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주인공 유비가 죽은 백제성
절경 보며 뱃길 여행 “이렇게 편할 수 없다”
마오의 ‘시비성패’ 문구 속엔 인생이…
 ⓒphoto 센추리 크루즈
ⓒphoto 센추리 크루즈

크루즈 여행은 해본 적이 없다. 롯데관광 측이 중국 장강(長江) 크루즈 상품을 새로 내놓으면서 타볼 기회를 갖게 됐다. 타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크루즈 여행이 좋겠다 싶었다. 장강은 중국 남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6300㎞)이다. 티베트에서 시작해 상하이 앞바다로 빠져나간다. 장강을 상하이 사람은 양쯔강(揚子江)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1일 인천공항에서 네 시간 걸려 중국 충칭(重慶)에 도착했다. 크루즈 선사 ‘센추리 크루즈’의 셰위(謝瑜)씨는 “충칭은 두 배의 행복이란 뜻이다. 즐거운 충칭 여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충칭 하면 임시정부가 생각난다. 옛 임시정부 청사는 도심 한복판의 약간 후미진 언덕에 있었다. 김구 선생이 사용하던 주석판공실 등 건물이 깨끗이 정비돼 있었다. 무엇보다 건물 입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맞아,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그때부터 사용했지, 그런데 북한은 왜 ‘조선’이란 낡은 이름을 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한민국’이 잇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크루즈를 타기 위해 부두로 향했다. 강의 흐름이 빠르다. 격류다. 그리고 탁류다. 서울에서 본 한강과는 다르다. 배는 5층. 1만2500t급이다. 다른 관광객도 승선한다. 중국 노인이 많고, 서양인도 많이 보였다. 장강 크루즈는 베이징·상하이와 함께 개혁개방 직후 3대 관광지로 서양에 개방돼 미국과 유럽의 관광객이 일찍부터 왔다고 했다. 4층 방을 배정받았다. 방에 들어가니 일반 호텔 객실과 마찬가지다. 침대와 집기가 있고, 화장실이 달려 있다. 방의 베란다에 나가면 강 주변의 풍광을 볼 수 있다. 충칭의 기온은 서울보다 좀 높았다. 위도는 북위 30도로 제주도보다 낮다. 5층에는 야외 데크가 있고, 넓은 식당과 술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커다란 바도 있다. 지하엔 수영장과 극장이 있다. 한국 여행객을 위해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라고 롯데관광의 정세영 디스커버리 팀장은 말했다. 초호화 유람선은 아니나, 갖출 건 다 갖췄다. 강바람이 시원하다.

충칭에서 배가 출발하면, 장강 싼샤(三峽·삼협)를 3박4일에 걸쳐 구경하고, 이창(宜昌)까지 600㎞를 가게 된다. 그 유명한 싼샤댐을 볼 수 있고, 싼샤의 가을 단풍을 즐기게 된다. 싼샤는 세 개의 협곡이란 뜻. 나는 싼샤댐은 세 개의 협곡이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력발전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었다. 충칭에서 이창 방면으로 ‘취탕샤’(瞿塘峽·구당협·길이 8㎞), ‘우샤’(巫峽·무협·길이 45㎞), ‘시링샤’(西陵峽·서릉협·길이 66㎞)가 순서대로 있었다. 중간에 싼샤로 분류되지 않는 구간까지 해서 흔히 전체 길이 193㎞라고 하며, 싼샤댐은 시링샤에 있었다.

