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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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허파 추출물로 아토피를 치료하는 법이 나왔다. 바이오 벤처기업 바이오피드의 최성현(48) 연구소장과 강원대 생화학과 임창진 교수팀이 지난해 임상실험에 성공했다. 약 10년간의 연구개발 끝에 연구팀은 2012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MFDS·옛 식약청)의 신약 승인을 획득했고, 하반기 중 치료제 생산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 물질은 천연물(돼지의 허파)에서 추출해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 대형 제약사와 병의원들도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아토피 치료제들은 스테로이드 중독 등 각종 부작용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제약사(영진약품)를 자회사로 갖고 있는 KT&G도 가능성을 주목해 기술투자를 단행했다. 지난 5월 22일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의 바이오피드 연구소에서 만난 최성현 소장은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지난 1995년 영국에 유학해 면역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에서 자가진폐증을 연구하며 폐(허파)와 씨름했는데 아토피와 연관성을 발견했다.

최 소장은 이후 연구 방향을 폐에서 아토피로 전환한 뒤 소·돼지·양의 허파에서 추출해낸 극성 인지질이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후 바이오피드란 바이오벤처 기업을 고향인 춘천에 설립,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대주주로서 직접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최 소장은 다른 동물의 허파에서도 해당 물질을 추출할 수 있지만 돼지허파를 고집하고 있다. 생명윤리상 사람의 허파는 안 되고, 소의 허파는 광우병 우려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강원도 홍천의 도축장에서 신선한 돼지허파를 보내주면 이를 분쇄해 피를 깨끗이 뽑아낸 뒤 해당물질을 추출해 낸다. 이의 농도를 조절해 아토피 치료제 또는 치료보조용 기능성 화장품 등을 만든다.

바이오피드의 합작 유통채널인 NSP메디컬을 통해 나올 아토피 치료제는 시장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최 소장은 기대하고 있다. NSP메디컬이 추산한 국내 아토피 치료제 시장 규모는 1020억원가량. 보습제 형태의 화장품이 매출 600억원으로 시장의 60%가량을 점하고 있다. 스테로이드제가 350억원, 면역억제제 50억원으로 각각 35%와 5%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는 “아토피는 식생활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식용유로 대표되는 ‘식물성 중성지방’이 아토피 질환의 주범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식생활이 ‘포트(Pot·솥)’에서 ‘팬(Pan)’으로 바뀐 게 아토피를 불러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삶거나 찐 식단에서, 식용유를 사용해 굽거나 튀긴 음식의 섭취가 늘어나면서 아토피 환자가 급증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최 소장의 이 같은 주장은 의약계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의 아토피 치료는 ‘대사조절방식’이 아닌 ‘면역조절방식’에 주력해 왔다. 스위스의 노바티스 등 다국적 제약사들이 출시한 기존의 아토피 치료제도 대개 환자의 면역불균형 조절에 치중해 왔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 치료제는 감염 취약성과 발암 가능성 같은 부작용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환자 연령에 따른 사용제한 등을 권고해 왔다.

최 소장은 식물성 중성지방의 과도한 섭취로 혈관에서 단백질이 삼출되고 포도상구균 등이 들러붙으면서 아토피가 생긴다는 메커니즘으로 아토피의 발병 원인을 설명한다. 돼지허파에서 추출한 극성지방을 환부에 투여하면 아토피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 식물성 중성지방 과다섭취 같은 대사불균형 측면에서 아토피 발병원인을 찾는 것은 아직 학계 주류는 아니다.

최 소장은 “아토피 환자들은 식용유를 반복 가열해 튀겨내는 치킨, 탕수육, 스낵을 당장 끊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서 아토피 문제가 떠오른 것도 1970년대 후반으로, 식용유를 가열해 조리한 음식이 퍼진 것과 거의 시기가 같다. 식용유 사용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석유곤로 등에 끓이는 식으로 조리를 했다. “당시만 해도 아토피 같은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실제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 미국식 ‘프라이드 치킨’ 등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아토피 환자는 급증했다. 특히 “치킨이나 탕수육을 조리할 때 식용유를 반복적으로 가열해 사용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최 소장은 “식용유에 대한 인간의 대사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3000년쯤 후에야 적응될 것”이라고 했다.

최 소장은 “주변의 환경적 요인은 결정적 발병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기오염이나 집먼지진드기 등을 아토피의 발병원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최 소장은 “옛날 집에 비해 창문 크기는 더 커졌고, 진공청소기가 빗자루를 대체했고, 세탁세제는 더 강력해졌다. 집먼지진드기가 증식하지 못하는 미국의 고원도시에서 아토피가 보고된 사례도 있다”며 집먼지진드기 원인설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했다. 그는 “강원도 춘천의 인구 대비 아토피 발병환자가 공업도시인 울산의 아토피 발병환자에 비해 더 많다”고도 말했다.

물론 식습관 개선과 함께 아토피를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운동을 하는 등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아토피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일러를 세게 틀어두고 덥게 잠을 자거나, 온천욕과 사우나로 몸을 덥히는 것은 아토피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는 “더운 환경은 아토피 환부에 들러붙는 포도상구균 등의 좋은 번식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튀김요리 등을 많이 섭취하고 온천욕을 즐기는 일본에서 아토피 환자 비율이 한국보다 높다고 한다. “날씨가 추운 미국 알래스카나 러시아 시베리아 등지에는 아토피 환자가 극히 드물다”고 그는 전했다. 실내 생활온도를 낮춰 혈관의 과도한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것.

그에 따르면, 아토피는 선진국형 질병이다. 그는 영국의 아토피 관련 자료를 인용해 “영국에서는 영양섭취가 풍부한 상류층의 아토피 질환 비율이 땀 흘리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하류층보다 더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영양섭취가 좋아진 후에 아토피가 문제로 떠올랐다. 중국도 경제성장과 함께 2002년 전체 인구의 2.78%에 불과했던 아토피 환자가 2012년 8.3%로 급증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현재 국내 아토피 환자는 100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성인의 5%, 어린이의 15%가량이 아토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세계적으로도 사정이 심각한 편이다. 미국은 전 인구의 7%, 유럽도 어린이의 10~20%가량이 아토피성 피부 질환을 호소한다. 요즘은 아토피 질환을 앓는 개들도 급증세다. 개들이 더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다. 지난 30년간 아토피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는 30배 급증해 세계적으로 3억40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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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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