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의 홍매화.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양산 통도사의 홍매화.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바야흐로 봄, 봄이다. 통도사 홍매는 자줏빛 꽃망울을 터뜨렸고, 머지않아 남도 섬진강 자락에서는 곧 연분홍 벚꽃이 앞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여수 거문도 등대 가는 길과 강진 다산초당 오르는 길 역시 동백으로 낭자하게 물들 것이다. 동백, 벚꽃이 화르르 지고 나면 영덕에는 복사꽃이 흐드러질 것이다. 봄은 언제 왔나 싶더니 어느새 무르익어가고 있다. 아차 하면 도망가버리는 이 땅의 봄. 짧다고 탓하지 말고 서둘러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갈 일이다.

벚꽃 만발한 하동의 봄.
벚꽃 만발한 하동의 봄.

벚꽃터널 걸으며 마음은 만발하다

하동 쌍계사 벚꽃길

하동의 봄은 3월, 매화가 피면서 시작한다. 봄볕이 대기의 온도를 높이면 섬진강변에 자리한 매화나무들은 허공 속으로 꽃들을 툭툭 피운다. 매화가 피면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 목련과 벚꽃이 꽃봉우리를 열어젖힌다. 찬란한 봄 햇빛 속으로 희고 붉은 꽃들이 폭죽이 터지듯 만발한다.

하동 봄 풍경의 절정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10리길에 벚꽃이 환하게 필 때다. 하얀 눈처럼 혹은 솜뭉치처럼 풍성하게 피어난 벚꽃은 깊고 찬란한 터널을 이룬다. 바람이라도 불면 비처럼 꽃잎이 쏟아져 내린다.

벚꽃길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 만들어졌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4㎞에 신작로가 개설될 당시 하동군의 지역 유지들에게 자금을 걷었고 그 돈으로 벚나무 1200주를 심었다. 벚꽃길은 ‘혼례길’로도 불리는데,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지고 영원하다고 한다. 봄이면 두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청춘남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으면 그해가 가기 전에 큰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꽃비를 맞으며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쌍계사에 닿는다.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의 명령에 따라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쌍계사 입구에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다.

봄날 하동 여행에서 차 마시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 안개가 많고 일교차가 큰 하동은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하동차 대부분은 수제차다. 손으로 직접 따고 덖는다.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그만큼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쌍계사 주변으로 제다업체와 차를 덖는 찻집이 가득한데, 집집마다 제다법이 다르고 차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고집쟁이들이 내놓은 은은한 햇차 한 잔을 즐기다 보면 봄이 마냥 평화롭기만 하다.

벚꽃 필 무렵 올라오는 벚굴은 미식가들을 즐겁게 한다. 벚굴은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서 자라는 초대형 굴로, 크기가 20~30㎝에 달한다. 알맹이도 어른 손바닥만큼 크다. 맛도 우리가 흔히 먹는 굴과는 다르다. 짭조름한 맛이 훨씬 강하다. 식감도 한층 쫄깃하다. 해식굴(바다굴)에 꼬막을 합쳐 놓은 맛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로 구이로 먹는데 튀김, 전, 찜 등으로 먹어도 맛있다.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전주까지 간 다음 17번 국도를 따라 임실을 거쳐 남원까지 간다. 남원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구례를 거치면 화개마을이다. 하옹촌(055-883-8261), 부흥재첩식당(055-884-3903) 등이 유명하다.

