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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342호]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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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배우 하정우는 왜 감독이 되려 하나?

변희원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 배우 겸 영화감독 하정우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지금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네 편이 모두 배우 출신 감독의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안젤리나 졸리의 ‘언브로큰’, 러셀 크로의 ‘워터 디바이너’, 그리고 하정우의 ‘허삼관’. 이 중 ‘허삼관’의 완성도와 흥행 여부는 국내 영화계와 관객의 큰 관심사였다. ‘한국판(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개봉 일주일이 지난 1월 21일 현재 그의 도전은 절반의 성공이자 실패로 판명이 났다.
   
   ‘허삼관’은 하정우가 메가폰을 잡기 전부터 영화계와 출판계에서 화제였다. 원작 ‘허삼관 매혈기’를 쓴 위화는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2)으로 성공한 그는 두 번째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1992)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이 영화로 만든 ‘살아간다는 것’은 가파른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인간이 걸어가는 생의 역정을 그려내며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1996)는 생존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한 남자의 희비를 그리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이 작품의 판권 경쟁은 치열했다. 한국의 제작사가 판권을 일찌감치 샀는데도 10여년간 작품의 시나리오도 완성하지 못했고, 감독을 확정짓지 못했다. 그리고 2013년 7월 감독과 주연으로 하정우가 낙점됐다. 같은 해 9월 위화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본 하정우는 영화에서 매우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연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하리라고 생각한다. 몇몇 감독들은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원작에 충실했다’고 하는데 그건 멍청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원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잘 해석하는 게 좋은 감독이다.”
   
   하정우는 ‘허삼관’ 개봉 전에 “이번 작품은 내게 터닝포인트”라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흥행 면에서는 분명 실패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허삼관’은 지난 1월 21일 현재 박스오피스 6위에 올라 있고 이날까지 누적관객 수는 71만7020명이다. 총 제작비가 100억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이 영화는 관객 300만~320만명 정도를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다. 현재의 흥행대로라면 2월 설 연휴를 노리며 개봉하는 새 영화들 때문에 ‘허삼관’ 총 관객수는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비평은 그래도 흥행보다 낫다. 일단 크게 거슬리는 부분이 없이 무난하게 만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곡진한 인생을 웃음과 눈물 속에 담아 입체적인 재미와 깊이 있는 성찰을 전해준 원작에 비해 부성애로만 감동을 주려는 영화는 밋밋하고 얄팍하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을 곳곳에 배치했지만, 이들이 유발하는 건 해학보다는 코미디에 가깝다. 이 정도면 “첫 장편 상업영화 연출치고는 나쁘지 않다”와 “두 번째 상업영화를 보고서 판단하자”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만약 ‘허삼관’이 최종적으로 흥행에 실패한다면 비슷한 제작 규모의 두 번째 상업영화의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하정우의 본명은 김성훈. 배우 김용건의 아들이다. 하정우는 “언제부터라고 할 수도 없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니컬러스 케이지의 연기를 보고 그 역할에 푹 빠져서 배우가 되리라는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했고, 아버지의 덕을 보지 않기 위해 예명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데뷔는 신민아와 조인성이 주연한 영화 ‘마들렌’. 여주인공 신민아의 옛 남자친구 역할이었다.
   
   2005년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성공으로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중앙대 영화학과를 다닌 윤종빈 감독이 졸업작품으로 내놓은 이 작품에서 하정우는 전형적인 꽃미남의 풍모 대신 베테랑 연기자의 연륜을 보여주는 신인배우로 인정받았다. 윤종빈과 하정우는 각각 그해 가장 촉망받는 신인감독과 신인배우로 꼽혔다.
   
