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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363호]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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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 집단지성의 명과 암]暗 전문가보다 비전문가 믿는 사회

잘못된 정보 홍수… 진짜 가려낼 판단력은 부족

김효정  기자 

photo 연합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창 위협적이던 지난 6월 중순 변호사, 교수, 의사 등으로 이뤄진 여성 전문직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메르스가 어떤 질병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이비인후과를 개업한 지 15년이 지난 모임 참석자가 메르스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전하고 있었다. 얘기 도중 한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아니, 내가 알기로는 메르스는 그런 병이 아닌 것 같아.” 근거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은 글이었다. 의사가 반박하려 하자 변호사가 가로막았다. “요즘 보니 의사가 아는 것도 제대로 없더라.” 이 모임을 가질 때면 한 번씩 나오는 얘기, “요즘 전문직은 전문가 취급도 못 받는다”는 한탄이 또 나왔다.
   
   오히려 전문가는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피부과 의사는 “화장품, 피부 질환에 대한 ‘전문가’가 너무 많아 진료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라면서 “화장품 성분, 부작용 등을 상세히 분석한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전문가인 나조차도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한 역사학과 교수는 “한 일간지에 기고문을 실었는데,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독자들의 지적이 이어진 적도 있다”며 “요즘 매니아들은 전통적인 전문가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위키피디아라고 할 수 있는 ‘나무위키(namu.wiki)’를 보면 웬만한 교양서(書)를 찾아 읽는 것보다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수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정보를 모으니, 전문가 한두 명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집단지성 시대, 전문가의 권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선후 관계는 모호하다. 네트워크 발달로 지식이 쌓인 결과 전문가의 권위가 떨어진 것인지, 전문가의 역할이 부족하다 생각해 지식을 쌓는 사람이 늘어난 것인지 명확하게 얘기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집단지성의 확장과 전문가 권위의 추락 사이에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불신’은 집단지성을 확장한 원동력 중 하나다. 기존 전문가를 믿지 못하니 대중이 나서 ‘옳은 정보’를 수집한다. 최근의 메르스 사태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전문가의 발언보다는 자신이 직접 찾은 정보를 더 신뢰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도움이 됐다. 집단지성은 ‘디지털 지식’ ‘네트워크 지식’이라는 말로도 쓸 수 있는데 인터넷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의사와 환자, 대중 간 의료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며 전문 지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제 환자들은 의사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질병 이름만 검색해도 원인부터 증상, 치료방법까지 수만 개의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의사에게 질병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환자는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정보를 확인해 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고 있는 치료가 적절한 것인지 치료 과정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김 교수는 이를 ‘대중의 미디어 참여(PPM·Public Participation of Media)’ 모형으로 설명했다. 이전까지는 정보를 이해하는(PUM·Public Understanding of Media)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치료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찾아보는 것이 아니다. “의사 말이 맞나”라는 비판적인 의문부터 “의사 말은 다 믿을 수 없어”라는 불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직접 알려진 것과 다른 정보를 찾게 되는 이유는, 기존의 정보로는 문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사회가 불확실해지고 불안전해질수록 기존 정보와 전문가는 힘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2011년 3·11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산 수산물 수입 논란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하지 말라는 시민단체들은 일본과 한국, 양국 정부를 모두 믿지 않는다. “괜찮다”는 말이 사라지기도 전에 “방사능 오염수가 누출됐다”거나 “일본산 수산물에서 방사능 물질이 일부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는 계속 제한돼 있다. 정부 산하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 전문가위원회라는 것이 조직돼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후쿠시마 현지에서 세 차례 수산물 방사능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급기야 이를 공개하라는 소송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김문조 교수는 “메르스 사태만 보더라도 발생 초기 필요한 정보마저 권력집단이 통제해 버리면서 불신을 키웠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급기야는 진짜 전문가의 전문 지식마저 믿지 않고 자체적인 정보를 양산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자를 ‘기레기’라고 부르면서 뉴스를 믿지 않거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숨겨진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일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전상진 교수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처음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한다고 주장했을 때는 음모론처럼 치부됐지만, 결국 사실로 밝혀지며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정황도 음모론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예 기존 정보, 전문가, 권력을 믿지 않게 됐다.
   
   기존 정보를 믿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찾는 현상은 소비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아동학)가 올해 초에 발표한 ‘트렌드 코리아 2015’를 보면 소비 트렌드 중 하나를 ‘증거 중독’이라고 꼽았다. 김 교수는 요즘 소비자들은 ‘컨슈머(Consumer)’가 아니라 ‘컨슈니어(Consuneer)’라고 했다.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와 엔지니어(Engineer)를 결합한 단어로 소비자들이 엔지니어처럼 똑똑하다는 뜻이다. 화장품에 미백 효과가 있다고 하면 그대로 믿지 않고 실제 화장품 성분과 체험기를 통해 효과를 확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불신 팽배로 생긴 현상입니다. 판매자가 제조·유통 과정과 원료를 속인 사례가 워낙 많잖아요. 그러니 이제 소비자들이 ‘직접 내가 증거를 확인하겠다’고 나서는 겁니다.”
   