붉은 동백은 푸른 바다 위로 떨어져 내리고

여수 오동도와 거문도

여수에 도착한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오동도다. 12만5000여㎡(3만8000여평)의 조그마한 섬이지만 그 속은 별천지다. 동백나무 4000그루와 200여종의 상록수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2월부터 섬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동백꽃이 일제히 피어난다. 해안선을 따라 산책로가 약 2㎞ 정도 이어지는데 한려수도의 빼어난 바다 풍광과 어우러져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백숲 한가운데에는 하얀 등대도 서 있다. 전망용 엘리베이터가 있어 동백숲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또 다른 꽃 마중 장소는 거문도다. 여수 여객터미널에서 2시간 정도 배를 타야 한다. 하지만 봄에 이 정도 수고는 충분히 들일 만하다. 한국에서 가장 멋진 트레킹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거문도 트레킹 코스는 다양하다. ‘목넘어’에서 거문도 등대까지만 다녀오는 코스는 약 1.5㎞.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한 데다 길에는 넓적하고 평평한 돌이 깔려 있어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트레킹을 본격적으로 즐겨볼 요량이라면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에서 서도마을을 지나 녹산등대에 이르는 코스를 추천한다. 동백이 천지로 핀 숲을 지나는데, 길에는 제 목을 꺾어 떨어진 동백이 누군가 일부러 흩뿌려 놓은 것처럼 낭자하다. 4월부터 지기 시작하는데 4월 말~5월 초면 거문도 등산로는 붉은 동백으로 뒤덮인다.

거문도 트레킹 코스에서 최고의 경관을 보여주는 곳은 ‘기와집 몰랑’이다. ‘몰랑’은 산마루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기와집 몰랑’은 바다에서 보면 이 능선이 기와지붕 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와집 몰랑에 서면 섬 끝에 거문도 등대가 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는 1905년 세워져 첫 불을 밝혔다. 남해안 최초의 등대다. 지금은 2006년 새로 지은 등대가 그 옆에서 불을 밝힌다. 34m 높이의 꼭대기엔 팔각형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다. 날씨가 맑으면 여기서 백도가 보인다고 한다.

기와집 몰랑을 지나 신선이 내려와 매일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와 아차바위를 지나면 길은 다시 동백숲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365계단을 지나면 거문도 등대. 등대에서 마을로 내려서는 길에도 동백꽃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여수는 남도를 대표하는 맛의 도시다. 여수항 주위에 포구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식당이 몰려 있다. 여수의 대표 먹거리는 장어. 장어를 푹 고아 만든 장어탕은 얼큰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 장어도 넉넉하게 들어 있다. 구이도 맛있다.

금풍쉥이(군평선이)는 여수를 비롯해 완도와 진도 정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생선이다. 약간 큰 조기처럼 생겼는데, 경남지역에서는 꾸돔, 전남에서는 쌕쌕이라고도 불린다. 뼈와 내장도 다 먹을 수 있는데 쌉싸름한 맛이 난다. 일명 ‘샛서방 고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맛이 너무 좋다. 남편보다는 사랑스러운 애인에게만 몰래 주기 때문이란다.

순천완주고속도로 동순천IC로 나와 여수 방향 17번 국도를 타면 된다. 칠공주집(061-663-1580)은 장어탕과 구이로, 구백식당(061-662-0900)은 금풍쉥이 구이로 잘 알려져 있다. 여수비치관광호텔(061-663-2011), 벨라지오관광호텔(061-686-7977), 여수파크관광호텔(061-663-2334) 등이 있다.

울창한 숲길 끝 만발한 벚꽃

보은 법주사

법주사에 가려면 말티재를 넘어야 한다. 해발 300~400m로 그다지 높은 고개는 아니지만 뱀이 똬리를 틀 듯 휘어지는 구절양장이라 험준하게만 느껴진다.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는 험한 길이기에 세조가 연(임금이 타고 다니던 가마)에서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티재를 넘으면 곧 법주사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했다. 법주사(法住寺)는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4월 초면 법주사 일대에 벚꽃이 화들짝 핀다. 다른 지역보다 평균 기온이 2~3도 정도 낮은 탓에 해마다 벚꽃이 2~3주 정도 늦다. 그래서 미처 봄꽃 나들이를 즐기지 못한 이들이 찾을 만한 곳이 바로 법주사다.

법주사 벚꽃은 절 초입에 자리한 ‘오리숲’부터 이어진다. 수령 100~200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와 떡갈나무, 참나무가 넉넉하게 자라는 이 숲은 숲의 길이가 ‘5리’에 이른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매표소에서 법주사까지 약 2㎞ 정도 이어진다. 사찰 진입로 하면 해남 대흥사, 승주 선암사를 명품으로 꼽지만 이곳 오리숲도 어깨를 견줄 만하다.

