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7일 북한군 열병식에 등장한 선군호 전차. ⓒphoto 조선중앙통신
지난 7월 27일 북한군 열병식에 등장한 선군호 전차. ⓒphoto 조선중앙통신

지난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북한군이 실시한 대규모 열병식에 등장한 일부 전차가 우리 군 당국의 주목을 받았다. 이 전차는 기존 북한군 일부 전차들이 장착하고 있던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외에도 기존 전차에는 없던 대전차 미사일 2기를 포탑 주위에 장착하고 있어 눈에 띄었다.

이 대전차 미사일은 AT-4 계열로 추정됐다. AT-4는 길이 1m, 직경 120㎜로, 최대 사거리는 2.5㎞가량이다. 원래 러시아제이지만 북한이 자체 생산에 성공해 러시아에 4000여발을 역수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갑차가 아닌 전차 외부에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하는 것은 서방세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는 전차포탄의 파괴력이 우리 군 전차에 비해 뒤떨어지는 북한군 전차의 약점을 보완, 강력한 장갑을 장착한 우리 육군의 K-1A1 전차와 차기 전차 K-2 흑표를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북한군 신형 전차는 ‘선군호’ 계열로 분류됐다. 선군호는 지난해쯤부터 군 당국이 파악한 북한군의 최신형 전차 모델명이다. 199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통치 방식으로 채택한 ‘선군정치’에서 따온 것으로 분석된다. 선군호는 125㎜ 주포(활강포)를 장착하고 적외선 야시장비, 레이저 거리측정기, 컴퓨터 사격통제장치, 화생방 방호체계를 갖춰 종전 북한군 전차들에 비해 사격 정확도가 높아졌고 주야간 사격능력도 갖고 있다. 선군호 전차의 승무원은 4명으로 전투중량 44t, 길이 7m 이상, 폭 3.5m, 최고속도 시속 60여㎞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군호는 북한군 최정예 기갑부대인 ‘근위 서울 류경수 제105땅크사단’에 배치됐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 4월, 김정일의 아버지인 김일성 출생 10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서도 종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신형 전차가 등장했다. 일명 ‘폭풍호’였다. 폭풍호는 1990년대부터 개발에 착수, 2002년쯤 한·미 군당국에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미 군당국은 이 전차를 M2002로 부르고 있기도 하며, 네 가지 유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차의 방어력 향상에 중점을 둬 적 대전차 포탄 및 로켓탄 공격을 받았을 때 폭발하면서 파괴력을 상쇄시키는 반응장갑이나 복합장갑을 장착했다고 한다. 115㎜ 또는 125㎜ 주포와 14.5㎜ 중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적외선 야시장비와 사격 정확도를 높여주는 신형 사격통제 장치도 갖췄다. 폭풍호는 지금까지 500대 가까이 생산됐다는 첩보도 있다.

이외에 북한군은 ‘천마호’, 구소련제인 T-62, T-55 등 다양한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천마호 전차는 1970년대부터 생산된 북한군의 주력 전차로 구소련제 T-62 전차를 개량한 것이다. 천마호가 외부에 알려진 것은 1992년 북한군 창군 기념식에 천마호 ‘다’형(천마-92형)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천마호는 ‘가’형에서 ‘마’형까지 5가지 유형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마호는 115㎜ 주포와 14.5㎜ 중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총 1200여대가 생산됐고, 이란·이라크전쟁 때 이란에 150여대가 수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북한군 전차는 모두 4200대에 달한다. 우리 군의 2400여대에 비해 훨씬 많다. 하지만 북한군엔 구형 전차가 많고 우리 군의 전차 성능보다 전반적으로 떨어져 그 위협 수준은 시간이 흐를수록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주한미군의 ‘탱크 킬러’인 A-10 대지 공격기와 AH-64 ‘아파치’ 공격헬기, 한국 공군의 각종 대전차 미사일과 폭탄 등 강력한 ‘탱크 킬러’ 항공 전력도 전차 분야의 대북 수적 열세를 만회해 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북한군에 선군호, 폭풍호 등 다양한 신형 전차들이 속속 등장함에 따라 북한군 전차 위협을 경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7년간 선군호, 폭풍호 등 신형 전차 900여대를 실전배치, 노후한 T-55, T-62 전차들을 교체했다.

이는 북한군이 경제난 때문에 전차, 전투기, 수상함정 등 재래식 군사력 증강은 사실상 포기하고 핵, 미사일, 생화학무기, 특수부대 등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른바 비대칭 전력 증강에만 주력하는 쪽으로 군사력 건설 방향을 잡았다는 일각의 분석과는 차이가 있다. 일부 전문가는 산이 많은 한반도 지형 특성상 전차의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형 전차 개발 및 생산에 많은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평가를 해왔고, 이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는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시각과 달리 북한이 전차 전력 증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수년간 북한군 열병식에서 등장한 신형 전차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북한군 전차 전력 증강에 따라 군 당국은 차기 전차 흑표 전력화를 서두르는 한편, 공격헬기 보강 등 다각적인 대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전배치돼 있는 우리 군 전차 중 신형 전차로는 K-1과 K-1A1이 꼽힌다. K-1 전차는 북한군 신형 전차보다 작은 105㎜ 주포를 장착하고 있지만 컴퓨터를 활용한 사격통제 장치 등으로 북한군 전차보다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K-1A1은 120㎜ 주포를 장착해 K-1보다 강력한 화력을 갖고 있고, 북한군의 거의 모든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우리 군은 현재 K-1 전차는 1000여대를, K-1A1 전차는 48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차기 전차 흑표는 내년부터 총 200대가 도입될 예정인데 핵심 부품인 파워팩(엔진+변속기)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내년부터 생산될 100대에는 수입 파워팩을 장착하고 그 뒤 100대에는 국산 파워팩을 장착할 예정이다. 총 36대가 도입될 미 보잉의 AH-64E ‘가디언’ 공격헬기도 유사시 북한군 전차 사냥에 중추적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군 소식통은 “육군 일각에선 벌써부터 아파치 헬기 추가 도입 얘기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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