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 경기도 용인에서 19살 소년이 17살 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했다. 공업용 커터칼로 시신을 조각내고 범행 도중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했다는 등 경악할 만한 사건 내용이 언론을 연일 장식했다. 범인이 연쇄살인마 유영철, 강호순처럼 사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일 거라는 추측이 잇따랐다. 범행 수법이 작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한 여성을 무참하게 살인한 ‘오원춘 살인사건’과 비슷하다고 해서 ‘제2의 오원춘 사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생겼다.

그런데 “청소년 범죄의 잔혹성이 문제”라거나 “소시오패스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 이면에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흉악범죄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뿐 아니다. 지난 7월 12일 경기도 수원에서는 30대 남성이 결혼을 약속한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자신의 차량 안에서 대화하다가 말다툼 끝에 흉기로 여자친구를 5번이나 찌른 것이다. 이틀 후인 7월 14일 경북 칠곡에서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가 이를 말리던 동거녀를 살해한 50대 남성이 경찰에게 붙잡혔다. 만취해 집에 들어오다가 자신의 집 인근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발견한 동거녀가 싸움을 말리자 흉기로 찔러 버렸다. 같은 날 인천에서는 50대 남성이 이혼한 아내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자녀를 잘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였는데, 길거리에서 만나 말다툼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사흘 사이에 여성 3명이 살해당했다.

혹시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 피해자의 비중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답은 ‘그렇다’이다. 강력범죄란 살인, 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 사건을 가리킨다. 6월 27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함께 발표한 ‘2013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흉악 강력범죄(살인, 강도, 방화, 강간) 피해자 10명 중 8명이 여성이다. 2000년에는 전체 피해자 8765명 중 71.3%인 6245명이었지만 2005년에는 전체 피해자 1만8583명 중 79.9%로 늘어났다. 2011년에는 전체 피해자 2만8097명 중에 여성 피해자만 2만3544명으로 83.8%를 차지했다. 여성이 신체적으로 약한 만큼,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같은 수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UN 산하기구인 UNODC(유엔마약범죄사무소)가 내놓은 자료를 살펴보자. UNODC는 각국의 살인사건 피해자에 대해 성별로 분류를 해뒀다.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51.0%이다. 미국 22.5%, 중국 30.1%, 영국 33.9%, 프랑스 34.3%, 호주 27.5%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주요 20개국 모임인 G20 국가 중에 우리나라보다 여성 피해자 비중이 높은 국가는 한 군데도 없다. 심지어 여성 인권이 낮다고 평가되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살인사건 피해자의 여성 비율이 30%를 채 넘지 않는다.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여성 대상 범죄가 많을까? 취재를 위해 관련 전문가를 찾았으나 여성 대상 범죄에 관심을 가진 이를 찾기가 힘들었다. ‘범죄 그 심리를 말하다’ 등 범죄심리학 책을 낸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여성 대상 범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먼저 우리나라 강력범죄 발생 추이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0년에 8765건이었던 강력범죄는 2005년에 1만8583건, 2010년에 2만5333건, 2011년에는 2만8097건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강력범죄가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의 강력범죄는 2005년 58만8065건에서 2010년 51만8023건, 2011년 49만5845건으로 줄었고, 일본은 2005년 1만1360건이었다가 2011년 6996건으로 급감했다.

