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유럽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독일은 홀로 독보적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을 많은 이가 궁금해한다. 헤르만 지몬의 저서 ‘히든챔피언 글로벌원정대’ 등을 통해 독일의 탄탄한 중소기업 ‘미텔슈탄트’와, 그 가운데서도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글로벌 일등상품을 지닌 강소기업 ‘히든 챔피언’에 대해 익숙해졌다. 이들이 독일 경제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면, 독일 주가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DAX30 기업은 독일 경제를 앞에서 이끌고 있다. DAX(Deutscher Aktien Index)지수는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중 시가총액 기준 상위 30개 기업의 종합주가지수다.

DAX지수는 2005년 1월 5550에서 올해는 사상 최고점인 1만2000포인트를 기록(지난 10여년간 157%포인트 상승), 독일 기업집단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DAX 기업은 2013년 기준 총 글로벌 고용 인력 수 379만명, 글로벌 매출 합계 1조8000억달러로 독일 GDP(국내총생산) 절반에 가까운 규모를 자랑하며 화학·자동차·인프라·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학 분야 1위의 바스프, 의류 브랜드 가치 5위의 아디다스, 자동차 판매 2위의 폭스바겐, 은행 자산규모 2위의 도이체방크 등 모두 글로벌 리더십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평균수명은 109년, 기업 분할·합병 내용까지 고려하게 되면 평균 126년에 이르는 장수기업들이다.

독일은 천연자원 보유 정도에 따라 국부가 정해지던 과거에는 자원 빈국에 속했다. 독일은 열악한 경쟁환경을 극복하고자 실험실과 같은 공작소에서 창의적인 물품을 만들어내며 특유의 근면성과 혁신성을 갖췄다. 1941년 이미 미국의 ‘하버드-마크1’보다 3년 앞서 인류 최초의 컴퓨터 ‘Z3’를 개발한 콘라트 추제, 지구상 모든 엔진의 기원을 만들어낸 니콜라스 어거스트 오토, 발전기·전차·엘리베이터를 발명한 베르너 지멘스, 이외에도 인류 최초의 로켓, TV 브라운관, 전자현미경 등 독일인의 기술개발이 인류에 기여한 제품은 셀 수 없이 많다.

이 중 현대 화학공업의 기초를 닦은 리비히(Justus von Liebig·1803~1873)가 있다. 현대 화학공학은 19세기 초 기센에 있는 리비히의 실험실로부터 시작해 괴팅겐,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리비히의 미국인 제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미국 화학공업의 발달을 주도하였다. 1913년에 이르러서는 고품질 아닐린 염료 개발에 힘입어 독일이 전 세계 화학염료시장의 90%를 차지했으며, 이중 80%는 해외에서 생산할 정도로 글로벌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현재의 DAX 기업인 바스프, 바이엘 등 총 8개 화학회사가 연합한 IG 파르벤(Farben)은 생화학무기 개발 등 나치를 도왔다는 이유로 전범 기업 취급을 당하며 연합군에 의해 해체되었다. 설비 대부분이 파괴되는 등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하지만 머크는 LCD, 바이엘은 아스피린이라는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으며 빠르게 재기에 성공하였다. 2013년 기준 독일 화학산업(석유·정밀화학·의약품) 수출액은 1630억유로로 전 세계 수출시장의 11.4%를 점유하고 있으며, 540억유로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바스프는 수년째 글로벌 화학기업 매출순위에서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으며, 바이엘 등 의약 분야에서도 글로벌 제약사들과 수위를 다투고 있다.

독일은 1886년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는 ABS 브레이크, 커먼레일 엔진을 개발하며 첨단 기술을 주도하는 자동차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니콜라스 오토와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가 많은 기여를 하였다. 오토는 현재 모든 자동차 엔진의 기본 형태인 실린더 내 피스톤 왕복운동형 구조를 개발하였다. 또한 히틀러는 1920년대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저렴하고 튼튼한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을 개발하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향후 독일 자동차산업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스바겐 공장 역시 연합군의 집중포화로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전후 ‘비틀’을 대중을 위한 차로 대량생산, 인기 수출품으로 도약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하였다. 마찬가지로 전후 존폐위협의 기로에 놓여있던 BMW와 벤츠는 1950년대 각각 501, SL300 등 당시 기술로 구현하기 어려운 명품차를 출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재도약하였다. 2014년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판매량 2위(1014만대)에 오른 폭스바겐을 비롯해 자동차 브랜드가치 상위 10위 내에 벤츠와 BMW, 폭스바겐, 아우디를 올려놓으며 양과 질 측면에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DAX지수에 속해 있는 독일의 대표기업이다.

