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서강대에 걸린 취업설명회 안내 플래카드. ph ⓒ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20일 서강대에 걸린 취업설명회 안내 플래카드. ph ⓒ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삼성그룹 3만명(2년간), SK그룹 2만4000명(2년간), 롯데그룹 2만4000명(3년간), 신세계그룹 17만명(2023년까지), 현대자동차그룹 9500명(올해), 한화그룹

1만7569명(2017년까지), 포스코 6400명….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창출하겠다고 발표한 신규 일자리 수다. 1년 단위로 보면 수천 명에서 많게는 1만5000명이 된다.

그런데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이들이 내놓은 이 대규모 채용·고용지원 대책이, 수혜자여야 할 청년층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대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발표한 수만 개의 일자리와 고용지원책 대부분이 사실은 인턴 등 비정상적 일자리이거나, 고용·채용과 무관한 ‘직업·창업교육지원’, 심지어 ‘하청업체 취업 알선’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내놓고 있는 신규 일자리 창출 대책이 사실은, 애초부터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들이 밝힌 청년 일자리 확충이 ‘인턴 등 저임금 근로자와 6개월짜리 단기계약직·임시직 같은 비정상적 일자리만 쏟아내는 역효과만 키울 것’으로 우려된다.

먼저 삼성그룹을 보자. 삼성그룹은 지난 8월 17일 “2017년까지 신규투자 등을 통해 1만8600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고,

1만1400명에게 창업·직업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청년 일자리 종합대책’을 내 놓았다.

취재 결과 삼성그룹이 발표한 1만8600개의 일자리 중 최소 3000개 일자리, 즉 3000명에 대한 고용·채용은 삼성그룹과는 전혀 무관했다. 삼성그룹의 협력사(하청회사)들이 활용하는 인원이었다.

더구나 삼성그룹의 하청회사들조차 3000명 모두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게 아니다. 삼성그룹이 이 3000명에게 3개월간 직무교육을 시키고 난 후, 하청업체들이 이들에게 3개월짜리 인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삼성은 이 기간 월급여 150만원을 부담한다.) 이렇게 총 6개월의 직무교육·인턴 후 삼성그룹 하청업체의 자체 평가와 채용 수요, 경영 상황에 따라 이들 3000명은 하청업체에 채용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이 제도는 삼성그룹(계열사와 관련된) 고용·채용은 아니다”라며 “삼성 협력사(하청업체)의 인턴지원과 교육지원”임을 말했다. 삼성그룹은 자신들의 채용·고용과 무관한 이 정책을 ‘하청회사 인턴교육 지원책’이 아닌 ‘삼성 고용디딤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럼 인턴을 거쳐 어렵게 하청업체에 채용돼 열심히 일하면 삼성그룹이 이들의 경력직 채용을 보장하는 것일까. 삼성그룹은 이 부분에 대해 “이 프로그램으로 하청업체에 4년 이상 근무할 경우 삼성그룹 계열사 경력사원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럴듯하게 포장됐지만, 이 말이 매우 이상하다. 현재 삼성 각 계열사의 ‘경력사원 채용’은 채용 직무에 요구되는 경력과 능력(또는 자격)을 갖추고, 결격사유가 없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하청업체에서 4년 이상 근무한 사람만 경력사원으로 뽑는 채용 규정과 정책을 가진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하청업체에 4년 이상 근무하지 않아도 삼성 계열사가 내건 경력직 채용 자격을 갖추면 사실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삼성그룹 각 계열사가 수년간 실시한 경력직 채용 공고 200건 이상을 일일이 찾아 확인한 사실이다. 삼성그룹 관계자 역시 이 내용을 확인해 줬다. 삼성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이 제도를 통해 경력직에 지원하면 가산점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정도 생각한다”며 “삼성 계열사들의 경력직 채용에서, 하청업체에서 4년 이상 근무한 이들에게만 지원 자격을 주거나, 이들만 상대로 한 경력직 채용을 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결국 삼성그룹이 발표한 1만8600개 일자리 중 최소 3000개, 즉 3000명에 대한 고용·채용은 사실 삼성그룹의 고용·채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호텔신라 면세점과 신라스테이(비즈니스호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의 신규 투자로 2017년까지 1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삼성의 발표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삼성그룹이 신규 투자하겠다는 내용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텔신라(대표 이부진)를 보자. 호텔신라는 지난 7월 서울 용산에 서울 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권(특허)을 현대산업개발과 합작해 땄다. 호텔신라가 서울 용산에 신규 면세점 사업을 구상한 게 올해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구체적인 면세점 사업 계획이 만들어졌다. 즉 이미 지난해 신규 면세점 입지·사업파트너는 물론, 면세점 사업을 위한 소요(신규 고용) 인력 규모까지 구체화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사업 확장을 위해 계획돼 있던 일자리 수(고용 규모)를 이번 ‘청년 일자리 종합대책’에 집어넣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 증설 역시 이미 오래전 확정됐던 일이다. 때문에 공장 증설에 따른 생산·관리 인력 규모 역시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창업·교육지원 등을 뺀 삼성그룹의 순수한 고용·채용 규모(일자리)는 약 1만명(2년간) 내외(가 사실)”라고 했다.

