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생명을 받아 땅 위의 세상에 나온 지 반백 년이 지났다. 쉰 번의 새해를 맞으면서, 매번 언덕에서 굴러떨어져 영원히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벌을 받는 운명인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를 떠올린다. 시시포스와 같은 게 나의 신년 설계였다. 매년 의욕적인 새해 목표를 세우곤 했지만 매번 작심삼일이었다. 야구선수가 홈런이 안 나오면 방망이를 짧게 잡고 안타를 노리듯이, 근년에는 원대한 목표보다는 조그만 목표를 소박하게 세우고 분명하게 이루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뱃살은 나이 들면서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가난하던 시절의 뱃살은 사장님 스타일이었지만 지금은 자기관리에 소홀한 게으른 중년의 상징이다. 건강검진 때마다 몸무게 조금 줄이라는 의사들의 권유에도 아직 표준체중 범위에 있음을 위안으로 삼아왔지만, 2013년은 뱃살과 체중의 이중주가 펼쳐졌다. 단순히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까지 겹쳐서인지 부쩍 몸이 둔해지는 느낌을 가지면서 남의 일로 생각해 왔던 감량과 다이어트는 당면한 현실이 되었다. 새해 감량 목표는 체중 6㎏, 허리둘레 2인치로 정했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체중이다. 의사는 10㎏ 정도를 권유하지만 올해는 난생처음으로 몸무게 줄이기를 목표로 삼은 만큼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 하면 금방 일정 수준 도달할 듯한데 나름대로 노력해도 잘 늘지 않고, 되는 듯하면 다시 제자리이고, 집어치우려고 마음먹으면 또 잘되기도 하는 인생의 숙제’로 골프와 영어, 두 가지가 있다. 골프채를 손에 잡은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실력은 ‘백돌이’(평균타수 100점대)를 면한 정도이다. 애정과 실력이 비례하는 골프에서 부족한 열정으로 연습도 별로 없이 필드만 다녔으니 당연하다. 출장 횟수만 늘어나던 지지부진한 형편에 2013년 처음으로 골프에 흥미를 느꼈다. 겨울시즌 연습장에 간간이 다녔는데 의외로 효과가 있어 보기 플레이어 언저리까지는 진입했다. 스코어는 여전하지만 재미있게 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변화였다.

새해의 목표를 평균타수 84타로 잡았다. 물론 너그러운 OK(give)와 전·후반 1개씩의 멀리건을 전제로 한 주말 건달 골퍼 기준이다.

대표이사가 되어 처음 1년을 정신없이 보내며 직원들과의 스킨십에서 아쉬움이 생겼다. 아무래도 거리감을 느끼는 직원들과 직장상사로 공식적이지만은 않은 사회선배로서도 나름대로의 통로를 만들고 싶었다. 호프데이, 회식, 등산도 좋은 방법이지만 컨설팅업 특성상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웠고 또 나의 특장점이 있는 방식을 생각하던 중 ‘회장님의 메모’라는 책을 만났다.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에서 16년간 회장으로 일한 그린버그는 임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알리고 경영철학을 전파하는 방법으로 메모를 이용하였다. 비용절감, 정직, 근검절약, 고객우선 등 상식에 입각한 혜안이 담겨 있어 유명했다.

아이디어를 얻은 나는 ‘MP의 편지’라는 타이틀로 전 직원에게 일종의 경영에세이를 써서 보내기 시작했다. 프랑스 식당, 순대국밥, 로마 역사, 추석, 크리스마스 등등 다양한 소재로 부담 없이 읽으면서 부분적으로 회사 경영과 관련해 이해시키고 싶은 내용을 간접적으로 담았다. 3분의 1 이상이 읽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했는데 예상외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량이 발송되었고 책으로 출간해 보라는 권유가 있던 차에 마침 출판사의 제안이 있어 올해 출간을 목표로 삼았다.

김경준(1963년생)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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