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우주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정확할 만큼 돋보이는 영화 ‘그래비티’. 영화는 주인공 라이언 스톤 공학박사(산드라 블록 분)와 베테랑 우주비행사 매트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가 지구 상공 600㎞의 우주공간에서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하는 도중 우주에 표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두 주인공은 허블우주망원경 수리를 끝내갈 무렵 러시아가 수명을 다한 자국 스파이 위성을 미사일로 파괴하면서 위험에 빠진다. 인공위성 파편들이 총알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와 스톤과 코왈스키를 덮치고, 급기야 이들이 타고 왔던 우주왕복선 ‘익스플로러’도 파괴하게 된다. 이후 홀로 남게 된 스톤이 러시아 국제우주정거장(ISS)을 거쳐 중국의 우주정거장에서 선저우호를 타고 결국 지구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그래비티’는 영화 내내 무중력 상태에서의 공포를 실감나게 표현하다가 마지막 단 1분 동안 땅을 딛고 사는 지구 중력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중력(gravity)’은 영화 속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실은 영화 내내 스톤이 간절하게 원하는 궁극적 목표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일분일초도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는 몸을 가누고, 방향을 바꾸고, 가고 멈추는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하기 어렵다. 또 만일 중력이 없다면 우리 몸속의 모든 창자와 장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먹은 음식물도 위벽에 달라붙지 않아 만성 소화장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듯 중력의 존재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중력의 사전적 의미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 다시 말해 질량을 가진 물체를 아래로 끌어내리는 지구의 인력이다. 근대물리학에서 최초의 중력 이론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1687년)이다. 뉴턴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 잡아당기는데, 그 힘의 방향은 두 질점(질량 중심)을 연결하는 직선 방향이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1916년)을 통해 ‘질량과 에너지로 인해 4차원의 시공간이 휘어져 나타나는 게 중력’이라고 설명하면서 중력 작용을 지구에서 우주의 시공간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인간은 중력에 대해 알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중력이 무엇이고 왜 중력이 생기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으로 우주선도 쏘아올리고 우주 탄생의 비밀도 풀었는데 말이다. 실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도 중력 작용에 대해 수식으로만 표현했을 뿐 그 실체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오늘도 그 중력의 비밀을 벗기기 위해 끈질기게 연구하고 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계의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다. 마찰력, 구심력, 복원력과 같은 나머지 힘들은 모두 이 네 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자기력이나 강력, 약력은 각 힘을 전달해 주는 매개입자가 발견돼 그 정체가 밝혀졌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의 매개입자는 우리가 흔히 빛의 알갱이로 알고 있는 광자(光子)다. 강력은 글루온, 약력은 W와 Z 보존이 매개입자다. 하지만 중력의 매개입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중력의 매개자를 ‘중력자(graviton)’라고 미리 이름도 붙여놓았다. 그러니까 중력자는 아직까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개념적 정의일 뿐이다.

한편 통일장이론에서 자연계의 4대 힘 중 유일하게 중력만 통합하지 못했다. 물리학계는 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합치려고 지난 100여년간 힘써 왔지만, 중력과 전자기력 두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통일시키지 못했다. 중력은 전자기력에 비해 무시할 정도로 약하다.

미국 뉴욕대 지아 드발리 교수에 따르면, 다른 힘에 비해 중력이 약한 이유는 중력의 대부분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중력이 새어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력자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데, 물리학자들은 왜 굳이 그것을 찾으려고 할까.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시공간에서의 중력파를 예측했다. 잔잔한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동심원 모양의 수면파가 생겨나 사방으로 퍼지듯, 시공간에서도 질량이 있는 물체가 움직이면 시공간이 일렁거려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중력파는 중력복사에너지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그 에너지를 전파해 주는 입자가 곧 중력자이다. 마치 전자기파에 의해 전파되는 전자기복사에너지의 입자가 광자인 것과 같다. 만일 이 중력파를 찾아낸다면 노벨상 수상은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중력파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전 세계 과학계의 염원이다.

미국과 유럽은 이를 찾기 위해 중력파 검출 장치의 민감도를 높이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는 2014년, 2015년이 되면 약한 중력파도 검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 1970년대에 중력파를 보여 주는 간접 증거는 발견됐지만, 중력파의 세기가 너무 작아 아직 직접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중력파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공간 변화를 측정해 검출한다.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해 중력파가 지나갈 때 생기는 공간의 길이 변화를 재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중력파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충돌할 때 생기는 강한 중력파를 검출하면 지금까지 몰랐던 천체의 구조나 질량, 거리 등을 알 수 있다. 빅뱅 때 생긴 중력파를 통해 우주팽창 속도를 알아내는 일도 가능하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지구에 있는 모든 물체는 지구의 중심으로 끌리는 중력장의 영향을 받는다. 만일 우리가 중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공간에서 마음대로 떠다닐 수 있지 않을까. ‘반중력’이라 불리는 이 꿈 같은 기술은 중력을 매개하는 입자를 찾지 않고서는, 매개를 찾아서 그 성격을 완전히 분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는 중력파 검출기를 우주에 올려 주파수가 낮은 중력파를 찾으려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페르미연구소를 비롯하여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입자가속기를 통해 원자의 광속 충돌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질 중력자가 발견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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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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