SK그룹(회장 최태원)은 삼성그룹보다 더 황당하다. SK그룹은 최근 ‘청년일자리 창출 2개년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2년 동안 2만4000명의 청년에게 고용 기회(4000명)와 창업 지원·교육(2만명)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SK그룹의 이 ‘청년일자리 창출 2개년 프로젝트’ 중 청년 고용·채용 방안은 ‘SK 고용 디딤돌’이 유일하다. SK그룹은 2016년부터 2년간 총 4000명(매년 2000명)의 청년에게 일자리 기회, 즉 채용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4000명 역시 SK그룹과 계열사에 직원으로 채용되는 게 아니다. 취재 결과 ‘SK그룹은 처음부터 이들 4000명 중 단 한 명도 자신들의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떻게 된 것일까. SK그룹이 내세운 ‘SK 고용 디딤돌’은 애초부터 SK그룹 계열사의 고용·채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SK 고용 디딤돌’을 정확히 설명하면 ‘SK그룹이 자신들의 협력업체(하청업체)에 청년들을 연결(알선)해 주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것도 정규직이나 안정된 일자리가 아닌 ‘인턴’ 형태다. 그 구조는 ‘삼성 고용디딤돌’과 유사하다.

SK그룹이 ‘SK 고용 디딤돌’에 지원한 청년들을 뽑아 2~3개월간 하청업체에 맞춘 직무교육을 진행하고, 직무교육 후 하청업체가 이들에게 3~4개월간 인턴 자리를 주는 것이다. SK그룹은 단지 5~7개월의 직무교육 및 인턴 기간 동안 청년들에게 줘야 할 급여와 교육비 월 150만원을 부담한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SK 고용 디딤돌’에 대해 “SK(그룹과 계열사) 채용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SK(그룹과 계열사)에 채용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관계자는 “협력사(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것이다”라며 “청년들과 대졸자에게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목적)”라고 했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그렇다면 ‘SK 고용 디딤돌’을 통해 직무교육·인턴을 한 청년들은 SK그룹 계열사의 하청업체에라도 정식으로 채용될 수 있는 걸까. 기자는 이에 대해서도 ‘SK그룹이 아무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SK 고용 디딤돌’로 직무교육과 인턴 종료 후 SK그룹 하청업체들은 이들을 채용해 줄 수도,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인턴 종료 후 SK그룹 하청업체들이 이들 4000명 중 단 한 명도 정식 채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SK의 하청업체들이 이들을 채용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협력업체에도 그 회사 사정이란 게 있을 것”이라며 “(하청업체의) 고용에 대해 어떻게 말하기는…”이라고 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내년부터 뽑는 것이고, 고용 현안 단계에서 어떻다고 말하기는 이르다”라고 했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회장 정몽구·이하 현대차그룹)은 어떨까.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대규모 일자리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그룹 전체가 올해만 약 9500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공개한 9500명은 신입사원 채용과 경력직 채용을 모두 합한 것이다. 더욱이 취재 결과 9500명에는 현대자동차는 물론 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 등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들이 매년 대규모로 뽑고 있는 ‘인턴’ 자리는 물론 ‘촉탁직’, 심지어 1~6개월 동안만 현대차 등 계열사 공장 생산직으로 일하는 ‘단기간 계약직’ 같은 비정규 일자리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이 숫자는 사실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전체 채용 규모와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기자가 “지난해 고용·채용 규모가 몇 명인지” 현대차에 물었다. 현대차 홍보실 관계자는 “파악한 게 없다. 확인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정규직은 물론 촉탁직·계약직 등 비정규직과 인턴까지 포함해 약 9100명의 일자리를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근거로 올해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보다 더 늘리겠다고 한 일자리 규모를 계산해 보면 400개에 불과하다. 사실상 ‘자연증가분’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현대차그룹 공식 계열사는 총 51개다. 즉 인턴과 촉탁직·계약직 등 비정상적 일자리까지 포함시켜도 현대차그룹이 지난해보다 늘리겠다고 한 일자리가 사실은 계열사 한 곳당 채 8개도 안 된다는 계산이다.

