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은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제도 폐지를 발표했다. 국내 결제시장의 가장 큰 장벽이었던 공인인증서 문제가 허물어지자 국내 간편결제 기술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제도가 폐지되기 전,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모바일 결제 시장규모는 2014년 1분기에 2조8223억원이었다. 하지만 폐지가 된 올해 1분기는 5조936억원으로 1년 새 두 배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물건을 살 때마다 지갑을 열어 현찰을 건네거나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모습보단 휴대폰만으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아 보인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물건을 결제하려고 해도 과정이 너무 복잡해 포기했던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업체들의 치열한 ‘간편결제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간편결제 시스템은 어떤 종류와 특징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국내 시장에서 강자는 △네이버페이(네이버)와 △카카오페이(다음카카오)다. 스마트폰업체가 내놓은 간편결제는 △삼성페이(삼성전자) △페이나우(LG유플러스)가 있고, 유통업체의 간편결제시스템은 △스마일페이(옥션·G마켓) △옐로페이(인터파크) △SSG페이(신세계) △시럽페이(SK플래닛의 11번가)가 있다. △케이페이(KG이니시스) △페이올(BC카드)은 전자지불결제 대행서비스업체와 신용카드업체가 내놓은 상품이다. 이 정도면 가히 ‘페이’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하다. 각 업체는 이제는 본인인증, 약관동의, 카드정보 입력, 액티브 X 설치 등 평균 20개가 넘는 지리한 절차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 전자금융팀 조민경 조사역은 주간조선에 “업체를 일일이 등록하고 있진 않아서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대략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간편결제 관련 업체들이 있다”며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 1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이마케터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장이 2015년 40조3220억원이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40조원이 넘는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업체들의 발 빠른 대응이 간편결제 시스템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어마어마한 회원 수를 무기로 간편결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네이버 홍보팀 김정우 차장은 “네이버 회원이 3800만명이고, 이 중 네이버에 로그인한 사람이 통상 1500만명이다. 이들 회원이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고, 자신의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하면 된다. 5만9000개가 넘는 가맹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결제가 완료된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이 네이버를 통해 검색하는 하루 검색어 수만 해도 3억개이며 그 가운데 쇼핑 관련 검색어만 30%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네이버는 검색에서 결제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포털사이트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고 말했다.

국민메신저라 불리는 카카오톡 회원 3800만명을 보유하고 있는 ‘다음카카오’에서 출시한 ‘카카오페이’ 역시 시장에서 반응이 뜨겁다. ‘카카오페이’ 회원 수는 8월 기준 500만명을 돌파했다. ‘카카오페이’ 또한 기존에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는 회원이라면 별도의 앱을 추가적으로 깔 필요도, 회원가입을 할 필요도 없다. 처음 사용할 때만 가입한 휴대폰과 동일한 명의의 본인인증을 거쳐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결제할 카드번호와 비밀번호만 등록해 두면 된다. 그 다음부터는 언제든지 연관된 가맹점에서 간편하게 결제가 가능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맹점수가 아직 260여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난 18년간 국내 전자지불결제 대행서비스시장을 주도해온 KG 이니시스가 내놓은 ‘케이페이’는 보안성을 자랑한다. 전자지불결제 대행서비스업계 1위답게 간편결제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보안성 문제를 독자 방식으로 보완했다. 비밀번호를 숫자로 입력하는 기존방식을 벗어나 이미지로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시큐락’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가령 여러 국기를 보여주고 회원이 태극기, 프랑스기, 중국기 등의 다양한 국기의 순서를 조정해 패턴처럼 비밀번호화하는 방법이다.

통신사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간편결제시장에 뛰어든 LG유플러스가 눈에 띈다. LG유플러스가 내놓은 ‘페이나우’는 휴대폰 번호를 ID로 사용해 편리성을 제공한 점이 강점이다. 본인 명의의 휴대폰을 소지한 고객이라면 통신사 관계없이 모두 이용가능하다. 통신3사(SK·LG·KT)의 휴대폰 소액결제까지 지원하며 현대카드와 협력해 신용카드 포인트를 이용한 결제까지 최초로 선보였다.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고 있는 휴대폰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8개 카드사(신한·KB국민·삼성·NH농협·현대·하나SK·BC·롯데)와 협업해 결제가 가능하며 10만개가 넘는 폭넓은 가맹점 수를 자랑한다.

