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여군들 ⓒphoto 조선일보 DB
이스라엘 여군들 ⓒphoto 조선일보 DB

2000년 11월 말 이스라엘 예루살렘 알로조로프(Alozolov) 거리. 새로운 밀레니엄(천년)의 첫해를 거의 마감하는 그날, 평생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서 귀가하면서 시내 모퉁이를 도는 순간, 갑자기 굉장한 폭음이 울렸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자욱한 연기와 고무 탄 냄새, 그리고 귀에서는 ‘삐’ 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휘청 걸어나가다가 나는 세상의 지옥을 보았다. 거리에 널브러진 인육들,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 어떻게 손볼 수도 없는 부상자들,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들…. 집 앞 커피점에서 이슬람 테러단체의 자살폭탄테러로 시민 6명이 사망한 끔찍한 날이었다. 2000년 시작된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봉기)로 매주 폭탄테러와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던 무렵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내가 직접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날 테러 경험 이후 이스라엘 국방력에 대한 나의 인식이 새로워졌다.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테러단체들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을 지지했지만 사실 그건 이스라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했고, 자신을 지킬 무력이 당장 절실한 나라였다. 이스라엘에 국방은 말 그대로 절대적 생존수단에 다름아니라는 걸 그날 느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948년 건국 이후 1973년까지 주변 아랍국들과 네 차례의 큰 전쟁을 치렀고, 지난 5월 3일과 5일 시리아에 대한 폭격에서 보듯 지금도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국방정책은 최대한 작은 예산으로 최대의 안전 보장을 확보하고, 최신 무기 체계 보유와 무기의 질적 우세 지속을 중심에 두고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스라엘 무기의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에서 자체 개발·생산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치렀던 전쟁 노하우와 산업계와 학계의 기술을 융합시켜 세계적 방산 업체들을 만들어냈다. 이스라엘 방산 업체들은 군과의 긴밀한 협력 체제를 갖추고 있고, 이스라엘의 창업정신을 대표하는 벤처신화가 녹아 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방산 업체들은 4대 국영기업인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 엘빗시스템, 라파엘, 이스라엘군사산업(IMI)이다. IAI는 전투기(라비·크피르·네셜)와 무인정찰기(고스트·스카이라이트·헤론), 가브리엘 미사일, 인공위성을 개발한 이스라엘 대표 항공업체이다. 한 해 매출만 25억달러(약 2조7200억원)인 세계 40위권의 방산 업체다. 세계 30위권 방산 기업으로 급성장한 엘빗시스템도 2011년 기준 매출액이 26억8000만달러(약 2조9100억원)에 이른다. 통신·레이더·원격제어 분야가 주력으로 최근 우리나라에 탄도미사일 조기경보레이더인 ‘그린파인’을 수출했다. 저고도 요격미사일 ‘아이언돔’으로 주가를 올린 라파엘도 이스라엘의 빼놓을 수 없는 방산업체이며, 우지(Uzi) 기관단총으로 유명한 IMI는 소구경화기에서 탄약, 화포, 전차 등을 생산하고 있고 군사교육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을 앞세워 이스라엘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60여개국에 방산 제품을 수출한다. 수출품도 소구경화기부터 무인항공기(UAV), 전차, 미사일, 레이더, 군용 컴퓨터, 통신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는 불과 30여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이스라엘은 재래식 무기뿐 아니라 핵 전력에서도 막강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스라엘은 현재 10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이를 누설한 이스라엘 핵 과학자가 오랫동안 감옥생활을 하다가 석방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의 종류도 공대지 미사일, 지대지 미사일, 잠수함 발사 미사일 등에 탑재할 수 있도록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자신들의 핵 전력에 대해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군사 기밀 유지 목적과 함께 상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정책으로 해석된다. 핵무기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도 절대 금지돼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과연 핵무기가 있을까 의심하는 시민도 적지 않을 정도다.

이스라엘의 군사 전략은 육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와는 좀 다르다. 영토가 주변 아랍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필요시 방어보다는 우세한 공군력을 활용한 선제공격을 중시하고 있다.

