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박상훈
일러스트 박상훈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글들이 있다. 인신매매 관련 ‘괴담’이다. 제일 흔한 건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를 도와줬다. 고맙다고 건네는 음료수를 받아 마셨는데, 눈을 떠보니 장기가 적출돼 있더라”이다. 지난 6월 5일 경남 창원에서는 ‘택시기사가 만취한 승객을 인신매매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고 40대 남성이 달리는 택시 안에서 뛰어내려 다치기도 했다. 인신매매 괴담이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타고 꾸준히 퍼진 탓에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은 다시 강조되고 있다. 경찰이 나서 “그런 사례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특히 인신매매 괴담은 끊이지 않는다.

‘초인종 괴담’도 있다. 2009년 말부터 시작된 괴담인데 집집마다 초인종 아래 적혀 있는 의미불명의 알파벳이나 숫자, 문자기호는 알고 보면 강도나 성범죄자가 남겨 놓은 표식이라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표식이라거나 우유나 신문 배달원의 구분 표시라는 비교적 ‘안전한’ 설명도 있었지만, 표식이 있는 집에서 강도를 당했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급기야 불안에 떠는 시민이 경찰에 신고하는 일도 있었다. 한 방송사가 직접 조사해본 결과, 범죄와 표식 사이의 관계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괴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초인종 괴담’은 곧 개봉하는 영화 ‘숨바꼭질’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될 정도로 대표적인 ‘도시 괴담’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2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전국 7만3063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이용실태 조사’를 한 결과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67.1%는 SNS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58.2%는 매일 SNS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SNS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여기서도 ‘괴담’이 늘어나고 있다.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제일 많다. 지난 8월 5일 새벽, 트위터에 경기도 군포시 산본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유언비어가 돌았다. 경찰은 현장을 확인하고 단순히 노숙자끼리 싸운 사건이라고 설명해야 했다. 지난 4월 10일 밤에는 경기도 연천에서 국지전이 발발해 F-15K 전투기가 출격했다는 괴담이 돌았다. 주민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토막살인 사건이 났다거나 서울 은평구 연신내동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 범인이 도주 중이라는 등, 괴담은 안보·치안·생활 안전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SNS를 통해 주목받고 싶어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괴담이라 금세 해명된다. 하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괴담은 일반인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른바 ‘방사능 괴담’은 먹을거리와 여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괴담이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현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대량의 방사능이 유출됐고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일본 정부 차원에서 수습에 나섰다. 일본 내에서도 방사능 유출량과 피해 범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그보다 더 격렬하다.

지난 8월 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졌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8월 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시위가 벌어졌다. ⓒphoto 조선일보 DB

사람들은 “일본 원전 사고의 여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 정도에 대해서는 말이 다르다. 주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번지는 내용은 방사능 유출량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우리나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주장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일본 전 국토의 70%가 오염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일본산 수산물은 수입 금지 품목이므로 우리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 정홍일 국무총리는 지난 8월 2일 제14차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사실과 다른 괴담은 국민 생활에 불편과 불안을 조성한다”며 사회적 위협 요인으로 간주하고 이런 내용을 유포하는 행위를 끝까지 추척해 처벌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네티즌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정부가 사실을 왜곡하려 한다”거나 “우리나라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는 정부가 아니다”고 강한 불신을 표출한다.

마치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괴담’ 확산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은 SNS 내 정보의 불확실성과 빠른 확산력이다. 눈에 띄는 정보를 한 사람이 올리기만 해도 금세 퍼질 수 있는 것이 SNS의 특성이다. 이 때문에 괴담을 근절하려는 노력은 SNS 이용자들의 자정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전문가들은 보다 정확하고 전문적인 정보를 SNS 이용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연 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선문대 교수·언론홍보학)은 재난·재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 상황을 먼저 지적했다. 전국적인 재난·재해를 겪어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을 것이라는 국민의 불신에, 그동안 사건이 터지면 뒤늦게 정보를 공개하곤 했던 정부의 태도가 얽혀 괴담 확산의 토양이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재난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만약 구체적인 재난 대책 시나리오가 제공돼 있다면 지금 같은 괴담은 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능 유출이 매우 심각한 재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만약 우리나라에까지 피해가 미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심각성을 강조해 위기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문성이 재난 보도의 핵심인데, 정부는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걱정 말라’고만 한다”며 “최근 들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영입해 해명에 나서면서 불안감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문가가 나서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면 괴담은 줄어들까. 최근 발생하는 괴담들이 얼핏 매우 전문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방사능 괴담’만 하더라도 일본과 한국, 미국 정부 기관에서 발표하는 각종 자료들과 전문가의 발언을 토대로 위험 수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치안과 관련된 괴담은 현장 사진이나 구체적인 인용 문구까지 들어 유포될 때가 많다. 김영욱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는 괴담이 발생하고 퍼지는 데는 “객관적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반 대중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피해가 일어났을 때이다. 몇 명이 죽고, 구체적인 재산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부분이다. 김영욱 교수는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걱정하는 부분이 가라앉지 않으면 일반 대중은 계속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며 “특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이런 경향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방사능 유출 사고와 관련해 방사능 위험은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쟁 위협이나 묻지마 범죄 같은 사회현상 역시 한 개인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예를 들어 인신매매 괴담은 단순히 인신매매 사건 한두 가지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김 교수는 “인신매매 괴담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언제, 어디서든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방사능 괴담’ 내용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 없이 김영욱 교수와 이연 교수 모두 “SNS 사용자를 처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처벌로는 괴담이 뿌리 뽑힐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되면 괴담이 지금처럼 광범위하고 오랫동안 지속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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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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