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멘 드 지구의 동굴 셀러에서 포즈를 취한 ‘닮은꼴’ 부자 조엘 지구(오른쪽)와 아들 루도빅.
도멘 드 지구의 동굴 셀러에서 포즈를 취한 ‘닮은꼴’ 부자 조엘 지구(오른쪽)와 아들 루도빅.

올 초 바르셀로나 시음장에서였다. 막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루도빅 지구(Ludovic Gigou)라는 젊은 와인 생산자를 만난 것은.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 중서부에 위치한 루아르(Loire)강의 북쪽에 위치한 루아계곡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소개되지 않은 화이트 포도주 자니에르 와인을 소개했다. 그의 순박한 모습도 호기심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포도주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포도주를 시음한 순간 마음속으로는 루도빅의 와이너리를 방문할 계획을 이미 세우고 있었다.

실제 방문은 한 달 후인 지난 4월 초에야 이뤄졌다.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 열린 2013빈티지 시음회를 마치고 벼르고 있던 여행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기차를 타고 옛 프랑스 왕들의 고성이 남아있는 투르로 갔다. 투르에서 루도빅 지구가 사는 라 샤를르 마을까지는 직접 가는 교통편이 없어 루도빅이 마중을 나왔다. 라 샤를르 마을은 투르에서 북쪽 50㎞ 정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구릉진 평야에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고 붉은 토양, 녹색 농지와 어우러진 풍경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했다. 오후 늦게야 도착한 루도빅의 집은 작은 양조장(도멘 드 지구, 부르고뉴 지방에서는 샤토를 도멘이라고 함)를 겸하고 있었고 맨 위층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와이너리였다. 루도빅의 아버지인 조엘 지구가 1947년 4㏊(헥타르)로 시작한 와이너리는 장남인 루도빅이 2대째 이어가고 있었다. 꽁지머리를 한 조엘은 스스로 예술가를 자처하면서 자신의 고집대로 65년이 넘게 와이너리를 지켜오고 있었다. 그만큼 타협하지 않은 포도주를 만들기 때문에 품질 면에서 이미 이 지역에서는 최고로 평가받고 있었다. 마당 한 곁에 와인 저장고인 카브가 있어 방문객에게 와인을 직접 팔기도 했다. 그날 저녁 루도빅 가족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았다. 루도빅의 어머니가 직접 요리한 음식에 드라이한 자니에르 와인과 약간 단맛의 자니에르 노블 1990년산을 함께 즐겼다. 포도주는 더없이 좋았지만 왠지 가족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알고 보니 조엘과 루도빅 부자는 동네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장남에 대한 기대가 컸고, 그만큼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 루도빅에 대한 불만이 컸다. 아들은 아버지의 독선적인 성격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도무지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갈등의 골이 깊어 보였다.

루도빅의 어머니는 훌륭한 요리사이면서 남편에게 순종적인 가정주부로 보였다. 필자는 “요새 한국에서는 나이 들어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남편을 두고 간 큰 남자라고 한다. 때문에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는 말로 분위기를 떠보았다. 부인은 웃음으로 답했지만 조엘의 표정이 심각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은 루도빅의 집에서 1㎞ 떨어진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작은 마을은 금요일 저녁임에도 조용했다. 3층 규모의 호텔은 영국인이 최근에 사서 수리를 한 덕분에 깨끗했다. 과거 영국지배령이었던 까닭에 바캉스 시즌이면 영국인 관광객이 꽤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했다. 짐을 풀고 호텔 앞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포도주 잔 속으로 별이 쏟아져 내렸다.

도멘 드 지구의 동굴 셀러
도멘 드 지구의 동굴 셀러

다음 날 아침 루도빅을 따라 와인셀러와 포도밭을 본격적으로 둘러보았다. 처음 들른 곳은 포도주를 양조하고 숙성하는 곳이었는데 특이하게 동굴 속에 있었다. 루도빅은 이 지역(자니에르, 코토 드 루아르)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들은 대부분 동굴 속에서 숙성하고 있다고 했다. 석회암에 석영질 돌들이 박혀 있는 지질이어서 동굴을 만들기 쉽다 보니 오래전부터 루아계곡에는 이 같은 동굴이 많이 만들어졌단다. 포도주를 저장하기 전에는 버섯 재배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중세부터 포도주를 생산했다. 루이 14세 때 지도상에 이미 이 지역 포도밭이 소개됐다. 자니에르 와인은 1937년, 코토 드 루아르는 1948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AOC(원산지 명칭 제도로 고급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를 얻었다. 자니에르와 코토 드 루아르는 같은 지역이지만 자니에르가 좀더 순수성을 갖고 있는 노른자라고 볼 수 있다. 가격도 더 비싸고 포도주도 더 조밀하다. 도멘 드 지구에 미리 나와 있던 조엘 지구가 바로 와인셀러인 동굴로 안내했다. 입구에는 오크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다음 통로에 병입된 와인들이 쌓여 있었다. 군데군데 시음 공간을 만들어 오래된 포도주들을 맛볼 수 있게 해놓았다. 동굴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카브를 둘러본 후 조엘은 입구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었다는 철 테이블에서 여러 빈티지 포도주들을 시음시켜 주었다.