법주사 경내까지 이르는 오리숲을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연관찰로를 따라 자연 그대로를 즐기며 거니는 방법이다. 길목마다 벤치가 놓여 있어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다른 길은 속리산 계곡에서 이어지는 사내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비록 시멘트 길이긴 하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숲길이다. 걷기에 좋아 유모차를 밀고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구간이다. 어린 자녀와 함께 냄새 짙은 숲길을 걷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이 길에 4월이면 굵은 꽃뭉치를 단 벚꽃이 흐드러진다. 봄바람이라도 불면 사내천으로 투신하는 벚꽃잎들이 걷는 이의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중부고속도로 서충주나들목으로 나와 25번 국도를 따라가면 보은이다.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 보은IC를 이용해도 된다. 경희식당(043-543-3736)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속리산에서 나는 버섯, 나물 위주로 만든 반찬 40여가지가 나온다. 가짓수도 가짓수지만 하나하나 들인 정성과 맛이 대단하다. 속리산말티재 자연휴양림(043-543-6282), 레이크힐스호텔(043-542-5281), 그랜드호텔&콘도(043-542-2500)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강진 영랑생가.
강진 영랑생가.

동백 밟고 다산의 흔적을 찾다

강진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강진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가 다산 정약용이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 강진으로 유배를 온 다산은 1801~1818년까지 유배지에 홀로 남겨졌다. 유배 기간 동안 그는 외로움과 싸웠다. 다산은 강진에 처음 유배와 4년 동안은 강진읍성 동문 밖 주막집 바깥채 사의재((四宜齋)에 머문다. 사의재는 ‘생각, 용모, 언어, 동작이 올바른 이가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그는 주막집에서 일하던 표씨 부인과 인연을 맺고 홍림이라는 딸까지 낳게 된다. 그러다 그를 곤궁히 여긴 해남 윤씨 일가가 초당을 지어주어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그것이 다산초당이다. 다산은 거처를 옮기며 ‘이제야 생각할 겨를을 얻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다산초당 가는 길은 기분 좋은 숲길이다. 대숲이 울창하다. 대숲을 지나면 다산초당이다. 다산이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와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사람들은 다산초당을 휘휘 돌아보고 다시 내려가지만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놓치기 아름다운 코스다. 600m는 오르막길, 200m는 내리막길. 하지만 올라가는 길도 험하지 않아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백련사에 닿는다.

백련사는 7000여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곳.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11월부터 동백꽃이 피기 시작해 3월 말~4월 중순 만개한다. 4월 말이 되면 떨어지기 시작해 바닥을 물들인다. 예로부터 동백꽃은 세 번 핀다고 한다. 나무에서 한 번, 땅에 떨어져서 한 번,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에서 또 한 번. 지금 백련사에는 땅에 핀 동백이 낭자하다.

강진 꽃 여행의 또 다른 명소는 영랑생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잘 알려진 시인 영랑 김윤식은 1903년에 출생해 1950년에 타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다. 47년간의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시는 모두 87편이다.

영랑생가는 문간채와 안채,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채 뒤편에는 동백나무가 빽빽한데, 붉은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동백이 떨어져 있다. 문간채 왼쪽으로 세로로 놓인 사랑채는 영랑의 집필실이다. 사랑채 툇마루 앞에는 감나무, 보리수, 송악덩굴, 백일홍이 심어져 있다. 300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도 있다.

툇마루에 앉는다. 아마도 영랑은 여기 이 자리에 앉아서 시를 썼을 것이다. 마당에 내려앉는, 장독대에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돌담 아래에 고여 있는 햇빛을 바라보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돌담을 따라 이리저리 거닌다. 발 끝에, 돌담에, 가슴 한편에 햇볕이 어룽댄다. 봄 햇빛은 맑고 투명하고 눈부시다.

서해안고속도로 또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서해안고속도로는 목포IC로 나와 2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지나면 강진에 닿는다. 병영면에 있는 설성식당(061-433-1282)은 돼지불고기백반으로 널리 알려진 집이다. 돼지불고기를 비롯해 낙지 데침, 각종 나물, 젓갈 등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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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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