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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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교수는 명문 싱가포르국립대 경영학 교수이자, 한국과학기술대(KAIST) 경영대 교수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세계 경영학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이다. 교육부(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2007년 선정한 ‘국가 석학 15인’ 중 한 명이다. 특히 ‘국제 경영 전략’ 분야에서 전 세계 명문 대학들이 그를 향한 초빙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장 교수가 최근 한국과 전 세계 언론, 또 한국 경제계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2014년 2분기 실적 발표를 이틀 앞둔 지난 7월 6일 세계 3대 통신사 중 한 곳인 로이터의 ‘수익추락에 직면한 삼성전자’ 관련 기사 때문이다. 로이터는 이 기사에서 “삼성(전자)의 전성기는 갔다(Samsung’s heyday has gone)”는 장세진 교수의 코멘트를 보도했다. 로이터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 장 교수의 삼성전자 분석은 그 즉시 한국 언론과 한국 경제계로 타전됐다. 그리고 이틀 후 삼성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각 9.5%와 24.45% 급락했다’는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 발표가 나왔다.

지난 7월 21일 장세진 교수를 만났다. 서울 동대문구 홍릉(회기로)의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경영대학에서 만난 장 교수는 “로이터와, 또 로이터 기사를 인용한 한국 언론들이 실제 인터뷰에서 언급한 많은 내용 중 ‘삼성(전자)의 전성기는 갔다’는 부분을 특히 부각시켰다”며 웃었다. 그는 “이 표현은 삼성전자가 지금 갑자기 노키아나 소니처럼 빠르게 무너진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지난 4~5년간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익을 냈던 삼성전자가 수익성 면에서 이제 정상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장 교수는 “2009~2013년까지 삼성전자의 실적은 사실 비정상적인 것으로, 2009년 이전까지의 실적이 정상적인 삼성전자 수익이었다”라며 “결국 2009년 이전 수준으로 실적과 수익성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9년 이전까지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은 4조원을 넘지 못했다.(2009년 이전 삼성전자의 재무제표를 확인한 결과, 개별재무제표 기준 2007년 1분기~2008년 4분기까지 각 분기별 실제 영업이익은 약 1조~2조원 중반대였다.) 그게 2009년 이후 급증했다. 결국 분기 영업이익이 7조~8조원까지 치솟았다.(2013년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10조1635억원으로 최고치 기록) 이게 비정상적 수익성이라는 거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2009년 이후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높아질 수 있었던 건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준 덕분이다. 이 스마트폰 시장을 애플과 삼성, 단 두 기업이 나눠 먹는 구조였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 스마트폰 시장에는 애플과 삼성 외에도 샤오미나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 등 다른 여러 기업들이 진입해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는 데 있다. 둘이 나눠 먹던 시장에 경쟁력을 갖춘 플레이어가 여럿 등장하게 되니 삼성의 수익률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 교수에게 “수익성의 정상화가 ‘2009년 이전 수익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앞으로 4조원대로 추락할 수 있단 의미이냐”고 묻자 장 교수는 “그 수준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 부분에서 장 교수는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줄어든다는 게 매출과 사업의 규모가 줄어든다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했다.

“앞으로 삼성전자는 지금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총매출은 유지하려 할 것이다. 즉 수익성 떨어진다는 게 영업이익이 급하게 줄어드는 것이지 삼성전자의 매출·점유율이 함께 급감한다는 건 아니란 것이다.”

위기가 언급되는 최근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은 7조2000억원이다. 한국 기업 중 이 같은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삼성전자 말고는 한 곳도 없다. 2위 기업 현대자동차가 수익성이 좋을 때 2조원 중반 정도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의 향후 수익성에 대해 시장과 다수의 전문가들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장 교수는 “삼성전자 수익 대부분이 무선사업부, 그중에서도 스마트폰 사업 하나에서 나온다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스마트폰 시장의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막을 방법을 삼성전자가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보통신기기 시장은 제품 교체 주기와 전파 속도가 아주 빠른 특징이 있다. 때문에 시장 성장과 포화 속도 역시 다른 시장들과 비교해 훨씬 빠를 수밖에 없다.

