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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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화폐’ ‘디지털 가상화폐’ ‘인류 최초의 참여형 금융 네트워크’ ‘과학기술과 금융이 창출한 신개념의 화폐’…. 2009년 등장해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인 ‘비트코인’에 대한 표현이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의 개발자가 만들었고, 어려운 수학문제를 컴퓨터로 풀면 비트코인이 발급되며, 향후 10년간 발행 총량이 정해져 있다. 금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해서 비트코인 생성과정을 ‘채굴’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미국·스웨덴·독일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으며, 미국의 메리어트호텔, 나이키, 갭, 버커킹 등 미국 전역의 5만여개 소매점에서 통용된다. 지난 5월 경제지 ‘포브스’의 한 기자는 ‘비트코인만으로 일주일간 살기’에 도전해 성공했다. 10월 말 캐나다에는 비트코인 ATM기기까지 생겼다.

암호전문가나 해커들의 장난처럼 시작한 비트코인이 전 세계 화폐 시장에 등장하면서 각국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금이란 상품에 기반한 금 본위 화폐, 초강대국이란 국제사회 위상에 기반한 화폐인 달러에 이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화폐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앙통제기관, 주인, 국경이 없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속성 때문에 비트코인이 몰고 올 미래에 대한 관심이 작지 않다. 과연 비트코인은 새로운 금융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한 시대 반짝 등장했다 사멸해 버리는 실험적 머니게임인가.

지난 10월 말, 국내에 관련 단행본이 출간됐다. 한국 비트코인 거래소 ‘코빗(korbit)’ 김진화(37) 이사가 쓴 ‘넥스트 머니 비트코인’. 부제는 ‘돈의 판도를 바꿀 디지털 화폐의 출현’이다. 비트코인 관련 본격 단행본으로는 세계 최초라고 한다. 외국의 경우 비트코인 관련 전문가의 논문과 기관의 보고서는 많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풀어쓴 단행본은 없다. 코빗은 지난 4월 오픈했으며 공동창업자 유영석씨와 김진화씨가 끌어가고 있다. 김진화 이사를 지난 11월 11일에 만났다. 그는 “내일 한국은행 직원을 대상으로 비트코인 관련 세미나가 열린다”고 했다.

김 이사는 코빗의 현재 운영 상황에 대해 “점점 거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한 주간 600건 정도의 비트코인 거래가 성사됐다. 거래 내용은 실시간으로 사이트(www.korbit.co.kr)에 공개된다. 현재 비트코인 시세는 거래소마다 편차가 있지만 1비트코인이 310~340달러(약 40만원) 정도다. 거래 추이를 그래프로 그리면 제이(J) 형태로, 급속하게 상승 중이다. 코빗의 현재 수익모델은 수수료다. 매매자 양쪽에서 1%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지난 달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기존 지불 수단에 비하면 수수료가 저렴하지만 1%도 많다고 생각한다. 0.5%로 낮출 예정이며 무료로 할 수도 있다. 향후 다양한 수익모델 창출이 가능하다. 회원제 형태로 운영할 수도 있고 고객 데이터에 대한 통계를 상품화할 수도 있다.”

단행본이 출간된 지 3주 정도 지난 시점, 그는 책에 대한 관심이 ‘기대 이상’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IT 관계자와 금융계 종사자, 오피니언 리더가 주요 독자층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의 운용 체계와 사용 방법은 복잡하지만 책은 술술 읽힌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출신의 그는 스토리텔링 글쓰기에 재주가 있고 언론 매체에 자주 글을 기고했다. 졸업 후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6년간 일했다. 2002년, 20대 나이에 다음 사이트의 대통령 선거 프로젝트 리더를 맡았다. 30대에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 오르그닷을 비롯한 사회적 기업과 비영리공익법인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공동창업했다. 타이드 인스티튜드는 우주인 고산씨가 현재 대표이며 기술 창업 지원을 돕는 비영리회사다. 김 대표는 타이드 인스티튜트 이사와 코빗 이사를 겸하고 있다. 그는 “최근엔 코빗에 전념하다시피 한다”며 “거래량이 늘면서 직원채용 공고를 했는데 지원자의 면면을 보고 놀랐다. 시중 은행에서 요직을 담당하는 40대 간부, 경력이 오래된 IT스페셜리스트 등 다양한 분들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왜 비트코인 거래를 할까. 그는 “실용적 흐름이 많다”며 몇 가지 예를 소개했다. “해외 사이트에서 핼러윈데이 물품을 구매하려는데 수수료 때문에 국내 카드를 거부하면서 비트코인 거래를 제안해 연락을 주신 분도 있고, 미국에 사는 한국인 주부가 한국에 계시는 친정부모께 용돈을 부쳐드리려는데 환전 수수료가 비싸다며 비트코인으로 송금한 경우도 있다. 한편 ‘비트코인이 금융의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에 투자하면서 공부하고 싶다’는 이유로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용자들이 비트코인에 매료되는 가장 큰 포인트는 두 가지다. 실시간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것. 그도 100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팔 생각은 없다고 했다.

