까지 입소문이 났다고 한다. 지난 2000년 제주도에서 열린 남북한 첫 국방장관 회담 때는 그가 운영하는 식당이 만찬장으로 극비리에 선정됐다. 당시 북한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과 우리 측 조성태 국방장관, 우근민 제주지사 등 남북한 고위관계자 8명은 내외신 기자들을 완벽히 따돌리고 그가 운영하는 식당 앉은뱅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날 남북한 국방장관 간 첫 만찬을 위해서 철저한 연막탄까지 준비됐다. 언론에는 이미 “만찬장은 ‘남경미락’”이라고 역정보를 흘렸다. 만찬에 앞서 강씨의 식당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유명 향토횟집 ‘남경미락’ 앞에는 아스팔트가 새로 깔리고 플래카드가 내걸렸다고 한다. 심지어 살수차까지 와서 물까지 뿌리고 갔다. 하지만 정작 만찬장이 된 것은 한 달 전 통보를 받은 그의 식당이었다.

당시 강 조리장으로 인해 1948년 6·25전쟁 정전 직후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한 국방장관 회담이 파투 날 뻔하기도 했다. 소위 ‘높으신 분’들 요리를 전담하며 키운 ‘배짱’이 화근이 된 것. 그는 다금바리 요리를 건네면서 “아무리 정성을 들인 음식도 미소가 없으면 맛이 없는 법” “음식에는 국경이 없는 법”이라며 남북 국방장관의 악수를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놓고도 분위기가 애매했던 8명의 남북한 군부 인사들 앞에서 약 5분간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사전에 각본에도 없던 엄연한 외교상 결례였다. 그에 따르면, 조성태 국방장관의 얼굴이 시퍼레지면서 눈에 살기가 돌았다고 한다. 당시 식당 밖에는 권총을 찬 북측 경호원들이 호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조 장관, 강 동지(강창건)가 해주는 다금바리를 먹어봐야 되지 않갔어”라며 분위기를 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남북 국방장관 만찬에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3시간가량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는 “당시 술만 8잔을 받았다”고 말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강 조리장에 따르면, 해군사령관 출신인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남한의 바다에서 나는 어종 등 남한의 바다를 꿰뚫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다금바리를 북에서도 먹어볼 수 있냐’는 얘기도 건넸다. 이에 그는 “다금바리를 북으로 올려보내도 내 칼이 안 들어가면 안 된다”며 “잠수함을 식당 앞으로 한 대 내려보내 주면 직접 평양에 가서 요리해 주겠다”고 받아쳤다. 또 “평양에서 다금바리 요리가 끝나면 다시 잠수함으로 제주도까지 데려다 달라”는 추가 조건까지 붙이자 당시 웃음보가 터졌다고 한다. 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고 한다. 당시 동석한 우근민 제주지사 역시 강 조리장에게 “제주도민을 대표해서 고맙다”는 덕담이 자리에서 오갔다고 한다.

이후 강 조리장이 잡은 다금바리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으로도 우여곡절 끝에 올라갔다고 한다. 대북사업을 한 현대아산 측의 요청으로 그는 아가미와 비늘, 내장 등을 모두 제거한 다금바리를 일일이 포장해 보냈다. 그에 따르면, 손질한 다금바리는 제주공항에서 김해공항, 김해공항에서 헬기로 금강산유람선(설봉호)까지 건너간 뒤, 북으로 들어갔다. 이후 현대그룹에서 대북사업을 주관했던 김윤규 전 부회장은 “김 위원장(김정일)이 당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그에게 전했다.

강창건 조리장이 다금바리에 평생을 바치기로 한 것은 고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고문의 강연을 듣고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이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전국의 유명 요리사 100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규태 고문은 일본 요리사들이 마구로(참치)를 다루는 얘기를 풀어냈다. 당시 제주 대표로 유일하게 참석한 강창건 조리장은 제주도 특산인 다금바리에 한평생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금바리는 제주도에서도 쳐주는 최고급 횟감이다. 농어과 물고기로 수심 100~200m의 암초에서 살며 작은 생선을 먹고 자란다. 살이 차지고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큰며느리가 큰아들을 낳으면 시어머니가 끓여주는 국이 다금바리 미역국”이라고 설명했다.

다금바리의 1㎏당 가격은 2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일부 식당에서는 간혹 생김새가 닮은 능성어가 다금바리로 둔갑해 상에 오르는 일도 있다. 강창건 조리장은 대개 회와 매운탕 정도로만 활용되는 다금바리 요리에 일대 혁신을 가했다. 입술과 목살, 볼살, 껍질, 간, 대창 등 다금바리의 거의 모든 부위를 활용해 요리법을 내놓은 것. 2006년 강 조리장은 조리법으로 ‘다금바리 회 조성물 및 제조방법’이란 발명특허까지 우리나라 최초로 취득했다.

현재 강창건 조리장은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서 ‘진미명가’란 다금바리 전문 횟집을 운영하는 오너셰프다. 다금바리만 다루기를 4대째로, 그의 아들 강경석씨 역시 주방에서 조리사로 대를 이어 일하고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그룹 회장들이 그의 열렬한 팬이다. 지난 3월 19일 그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의 일식당 모모야마에서 다금바리를 활용한 각종 일품요리들을 선보였을 때, 몇몇 대기업 회장은 직접 호텔을 찾아왔다.

다금바리회를 비롯해 샐러드, 무즙소스, 모둠스시, 완지리 등 다금바리를 활용한 각종 요리가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그에 따르면 다금바리 한 마리로 할 수 있는 요리는 31가지에 달한다. 원래 북서풍이 불 때 살이 오르는 가을 생선인 다금바리는 덩치가 크면 클수록 더욱 맛있다고 한다. 요리 솜씨를 선보일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크다. 3월 26일부터는 부산 롯데호텔, 3월 29일부터는 제주 롯데호텔에서도 그의 요리시범이 예정돼 있어 미식가들의 기대를 모은다.

이날 기자와 만난 강창건 조리장은 “다금바리는 회로 맛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맛있게 먹는 법은 좋은 기분으로 먹는 것”이라며 그의 명함을 건넸다. 그의 명함 안쪽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성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조리하면 드시는 사람 역시 편안함을 미소로 느낄 것이며 성급한 마음에서 거칠은 성격으로 음식을 조리하면 드시는 사람 역시 거칠어질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키워드

#인물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