   같은 해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주인공 전도연의 보디가드로 나오면서 대중적 인지도도 높였다. 동시에 김용건의 아들인 것도 알려졌다. 그리고 2008년 ‘추격자’로 그는 상업영화의 주연 배우로서 자리매김한다. 서른 살 때였다.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10년 동안 15억원을 모으기로 했다.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다. 보통 영화 한 편 만드는 데 15억원쯤 든다. 그때쯤이면 내 나이 마흔이다. 그 나이에 걸맞은 내 모습을 보여줄 영화를 만들고 싶다. 20대에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사회 초년병의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내가 직접 제작할 수도 있겠다.”
   
   ‘추격자’ 전후로 하정우는 나홍진·윤종빈·김기덕·홍상수·김용화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다. 인지도가 있는 배우임에도 순탄한 길을 걷지 않았다. 출연작에서 대부분 주연을 맡았지만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멜로·로맨틱코미디·스릴러·액션·법정물 등 장르도 따지지 않았고 상업영화와 다양성 영화의 경계도 마음껏 넘나들었다.
   
▲ 하정우가 주연·연출한 영화 ‘허삼관’의 한 장면.

   심지어 30대 초반의 신인감독 김병우의 장편 데뷔작 ‘더 테러: 라이브’에서 단독 주연을 맡았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흥행이나 비평, 둘 중 한 방면에선 꼭 성공을 거뒀고, 그의 연기에 대해선 비판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부지런했다. 일 년에 평균 두 작품씩 꼬박꼬박 출연했다. 일찍이 진로를 선택해 연극학과에 진학한 뒤 독립영화와 단역을 거쳐 연기로 승부를 거둔, 모범적 배우의 전형이 바로 하정우다.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웠던 건 기우에 불과했다.
   
   연출의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마흔을 목표로 했지만 서른여섯이었던 2013년에 저예산 영화 ‘롤러코스터’를 연출했다. 후배 배우인 정경호와 신인배우들을 기용한 이 영화는 과장스러운 소동과 엇박자의 유머로 점철된 영화였다. 흥행에 크게 성공한 건 아니지만 실패라고 할 수도 없다. ‘독특한 감성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총제작비 100억원의 두 번째 연출작이 바로 ‘허삼관’이다.
   
   모범 배우인 하정우가 모범 감독이 될지는 의문이다. 배우로서의 경력은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듯 쌓아갔지만 감독으로서의 경력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급행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 작품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신인감독이 두 번째 작품에서 제작비 100억원을 투자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신인감독은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로 두각을 드러내거나 다른 감독의 조연출을 하면서 상업영화 데뷔의 기회를 어렵게 잡는다. 이런 신인감독들마저 첫 작품에서 100억원 예산의, 유명 원작을 각색한 영화 연출을 맡는 것은 화창한 길에서 번개 맞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정우가 영화계와 대중에게 인정받은 배우가 아니었어도 그가 연출한 ‘허삼관’이란 영화가 나왔을지는 의문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배우 출신 감독들이 성공한 예가 많다. 찰리 채플린에서 오손 웰스, 클린트 이스트우트까지 영화사에서 천재나 거장 감독으로 칭송받는 몇몇은 연기와 연출을 병행했다. 특히 8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 출신 감독 중에서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장르의 만신전에 들 만한 이 배우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1971)로 감독 데뷔를 하고 ‘버드’ ‘용서받지 못한 자’ ‘미스틱 리버’ ‘밀리언달러 베이비’ ‘그랜 토리노’ 등을 왕성하게 연출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좀더 사려 깊고 진중한 사유를 덧씌우게 된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이스트우드뿐만이 아니다. “청춘스타에서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을 때쯤, 벤 애플렉은 ‘아르고’와 ‘타운’이란 연출 작품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감독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조지 클루니도 ‘킹메이커’ ‘굿나잇 굿럭’과 같은 정치적 소재를 다룬 영화를 연출하면서 남녀 모두가 선망하는 ‘꽃중년’에서 지적인 예술인으로 이미지를 변신할 수 있었다.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그가 미국 정치계에 입문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조셉 고든 레빗, 세스 로건, 제임스 프랭코 등 할리우드에서 막 떠오른 배우들도 연출작을 한 편씩 갖고 있다.
   
