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장기 체류를 위해 지문 등록을 하는 한 외국인 여성.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장기 체류를 위해 지문 등록을 하는 한 외국인 여성.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한국에 사는 비한국인이라고 다 비슷한 것은 아니다. 어떤 비한국인은 홍어를 잘 먹고, 어떤 이는 냄새만 맡아도 질색한다. 한국인처럼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별로 관심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비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게 딱 하나 있다. 비자 문제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는 것이다.

보통의 한국인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 초록색 한국 여권 소지자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최근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갔던 건 한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날 작은 소동이 있었다. 뭔가에 잔뜩 화가 난 미국인이 카운터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한국인, 미국인을 가리지 않고 그곳 직원들을 향해 심한 욕설을 퍼부어대는 등 소란을 피웠다. 그는 심지어 관리소 직원 중 한 명에게 주먹질까지 했다. 나는 이런 소동으로 행여 내 영주권 발급에 차질이 생겨 다시 한 번 이곳에 올 일이 생길까봐 치를 떨며 그 건물을 떠나야 했다.

비자 발급이나 재발급 자체가 싫다는 게 아니다. 난 비자 발급받기보다 낙타를 바늘구멍으로 통과시키는 게 더 쉽다는 옛 소련에서도 살아 봤다. 한국의 관료주의가 아무리 까다롭다 해도 최악은 아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비자발급 요건이 항상 바뀐다는 것이다.

지난 3월 한국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고용관리시스템(EPS)에 등록된 E-9비자(비전문취업비자) 발급자 고용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중국·몽골·태국 등 16개 남짓한 국가 출신 외국인 노동자는 이 시스템을 통해 한국 내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다. 매년 각 국가별로 일자리 수가 할당된다. 올해의 경우 필리핀 노동자에 할당된 일자리 수가 14% 증가했는데, 이건 필리핀 근로자에겐 좋은 소식이지만 다른 국가 출신에겐 일자리가 줄어들었단 걸 의미한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EPS에 등록된 이주노동자들에게 세 번의 이직 기회를 줘왔다. 고용주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국회 노동기본권 연구회에 따르면 EPS 등록 외국인노동자 82%가 이직 때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EPS 노동자가 1년 계약직인 현실에 비춰봤을 때, 이는 곧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 회사에서만 일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얼마나 오래 머물까? 2012년 3월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한국 체류기간을 최대 6년에서 4년10개월로 축소시켰다. 누군가에겐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질 만한 결정이었다. 조선일보는 “(그 결과) 약 6만7111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그해 한국을 떠나야” 했으며 “약 10만명이 ‘즉시’ 한국을 떠나야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고용주들은 외국인 노동자 고용 할당을 받기 위해 직업소개소에서 밤새 줄 서 기다려야 했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외국인 노동자들만 한국 일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업체들도 외국인 노동자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난 한국에 9년간 머물면서 짧은 기간 영어교사 일을 한 것 말고는 주로 언론사에서 일했다. 그동안 아무도 내게 “당신은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비한국인도 마찬가지였다. E-2비자(교육)나 언론·IT·연예산업 종사를 위한 비자를 가진 사람들에겐 체류기간에 거의 제한이 없다.

또 내게 이직 횟수 제한에 대해 말한 사람이 없었다. 이직할 때마다 고용주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갖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그만이었다. 한국에서나 내 고국 영국에서나 직장을 바꾸기는 똑같았다. 한국에선 이직을 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문서작업을 하며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는 점만 빼곤 말이다.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김중수 한국은행 전 총재는 “한국은 이주노동자를 끌어안고 개방적인 이주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내 이주노동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으면 은퇴인구 1명당 경제활동 인구 비율이 2010년 4.5명에서 2050년엔 1.2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한국에 시급한 건 한국 사람을 대신해 농업과 공장 노동과 같은 기피업종에 종사해줄 이주노동자들이다. 뭐가 더 시급하냐를 따지고 봤을 땐 영어교사(2010년 기준 언어교사 비자 4만8000건)나 연예산업 종사자(매년 평균 4000건의 연예비자 발급)는 후순위다.

한국 최대 체류기간이 4년10개월이면 영주권 신청 자격이 아예 없게 된다. 비한국인이 영주권을 받기 위해선 한국에 연속적으로 5년 이상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4년10개월로 체류기간을 한정하는 게 좋은 생각인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6년에서 5년 이하로 최대 체류기간을 줄이는 건 말이 된다. 한국에 일하러 오는 것이 영주권 획득의 직행 티켓이 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임시직으로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은 임시 직원일 뿐이다.