오픈한 지 일주일 되었다는 1982년산은 아직도 힘이 있고 향도 좋았다. 1974년산 생 자크는 유명한 산화 와인 같은 맛과 향을 보여주었다. 1986년산은 향이 아주 특이했고 이틀 이상 오픈해 놓아야 된단다. 최근 빈티지인 2007년산은 향은 덜했지만 힘이 강하고 균형이 아주 좋아 여러 잔 마시게 되었다. 이 밖에도 1988, 1989, 2002 빈티지들을 시음하면서 백포도주를 만들어낸 르 슈냉 블랑(Le Chenin Blanc) 포도의 위대한 맛에 깊이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적포도주가 건강에 좋다고 백포도주를 등한시하지만 이곳의 백포도주는 이 고장만의 테루아와 농부들의 노력으로 훌륭한 포도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필자는 조엘과 함께 시음을 하며 그가 얼마나 포도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포도주를 빚는 농부는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와 다르지 않음을 이 작은 마을의 조엘은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중세 동굴 마을 트로에 있는 동굴 거주지 모습.
중세 동굴 마을 트로에 있는 동굴 거주지 모습.

동굴을 나와 포도밭으로 향했다. 라 샤를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남쪽으로 경사진 면을 따라 포도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포도밭은 점토질과 석회질로 무장하고 있었다. 4㏊로 시작한 포도밭을 조엘은 13㏊까지 늘렸다. 이 포도밭이 루도빅이 트렉터를 몰면서 일하는 곳이다. 루도빅은 고등학교까지 유망한 배구선수였으나 음악이 좋아 배구를 그만두면서 아버지와 갈등이 시작됐다고 한다. 결국 가문의 유산을 계승하기로 하고 아버지를 돕고 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음악활동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포도주에 평생을 바친 조엘로서는 록에 빠져 틈만 나면 한눈을 파는 루도빅이 못 미더울 만도 했다. 자니에르 포도주가 좋아 먼 걸음을 했다가 느닷없이 부자 사이 싸움을 중재하는 가족 문제 컨설턴트가 됐다. 필자는 루도빅에게 조엘을 먼저 존경하려고 애써 보라고 조언했다. 루도빅은 항상 자신이 먼저 말을 건다고 주장했지만 필자가 보기에 냉랭하기는 부자가 똑같았다. 조엘이 아직 모든 경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루도빅으로서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루도빅이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가는 길에 16세기 프랑스 시(詩)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시인 피에르 드 롱사르(1524~1585)가 태어난 포소니에성에 들렀다. 성은 넓은 정원의 한가운데 세워져 있고 오른쪽 절벽 안쪽으로 동굴을 여러 개 만들어 와인 저장실 등으로 사용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루도빅이 데려간 곳은 성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트로마을이었다. 이곳은 동굴마을로 아직도 327명이 절벽 안 동굴이나 절벽 위의 집에서 살고 있다. 절벽의 높이는 154m. 절벽에 나 있는 작은 길을 따라 오르는 동안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절벽의 동굴집은 카브나 카페, 살림집, 레스토랑, 호텔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름 바캉스 기간 동안에는 관광객에게 집을 빌려주기도 한단다. 절벽에 그대로 현관문이 있고 창문이 뚫려 있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마당 벤치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집안 구경을 할 수도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여행을 떠난 것 같았다.

라 샤를르 쉬르 르 루아 마을 중심가에 있는 호텔.
라 샤를르 쉬르 르 루아 마을 중심가에 있는 호텔.

호텔로 돌아온 필자는 루도빅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안내해 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기도 했고 부자간의 갈등에 대해 조언을 좀 더 해주고 싶었다. 포도주로 적당히 취기가 돌 때쯤 루도빅에게 말했다. “아버지 조엘에게 1㏊만 자신이 마음대로 포도주를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제안해 보라고. 순간 루도빅의 눈이 반짝이면서 “좋은 생각이다. 꼭 말해 보겠다”고 말했다. 우선 조엘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니 아버지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일을 싫어도 해보라고 덧붙였다. 떠나기 전 조엘과 인사를 나누면서 똑같은 제안을 했다. 조엘도 선뜻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조엘도 사실 나이가 들면서 아들의 도움이 누구보다 절실해 보였다.

다음 날 마을 산책에 나섰다. 한적한 작은 마을을 여행하다 보면 소소한 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안내책자에는 자연과 예술,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인류의 유산이 잘 보존된 곳이라 소개했는데 역사적 건물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마을을 이리저리 산책하다 생선가게를 지나게 됐는데 생선들이 그렇게 싱싱할 수가 없었다. 바다로 가려면 자동차로 몇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인데 싱싱한 생선들이 이렇게 즐비하다니.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부부가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부부가 마침 손질하고 있던 것은 4㎏ 정도의 로브스터로 “주문받은 것”이라고 했다. 멋지게 반으로 갈라 배 모양의 스티로폼에 얼음을 깔고 그 위에 익힌 로브스터를 올려 놓은 후 파슬리와 레몬으로 장식했다. 주인 남자는 생선마다 어떤 소스가 좋고 어떤 지역 포도주가 잘 어울리는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웬만한 소믈리에보다 훌륭했다. 생선가게에서 좀 더 내려가 중세풍의 교회를 지나자 폭 3~4m의 루아강이 나타났다. 낚시 시즌인지 강태공들의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마을 중심을 돌아보는 데는 한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에는 항상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 한둘씩 카페에 들어와 웨이터에게 정보 보고(?)를 했다. 카페는 이웃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마을의 아궁이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주말엔 카페가 문을 닫아 웨이터가 소개해준 바를 찾아갔다. 동네 젊은이들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마치 이브 몽탕이 주연했던 영화 ‘갸르송’의 주인공들 같았다. 바에 들어서자 호텔의 웨이터가 애인과 함께 데이트를 하다 맥주를 한 잔 사 보내주었다. 필자도 그들에게 인사로 포도주를 보내주었다. 주거니 받거니 프랑스 시골의 작은 카페에서 주말 저녁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듯 예기치 못한 상황과 조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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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와인컨설턴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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