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노인이 요양시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한 여성 노인이 요양시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직장인 곽모(52)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4년째 집에서 돌보고 있다. 어머니는 밤마다 소리를 지르고, 식사 때마다 밥상을 엎고, 손주들에게 욕을 하곤 한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힘이 들지만 요양시설에는 절대로 보낼 수 없다는 게 곽씨의 생각이다. 수십 년간 자신을 뒷바라지해준 어머니를 배신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다르다. 요양시설에서 지내면 더 좋은 관리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집에서만 모시려 하느냐는 입장이다. 곽씨 부부는 이 문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다. 이런 가정 분위기 탓인지 자녀들은 항상 집에 늦게 들어온다. 곽씨의 직장 일에 대한 집중도도 예전 같지 않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6년 전부터 집에서 간호해온 정가현(가명·60)씨. 정씨는 지난해 초 어머니를 요양시설로 모셨다. 5년간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면서 말 못할 가슴앓이를 해왔다는 정씨는 “진작 요양시설에 모실 걸 그랬다”고 말한다. 주기적으로 목욕을 시키는 것도, 영양을 고루 섭취하도록 하는 것도,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을 나가는 것도 집보다 요양시설에서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의 어머니는 이제 심폐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코에 산소호스를 껴야 하는데 이런 의학적 처치도 문제가 생기는 즉시 받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치매를 앓으면 나머지 가족은 너무나 큰 영향을 받는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인 하루를 보낸다”고 말할 정도다. 심신의 고단함 때문에 환자를 요양시설로 보낼까 고민하다가도 죄책감 때문에 이내 포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근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의 아버지가 치매를 앓던 부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 사례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치매환자 가족의 아픔을 등한시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사랑하는 가족은 반드시 집에서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보호자들은 환자를 요양시설로 보낼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한다. 요양원보다 집에서 가족이 더 잘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치매환자를 집에서 돌보기 어려운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도 환자를 요양시설로 보내는 게 옳은 일인지 의구심이 든다면 요양시설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는 무엇이 있고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보자. 문창진 차의과대 부총장(보건복지정보학과)과 허성혁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의 도움으로 요양시설의 현실에 대해 알아본다.

편견 1 “가족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다”

효(孝) 문화 때문에 부모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반드시 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다. 고령화되면서 치매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가족이 아닌 사회의 의무가 돼야 한다. 아직까지는 치매환자 가족이 많은 부담을 지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앞으로는 개선될 것이라고 본다.

중기 이상의 치매환자 때문에 고민이라면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증상을 관리할 수 있도록 요양시설을 적극 활용하자. 운동기능이 떨어진 치매환자를 생각해 보면 쉽다. 집안 곳곳의 장애물이나 문턱에 걸려 넘어질 수 있고, 가벼운 산책조차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이런 어려움들은 요양시설에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 다만 요양시설에 모셨다 하더라도 환자를 자주 찾아보면 된다. 정기적으로 시설을 방문해 시간을 함께 보내면 환자는 안정감을 느끼고 시설에 훨씬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편견 2 “환자가 슬퍼할 것이다”

치매환자는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방에서만 보내거나 가족과 대화를 전혀 하지 않기도 한다. 요양시설에 처음 환자를 보내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탓에 이런 증상은 더 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환자가 자신을 요양시설에 보내서 슬퍼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요양시설에서 운영하는 치매환자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많고 이런 것들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이 점점 호전되는 것이다.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인지기능 악화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편견 3 “보살필 수 있을 때까지 집에서 보살피는 게 좋다”

‘이럴 때 요양시설에 보내야 한다’라는 기준은 없다. 다만 환자나 보호자가 너무 지치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치매환자의 보호자들은 환자를 요양시설에 맡기는 결정을 너무 늦게 내리는 경향이 있다. 환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을 때 모든 가족 구성원끼리 충분히 상의를 한 후 결정을 내리면 환자에게도 훨씬 도움이 된다. 그래야 변화된 환경에 충격을 받지 않으면서 잘 적응할 수 있다.

편견 4 “돈이 많이 들 것이다”

시설이 좋은 요양병원이나 실버센터는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지역마다 많은 요양시설이 들어서 있고 이 때문에 서로 경쟁이 치열해져 비용이 어느 정도 평준화돼 있다. 또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등급에 따른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도움을 받도록 하자. 비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저렴한 요양시설만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비스 질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보호자가 먼저 여러 시설을 방문해 비용 대비 서비스 질을 꼼꼼하게 따져보는 노력이 중요하다.

편견 5 “환자를 정성껏 돌보지 않을 것이다”

요양시설은 입원 기간에 제한이 없다. 환자나 보호자가 원할 경우 언제든 퇴원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요양병원 심사 및 기준이 까다로워져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요양병원 수만 해도 국내 1200곳이 넘을 정도로 서로 경쟁이 심하다.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의사로서도 환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없이 요양병원에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요양시설의 의료진 및 간병인을 믿는 것이 좋겠다.

요양시설 정보가 필요하면…

한국치매협회·한국치매가족협회

치매 요양시설을 알아볼 때 도움이 되는 기관이 있다. 한국치매협회(www.silverweb.or.kr)와 한국치매가족협회(www.alzza.or.kr)다. 한국치매협회는 치매와 관련이 있는 의료·간호·노인복지·심리·법률·경영·영양·건축 등 8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1994년 창립한 조직이고, 한국치매가족협회는 전국의 치매환자 가족이 모여 1991년 설립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요양시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지역별 여러 요양시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한희준 헬스조선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