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네트워크가 확산될수록 승자독식이 심해진다. 산업사회에서의 부와 소득 분포는 정규곡선이었으나 네트워크 사회는 ‘파워 커브(power curve)’ 곡선을 따른다. 곱으로 증가하는 직선이 아니라 승수로 증가하는 반(半) 유(U) 자 형을 띤다. 파워 커브 사회에서는 1등 부자와 2등 부자의 차이가 엄청나다. 격차가 커지고 있다. 상위 0.1%의 부자에게 부가 더 몰린다.”

네트워크 사회 연구에 천착해온 연세대 김용학 교수(사회학)는 네트워크 사회가 초래하는 ‘사회적 불평등’ 내지 ‘양극화’의 심각성에 대해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이 현상에 대해 “비단 한국의 독특한 구조가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의 공통점”이라며 “굉장히 암울한 미래로, 한국 사회가 많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경고했다.

네트워크 사회가 부추기는 부의 양극화, 이는 미국의 경제 월간지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의 부자 순위를 봐도 경향이 뚜렷하다. 2015년 10억달러 이상 가진 억만장자(1조1000억원 이상)는 1826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152명이 늘어났다. 1위는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792억달러·약 93조6540억원), 2위는 카를로스 슬림(멕시코 통신 재벌, 약 771억달러·91조1700억원)이 차지했는데, 이들의 재산 증식 속도를 보면 놀랍다. 2010년 535억달러였던 빌 게이츠의 재산은 257억달러(30조2500억원)가 늘었다. 5년 만에 50% 이상의 부가 늘어났다. 다른 수퍼리치(Super-rich)들도 비슷하다. 2위 카를로스 슬림은 5년 만에 236억달러(약 27조9070억원)가 늘었고(535억→771억달러), 3위 워런 버핏은 257억달러(30조3902억원)가 늘어(470억→727억달러) 각각 44%, 54%의 재산이 증가했다. 한국 최고의 부자는 110위에 오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의 재산은 113억달러로 5년간 41억달러(약 4조8482억원)가 늘었다.<표1 참조>

올해 포브스 자료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40대 미만 젊은 부호의 약진이다. 억만장자 중 40대 미만이 46명이나 포함됐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상속형은 드물고 자수성가형이 많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네트워크를 장악한 IT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는 ‘스냅챗(snapchat)’을 창업한 에번 스피겔(25)이다. 그의 재산은 약 15억달러(1조6700억원)로 알려져 있다. 스냅챗은 사진과 동영상 공유에 특화된 모바일 메신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삭제 기능이 있어 일명 ‘유령 메신저’로 불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를 장악한 IT 전문가들이 속속 수퍼리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올해 한국의 50대 주식 부자에 IT 전문가가 6명이 포함됐다. 특히 7위를 차지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대표의 신규 진입이 눈에 띈다. 스마일게이트는 1인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로 유명한 게임회사다. 권 대표의 주식 자산은 3조8988억원에 이른다. 이 외에도 50대 주식 부자에 김정주 NXC 대표(8위, 2조9241억원), 김범수 다음카카오이사회 의장(11위, 2조5992억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33위, 1조1371억원), 이해진 네이버이사회 의장(36위, 1조721억원),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39위, 1조180억원) 등의 IT 전문가가 포함됐다.<표2 참조>

잘나가는 가게, 점점 더 잘나가

여기서 ‘네트워크 사회’의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네트워크란 ‘기술’의 네트워크와 ‘관계’의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네트워크 사회가 극소(極小)전자를 이용한 기술적 네트워크와 사회적 관계망으로서의 네트워크를 둘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버클리대 크라이슬러 교수는 “사회관계망과 기술적 네트워크가 결합된 모습”을 네트워크 사회로 정의했고, 김용학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네트워크 사회를 ‘사회 조직의 원리’로 규정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네트워크 사회의 빛과 그늘’(박영사)에서 “네트워크 사회는 사회 네트워크와 정보 네트워크의 결합 그 이상”이라며 “정보통신 기술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사회가 구성되고 조직되며 사람들이 사고하는 총체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인터넷 대중화가 가져온 네트워크 사회. 네트워크 사회가 부추기는 승자독식 사회는 일상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될수록 판매에 가속도가 붙고,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의 격차가 뚜렷한 것이 한 예.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김용학 교수는 제주도 음식점을 사례로 들었다. “1년에 한 번씩 제주도에 가는데, 손님이 몰리는 가게와 그렇지 않은 가게 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줄서는 가게는 매년 줄이 점점 길어지고, 파리 날리는 가게는 점점 더 손님이 적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네트워크에서 정보를 구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를 ‘인크리징 리턴’이라고 한다”며 “(지식과 정보의) 스케일이 커질수록 격차가 점점 커진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가게 정보는 네트워크 정보망에 집중적으로 모이고, 정보 노출 횟수가 많을수록 점점 더 많은 손님이 몰리는 원리다. 최근 네티즌들은 여행 정보를 대부분 인터넷으로 얻는다. 여행 정보 검색 시 ‘OO(목적지) 맛집 추천’은 필수 검색 코스로 자리 잡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주변인들에게 부여와 경주, 제주도의 맛집을 묻자, 대답이 엇비슷했다. 유명 맛집 쏠림 현상이 극명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대표적 맛집 몇 군데를 검색해봤다. 부여의 ‘장원막국수’와 제주도의 물회전문집 ‘어진이네’. 전자는 기자가 몇 달 전 찾아가 40분 동안 기다리다가 포기한 곳으로,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에도 장사진을 이뤘다. 후자는 뻔한 메뉴에도 ‘군계일학’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네티즌 사이에서 ‘숨은 맛집’으로 유명세를 탔다. 두 곳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장원막국수’는 1684건, ‘어진이네’는 3088건이 검색됐다.(8월12일 기준) 기사나 웹문서는 제외하고 블로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곳만 쳐도 이 정도다.