2000년대 유럽의 물류 중심도시로 ARA(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안트워프)가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중심이 동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독일이 최근에는 ‘유럽의 심장’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독일은 세계 수출규모 2위라는 경제대국의 지위와 총 연장 1만3000여㎞의 아우토반, 라인·마인·도나우강과 북·흑해까지 연결되는 1000㎞가 넘는 RMD운하, 고속철도망을 갖추고 있어 유럽의 물류허브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성장한 도이체포스트(독일 우정국)는 1990년대 이후 DHL, 단자스, 에어본을 공격적으로 인수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2001년 DAX 기업으로 등록되었다. 도이체포스트가 지상물류를 대표한다면, 루프트한자는 항공물류 분야 강자를 지향하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화물 운송량에서는 수년째 톱 5를 기록하고 있으며, 무게 기준으로는 전 세계 교역량의 0.5%에 불과하지만, 가치로는 35%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 높은 고부가 항공사이기도 하다.

에너지 기업 RWE와 E.ON은 통합 5000만 가입자와 연간 430TWh 규모의 발전에너지를 자랑한다. 이들은 각각 이미 1898년(RWE), 1923년(E.ON, 전신 VIAG)에 창업해 100년 넘게 독일의 에너지를 담당해오고 있다. 풍부한 발전량을 바탕으로 유럽 내 전력거래를 통해 연간 약 30TWh를 수출하고 있으며, 2000년 이후에는 해외로 시선을 돌려 미국, 영국, 유럽, 이집트로 진출했다. 현재 매출의 절반은 독일 외 지역에서 창출하고 있다.

또한 적극적 신재생에너지 개발로 이미 20%를 넘어서고 있는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프라 분야에는 유럽 최대의 철강회사 가운데 하나인 티센크루프가 철강과 엘리베이터 분야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초의 다이얼 전신기, 전기 발전기를 만들어낸 지멘스는 전력인프라 사업으로 성장해 최근에는 산업솔루션, 에너지, 헬스케어, 도시인프라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지속적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멘스는 특히 독일의 첨단기술 육성 전략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트리 4.0을 주도하며 기존의 인프라·제조산업과 ICT(정보통신기술) 등 첨단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성장을 꿈꾸며 다시 한 번 주도권 경쟁에서 한발 앞서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화학, 자동차, 인프라를 아우르는 독일의 DAX 기업의 성공비결은 세 가지 관점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글로벌화다.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것은 물론 2000년대 이후,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포화된 유럽시장을 넘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꾀해 현재는 DAX 기업 전체 매출 가운데 77%가 해외에서 일어날 정도이다. 수출 못지않은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으로 전체 인력 가운데 이미 3분의 2가 독일 외 지역의 사람이다. 이러한 글로벌화 전략이 안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일 특유의 합리적 의사결정과 시스템 경영,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공비결의 두 번째는 창업 당시의 기술혁신 DNA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인데, 지속적인 R&D 투자로 폭스바겐 95억유로, 다임러 56억유로, 지멘스 45억유로(2012년) 등 독일 R&D 투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막스플랑크, 헬름홀츠 등 기초과학 연구소, 상용화 기술개발을 연구하는 프라운호퍼 연구소, 풍부한 대학 자원과의 연계를 통해 기술혁신을 이루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뮌헨, 최근에는 라이프치히와 같은 자동차 클러스터, 루어공업지역과 같은 화학클러스터 또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내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 비결은 미래예측에 의한 선제적 위기관리인데 DAX 기업 상당수는 미래전망 전담조직을 갖추고 예측결과에 따라 제품 및 사업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정리해 지속적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다임러는 1979년부터 STRG(Society and Technology Research Group)를 운영하고 있고 폭스바겐 또한 전담조직을 통해 미래 자동차 콘셉트 등을 담은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멘스는 PoF(Picture of the Future) 툴을 통해, SAP는 최근 빅데이터 기법을 이용해 주기적으로 미래 변화상을 예측하고 이를 통해 전략 수립을 하고 있다. 또한 바스프, 랑세스와 같은 화학기업은 미래전망을 통해 발 빠르게 포트폴리오를 변경해 최근 특수도료·전자소재 등 특수소재 분야 강자로 거듭나기도 했다.

많은 한국 기업 역시 성장한계를 일찍부터 느끼고 유사하게 글로벌화, 신사업 발굴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독일의 DAX 기업들이 동일한 전략을 어떻게 성공시켰는지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많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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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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