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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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관광객들을 이끌고 로마 바티칸 교황청 투어를 하던 한 독일인 가이드는 관광 안내 도중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니 한 노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장난전화인 줄 알았다. 곧바로 말이 이어졌다.

“지난달에 나한테 교황 취임한다고 축하편지 보내셨죠. 잘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나와 바티칸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가이드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티칸 가이드이자 가톨릭 신자였던 이 독일인 가이드는 한 달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할 때 “취임을 축하한다”며 손편지를 보냈었다. 답장이 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무심코 보낸 편지였는데, 교황이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 자리에 앉아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로마에서 가이드 생활을 10년 넘게 한 유로자전거나라 여행사의 김성민씨가 기자에게 들려준 에피소드다.

김성민씨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독일인 가이드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바티칸에서는 유명한 일화가 됐다”며 “작년에는 바티칸에서 일하는 전 세계 가이드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소동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씨처럼 로마와 바티칸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은 교황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자주 접하게 된다. 다음은 김씨가 들려준 또 하나의 이야기. “작년에 교황님이 바티칸 수녀들을 모아놓고 첫 연설을 하는데 첫마디가 ‘노처녀가 되지 마시고 어머니가 되십시오’라는 말이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교황님이 이런 얘기를 해서 처음에는 수녀들이 당황했는데 이내 농담인 줄 알고 크게 웃었다는 일화가 있다. 경건한 바티칸에서 그렇게 큰 웃음소리가 난 것도 오래간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 시절 바티칸은 권위와 위엄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거의 없었고 바티칸 내부의 일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스로가 외부와의 격식 없는 만남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바티칸 전체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오는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하는 제266대 프란치스코 로마교황은 바티칸 현지에서 이와 같은 파격 행보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럽 일각에서는 그의 이러한 행보들을 비유럽권 교황의 돌출행동이라며 부정적 시각으로 보기도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이나 바티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바티칸을 방문했던 직장인 조연서(35)씨는 “예전에 바티칸에 방문했을 때는 가이드들이 교황은 범접할 수 없는 인물처럼 묘사했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운이 좋으면 교황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잔뜩하게 만들었다”며 “교황을 바라보는 바티칸 현지인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행동은 그의 취임을 전후해 국내에도 많이 알려졌다. 지난해 3월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투표 회의)로 선출된 직후 바로 전까지 자신이 머물렀던 바티칸 내 호텔에서 직접 카드로 숙박비를 계산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긴 것이나, 이후 바티칸 내 숙소인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돌아올 때도 다른 추기경과 함께 버스를 이용한 것은 유명하다. 또한 한 사제에게 먼저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를 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이런 소식들은 바티칸의 공식 채널이 아닌 일반인들의 SNS를 타고 알려졌다.

다른 신부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했을 때 교황의 뒷모습도 함께 버스를 탔던 예수회 소속 안토비오 스파다로 신부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4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장애 여성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당시 교황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라는 지역에서 미사를 드리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도로 중간에 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현수막을 들고 있었던 사람은 한 장애 여성의 언니로 현수막에는 ‘천사가 당신(교황)을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만 멈춰 달라’고 써 있었다고 한다. 동영상을 보면 교황이 차에서 내리자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여성이 지인들에 의해 들려 교황 옆으로 옮겨졌다. 교황은 이 여성의 이마에 키스했고, 지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주변에 있던 지인들에 의해 촬영됐고, SNS에서 큰 화제가 되어 이탈리아 언론에도 보도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행보는 그가 오랫동안 가톨릭의 비주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톨릭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그는 권위를 중시하는 유럽 주류의 가톨릭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남미에서 사제 생활을 하면서 일반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282년 만에 선출된 비유럽권 교황이다.

현재 교황청 웹사이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일정에 대해 자세히 공지해 놨다. 하지만 그의 파격적 행보에 비추어 봤을 때 공식일정에는 잡혀 있지 않은 또 다른 돌발행보를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 가톨릭계의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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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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