그러나 비(非)육체노동 종사자로서 내가 어떻게 그 누구의 태클 없이 이토록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상대적으로 괜찮은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상대적으로 더 뛰어난 일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한국은 TV 스타나 나 같은 작가보단 숙련된 기술자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결혼비자(F-6)와 관련된 규정을 바꿨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한국어 능력을 검증하는 절차가 요구된 것이다. 비자 규정이 크게 변한 것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시행될지 정말 알 수 없다. 나는 한국 여성과 결혼한 비한국인 (대체로 백인) 남성들을 십여 명 정도 알고 있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한국어를 몇 단어밖에 구사하지 못한다. 법규정의 이런 변화가 과연 이들에게 영향을 줄까? 영어교사 빌이 학원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한국인 수진과 결혼하면,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지 않는 한 F-6비자를 받을 자격이 없어진다고? 그런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온 여성 호앙이 한국인 농부 철수와 결혼할 때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아마 F-6비자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뭔가 심각하게 불공정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얘기해놓고 보니 뭔가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경우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이 적다. 그들의 임금이 한국 기준으로 볼 때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본국에 있는 한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임금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많다. 즉 임금으로 지불된 돈이 한국 경제 내에서 순환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지불된 임금이 대부분 한국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데 비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 지불은 국외로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 임금의 거의 전부를 한국에서 쓰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한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영어교사 빌 같은 경우도 대체로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가 얘기해본 한국의 젊은이들은 블루칼라 직업에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사느니 차라리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사는 것을 택할 듯하다. 내가 만난 모든 한국 어린이나 학생은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창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엔 영국(현대 영국의 실업률은 한국의 두 배가량인 6%다)과 달리 거대한 제조업 부문이 있다. 제조업은 관리자보다 노동자가 더 필요하다. 블루칼라 직업을 원치 않는다면 블루칼라 직업을 가질 용의가 있는 사람들을 해외에서 불러와야 한다.

이주노동자를 내보내고 들어오도록 하는 현행 제도는 가난한 이민 가족 계층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주는 등 이점들을 갖고 있지만, 위험한 점도 많다. 한국에 이주한 미숙련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제로 베이스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언어, 날씨, 음식, 그들이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오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4년 남짓 체류하고 나면 이들 이주노동자들은 한 분야에서 일종의 전문성을 쌓게 된다. 한국에서 일하기에 적합한 직업적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한국어도 약간은 할 수 있게 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보다 정교해졌을 것이다. 4년여의 기간이 지나는 동안 이들은 직원 교육을 담당하거나 숙련된 경력 노동자가 돼 있을 것이다. 숙련된 육체노동자는 지금 한국이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쫓겨난다. 대부분이 백인인 영어 교사들은 그럴 걱정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일본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주에 대해 엄격히 폐쇄적인 일본의 정책은 일본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를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이미 초고령사회가 됐다. “이민을 받아들이거나 경제를 고사시키거나”의 선택이었는데 일본은 후자를 택했다.

한국에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아무 통제도 없이 엄청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도록 문을 개방하라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뚜렷한 국가 정체성을 갖고 있는 데다, “저를 뽑아 주시면 이민을 늘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당선될 리 만무하다.

한국 여성의 출산율이 1인당 1.2명에 불과한 상황에서 실업률도 증가하고 있다. 뭔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한국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능력과 기술, 그리고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노동자들은 거부하지 말고 체류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노동자가 기술을 가졌다는 것을 입증하면 한국인 고용주는 이들의 비자를 E-9에서 영주권 비자로 바꿀 수 있도록 정부에 추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야 한국은 능력 있는 육체노동자 인재 풀을 늘릴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이민정책적으로도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

물론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을 하게 될 경우 한국의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이에 대한 대답은 처음엔 그리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겠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직계 부양 가족이 원한다면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부인과 자식들도 한국에 데리고 올 수 있다면 임금을 한국에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식료품, 집세, 교육비 등등. 그러면 임금이 한국 경제 내에서 순환하게 되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다.

한국이 EPS와 다른 이주 육체노동자들을 초대할 때 “여러분이 열심히 일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해 주고, 가족들도 한국에 데리고 올 수 있게 해 주겠다”라고 약속하는 것이, “와서 최대한 돈을 많이 벌어 본국으로 가지고 가서 다시는 오지 마시오”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한국에 오고 싶은 인센티브를 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팀 알퍼

1977년 영국 출생. ‘런던 스쿨 오브 저널리즘’, 켄터베리 소재 켄트대학 졸업(철학·영화 전공). 런던에서 프리랜서 번역가, 스포츠 기자로 일함. 서울에서 ‘korea IT’ 편집자, 교통방송 영어 FM 프로듀서,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 영문판 편집자 등으로 일했음. 조선일보에 칼럼 연재중.

팀 알퍼 칼럼니스트 / 번역 김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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