대형 쇼핑몰을 둘러싼 간편결제 전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는 자사 고객들을 위해 ‘스마일페이’를 선보였다. 지마켓과 옥션 사이트에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폐쇄성이 있다. 이에 대해 이베이코리아 홍보팀 홍윤희 부장은 “2000만명의 옥션 회원과 1900만명의 지마켓 회원을 대상으로 하니 거래되는 결제 규모는 밝힐 순 없지만 매우 크다. 두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종류만 4000만개”라고 말했다. ‘스마일페이’는 결제할 때마다 SMS으로 보내지는 인증번호 입력을 거쳐 본인확인 후 결제가 완료되는 방식으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한다. 실제 지마켓과 옥션의 모바일 쇼핑 비중은 지난해 20%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50%대로 대폭 증가했다. 홍 부장은 “그동안 결제절차가 복잡해 쇼핑을 포기했던 소비자들의 마음을 간편결제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라이벌인 11번가에서는 ‘시럽페이’로 간편결제가 가능하다. SK플래닛이 선보인 ‘시럽페이’는 11번가, 시럽오더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결제는 대부분의 간편결제가 그렇듯이 3단계를 거친다. 처음 카드번호와 설정한 비밀번호를 등록하고 난 다음에는 결제버튼, 비밀번호입력, 결제완료라는 세 단계를 거치면 온라인 쇼핑이 끝난다. SK플래닛 홍보팀 이교택 매니저는 “시럽페이 회원 수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시럽페이를 활용한 모든 상품 거래규모가 출시 넉 달이지만 900억원 정도가 된다. 앞으로는 3단계 결제가 아닌 원클릭 결제가 되도록 기술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신용카드사 중에서는 BC카드가 최초로 간편결제 ‘페이올’을 선보였다. ‘페이올’의 특이한 점은 휴대폰의 유심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유심형 모바일카드는 스마트폰 유심칩에 카드를 내려받아 한 차례 본인인증만 거치면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단말기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가맹점들이 일명 ‘동글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리더기를 구비해야 하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컴퓨터 칩의 역할을 하는 유심이 주는 보안성은 장점이다. BC카드 홍보팀 최익호 과장은 “앱 기반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강점이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토큰 방식의 보안 솔루션을 사용해 실제 카드번호와 연계된 가상 카드번호로 결제를 진행해 카드정보 유출로 인한 각종 위험을 사전에 예방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간편결제 서비스에 업체들이 사활을 걸고 뛰어들고 있는 것일까. 지난 9월 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7월 소매판매 및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7월 소매판매액은 30조1430억원,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4조7750억원이다. 이는 전년동월대비 각각 0.5%와 21.2%가 증가한 액수로 특히 온라인쇼핑 거래액의 증가가 주목할 만하다. 이에 대해 통계청 경제통계국 신광현 사무관은 “이번 통계를 조사하면서 관련 업체 담당자에게 매출 증가 사유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간편결제가 온라인쇼핑 매출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말했다. 신 사무관에 따르면 아직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간편결제가 분명 쇼핑 활성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지난 4월 DMC미디어가 발표한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모바일기기 이용자의 72%가 이미 간편결제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45.7%가 결제의 편리성을 간편결제 사용 이유로 꼽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간편결제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형국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에서도 지난 8월 간편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삼성전자가 출시한 휴대폰 중 갤럭시S6, S6엣지, S6 엣지+, 갤럭시노트5 등 4종만 사용가능하다. 그 이유는 현재 대부분의 가맹점이 사용하고 있는 마그네틱 보안전송(MST) 방식에서도 사용하려면 휴대폰 내부에 자기장을 유도할 수 있게 만든 코일을 사전에 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출시한 휴대폰에는 이 기술을 적용했다. 가맹점의 카드결제 장비를 그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국 신용카드 가맹점 대부분에서 범용되는 장점이 있다.

지난 7월 신세계에서도 이마트, 스타벅스 등 그룹 계열사 9곳에서만 사용가능한 ‘SSG페이’를 선보였다. ‘SSG페이’는 별도의 앱을 다운받아야 사용이 가능하다. 8월 말 기준 다운로드 수가 32만건을 돌파했다. 앱을 통해 신용카드와 무통장입금으로 신세계그룹 계열사에서 사용가능한 SSG머니를 충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처음 신용카드를 등록하고 비밀번호를 설정해두면 언제든지 간편하게 SSG머니를 재충전해 사용할 수 있다.

‘3초 전쟁’이라 불리는 간편결제 시장에서 초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타사의 간편결제를 자사의 가맹점에서는 쓰지 못하게 막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세계그룹 계열사에서는 자사의 SSG페이는 사용가능하지만 삼성페이를 사용할 수가 없다. 또 코레일과 주유 업종에서는 제휴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성페이 사용이 불가능하다. 간편결제가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업계마다 내놓은 간편결제 서비스가 소비자의 혼란을 불러온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인인증서 폐지에 앞장서온 ‘오픈넷’의 박지환 변호사는 “온라인 쇼핑몰들이 타사의 간편결제 시스템을 거부하는 폐쇄적인 구조가 문제다. 자사가 개발한 간편결제 시스템만 고객이 사용하도록 하고, 다른 간편결제 시스템에는 벽을 쌓아 놓았다. 온라인쇼핑몰을 사용할 때마다 해당업체의 간편결제 시스템을 이용해야 하니 소비자는 불편하다. 이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는 모바일 간편결제시장 규모가 2017년에는 7210억달러(약 86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간편결제시장이 점차 커지는 만큼 보안성에 대한 기업의 대처와 사용자의 현명한 선택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소프트웨어학)는 “모바일 간편결제시장은 전 세계의 대세라 앞으로도 시장은 커져갈 것”이라며 “처음부터 완벽한 보안이라는 것은 없어 기업들은 끊임없이 간편결제의 보안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부주의로 암호가 노출되거나 휴대폰을 분실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워드

#이슈
김태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