쏠림 현상은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요즘 대학생은 ‘앎’의 차이가 거의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아는 건 다 알고, 모르는 건 다 모른다. 김태희 연인이 비(정지훈)라는 건 다 알면서 몽테스키외가 한 말은 아무도 모른다. 과거와 판연히 달라졌다. 우리 시대만 해도 내가 아는 걸 친구는 모르고 친구가 아는 건 내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다 같아져 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지식과 정보의 원천이 TV와 스마트폰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워 커브 소사이어티

네트워크 사회가 초래하는 승자독식 사회는 단순히 ‘몰리는 곳에 더 많이 몰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승자그룹 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적용된다. 최상위 승자그룹에 점점 더 많은 부와 정보가 몰리고, 그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사회의 특성에 대해 알기 쉽게 규정 지은 사람이 있다. 미국의 경제컨설턴트 데이비드 볼러(David Bollier). 그는 네트워크 사회의 속성을 ‘파워 커브 소사이어티(Power Curve Society)’로 설명한다. 과거 부와 정보의 점유 곡선은 가운데 집단이 불룩한 ‘벨 커브()’ 형태였으나 네트워크 사회로 흐를수록 승자가 점점 더 많은 것을 차지해 반(半) U 자 형태인 ‘파워 커브()’ 형태가 된다는 것. 파워 커브 형태는 긴 꼬리(Long tail)가 특징이다.

데이비드 볼러는 “네트워크 사회는 승자독식 사회를 가중시킨다”고 경고한다. “네트워크 사회로 흐를수록 중산층에 친숙한 벨 커브 대신 승자독식 경제인 파워 커브로 가고 있다. 파워 커브는 승자가 과도한 혜택을 가지게 되는 구조로, 사회·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네트워크 사회는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을 주도해 왔지만, 네트워크 사회가 야기하는 부와 소득분배 방식은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부의 양극화는 데이터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발표에 따르면 2014년 전 세계 상위 1% 부자가 전체 부의 4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구는 2016년에는 상위 1% 부자가 50% 이상의 부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소득 양극화에서 예외가 아니다. 부자에게 더 많은 돈이 쏠리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에 내놓은 ‘빈곤·불평등 추이 및 전망’에 따르면 2003년에는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보다 8.85배 많았지만 2012년에는 12배가량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다. 2012년 조세연구원이 국세청 소득세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한국의 소득 상위 1%가 가진 부가 전체의 19.6%를 차지했다. OECD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19개국 평균인 9.7%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로, 한국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 국가는 미국밖에 없었다.(‘갑질사회’·참돌·최환석 지음)

부자들의 통 큰 기부

네트워크 사회가 가중시키는 부의 양극화. 네트워크 사회와 양극화는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충분조건임은 분명하다. 즉 네트워크 사회 때문에 양극화 사회가 됐다는 논리는 과단이지만 네트워크 사회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네트워크 사회가 촉발시키는 승자독식 사회는 미래사회를 암울하게 만드는 씨앗임에 틀림없다.

해결방법은 없을까? 자본주의 사회로 치달을수록 부익부 빈익빈 사회가 심화되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담론이 아니다. 거시적 차원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소득 재분배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는 국내의 한 세미나에서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점점 커지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 재분배 정책으로 중산층을 두껍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하위 40%의 소득을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증세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정부의 복지 전달 체계를 조정해서 재분배 정책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기에는 ‘불평등 해소가 성장의 지름길’이라는 명제가 전제돼 있다.

자생적인 움직임도 있다. 부자들의 통 큰 기부다. 특히 네트워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수퍼리치들의 통 큰 기부가 두드러진다. 얼마 전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은 열 살짜리 조카의 대학 지원을 마치면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팀 쿡의 재산은 약 8억달러(8800억원)로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도 기부왕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자선 관련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필랜트로피’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부왕

1위는 빌 게이츠 부부였다. 이제까지 빌 게이츠 부부는 302억달러(약 32조원)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도 기부왕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마윈은 “돈을 버는 것보다 쓰는 게 훨씬 어렵다. 빌 게이츠와 더 나은 자선활동을 위해 누가 더 돈을 효과적으로 쓰는지 경쟁할 것”이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마윈의 총자산은 1500억위안(약 26조5000억원). 지난해 그는 169억위안(약 3조원)을 기부하면서 중국 최고의 기부왕에 올랐다.

한국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 2014년 11월 국내 대표적인 벤처 1세대 5인이 설립한 벤처 자선 기업 ‘C 프로그램’이다. 5인의 주인공은 네트워크를 통해 성공신화를 이룬 벤처기업인으로, 김범수 다음카카오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재웅 다음 전 대표, 이해진 네이버이사회 의장이 그들이다. 이들의 합산 자산은 약 6조원에 이른다. C 프로그램의 목적은 분명하다. 벤처 자선 기금을 마련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벤처 기업과 단체 등을 발굴하고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도 한국의 대표적 자선단체다. 2007년 12월에 설립돼 현재 841명의 회원이 활동 중인데, 이 중 익명 회원이 103명에 달한다. 한 회원은 고액기부를 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입니다.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의 간격을 줄여서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는 것이 우리들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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