오윤성 교수는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공개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회원국 중 8위로 높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박탈감과 분노, 우울을 느끼는 사람들이 범죄 발생률을 높인다는 얘기다. 오 교수는 “최근 강력범죄를 보면 절반 이상은 범행 동기를 명확하게 특정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피해자와는 안면도 없이 이윤이나 보복 등 구체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우발적인 동기로 범행을 저지르는 범죄자는 저항력이 약한 ‘손쉬운’ 상대를 선택하게 된다. 손실을 최소화하고 보상을 최대화하려는 인간의 합리성은 범죄자에게도 적용되는데 대개 여성이나 아동,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범행 대상으로 선택한다. 오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점 또한 여성 대상 범죄가 늘어난 이유로 꼽았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여성 피해자가 30% 안팎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점차 여성 피해자도 늘게 됐지요. 대표적인 범죄가 납치, 강도 등인데 종종 여성의 경제력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르는 사례가 이에 속합니다.” 오 교수는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을 언급했다.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에 대한 분노를 손쉬운 상대인 여성에게 푼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장기적 불황과 각종 정치문제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왜 여성 피해자가 우리나라만큼 늘지 않을까. 해답은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있다.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는 증오범죄(hate crime)다. 2011년 한 해에만 6222건의 증오범죄가 발생했는데, 이 중 인종과 관련된 범죄가 2917건으로 가장 많았고, 종교·성적 취향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 다양성 집단에 대한 증오범죄가 거의 없는 대신 여성에게로 범행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문제론’과 ‘범죄사회통념이론’ 등 여러 권의 범죄학 개론서를 쓴 염건령 한국범죄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범죄자의 분노와 공격성이 여성 집단에 집중된다는 것은 대체로 타당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약자에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우선 노인을 들 수 있지요. 유교 전통이 남아 있는 한국에서 노인이 범행 대상으로 선택되기는 어려워요.” 노인 범죄 피해는 대부분 재산 범죄 등 물질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여기에 ‘패륜’이라는 개념이 살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향한 강력범죄는 많은 편이 아니다. 범죄학 이론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있다. ‘사회유대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신념이 강할수록 범죄는 적게 일어난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고 교육받아 온 우리나라 사람에게 노인은 사회적 약자라기보다 모셔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문화 집단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인구는 2000년대 들어서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생, 교사 등 전문 지식을 가진 외국인이 많았고 뒤이어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이들 집단에 대한 사회 규범이 생겨났다. 염건령 연구위원은 “수백 년 동안 인종 차별 논란에 시달리며 다른 인종 집단을 공격적으로 생각한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집단은 공격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등 사회문제의 원인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돌리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좀 다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여성 인권이 신장되면서 오히려 여성은 ‘사회적 약자’ 집단에서 벗어나게 됐다. 염 연구위원은 “범죄는 신체적·물리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당연히 많이 발생하는데, 여성을 약자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범죄에 노출시킨 셈”이라고 비판했다. 뒤늦게야 최근 들어 여성을 위한 치안 대책이 마련되고는 있지만, 이전까지는 제도적인 보호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 “다른 집단으로 향해야 할 분노마저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셈”이라고 염 연구위원은 말했다.

최근 증가하는 여성 대상 범죄를 일종의 증오범죄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증오범죄 전문가인 조철옥 박사(전 탐라대학교 총장 직무대행)는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조 박사에 의하면 증오범죄를 판단하려면 개별 범죄의 동기를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2011년 서울 광진구에서 있었던 묻지마 범죄는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로 분류할 수 있다. 50대 남성이 길 가던 30대 여성을 아무 이유 없이 흉기로 마구 찌른 범죄였는데, 이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지나가다가 여자들을 보면 다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가출한 딸과 부인이 연락이 되지 않자 뒷모습이라도 닮은 여성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도 말했다. 조 박사는 “피해자가 여성이라고 해도 다른 동기가 개입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모두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계는 여성 대상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을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여성 대상 범죄가 두드러지게 많다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가 여성 인권 후진국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남자친구나 남편 등 여성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만 150명이다. 여성을 손쉽게 범죄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면 이 문제를 국정과제 중 우선으로 삼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송 사무처장의 말이다. 기존의 CCTV 확대 설치 등 범죄 예방 대책으로 여성 대상 범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염건령 연구위원은 그 대안으로 교육을 꼽았다. 염 연구위원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교육이 실시된 게 10년이 다 돼 간다. 그 사이 공무원들의 성희롱·성추행 사건은 확연히 줄어들었다”며 “마찬가지로 일반 남성에게도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신체적 약자이고, 함께 살아가야 할 파트너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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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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