현대차그룹 고용 및 일자리 확충과 관련해 지난 7월 7일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린 판정에 주목해야 한다. 현대차가 저질러온 이른바 ‘쪼개기 근로계약’에 대한 것이다. 기자가 내용을 확인해 봤다.

A씨는 2013년 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총 23개월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촉탁직으로 일했다. 그런데 23개월 동안 무려 16차례나 근로(촉탁 고용)계약을 맺었다. 3개월짜리 촉탁직 계약부터 근로기간이 60일·29일·28일짜리인 고용 계약, 심지어 근로기간 13일짜리인 촉탁직 계약까지 23개월간 무려 16번이나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썼다. 촉탁직인 A씨가 연속으로 2년 이상 근무하면, 현대차는 그를 정규직(혹은 그에 상응하는 신분)으로 고용·채용해야 한다. 현대차가 이를 피하려 했기 때문인지 A씨는 올 1월 해고됐다.

A씨 사례에서 보면, 현대차는 ‘법이 정한 채용 및 고용 계약을 기준’으로 23개월 동안 정작 일한 사람은 한 명이지만 16개(번)의 일자리(고용 횟수)를 만들어 내는 기막힌 수완을 발휘했다. 그 한 명 역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1년11개월 만에 사실상 해고됐다.

이러한 일은 2013년부터 올 8월까지, 울산공장은 물론 전주공장에서도 있었다. 기자는 현대차그룹이 최근 발표한 올해 고용·채용인원 9500명 속에 A씨와 동일한 촉탁직 일자리도 상당한 규모로 포함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9500명 중 정규직과 인턴(촉탁·계약직)이 각각 얼마나 되는지, 청년 일자리에 해당하는 신입과 경력직 채용 규모는 각각 얼마인지”를 현대차그룹에 물었다. 현대차 홍보실 관계자는 “전체가 9500명인 것만 알 뿐, 이 중 인턴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며 “각 계열사별 일자리, 신입·경력직 간 채용 비율도 모른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 년간 인턴 수를 대폭 늘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발표하고 대규모 고용·채용 일자리 청사진은 대부분 비현실적이다. 일자리 수와 채용인원을 부풀리거나 왜곡한 것이 수두룩하다. 안정성을 지닌 일자리 확충은 하지 않고, 대신 인턴·촉탁직·임시직 등의 규모만 확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주요 대기업들이 올 하반기 들어 갑자기 왜 이같은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지난 7월 27일 기획재정부(장관 최경환)·고용노동부(장관 이기권)·산업통상자원부(장관 윤상직) 등 6개 정부부처와 전경련(회장 허창수)·경총(회장 박병원)·대한상의(회장 박용만) 등 경제단체 6곳의 수장, 그리고 주요 대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들이 내놓은 대책에는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프로젝트’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일자리 20만개 중 2017년까지 민간 기업들이 16만개를 만들어 내겠다’는 선언이 들어있다.

바로 이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 대책’과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프로젝트’가 나온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삼성·현대차·SK·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이 갑자기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1만5000명(연간)에 이르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대대적 홍보에 나선 것이다.

이는 주요 대기업과 대기업 오너들이 저지른 범죄와 반사회적 행각에 대한 ‘국민 여론 악화 면피용’이라는 지적도 크다. 실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교도소 가석방 시점에,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범죄 이슈가 다시 불거지던 시점에 대규모 일자리 지원책을 내놓았다. 롯데그룹 역시 신격호·신동빈씨 간 막장 싸움과 ‘롯데=일본 기업’ 정서가 확산되던 때에 대규모 일자리 계획을 내놓았다.

취재 중 만난 취업준비생과 청년들 대부분이 최근 정부와 대기업들이 내놓은 일자리 대책에 냉소적이었다. 기자가 취재한 몇몇 사실을 이들에게 말해주자 “사기”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한 대학생은 기자에게 “대기업들이 발표한 대규모 일자리 계획 자체가 ‘희망고문’일 뿐”이라며 “이것이 청년들을 더 절망케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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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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