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잎밥(사찰음식), 갈비구이, 구절판(궁중음식), 빈대떡(길거리음식), 매실주에 절인 푸아그라(퓨전한식), 오이소박이(김치), 제주 몸국(해조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연잎밥(사찰음식), 갈비구이, 구절판(궁중음식), 빈대떡(길거리음식), 매실주에 절인 푸아그라(퓨전한식), 오이소박이(김치), 제주 몸국(해조류).

지난 6월 8일 오전 9시, 카메라를 든 서양 남성 세 명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사찰음식점 ‘발우공양’을 찾았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로 유명한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의 촬영팀. 발우공양의 대표인 대안 스님의 요리과정을 지켜본 촬영팀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촬영을 책임진 존 바클리(46) CIA 디지털미디어팀 감독은 “한국 요리가 시각적으로 너무 훌륭하다”며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으면서도 맛도 좋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CIA 촬영팀의 이번 방문은 한국의 요리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서다. CIA는 학생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2006년부터 세계 각국의 음식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한 달 시청자가 5만명이 넘는데, 셰프들을 비롯한 요리 전공자들이 주 시청자층이다. 완성된 요리를 맛보고 즐기는 일반 다큐멘터리와 달리 식재료와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게 특징이다.

C1A는 지난 10년간 총 17개국의 요리 다큐를 찍었다. 한국은 18번째다. 이번 촬영 일정은 6월 6일부터 일주일간. CIA와 음식컨설팅전문업체인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이 공동 기획하고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재단법인인 한식재단이 후원을 맡았다. 주간조선은 6월 8일 진행된 사찰음식 촬영에 동행취재를 했다. 바클리 감독은 이번 방문에 대해 “사실 처음에 한국의 요리에 대해 큰 기대를 안 했다. 일본이나 중국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와 보니 놀랍다. 한국만의 고유 식문화가 대단하다. 이 정도일 줄 몰랐다”며 연신 놀라워했다.

이날 촬영팀은 발우공양에서 시금치, 취나물 등 한국인이 평소 즐겨 먹는 나물부터 동충하초와 석이버섯 등 진귀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까지 4시간에 걸쳐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고 체험했다. 특히 주방 내부 촬영에 집중했다. 조리도구와 식기들, 요리하는 과정과 식재료를 촬영하면서 한국의 독창적인 요리 문화에 호기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시식 시간, 바클리 감독에게 “오늘 음식 중 무엇이 가장 맛있었냐”고 묻자 그는 “시각적으로는 연잎에 올린 연근 요리가, 맛으로는 자갈에 올린 자연송이 요리가 가장 뛰어났다”고 답했다.

촬영팀의 일원인 요리 전문가 스티브 질레바(57)씨는 미국인의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한국식 바비큐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른 음식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특히 시카고나 LA 등 한인 거주 지역에 한정된 한국 식료품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다.” 바클리 감독은 “일본이나 중국 음식에 쏠려 있던 관심이 한국 음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CIA가 한식에 주목한 이유를 설명했다.

바클리 감독은 “중국이나 일본 음식과 한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느꼈다”며 “재료를 손질하는 방식부터 먹는 방법까지 식문화 자체가 다른 나라들과 뚜렷이 달라 정말 인상 깊었다”고 했다. 질레바씨 역시 “크지 않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색이 뚜렷해 놀랐다”며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고 많은 CIA 학생들이 새롭게 영감을 받고 도전 욕구를 불태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최근 한국의 길거리 음식이 뜬다고 한다. 바클리 감독은 “한국식 바비큐나 컵밥 등 한국 음식들이 미국에서 인기”라며 “시청자들에게 좀 더 새롭고 독창적인 음식들을 알리고 싶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미국에 알려진 한국의 음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얘기였다. 서양의 코스 요리나 일본의 가이세키 요리처럼 요리로서의 격식을 갖춘 한국 음식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촬영팀의 가이드를 맡은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는 “현재 미국에 알려진 한식으로 지속적인 음식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음식을 구상하고 만드는 셰프들이 보고 느끼는 게 한식을 알리는 더 효과적인 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발우공양’의 사찰음식 외에 CIA가 주목한 한국 요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 6월 8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을 찾은 CIA 디지털미디어팀. (왼쪽부터) 존 바클리 감독, 스티브 질레바,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 대안 스님, 다니엘 스무칼라.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8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찰음식 전문점 ‘발우공양’을 찾은 CIA 디지털미디어팀. (왼쪽부터) 존 바클리 감독, 스티브 질레바,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 대안 스님, 다니엘 스무칼라.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CIA가 주목한 한식들

