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외여행객 수는 1500만명에 육박했다. 여행 유형도 다양해지며 저렴한 한인 민박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행객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photo 연합
지난해 해외여행객 수는 1500만명에 육박했다. 여행 유형도 다양해지며 저렴한 한인 민박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행객들의 주의도 요구된다. ⓒphoto 연합

지난 4월 10일 프랑스 파리 근교 메종-알포르 지역 주택가. 한 한국인 가족이 지은 집에 프랑스 경찰이 들이닥쳤다. 한국인 부부와 아들 두 명이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들의 혐의는 불법 민박집 운영이다. 경찰이 민박집을 급습했을 당시 이곳에 있었던 투숙객 6명 중 한 명이었던 A씨는 주간조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불법 영업 민박집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A씨는 “여행을 자주 가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려고 대부분 한인 민박집을 이용한다. 이번 일 이후 알아보니 거의 모든 한인 민박집이 불법 영업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해외여행객은 1485만명. 한국관광공사의 ‘2013년 국민 해외여행 실태 및 2014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 있는 국민 중 33.1%가 개별 자유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 목적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저렴한 경비’(35.1%)였다. 이런 경향은 20~30대에서 강했다. 이 때문에 20대 남성과 여성의 상당수가 해외여행에서 게스트하우스나 민박(남녀 각각 32.3%, 30.0%)을 이용했다. 특히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은 언어가 통하고 여행 정보를 손쉽게 교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기가 높다.

이에 맞춰 한인 민박 이용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많은 한인 민박이 숙박업소로 등록하지 않고 불법 운영되고 있다는 점. 프랑스에서 정식 숙박업소인 ‘Chambre d’hote’를 운영하려면 ‘지트 프랑스(Gite de France)’라는 정부 공식 민박 사이트에 등록해야 한다. 또 보험 가입과 관련 협회 가입을 위해 일정 금액 이상의 예치금을 내야 한다. 특히 프랑스 체류 목적이 호텔 관련업에 종사하도록 허가가 난 사람만이 민박 업소 운영이 가능하다.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숙박업소를 운영하려면 정부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를 받기 위해 까다로운 자격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많은 한인 민박집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주택을 임의로 개조하여 영업하고 있다. 2006년 말 중국 베이징에서는 무허가 한인 민박을 운영하던 한국인 17명이 강제추방당하고, 시설물을 압수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중국 공안(경찰)들은 민박집에 머물고 있던 한국인 관광객도 강제로 쫓아냈다. 지난 1월 이탈리아 로마로 여행을 갔던 윤모(23)씨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관광국에서 단속이 나왔다고 하더니 주인아줌마가 숙박객들에게 건물을 나서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숙박객도 쫓겨난다면서, 창고 같은 곳에 모아두고 한참을 방치했어요.”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 입국하려던 최은정씨는 입국신고서에 한인 민박집 이름을 적었다가 입국 심사대에서 1시간 넘게 잡혀 있었던 경험도 있다. “민박집 주소를 확인하던 심사관이 등록되지 않은 숙박업소라며 계속 딴죽을 걸었어요. 민박집 주인과 통화도 했지만, 무허가업소다 보니 소용이 없더라고요. 결국 숙박업소를 바꾸겠다는 약속을 하고 풀려났어요.”

상당수 한인 민박은 숙박 외의 다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 홍모(32)씨는 한인 민박을 통해 ‘투어’ 상품을 예약했다. 현지 여행사에서도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일일투어 상품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언어가 잘 통하는 한국인이 가이드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투어 하루 전날 민박집으로부터 일방적인 투어 취소 연락을 받았다.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돈을 더 내거나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홍씨는 “민박집 주인은 원래 5명이 투어를 떠나기로 했는데 이 중 3명이 예약을 취소했다면서 3명 몫의 돈을 더 내지 않으면 투어가 취소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홍씨가 이용하려 했던 민박집처럼 많은 민박집은 현지사정을 잘 안다는 이유로 관광투어 상품 등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민박집에서 제공하는 가이드는 정식 등록된 가이드가 아닐 뿐더러 대부분의 상품에는 취소·환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지난 3월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났던 B씨는 여행 관련 커뮤니티에 피해를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주간조선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B씨는 “투어해주기로 한 한국인 가이드가 몸살이 났다고 해서 당일에 외국인 가이드로 바뀌었다”면서 “갑자기 바뀐 가이드는 광고와는 달리 다른 코스를 안내했고 영어를 알아듣기 어려웠기 때문에 환불을 요구했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씨와 B씨 모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공시한 국외여행 표준약관에 따르면 환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환불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8월 영국 런던으로 여행갈 계획을 세웠던 김해준씨는 50여일을 앞두고 여행을 취소했다. 항공편, 여행사를 통한 투어 상품 등은 일정액 수수료를 제하고 쉽게 환불을 받았지만 숙소였던 한인 민박은 예외였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사이트가 있으니 한국 숙박업 보상 규정에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지만 결국 한 푼도 환불받지 못했어요.” 김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글을 올렸지만 이마저도 삭제당했다. “민박집 측에서 되레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협박하더라고요. 법적으로 처리하자고 할까 하다가 흐지부지됐어요.”

많은 민박집이 우리나라 숙박업소, 여행사 등이 따르는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이나 ‘국외여행 표준약관’ 등을 지키지 않을 뿐더러 현지 여행 관련 법률에도 저촉당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현지 대사관에서도 적극적으로 피해를 구제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급기야는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1년 이탈리아 로마의 한 한인 민박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은 무허가 한인 민박에 대한 경계심을 키운 사건이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도 “잠자는 사이에 민박집 주인이 친구의 바지를 벗기는 걸 목격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9월에는 미국 애틀랜타의 한 민박집에서 어학연수차 머물고 있던 10대 학생들에게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고 옷을 벗거나 키스를 하게 한 혐의로 한국인 부부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 민박집 역시 허가받지 않은 채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한국소비자원 대외협력실 김정호 지원장은 “정식 등록된 숙박업소는 현지 숙박법을 따르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민박집이 정식 등록된 곳인지 확인하고 숙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키워드

#여행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