비트코인의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 사건이 있다. 일명 ‘플로리다 피자 사건’. 2010년 5월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닉네임 ‘laszlo’가 비트코인 포럼 게시판에 피자 거래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라지 사이즈 피자 두 판을 보내주면 1만 비트코인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유럽에 사는 한 이용자가 “거래는 하고 싶은데 여기에서 어떻게 보내지?”라는 답글을 올렸고, ‘laszlo’는 자신의 집 근처 피자 배달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결제할 것을 요청했다. 제안한 지 4일 후 드디어 거래가 성사됐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최초의 실물거래였으며, 이 게시글은 비트코인 지지자들에게 성지가 됐다.

피자 거래를 수용한 그 남자는 갑부가 됐다. 그로부터 석 달 후 1만 비트코인은 피자 가격의 15배에 달하는 600달러로 치솟았고, 현재는 40억원 정도가 됐다. 피자 두 판 가격이 3년 반 만에 40억원이 된 셈이다. 비트코인 공급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가격폭등의 주된 이유다.

비트코인의 역사를 보면 공상과학소설을 보는 듯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서 돈을 생성하는 체계, 베일에 꼭꼭 싸여 있는 개발자, 관장하는 중앙정부나 기관 없이 움직이는 금융 생태계라는 점, 급등락을 거듭하는 시세 때문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도 많고 쪽박을 찬 사람도 많다는 점도 그렇다.

디지털 가상화폐라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사이버머니’와 유사하다. 이 둘의 차이점은 뭘까. “사이버머니는 발행회사가 있지만 비트코인은 없다. 비트코인은 중앙, 주인, 국경이 없다. 이를 가능하도록 한 것은 과학기술의 힘이다. 이 세 가지가 없음으로 해서 누리는 이점이 많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이 부분에서 점수를 준다.”

비트코인이 과연 기존 금융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화폐가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진화 이사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비트코인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비유했다. “비트코인은 손가락일 뿐이고, 비트코인이 가리키는 건 달이다. 달은 금융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미래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국경도 없어지고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지만 금융은 여전히 국가 간 장벽이 높다. 금융은 변화하는 세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도 없고 대체가 목표도 아니다. 기존 화폐와 경쟁하고 보완하면서 글로벌 가상화폐의 하나로 자리 잡아 나갈 거다. 국가 경제를 잠식하거나 화폐를 밀어내는 극단적 상황이 현실화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현재 각국에서는 비트코인 관련 입장을 하나둘 내놓고 있다. 가장 부정적인 나라는 태국이다. 태국중앙은행은 “현행법에서는 비트코인 거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독일, 캐나다, 스웨덴은 혁신의 한 분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금융소득 차익 과세를 높게 부과하기로 소문난 독일은 비트코인에 대해 “1년 이상 보유한 뒤 팔면 차익에 대해 비과세”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은 다소 부정적이다. 개인 간 거래는 자유롭지만 거래소 등 사업자들은 엄격하게 다루는 편이다. 한국 정부도 관련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10월 중순 박원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비트코인은 다른 대안화폐와 달리 가격 급등락 등 가능성이 있어 한국 시장에 적용키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한국비트코인의 김진화 이사는 “다소 신중하지 못한 입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유럽중앙은행은 비트코인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상화폐’라고 인정했다. 우리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순기능과 선기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맞다고 본다.”