한국식 바비큐 : 메이필드호텔

단순히 고기를 구워 먹는 요리는 다른 나라에도 많지만, 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손질해 쌈까지 싸서 먹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메이필드호텔에서 40년 동안 한국식 소갈비를 전문으로 다룬 갈비 전문가가 고기를 능숙하게 가르고 재우면서 갈비를 요리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소개했다. 촬영팀은 이곳에서 한국의 다양한 밑반찬과 쌈채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요리 전문가답게 능숙한 젓가락질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한 바클리 감독은 “채소와 육류가 조화된 한국식 바비큐는 맛과 영양을 동시에 잡은 음식”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식 바비큐는 미국·영국 등에서도 인기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역시 한국식 바비큐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릇국, 톳밥, 몸국 등 한국식 해조류 :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

해초를 바다의 채소로 여기는 동양과 달리, 서양은 해초를 바다의 잡초쯤으로 여기며 식재료로 잘 활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초는 먹었을 때의 포만감에 비해 칼로리가 낮고 칼륨과 요오드 등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성분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강한 식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CIA 촬영팀은 제주도 수산시장을 탐방했다. 또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을 방문해 제주도의 향토음식인 바릇국과 톳밥, 몸국 등 해초를 이용해 만든 한식들을 맛봤다. 제주 향토음식 연구가이자 원장인 양용진 셰프는 직접 주방을 맡아 해조류를 이용한 음식들을 보여주면서 지역색이 깃든 향토 요리를 소개했다. CIA는 해조류를 이용한 최고의 한식으로 ‘몸국’을 꼽았다. 몸은 제주에서 모자반을 부르는 별칭. 몸국은 돼지의 내장과 고기를 삶은 육수에 모자반을 넣어 끓여 낸 국이다.

김치 : ‘봉우리’ 이하연 명인

CIA 촬영팀은 김치 명인으로 유명한 이하연씨를 만나 한국의 명품 김치를 담그는 과정을 보고 시식했다. 김치는 한국 음식 중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외국인은 단품 반찬으로서의 배추김치만 아는 경우가 많다. 이날 이 명인은 김치를 단품 반찬이 아니라 치즈처럼 하나의 카테고리를 구성하는, 요리로서의 김치를 소개했다. 한식전문점 ‘봉우리’의 대표이기도 한 이 명인은 수산물을 활용한 해물섞박지 김치로 2007년 김치엑스포에서 대상을, 2012년에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는 오이소박이와 열무김치 등 여름 계절음식으로서의 김치를 선보여 촬영팀에게 박수를 받았다.

구절판과 신선로, 갈비찜 등 궁중음식 : 삼청각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궁중음식 체험식당’ 중 한 곳으로 지정한 성북구의 음식점 ‘삼청각’을 방문했다. 촬영팀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받던 수라상을 그대로 재현해 상을 받았다. 화려한 모습과 담백한 맛이 특징인 ‘구절판’에 시선이 쏠렸다. 순하게 양념된 갈비찜 역시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음식. 고추장이나 고춧가루 대신 간장 양념을 많이 쓰는 궁중음식은 맛이 은은하고 담백해 CIA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바클리 감독은 “한국 음식은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전통 한식은 의외로 자극적이지 않아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며 “이번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한식의 새로운 면을 많이 배우고 간다”고 했다.

젊은 셰프들의 퓨전 한식 : ‘밍글스’ 강민구 셰프

한식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 셰프들의 음식도 CIA의 눈길을 끌었다.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퓨전 한식당 ‘밍글스’는 한식을 기반으로 한 아시안 창작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일식당인 ‘노부’ 바하마 지점의 총주방장 출신인 강민구 셰프가 지난해 문을 열었다. 강 셰프는 고추장과 간장 등 각종 장류와 발효초 등 발효음식을 요리에 활용했다. 한국의 발효음식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인도나 태국 등 세계의 여러 나라가 발효를 요리에 이용하지만, 한국만큼 요리 전반에 걸쳐 발효 기법을 활용하는 국가는 흔치 않다. 질레바씨는 “젊은 셰프들이 전통음식 재현에 그치지 않고 한식을 재해석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길거리 음식 : 광장시장 빈대떡과 만두

CIA는 한국의 길거리 음식에도 주목했다. 촬영팀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김치만두 등 한국의 전통 주전부리를 즐겼다. 길거리 음식은 흔히 젊은이들이 싸고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는 음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국에는 빈대떡이나 김밥처럼 남녀노소가 두루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 많다. 바클리 감독은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막걸리를 한잔 하면서 빈대떡을 즐기는 것을 보니 한국의 길거리 음식 문화는 참 다양하게 발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는?

1946년 뉴욕에 설립된 세계적인 요리학교다. 프랑스 파리의 ‘르 코르동 블루’와 함께 세계 요리학교의 양대 축이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싱가포르에 분교가 있으며 4만8000명의 졸업생이 세계의 식당과 관련 산업에서 일한다. 시카고에 있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얼리니아(Alinea)’의 오너셰프인 그랜트 애커츠와 미국의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로 명성을 얻은 캣 코라 등 세계의 유명 셰프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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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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