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산 지중해홍합.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지난 4월 3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산 지중해홍합.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프랑스 식당 ‘씨갈 몽마르트’는 홍합요리로 유명하다. 메뉴판의 한 면을 아예 11개의 다양한 홍합요리로 채웠다. 지중해 홍합요리, 프로방스 스타일 홍합요리, 브뤼셀 스타일 홍합요리, 태국 스타일 홍합요리 등. 이 식당에서 하루 평균 소비하는 홍합은 30㎏ 정도.

이 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홍합요리는 지중해 홍합요리다. 토마토 소스로 만들어 달착지근한 게 맛있다. 그렇다면 프랑스인이 가장 즐기는 홍합요리는? 프로방스 스타일 홍합요리다. 식당 측은 프로방스 스타일 홍합요리와 브뤼셀 스타일 홍합요리를 클래식 홍합요리로 분류해 놓았다. 프로방스는 흔히 남프랑스로 불리는, 지중해에 면한 지역이다. 반 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아를(Arles), 영화제의 도시 칸이 바로 프로방스에 있다.

프로방스 스타일 홍합요리는 홍합살을 발라 먹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국물의 향이 강하다. 여간해선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기 어렵다. 프로방스 허브를 넣어 국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의 혀를 밀쳐내는 이 국물맛이 바로 프로방스 스타일이다. 프랑스인 여자 종업원은 “프랑스 사람이 와서 먹어보고 프랑스에서 먹어본 홍합요리와 똑같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프로방스 출신이 이태원에서 이 홍합요리를 먹어보고 진한 고향의 맛을 느꼈다면, 그 요인은 뭘까? 메뉴판에 기록된 요리 재료를 보자. 백포도주, 말린 토마토, 프로방스 허브, 파스티스(pastis). 여기서 파스티스는 식전주로 흔히 요리에 사용하는 포도주이다. 재료만으론 어딘가 설명이 조금 미흡하다.

그것은 프로방스 허브가 지중해홍합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이 식당에서 나오는 홍합은 모두 지중해홍합이다. 물론 메뉴에는 홍합(mussel)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지중해홍합이란 말은 지중해에서 채취된 홍합을 수입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홍합은 조가비의 무게와 부피 때문에 물류 비용이 많이 든다. 식재료 원산지 표시제 이후 모든 요식업소는 식재료를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식당은 홍합에 별다른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았다. 바로 홍합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궁금해진다. 왜 지중해홍합의 원산지가 한국일까? 지중해홍합은 주로 진해만, 여수만 등 남해안에서 양식한다.

지금 우리가 먹는 홍합의 95% 이상은 양식한 것이고 지중해홍합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 홍합을 토종홍합으로 알고 있다. 여기에 최근 뉴질랜드산 그린홍합이 조금씩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린홍합은 녹색빛을 띠며 크기가 손바닥만 하다. 기자는 십수년 전부터 홍합을 먹을 때마다 ‘이건 어릴 적 먹던 그 홍합이 아닌데…’ ‘홍합 크기는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요즘 먹는 홍합이 어린 시절 먹던 홍합과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합류는 전 세계에 250여종이 있다. 국내 연근해에서 잡히는 홍합은 지역에 따라 섭, 담치, 열합 등으로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홍합을 담채(淡菜)라고 불렀다. 담치는 담채에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당장 수산물시장에 나가보자. 어패류 어물전에서 만나는 홍합은 거의가 지중해홍합이라고 봐도 된다. 지중해홍합은 보통 1년짜리가 수확돼 시중에 팔리는데 몸길이가 7~10㎝ 정도 되고 조가비 표면이 매끈하고 반들거린다. 지난 4월 2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 가보니 홍합을 팔고 있는 두 가게가 눈에 띄었다. 첫 번째 가게에서 주인에게 물었다. “지중해홍합 말고 토종홍합을 사고 싶은데 있나요?” 주인은 토종홍합이 없다는 얘기만 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가게 주인은 지중해홍합과 토종홍합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했다.

“토종홍합은 2주 전까지 팔았다. 현재는 제철이 아니어서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보통 봄이 되면 홍합이 산란을 하므로 독소가 발생할 수 있다. 홍합은 산란 직전인 늦겨울부터 초봄 사이가 가장 맛있다. 토종홍합은 1㎏에 싼 게 8000원에서 비싼 건 1만5000원까지 나간다. 양식인 지중해홍합은 1㎏에 3000원 한다. 토종홍합은 양식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토종홍합과 양식홍합은 크기와 맛에서 차이가 있다. 토종홍합은 훨씬 쫄깃해 식감이 좋고 양식은 부드럽다.”

기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홍합은 바로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담채로 기록된 토종홍합이었던 것이다. 노량진수산물시장에 나와 있는 양식 지중해홍합(지중해담치)은 모두 원산지가 여수로 표시되어 있었다.

여수 앞바다는 창원 앞바다, 즉 진해만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홍합 양식장이다. 창원 앞바다에서 생산되는 양식 지중해홍합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물량의 50~70%를 차지한다. 양식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0년대 중반. 주로 남해안에서 김·굴·피조개 등을 양식하면서 홍합 양식도 시작했다. 창원에 있는 홍합 양식장은 총 47개로 면적은 135㏊. 1년 평균 7000t가량을 수확한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향토음식과 식재료전문가로 유명하다. 네이버 블로그 ‘팔도식후경’에서 황씨는 창원 홍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황씨는 토종홍합을 홍합으로, 지중해홍합을 지중해담치로 표기했다.)

동해안에서 채취된 토종홍합.
동해안에서 채취된 토종홍합.