비트코인 거래가 가장 활발한 나라는 중국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었는데 시장이 암묵적인 허용을 했다. 도시로 보자면 일본 도쿄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 일본 정부는 딱히 부정적 견해가 없었고, 개발자가 일본인 이름이라는 감성적 차원의 이유도 있다.

인터넷 강국으로 유명한 한국에서는 조용했다. 최근에야 하나둘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이유가 뭘까.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패스트팔로(fastfollow)였지, 퍼스트무버(firstmover)는 아니었다. 인터넷 초창기도 마찬가지다. 거대 통신사들은 PC통신에만 매달려 있었다. 스마트폰 혁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형 플랫폼을 고집하다 뒤늦게 뛰어들어 많은 비용을 치르고서야 따라잡은 것이다. 비트코인이 만들어갈 새로운 금융혁신에서 한국이 아시아허브가 됐으면 좋겠다.”

비트코인은 장점만큼 단점도 많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해커의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범죄 등 돈세탁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가장 큰 위험요소는 통제 주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사용자들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해서 어엿한 통화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 비트코인의 태생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사용자들이 다 같이 어느 한순간 비트코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런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기술의 역사를 보면 가치 있는 기술, 사람들을 새로운 경험으로 이끌고 눈뜨게 했던 기술은 그 기술이 망해도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의 역사는 비가역적이니까. 비트코인은 오픈소스를 공개해 유사한 파생화폐를 등장하게 했다. 가장 성공한 회사는 라이트코인이다. 하나당 4달러 정도에 거래된다. 비트코인이 등장시킨 분산컴퓨팅, 즉 전 세계인들을 금융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근거 있는 신뢰를 갖게 만드는 자체가 새로운 시대의 가치다.”

비트코인이란?

2009년 1월 3일에 등장한 글로벌 디지털 가상화폐 시스템이자 새로운 화폐다.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 금처럼 유통량이 제한적이며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향후 100년간 발행될 화폐량이 미리 정해져 있다. 현재 대략 1100만 비트코인이 유통 중이고, 2100만개까지만 발행된다.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 채굴자 집단이 생기고 채굴 전용 기계도 등장했다.

개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는 베일에 싸여 있다. 37세 남자이며 일본에 산다고 스스로 밝혔으나 확실하지 않다. 온라인으로 답변을 주고받고, 온라인을 통해 비트코인 소스코드를 관리할 후계자를 지목한 이후 2010년 홀연 자취를 감춰버렸다.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가끔 미국식 표현도 사용하며, 수학과 컴퓨터에 천재적 재능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숱한 매체에서 사토시의 정체를 추적했으나 실패했다. 어떤 이들은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추정한다. 2년간 혼자서 수행했다고 주장하는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작업은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방대한 작업이라는 이유다.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 윌슨은 지난 5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사토시의 정체에 대해 특정 개인을 지목했다. 바로 일본 교토대학 교수이자 천재적 수학자인 모치즈키 신이치 교수라는 것이다. 지목당한 모치즈키 교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컴퓨터를 이용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서 생성하거나 실제 화폐로 거래하는 방법이다. 수학문제는 매우 어렵고 복잡해 혼자서 풀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일정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비트코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지갑을 생성해야 한다. 주소는 늘 숫자 1로 시작하며 30개가 넘는 숫자와 영문을 조합해서 만든다. 지갑을 만들 때에는 이름이나 전화번호, 이메일 등 개인정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검은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거래 기록은 남는다.

개발자의 보고서에 의하면, 비트코인은 기존 국가 통화정책에 기반한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대한 반발에서 탄생했다. 기존 화폐는 국가나 소수의 권력자들이 통제했지만 비트코인은 주인도, 통제자도 없다. 경제위기로 구제금융을 받게 된 키프로스 정부가 모든 은행의 고액 예금계좌를 최고 40%까지 강제징수한다고 발표하면서 30달러에 불과했던 비트코인이 250달러까지 폭등한 바 있다. 수수료가 저렴하고 쉽고 빠르게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이지만 안정적인 거래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한계가 많다. 오르내림이 심해 거래처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불안정하고 해킹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 11월 12일 영국의 BBC는 호주의 비트코인 거래소가 해킹당해 104만달러가 털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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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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