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국제마라톤 참가자들이 괌 서쪽 해변을 달리고 있다. ⓒphoto GIM
괌 국제마라톤 참가자들이 괌 서쪽 해변을 달리고 있다. ⓒphoto GIM

지난 4월 9일 인천공항에서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을 타고 미국령인 괌으로 향했다. 4월 12일 열린 ‘괌 국제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되기 전에는 규칙적으로 운동했지만 최근에는 술을 많이 마시고 운동할 시간이 적어 몸은 피로로 찌들어 있었다.

마라톤 대회라니 지레 겁부터 났다. 하지만 5㎞, 10㎞, 하프(21㎞), 풀코스(42.195㎞) 네 구간 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 가능한 ‘달리기 축제’라는 대회 관계자의 설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는 10㎞ 구간을 선택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진짜 이 축제의 묘미를 즐기려면 최소 하프마라톤을 선택했어야 했다. 하프마라톤 구간부터 달리는 중간에 원주민이 마련한 음식 ‘피에스타’를 맛볼 수 있고 한눈에 들어오는 괌의 해변을 보며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저질 체력으론 해변의 절경을 눈에 담을 여유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10㎞만 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러닝여행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 중 10점이다.

‘힐링여행’을 외치는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러닝여행’을 감히 추천해 본다. 러닝여행의 묘미는 그동안 운동할 기회가 없고 업무에 시달려 지친 직장인들의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녹슨 몸에 기름칠을 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괌이다. 이 여유롭고 따스한 낭만적인 풍경에 몸을 맡기고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러닝여행에 도전해 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즐길 수 있는 건 낭만적인 달리기뿐만이 아니다. 현지인들이 정성껏 준비한 볼거리와 응원도 러닝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날 축제는 일반적인 마라톤 대회와는 다르게 어두운 새벽에 시작했다. 출발선은 홍대 클럽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조명으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에 현지 미녀 댄스팀은 현란한 몸놀림으로 참가자들의 흥을 돋웠다. 이어 출발하기 10분 전 원주민들이 불쇼를 선보이자 축제 열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출발을 알리는 긴 경적 소리와 함께 참가자들이 봇물 터지듯 뛰쳐나갔다. 출발하고 숨이 차올 무렵 마라톤 코스 중간중간에 현지인들이 손수 만든 응원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음료를 건네주며 목청껏 응원을 해줬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들은 돈을 받고 동원된 사람들이 아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날 응원을 나온 셰릴(32·점원)은 “외국인들이 괌에 방문하는 게 자랑스럽고 즐겁다”며 밝게 웃었다. 셰릴과 같은 현지인들의 응원은 달리기 내내 이어졌다. 북을 들고 나온 현지인도 있었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온 현지인도 있었다. 괌의 현지인들은 이날 ‘마라톤’이라는 연결고리로 외국인 참가자들과 훌륭하게 스킨십을 하고 있었다.

괌에는 마라톤 축제 외에도 스트레스를 날려줄 요소가 더 있다. 괌 관광청과 PIC리조트는 최근 스카이다이빙, 스노클링, ATV라이딩, 카약, 윈드서핑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액티브(Active)한 괌’을 새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이런 변화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활동적인 한국 관광객’들을 겨냥했다는 것이 괌 관광청장 네이튼 드나이트의 설명이다. 네이튼 드나이트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활동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민족”이라며 “인구 수는 일본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해외로 나가는 인구 수는 일본과 비슷하다”며 한국 관광객을 ‘모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괌은 전통적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월등히 많은 곳이다. 3년째 이어져 오는 괌 국제마라톤 축제도 일본인 참가자 수가 전체 참가자 수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 한국인 참가자 수가 대폭 늘었다. 올해의 경우 전 세계 약 15개 국적의 참가자 3420명 중 414명이 한국인이었다. 지난해 한국인 참가자 340명보다 약 20% 증가했다. 반면 일본인 참가자 수는 엔저의 영향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게 대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런 추세 속에 한국인 마라토너들이 3년 연속 우승까지 거머쥐고 있어 괌 마라톤 축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었다.

여자 부문 풀코스에서 3시간8분대로 우승을 차지한 한국의 류승화(38·전업주부)씨는 11년째 달리는 삶을 살고 있다. 직장동료였던 현재 남편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달리기 아마추어가 150만원의 상금과 함께 이번 괌 마라톤의 챔피언이 됐다. 류씨는 주간조선에 “마라톤과의 첫 인연이 괌에서 열린 5㎞ 경기였는데 이곳에서 풀코스 우승까지 해 너무 기쁘다”며 “결승선 너머 아름다운 해변에 앉아 마라톤 완주의 기쁨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류씨가 말했듯 결승선 너머 기다리고 있는 해변은 이 대회의 백미다. 각 구간의 참가자들은 모두 이 도착지점에 모인 후 대회 측에서 나누어 주는 음료와 간식, 돗자리를 들고 해변가에서 휴식을 만끽했다. 완주를 하고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던 참가자들은 현지인, 한국인, 일본인, 유럽인 등 다양했다. 한국인 참가자 중에는 고등학교 동창끼리 러닝여행을 온 그룹도 있었고 결혼한 지 3개월 된 신혼부부도 있었다.

경기도 안양시 관양고등학교 1기 졸업생 정기현(29·회사원)씨는 동창 친구 3명을 한 달 넘게 설득한 끝에 이번 괌 마라톤 대회 10㎞ 부문에 친구들과 참가했다. 정씨는 “친구들과 늘 만나면 술만 마시기 때문에 특별한 추억을 쌓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정씨를 따라 대회에 참가했던 이재인(29·회사원)씨는 “처음엔 오기 싫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정말 좋다”며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재밌고, 지칠 때 현지인들이 응원해 줬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음번에는 하프마라톤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남편과 함께 대회에 첫 출전한 김나래(31·은행원)씨는 5㎞ 30대 여자 부문 5위를 기록했다.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씨는 “결승선에서 맞이한 해변의 풍경이 뭉친 스트레스와 근육을 풀어줬다”며 “좋아하는 친구들과 꼭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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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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