장 교수는 “삼성전자 역시 (스마트폰 시장이 만들어진 후 단 5~6년이라는) 빠른 속도로 포화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며 “5~6년 전부터 이건희 회장이 계속 위기를 강조해 왔는데, 결국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장 교수가 영업이익 등 수익성 급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새로운 제품과 전략 등)이 삼성전자에 전혀 없다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장 교수는 “선발 기업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시장과 상품·제품들을 개량하고 효율적인 대량 생산화를 무기로, 가격·물량 경쟁을 능숙하게 해온 게 삼성전자였다”며 “삼성전자는 스스로 새로운 상품·제화 카테고리를 만들었거나 새 시장을 개척한 적이 없다”고 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TV·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그동안 삼성전자의 성장을 이끈 상품·제화, 시장 모두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왜, 애플이나 구글 등 경쟁자들과 달리 수익성 급락을 막을 새로운 상품이나 제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걸까. 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는 걸까. 장 교수는 오너십의 문제, 경영진의 능력, 조직문화와 역사성, 기술력의 문제가 골고루 다 있기 때문임을 말했다. 그는 “삼성은 시작 때부터 목표가 ‘산업보국’이었다”며 “이것은 산업용기기나 반도체, TV처럼 그냥 조립 생산해서 대량으로 내다파는 구조로 B2B(기업 간 거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대량 생산엔 능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창조적 능력이나 사업은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1993년까지 삼성전자의 모습은 대량 수출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당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운동’이 나오면서 ‘품질 부분도 생각하자’는 방향으로 체질을 조금 바꾼 거다. 이때부터 ‘품질을 높인 고가 제품’을 만든 것이고, 지금껏 이어져 왔다. 그런데 고가 제품을 만들어 판다는 게 새로운 제품을 창조해 낸다거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냥 이미 있는 제품을 좀 더 개량하고 고급화했다는 의미일 뿐이다. 결국 삼성(전자)은 한 번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 적이 없는 거다.”

장 교수는 “삼성전자의 전 세계 연간 특허 랭킹이 3~4위쯤”이라며 “문제는 이 특허 상당수가 프로덕트 테크놀러지(Product technology·제품 기술)가 아닌 프로세스 테크놀러지(Process technology·생산공정 기술)에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생산성을 높여 불량을 줄이고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기술 능력은 뛰어나지만 소비자의 필요·욕구·수요를 이해해 새로운 제품과 시장 카테고리를 창조해 내는 능력과는 거리가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장 교수는 삼성의 인재 확보와 조직 운영에 대한 문제도 짚었다. “지금껏 삼성은 한국의 인재만 갖고 (기업을) 했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으로서 계속 높은 수익성 유지하는 데 소프트웨어에 약한 한국의 인재만으로는 한계에 왔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는 거다. 현재의 소프트웨어 경쟁은 한국 사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영역으로 글로벌 인재를 통해 강화해야 할 부분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인력의 글로벌화, 글로벌 인재 확보·활용을 통해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에는 삼성의 조직 문화에 문제와 약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글래스도어(Glassdoor)’라고 미국 현지 직원들이 고용주인 직장을 평가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삼성전자의 평점이 2.8점입니다. 구글은 4.2점이고, 심지어 평가 대상 업체 평균이 3.3점입니다. 삼성전자는 이 평균보다도 아래지요. 더욱이 평가 내용을 보면 ‘군대 조직’ ‘업무의 균형이 없다’ ‘한국 사람들끼리만 다 해먹는다’ 같은 불만이 많다. 이 같은 이미지의 기업·조직 문화에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데려온 글로벌 인재들이 삼성전자에 계속 남아 있겠냐는 거다. 남아 있다 한들 그들이 조직을 위해 뭔가 만들어 내려고 고민하고 경쟁하겠는가. 이것이 문제의 진짜 핵심이다.”

사실, 삼성전자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제는 ‘이재용 시대 삼성전자가 이전의 삼성전자와 같을 것이냐’이다. 삼성의 후계자 이 부회장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장 교수는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아닌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주주로서 전문 경영자들을 임명하고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며 “스스로 전면에서 모든 경영권을 행사하려 한다면 삼성(전자)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과거 같은 강한 오너경영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패러다임이 삼성에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이재용씨는 정말 필요로 할 때만 경영자가 아닌 대주주 역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삼성전자 경영자들의 분위기에서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된다면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말했다.

“지금껏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굉장히 강력한 목소리를 내면서, 삼성의 구성원들이 이 회장 한 명만 바라보는 체제였다. 위를 향해,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구조다. 전문 경영자들이 스스로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인 거다. 이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본격화했을 때 이 부회장에게서 ‘이제부터는 날 보지 말고, 알아서들 하세요’란 말이 나오면 과연 ‘삼성전자 전문 경영인들이 진짜 알아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란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게 현실적 문제다.”

장 교수는 “이재용 시대의 본격화 전, 가장 먼저 이재용씨 스스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며 “그가 대주주로서, 관리자로서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하는지가 삼성의 미래를 위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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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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