레바논과의 국경을 수색하고 있는 이스라엘 병사들. ⓒphoto 로이터
레바논과의 국경을 수색하고 있는 이스라엘 병사들. ⓒphoto 로이터

그래서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주력 전투기인 F-16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주변국가들로부터 공격이 있을 때는 적의 영토로 바로 진입하여 전쟁 발발 초기 단계부터 전장을 적국 영토 내로 전환하여 자국민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군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때는 당연히 이스라엘의 첩보력이 큰 역할을 한다.

어릴 때부터 군사적 긴장 상태 속에서 자란 이스라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간 군대에 간다. 이스라엘 군(IDF·Israel Defense Forces)은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어 있고, 군 통수권은 내각책임제 권력 구조에서 총리가 수행한다. 이스라엘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이다. 이스라엘의 군 조직은 참모총장 지휘하에 육군의 3개 사령부, 공군 사령부, 해군 사령부, 지상군 사령부, 그리고 민방위 사령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여성 징집률이 가장 높다. 결혼이나 종교적 이유로 징집 면제 대상이 되는 여성은 30% 정도다. 징집된 여성 대부분은 훈련생 교육 및 전투 지원 업무에 복무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20년가량 산 필자는 어릴 때부터 이스라엘 친구가 많았다. 이스라엘 친구들은 군에 간 후 휴가를 나올 때 항상 M-16 총 한 자루와 실탄이 장전된 탄창 두 개를 갖고 집에 왔다. 군에 간 아들 딸을 둔 부모들은 자녀가 휴가를 나올 때마다 항상 비상이었다. 휴가 나온 친구들이 저녁에 외출할 때 총과 탄창을 잘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비우고 외출할 때는 총을 집안에 꽁꽁 숨기고 문을 잠그고 나가는 게 습관으로 굳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 나온 군인들이 테러범을 사살하는 사례도 가끔 발생하고, 인터넷 1위 검색어로 떠오르는 ‘총을 들고 해변을 거니는 비키니 수용복 차림의 미녀’도 실제 등장한다. 총을 메고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미녀들은 연출이 아니라 진짜 휴가 나온 여군들이다. 이들은 아마도 총을 지켜줄 부모가 없어 직접 총을 메고 해변으로 나왔을 것이다. 총을 메고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면 영창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스라엘 여성은 겉보기보다 매우 강하다. 2년 군복무를 하고 모두 병장 제대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남자들이 겪는 군생활을 거의 다 체험한다고 보면 된다.

남녀가 다 군대에 간다고 해도 이스라엘 전체 현역 군인 수는 14만명 안팎이다. 이스라엘 국방에서는 현역을 제외한 예비군 병력에 대한 의존도 크다. 전체 병력의 70%를 예비군이 차지한다. 과거 네 차례의 중동전쟁과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및 지난해의 가자지구 군사작전 때도 예비군이 주된 활동을 하였다. 780만명의 적은 인구가 최대의 전투 역량을 갖기 위해서는 예비군의 전력화가 필수적 상황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평상시 정기적으로 예비군을 훈련시키고 군 특기 분야별로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는 별도 교육도 시킨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특히 효율적인 동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모바일 시스템과 TV,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를 예비군 동원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특수 임무에 동원될 경우에는 해당 사단을 통해 암호화된 명령을 휴대폰으로 개인별 통보한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손자가 내세운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규칙은 과학적 진리”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런 언급은 오늘날 이스라엘 국방력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 막강한 정보력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군 정보국’이라는 독립 기능을 수행하는 군 정보부대가 있다. 이 부대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해외담당 정보기관인 모사드 및 국내 담당 정보기관인 신베트와 정보를 공유하며 이렇게 공유된 정보는 총리, 의회, 국방장관, 참모총장 등과 효율적으로 소통된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되어 오늘날 이스라엘은 세계 10위의 군사력을 가진 군사강국이 되었다. 아마도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표현이 이스라엘 군에 제일 적합할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원재

서울생.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스라엘 이민. 예루살렘 히브리대 경제학과 졸업. 이스라엘 요즈마펀드 한국지사장, 요즈마그룹 투자 심사역. 한국-이스라엘 상공회의소 이사

이원재 요즈마펀드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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