   할리우드에 비해 한국 배우들의 감독 데뷔는 성공한 예를 찾기 힘들다. 당대의 톱스타였던 신성일도 감독으로선 빛나지 못했다. 구혜선은 작품을 꾸준히 내고 있지만 한 번도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유지태도 오래전부터 연출 의지를 드러냈는데, 지난해 내놓은 ‘마이 라띠마’는 실패에 더 가까웠다. 배우 출신으로 꾸준히 상업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을 꼽으라면 방은진 정도다.
   
   배우로서 대중의 사랑과 영화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하정우는 왜 굳이 연출이란 가시밭길을 택한 걸까. 한국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배우의 전례(前例)도 없다. 게다가 클루니처럼 정치에 뛰어들거나 영화계에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도 딱히 없다. 할리우드에서 배우 출신 감독이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 미국 신문 LA타임스는 감독 데뷔는 자기 목소리로 발언하고 싶어하는 배우들이 도달하는 필연적인 단계라고 분석한 바 있다. 표현 욕구가 강한 배우들은 영화 제작 현장의 인사이더로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지켜보며 자기가 연출해도 그만큼 잘 만들 수 있다는 은근한 자신감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30년간 스타들이 영화사상 어느 때보다 산업의 실세로 떠오르면서 배우가 영화 제작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기회도 늘었고 친분으로 섭외할 수 있는 스타 배우들까지 있다.
   
   LA타임스의 분석은 하정우에게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특히 표현 욕구가 강하다는 면에서 그렇다. 한 해 평균 두 편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도 열고, 영화 연출을 위한 시나리오 작업도 한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배우가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예술인인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시나리오에 모든 가이드라인이 있어서 그것을 표현하면 되는데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뭔가를 발산하고 싶은데 일을 하면 할수록 절제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진다. 그래서 언제나 목마름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건 배우로서 잘 버티려고 내 안의 불순물을 그림에 다 쏟아내는 거다.”
   
   ‘허삼관’ 연출을 시작할 때쯤에는 “하고 싶은 게 많고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뭐든 경험을 하고 빨리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연출에 대해서 얘기를 꺼낼 때마다 우디 앨런이나 찰리 채플린의 이름을 언급한다. 둘 다 코미디영화의 배우이자 감독이다. 하정우는 인터뷰 때마다 “남을 웃기고 싶은 본능 같은 게 있다”고 했다.
   
   다른 배우 출신 감독들과 달리 그는 연출 경험을 통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첫 영화 ‘롤러코스터’를 준비하면서 그는 “영화 ‘베를린’을 끝내고 4개월 동안 쉬는 기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롤러코스터’ 연출을 하기로 한 건 힐링을 위해서였다. 배우로서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찍어야 할지 마음을 다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배우는 고립된 존재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알아야 앞으로 작품을 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하정우는 첫 영화를 찍고 난 뒤에는 “영화감독의 입장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간 불만을 가졌던 것, 궁금증을 가졌던 것들이 명확해졌다. 앞으로는 주연배우로서 감독을 구체적으로 보조할 방법을 찾을 거다”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연출이 연기보다 1000배는 힘듭니다.”
   
   ‘허삼관’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제 30대 후반인 하정우에게는 가시에 살짝 스친 정도의 상처만 남길 것이다. 오히려 그가 영화인으로 성장하는 데 더 큰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이번 영화를 내놓으면서 “(영화 연출을 하면서) 그간 잊어버리고 마비가 됐던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라며 “어릴 때 영화를 만드는 일을 꿈꾸며 10~20대를 보냈는데 그런 자세들이 다시 한 번 생겨나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영화인으로서, 배우로서 살아가며 환기가 되고 좋은 경험이 됐다”고 했다. 자양분의 대가로 100억원은 좀 비싼 것 같지만, 우디 앨런도 감독으로서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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