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법 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법 개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박사학위를 마치던 해 여름 이야기다. 동생이 조카와 함께 미국 동부에 있던 필자를 찾아와 한 달을 함께 지내게 됐다. 하루는 집 근처 식물원을 찾았던 동생과 조카에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울먹이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조카의 사타구니가 갑자기 부어오르고 있다고 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동생 혼자 병원에 보낼 수 없었다. 회사를 조퇴하고 조카를 집 근처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이 병원 응급실 의사가 “24시간 이내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며 큰 대학병원의 구급차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곤 소아병동으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 중 한 곳으로 조카를 옮겼다.

조카가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소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 병원 의사가 다른 의사들과 함께 조카를 진료했다. 그가 조카의 사타구니를 몇 차례 보더니 “벌레에 물린 것 같다”며 달랑 연고 하나를 주었다. 황당했지만 조카에게 아무 일이 없어 다행으로만 여겼다. 해프닝도 완전히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와 동생은 천문학적 숫자가 적힌 병원비 고지서를 거의 일 년 동안 받아야 했다. 필자는 가끔 사춘기 조카에게 “네 엄마와 이모가 너의 중요한 부분(?)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 아니”라며 짓궂은 농담을 할 때가 있다.

이 경험을 그저 웃고 넘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필자의 눈에 비친 미국 의료시스템의 난맥들이 크다. 미국 의료시스템의 특징은 세 가지로 정의된다. 첫째, 미국의 동네병원 의료진들은 ‘과잉진료’를 좋아한다. 둘째, 환자가 원하면 진짜 세계 최고의 의료진에 최고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셋째, 하지만 이 같은 의료서비스는 정말 터무니없이 비싸다.

미국의 국민건강보험은 65세 이상 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었다. 이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직장을 통해, 또는 민간 보험회사의 사적보험을 통해 건강보험을 살 수 있다. 이 사적 건강보험의 의료 보장 범위는 ‘보험료를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실직을 하면 직장에서 가입한 사적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2010년 미국의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약 16%인 4500만명이 건강보험이 없이 살고 있고 한다. 놀라운 건 이 중 37%의 가구 소득이 5만달러 이상이라는 것이다. 5만달러 이상 소득이 있는 이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사적 건강보험이 비싸기 때문이다. 병을 앓았던 적이 있는 이들에게 보험 가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오바마케어(Obamacare)’라 불리는 공적 의료보험 제도 개혁이다. “의료보험 전체를 개혁하겠다”고 한 오바마의 공약이니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만들어 내고 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오바마케어’를 모르면 TV 뉴스를 들을 수 없고 신문을 읽을 수 없을 정도다.

오바마케어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부담 가능한 건강보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4년 1월 1일 전까지 모든 미국인들이 꼭 건강보험을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소득의 1%까지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다.(벌금은 공적 건강보험 보조금으로 사용된다.) 오바마 정부는 건강보험률을 높이기 위해 소득이 9만4000달러 이상 가구라면 ‘오바마 건강보험 거래소(Obama health insurance exchange)’에서 원하는 건강보험을 살 수 있도록 했다. 지난 10월 1일 문을 연 이 거래소에서 내년 3월 31일까지 가입하면 된다. 지금까지 이 거래소를 통한 보험 가입률은 미국 정부의 예상치보다 훨씬 저조하다. 젊고 건강한 사람은 등록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늙고 아픈 이들만 서둘러 등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오바마케어를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월스트리트에서 오바마케어의 핵심은 중소기업 관련 내용이다. 의료보험 비용 지출이 커지면서 작은 기업들이 직원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때문에 오바마케어가 만들어 낸 법 중의 하나가 ‘SHOP(Small Business Health Options Program)’이다. 이 법은 25인 미만인 기업의 직원 평균 연봉이 5만달러 이하라면 세금감면(tax break) 등 조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50명 이상인 중소기업은 정규직 직원의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중소기업의 건강보험 가입을 피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때문에 일부 중소기업에서는 이 법을 피하기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자 이 같은 편법을 막기 위해 건강보험 가입 기준을 정규 직원의 수가 아닌 ‘전체 직원의 근무시간이 정규직 50명에 해당하는 시간’으로 정하기도 했다.

오바마케어가 미국의 중소기업에 확실한 비용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 중에는 ‘오바마케어가 내년 초의 경기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이도 있다. 사실 오바마케어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고용을 창출하는 데 얼마나 방해요소가 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를 반영하듯 ‘오바마케어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할 것이다’란 의견을 내놓는 월스트리트 이코노미스트들도 있다.

오바마케어가 미국 경기에 미칠 또 다른 걱정거리는 ‘소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오바마케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입한 보험에 환자가 항상 진료를 받던 의사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하자. 그럼 이 환자는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보험이 아닌 추가로 자비를 들여야 한다. 때문에 의료비 지출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의료비 지출 과다가 다른 소비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는 것이다.

아무튼 다른 사회보장제도들이 그렇듯이 오바마케어 역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에 낀 75%의 평범한 일반 사람들에게 가장 억울한 정책이 되고 있다. 이들에게 가장 큰 경제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바마케어가 미국 경기에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가능성,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밀어붙이고 있는 양적완화정책이 더해질 2014년 초, 미국 경제가 흥미로워질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케어가 미국 고용 시장에 미칠 악영향이 정말 심각해진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연준 차기 의장 자넷 옐런(Janet Yellen)은 양적완화 축소를 더 늦출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 초 미국 증시가 수직으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글을 쓰기 전날 위내시경을 받았다. 이때 쓴 체온계와 혈압계 등 모든 것이 일회용이었다. 이것들은 사용 후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위내시경을 위해 이미 두 명의 의사를 만났다. 위내시경 후 마취가 깬 다음 간호사는 아주 친절하게 “괜찮냐”고 물었고, 옷을 갈아입고 걸어 나가려 하자 “걸어 나가면 안 된다”며 병원 문까지 휠체어 배웅을 받았다. 위내시경을 받기 위해 이날 겪은 모든 것들이 천문학적인 숫자(진료비)로 바뀌어 보험회사로 청구될 것이다.

영주 닐슨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U.C.버클리대 금융공학 석사, 피츠버그대 통계학 석·박사. 베어스턴스, JP모건, 씨티은행 퀀트 채권트레이딩 최고책임자 역임. 현재 헤지펀드 퀀타비움캐피탈 대표.

영주 닐슨 퀀타비움캐피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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