   예전에는 제품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기껏해야 가족과 친구까지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증거 제출’ 요구가 힘을 얻게 됐다. 김난도 교수는 최근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6플러스의 ‘벤드게이트’ 사태를 예로 들었다. 힘을 주면 아이폰이 구부러진다는 사실이 SNS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알려지면서 아이폰의 안전성에까지 논란이 확산됐다. 그러자 애플은 곧바로 미국의 소비자보호단체이자 매체인 ‘컨슈머리포트’에 의뢰해 안전성 실험을 시행했다. 김 교수는 “애플은 원래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각종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애플까지도 ‘증거 제출’ 요구에 응답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전문가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세분화되는 요즘의 전문 분야는 없는 전문가를 찾기보다 스스로 정보를 찾아나가는 일이 더 쉽다고 느끼게 한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논란이 생기면,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다른 전공의 과학자가 문제에 답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런 사실을 아는 대중은 어설픈 전문가의 말을 믿기보다 처음부터 정보를 찾아 이해하는 길을 선택한다.
   
▲ 아이폰6가 출시된 후 구부러진다는 소비자들의 의혹제기가 잇따르자 이례적으로 애플이 직접 대응했다. photo Forbes

   만약 집단지성이 비판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런 현상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지성의 함정 중 하나는 전문가의 대체재 역할을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데 있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지식에 대해 연구해 온 전경란 동의대 교수(디지털콘텐츠공학)는 집단지성을 마냥 낙관적으로만 보지 말자고 주장했다. 전경란 교수에 따르면 지식은 정보 수준의 사실적 지식(know-what),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학문적 지식에 가까운 원리적 지식(know-why)뿐 아니라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는 기술적 지식(know-how), 사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인간적 지식(know-who)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집단지성은 우리가 정보라고 부르는 사실적 지식과 원리적 지식을 키우는 데는 확실히 제 역할을 하지만, 경험적인 기술적 지식과 더 고차원적인 인간적 지식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정보는 늘어나는데, 판단력과 논리력에 대한 지식은 크게 늘지 않는 겁니다.” 전 교수는 “경험과 경륜에 대한 희구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의 권위가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이른바 ‘신(新)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몇몇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더욱 강해지는 이중적인 현상은 이 때문이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사건 중 하나는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경력 4년의 ‘셰프’ 맹기용씨 출연이다. 하루 종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가 ‘맹기용’으로 고정될 정도였는데, 논란의 핵심은 ‘접시닦이’ 경력까지 포함해 4년 동안 주방에 선 맹기용씨에게 셰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인터넷 여론은 뜨거웠다. 하나같이 맹기용씨를 요리 전문가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전경란 교수는 “같은 맥락의 문제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점차 대중이 전문가의 기준을 쉽게 재단하기 어려운 지식의 깊이와 폭보다 일상적인 경험과 경륜에 둔다는 얘기다. 의사, 변호사 같은 기존의 전문가 집단보다 조용필, 폴 매카트니 같은 대중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커지는 것은 배치되는 현상이 아니다. 전문 지식과 전문가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사라지지 않는데, 신뢰할 수 없는 기존 전문가보다 요리, 음악 등 대중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문 능력을 오래 쌓은 사람을 존중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기존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집단지성을 확장시켰지만, 결국은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의료 분야의 예를 들어보면, 김효빈 인제대 교수(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학교실) 등 13명의 의사가 201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 의사보다 의료 매체나 인터넷 등에서 정보를 얻는다는 환자가 79.0%에 달한다. 전문가에 의지하기보다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모으는 집단지성이 활성화돼 있다는 것이다. 임의로 식이요법을 조절한다는 응답도 53.5%에 달했고, 이 중 대부분(75.7%)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치료 방법을 수행하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았다. 김 교수 등은 “아토피 피부염은 치료와 관리법이 생활습관이 되도록 해야 하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교육 상담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사라진 사회는 집단지성의 혜택을 못 누리는 사람에게 해결책을 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메르스 사태로 한정해 보자면, 주어진 정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메르스 지도를 만들어 스스로 보호하기 시작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주로 스마트 기기 활용도가 떨어지는 사회소외계층으로, 누구보다 보건·복지 정보가 필요한 이들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내놓은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연령별 하루 평균 미디어 이용시간에서 50~60대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TV의 10~30%에 그쳤다. 이들에게는 기존 전문가 정보가 여전히 위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집단지성이 정보의 격차 내지는 불평등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전경란 교수 역시 “집단지성은 현실적 조건을 떠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차별 등이 완화되지 않으면 지식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분법이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문조 교수는 기존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예로 들어 보면, 의사만이 의료 정보를 쥐고 있던 예전보다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을 환자도 알 수 있는 지금이 훨씬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 중에 무엇이 조금이라도 더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데에는 전문가의 역할이 필요하죠. 지금 전문가는 그런 신뢰를 쌓아줘야 합니다.” 김 교수는 “수많은 정보 중에 무엇을 보고 믿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라고 부르는 능력은 전문가가 사라지고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 정보이며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종의 디지털 시대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미래학자이자 인터넷 공동체를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예견했던 하워드 라인골드는 지난해에 낸 책 ‘넷스마트’에서 “똑똑한 군중이 항상 현명한 군중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에 모인 군중은 때로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확인 없이 허위정보를 믿고 행동에 나서서 사회에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라인골드는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치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등이 쓴 ‘미래 성장동력으로서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를 보면 실제 연구 결과에서 디지털 리터러시가 비판적 사고력과 시민성, 표현능력 등을 키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 연구위원은 “학생들의 하루 평균 미디어 이용시간은 6시간이 넘을 정도로 많은데, 나의 의견을 올리는 정도는 5점 만점에 2.43점으로 낮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핀란드나 캐나다, 영국과 미국은 국가적으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계획을 세우고 있다. 황 연구위원은 “정규 교과목에 디지털 리터러시 관련 과목을 개설하기도 한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논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위해서 역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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