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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267호]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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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조희팔과 추적자들

조성관  편집위원 

▲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photo 조선일보 DB
‘조희팔을 잡아라!’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을 쫓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조희팔은 측근 강태용 등과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12월 9일 충남 태안에서 중국으로 밀항했다. 3년 뒤, 경찰은 조희팔이 2011년 12월 19일 도피처인 중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찰 측은 조희팔 사건을 잠시 덮어두고 있는 상태다. 언제든 상부의 지시만 있으면 다시 관련 수사기록을 꺼내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 ‘캐비닛 사건’이다.
   
   현재 조희팔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곳은 ‘바실련(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이다. 바실련은 조희팔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다. 바실련은 자연스럽게 조희팔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모여 축적되는 곳이다. 언론들도 조희팔 사건을 취재할 때 이곳에 찾아와 기초 사실을 학습한 뒤 본격 취재에 나선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있는 바실련 본부에는 문서고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문서고에는 조희팔 사기사건 관련자들의 재판 현황판을 비롯해 사건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파일이 보관되어 있다. 이 문서고에 들어와 보면 3만여명이 3조5000억원대의 사기를 당한 사건의 규모가 어렴풋이 들어온다. (바실련 측은 피해규모가 8조원대라고 주장한다.) 바실련을 이끌고 있는 김상전 대표는 가족이 조희팔로부터 사기피해를 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생업을 접고 조희팔 추적에 뛰어들었다.
   
   바실련 다음으로 조희팔을 찾으려 힘을 쏟는 사람들은 기자들이다. KBS·MBC·SBS 3개 지상파와 TV조선, 시사주간지·월간지 등이 조희팔 미스터리를 심층적으로 추적 보도했다. 일부 시사월간지 기자는 수개월째 중국을 오가며 결정적 증거를 잡기 위해 심층취재를 진행 중이다. KBS 시사기획 ‘창’은 지난해 11월 20일에 방영된 ‘조희팔이 살아 있다’를 통해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증언을 다각도로 보여줬다. KBS 시사기획 ‘창’ 취재진은 몇 개월간 조희팔이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산둥성 일대를 뒤졌다. 시사기획 ‘창’은 옌타이 공안 수사 책임자의 말을 인용해 조희팔이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수사책임자는 “조희팔이 살아 있으며 웨이하이, 옌타이, 칭다오에 거처를 마련해 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TV조선은 지난 4월 6일 ‘박근형의 추적자’에서 ‘8조원 사기꾼 조희팔의 사망 미스터리’를 방영했다. TV조선은 KBS보다 한발 더 나아가 조희팔을 국내에서 보았다는 목격자를 익명으로 인터뷰했다. TV조선 방영이 나간 후 바실련 홈페이지에는 경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줄을 이었다.
   
   조희팔이 사망했다는 증거는 유족이 찍었다는 동영상 하나에 불과하다. 조희팔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호텔에서는 “2011년 12월에 호텔에서 죽은 한국인이 없었다”고 공식발표했다. 우리나라 경찰은 화장된 유골의 DNA를 확인하여 사망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전자 감식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정황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김상전 대표에게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근거를 들어본다.
   
   “경찰 발표대로 조희팔이 죽었다면 조희팔이 구축해놓은 방사형 네트워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겠느냐? 조희팔의 네트워크는 하나도 무너지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나? 또한 채권단이라는 사람들은 돈 찾아주겠다고 구성되었지만 여전히 조희팔에게 충성을 하고 있다. 모든 걸 조희팔에게 유리하게 하고 있다.”
   
   바실련의 한 회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조희팔의 은닉재산을 두고 그의 잔당들이 내분과 동요가 없었다는 점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조희팔의 신변 경호를 맡고 있는 강태용 역시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정황 증거의 하나다. 조희팔이 죽었다면 중국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경북 칠곡의 공원묘지를 가보면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조희팔이 경찰 발표대로 사망했으면 묘비는 장묘 관행에 비춰 ‘창녕조공희팔지묘’라고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묘비는 ‘창녕조공희팔가족지묘’라고 되어 있다. 단순 실수일까? 조희팔이 죽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조희팔은 1957년생으로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그런 그가 타고난 언변을 바탕으로 다단계사업에 뛰어들어 대구에서 큰돈을 만졌다. 조희팔은 대구에서 수백억원대를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찰과 조폭과 연결되었다. 이후 활동무대를 인천으로 옮긴 조희팔은 인천·경기지역으로 다단계사업을 확대해 수조원대를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 경북 칠곡 공원묘지의 조희팔 묘비.
조희팔은 검찰·경찰 등 권력층에 막강한 연줄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물론 그 연줄은 ‘현금동원 능력’에서 기인한다. 이미 서울고검 김광준 전 검사,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이 조희팔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조희팔을 쫓는 사람들의 말이다. 조희팔이 대구에서 사기사건을 일으키고 도주하는 과정을 보면 조희팔이 권력층으로부터 어떤 비호를 받는지가 드러난다. 조희팔은 중국 밀항 장소로 가장 먼저 인천을 선택했다. 하지만 인천에서의 밀항이 기상 여건으로 인해 실패하자 충남 태안으로 왔다. 대구에서 인천을 거쳐 태안까지 오는 동안 조희팔은 경찰의 검문검색을 완벽하게 따돌렸다. 태안에서 첫 번째 밀항 시도는 바람의 방향을 잘못 잡아 실패로 끝났다. 두 번째 시도 끝에 조희팔은 조선족 조영복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여 중국 입국에 성공했다. 조희팔은 이 과정에서 태안에 20여일 숨어 지냈다. 2009년 1월 태안해양경찰서장은 조희팔의 밀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조희팔의 중국 밀항에 해경이 일조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보 계통에 밝은 여권의 관계자 역시 “조희팔은 살아 있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조희팔이 2011년 12월 19일자로 사망하였다고 하는데 그후 내연녀 정, 집사 역할을 하고 있는 유, 자금조달책 김 등이 2012년 2월까지 중국을 꾸준히 왕래한 것이 확인되었다”면서 “이것은 조희팔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앞서 김상전 대표의 주장과 일맥 상통한다. 조희팔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부산지역의 사업가 C씨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김상전 대표는 “조희팔은 한국에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조희팔은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희팔은 권력층과 밀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김광준 전 검사나 대구경찰청 전 수사과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조희팔 추적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검찰에서 김광준 전 검사만이 조희팔의 돈을 받았겠느냐는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경찰 상층부나 검찰 상층부에서는 더이상 조희팔 사건이 재론되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언론에서 지적했듯 조희팔 사건은 MB정부의 ‘영포라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정황이 있다. 조희팔이 경북 영천 출신으로 평소 대구지역의 조폭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희팔은 다단계 사건이 사기 사건으로 불거지기 전에도 “MB정권에선 절대로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나를 건드리면 핵폭탄이 터진다”라는 취지의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김상전 대표는 “조희팔이 잡히면 대한민국이 뒤집어진다”면서 “대한민국을 흔들어야 진실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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