‘홍합은 예부터 한반도의 바다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토종으로 여긴다. 지중해담치에 비해 크고 조가비가 두껍다. 홍합은 양식을 하지 않으므로 자연산으로 팔리는 것에 이 홍합이 많다. 그러나 지중해담치도 자연산이 있으므로 자연산이기만 하면 반드시 홍합인 것은 아니다. 지중해담치는 이름 그대로 지중해와 서대서양 원산지의 홍합류 조개이다.’

창원시 구산면 구복리에 있는 여명수산은 2대째 홍합을 취급하고 있다. 여명수산 이상태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지중해홍합과 자연산 토종홍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양식은 1년 정도 지난 후 일정 크기가 되면 수확한다. 하지만 자연산 토종홍합은 바위 밑에 달라붙어 있어서 2~3년 된 게 있다. 토종홍합이 크기도 더 크고 맛도 더 야물딱지다. 토종홍합을 전문적으로 채취하는 사람은 없고 굴도 캐고 미역도 캐다가 우연히 같이 채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물량이 정말 적다. 전체 유통량의 1% 정도다.”

이를 종합해 말하면 외래종인 지중해홍합이 한반도 연안의 토종홍합을 초토화시켰다. 지중해홍합이 번식력이 강하고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지중해홍합은 어떻게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와 해양생태계를 교란시켰을까? 누가 일부러 지중해홍합을 가져와 한반도 연안에 뿌린 것도 아닐 텐데. 이와 관련 황교익씨는 “15세기 대항해시대에 유럽 선박의 바닥에 붙어 전 세계의 연안으로 번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일본에서는 1935년 처음 발견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한반도 연안에서의 사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환경기구와 국제해양기구는 20여년 전 해양생태계 교란의 원인을 선박평형수(ballast water)라고 결론을 지었다. 선박은 화물이 없을 경우 탱크에 물을 채워 무게를 유지해 균형을 잡는데 이때 사용하는 바닷물을 선박평형수라고 한다. 선박평형수는 배가 정박한 항구나 주변 연안수를 끌어올려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외래 수중생물이 탱크에 실려 항로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우리는 항구에 정박한 선박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종종 본다. 이게 바로 선박평형수다. 화물을 싣기 위해 탱크에 저장된 평형수를 빼내는 광경이다. 예컨대 지중해 마르세유에서 출항한 배가 부산항에 정박해 평형수를 배출하면 지중해에 서식하는 수중생물이 그대로 부산 앞바다로 옮겨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배 밑바닥에 붙어 이동하는 수중생물도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와 환경보호위원회(MEPC)는 2004년 선박평형수 관리협약을 채택했다. 협약의 핵심 골자는 유해 수중생물의 이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박평형수를 살균처리해 배출하자는 것이다. IMO는 외래해양생물종을 새로운 해양 오염원으로 규정했다.

경남 통영 수륙마을 앞 해상에서 선박평형수를 쏟아내고 있는 화물선. ⓒphoto 한산신문
경남 통영 수륙마을 앞 해상에서 선박평형수를 쏟아내고 있는 화물선. ⓒphoto 한산신문

그렇다면 외래해양생물종은 어떻게 이동할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최재선 미래전략본부장이 쓴 ‘조선분야 국제환경 규제와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살펴보자. 이 보고서에 따르면 외래해양생물종이 이동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유입통로는 선박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만의 경우 선체에 달라붙어 유입되는 경우가 26%, 평형수를 통한 유입이 24%로 전체의 반이 선박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에는 평형수에 의한 유입이 15~2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선체 부착, 양식 어류의 이동 순으로 조사됐다. 뉴질랜드의 경우도 대부분 선체 부착을 통해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경기도 안산에 본부가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지난해 3월 경남 거제시의 남해연구소 내에 선박평형수센터를 설치했다. 선박평형수 통제와 관리체계 구축이 해양생태계 보호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신경순 선박평형수센터장의 설명이다.

“국제해사기구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00억t 이상의 평형수가 운송되고 있다. 따라서 평형수로 1만종 이상의 외래해양생물체나 병원체가 이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외래 수중생물이 항만으로 들어와 그 지역의 토착 생물들과 경쟁을 벌이게 된다. 대부분의 외래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지만 살아남은 종들은 강한 생존력과 번식력으로 항만이나 연안생태계를 교란시키거나 파괴할 수 있다.”

신경순 센터장에 따르면 미국은 79종의 수중생물 침입으로 총 970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다. 호주는 1998년 검은줄무늬담치로 약 1800억원 규모의 진주 양식장이 폐허가 된 적이 있다. 외래해양생물종으로 인한 피해사례는 수두룩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LA 앞바다 해변에서는 언제부턴가 낯선 종류의 조개가 채취되었다. 해가 갈수록 이 낯선 조개의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조개는 한국산 모시조개였다.

선박평형수 관리협약에 따르면 2017년부터 모든 선박은 선박평형수를 살균처리해서 배출하는 장치를 장착해야 한다. 조선업계에서는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 시장을 80조원 규모로 본다. IMO의 기준을 통과해 승인된 제품은 25개사 제품. 이 중 현대중공업이 개발한 ‘하이밸러스트(HiBallast)’를 비롯해 국내 업체 제품 9개가 포함되어 있다. 현대중공업은 새로 수주하는 선박에 하이밸러스트 장치를 탑재해 건조한다.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는 환경문제가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또 다른 케이스이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선박평형수를 통한 수중생물의 이동을 100%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지금 외래 수중생물의 생태계 교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키워드

#환경
조성관 편집위원 / 이지희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년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