취탕샤~우샤~시링샤 순 싼샤 200㎞

배는 관광객이 승선을 마치자 어둠에 잠긴 충칭을 뒤로하고 장강을 따라 내려갔다. 나는 저녁을 먹고 갖고 간 과학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크루즈의 묘미는 다음날 알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가 관광지에 도착해 있었다. 자고 있는 동안 배는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배가 조용해 느끼지 못했다. 조타실 구경을 했는데 크루즈 선사 측은 “배가 전기로 추진돼 다른 선사의 배보다 조용하다. 제자리에서 방향 선회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가 조용해 여행이 쾌적했다. 다른 배가 기름을 사용해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풍도귀성(丰都鬼城). 충칭에서 176㎞ 떨어져 있는 곳이다. 현지 가이드는 “죽은 중국 사람은 귀신이 되어 모두 이곳으로 온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이곳에 있는 귀신이 모두 몇 명이냐”고 농담성 질문을 했다. 아열대의 숲을 느끼며 언덕과 옛 건물을 구경했다. 1시간30분쯤 구경하고 다시 배에 타니 바로 출항이다. 오전 11시도 안 되었는데, 방에 가서 쉬라고 한다.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나는 방에 가서 읽던 책을 다시 폈다. 점심을 먹고 좀 있으니 석보채(石宝寨)라는 곳에 배가 멈췄다. 장강 바로 옆에 암벽이 있었고, 그곳에 올라 장강 경관을 내려다보는 곳이었다. 가이드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중국은 스토리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텔링의 천국이었다. 첫날 관광을 이로써 끝났다. 쉬는 여행, 느린 여행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패키지 여행을 떠나면 짐 싸서 이동하기 바쁘다. 먹으면 출발이고, 구경하면 또 먼길을 간다. 몸이 고달프다. 크루즈 여행은 달랐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인 싼샤 관광이 시작됐다.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유비가 죽은 곳이자, 아들 유선을 재상 제갈공명에게 부탁한 백제성(白帝城)이다. 싼샤의 초입인 기문을 바라보니 풍광이 장관이었다. 높다란 싼샤의 양쪽 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카메라 셔터를 수도 없이 눌렀다.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백제성 안에는 현대 중국의 권력자들이 쓴 글씨가 남아 있었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장쩌민이 8세기 중국 시인 이백의 시 ‘백제성을 일찍 출발하며(早發白帝城)’를 베껴 쓴 글씨였다. 마오의 글씨는 아름다웠으나 너무 휘갈겨 썼고, 저우언라이 총리의 글씨는 단정했으며, 장쩌민 전 주석은 교과서체와 같았다. 권력이 큰 사람일수록 글씨를 흘려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구름 낀 백제성을 떠나(朝辭白帝彩雲間), 천리 먼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다(千里江陵一日還)’로 시작하는 이백의 시를 해석해 들으니,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마오는 백제성에 다른 글씨를 남겼다. 그중 ‘시비와 성패가 다 부질없다(是非成敗轉頭空)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백제성 탁고당(托孤堂) 내 조형물. 죽어가는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아들들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photo 센추리 크루즈
백제성 탁고당(托孤堂) 내 조형물. 죽어가는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아들들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photo 센추리 크루즈

취탕샤 입구 기문의 위세 대단

취탕샤의 입구인 기문(夔門)에 배가 들어섰다. 탑승객들은 모두 5층 야외 데크로 올라와 밖에서 싼샤의 첫 번째 협곡인 취탕샤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암절벽은 대단했다. 바로 옆 봉우리의 높이가 수면에서 1000m가 넘는다고 했다. 매우 남성스러운 모습이었다. 단풍이 들면 절경이겠다 생각했다. 협곡의 양쪽을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정신없이 보다 보니 8㎞ 길이의 취탕샤가 쑥 지나가 버렸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으니 무협 구간에 들어섰다. 무협은 여성스럽고 호화로웠다. 신녀봉(神女峯)이라는 곳이 절정이었다. 한국 같으면 신녀봉 대신 선녀봉(仙女峯)이란 이름을 썼겠다 싶었다. 이곳 역시 마오쩌둥의 붉은 글씨가 바위에 크게 새겨져 있었다. 명승지란 또 다른 증거였다. 이곳에선 작은 배를 갈아타고 소수민족인 토가족(土家族) 거주지를 관광했다. 장강의 지류를 구경하는데 수억 년 된 퇴적암이 융기한 양쪽 바위들이 세월을 느끼게 했고, 토가족의 과거 장례 풍습인 현관(懸棺)이 절벽 낭떠러지에 아직도 걸려 있는 걸 보았다.

이날 저녁 배는 시링샤에 진입, 싼샤댐에 도착했다. 싼샤댐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소라고 자랑한다. 개발시대 댐 이야기를 많이 들어본 나는 댐에는 별다른 흥미가 일지 않았다. 배가 싼샤댐을 내려가는 걸 지켜보는 건 재미있었다. 배가 도크 안에 들어가며 수문이 닫히고, 그 안에 있는 물을 일정량 빼 배의 높이를 낮춘다. 그런 뒤 다음 도크로 배를 내보낸다. 이렇게 몇 번 하면 배가 댐 아래의 낮은 수위로 내려간다. 중국 인민군 공병대가 댐 공사를 했다고 했다. 객실에서 배가 첫 번째 댐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책을 다시 들었다. 크루즈 여행은 책 읽기에도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배는 싼샤댐 인근 포구에 정박해 있었다. 싼샤댐은 거대했다. 중국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성실하게 들어줬다. 다시 배에 올랐다. 본격적인 시링샤 관광이 시작됐다. 남성적이었던 취탕샤와, 여성적이었던 우샤의 중간 정도 분위기였다. 차분하게 강바람을 쐬며 구경했다. 카메라를 잘 꺼내지도 않았다. 싼샤를 출발한 지 두 시간쯤 됐을까 배가 이창에 도착했다. 하선이다.

이창은 후베이성에 있고, 충칭과 우한(武漢) 사이에 있다. 이창에서 고속철을 탔다. 말로만 듣던, 요즘 세계 고속철 시장을 석권한다는 중국 고속철이다. 열차는 충칭으로 간다. 시속 145㎞로 달리던 열차가 지형이 좀 덜 험한 곳에 이르렀는지 시속 193㎞로 속도를 올렸다. 충칭의 저녁식사는 이 도시의 명물 훠궈(火鍋)로 했다. 이렇게 충칭의 밤은 깊어갔고, 다음날 충칭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키워드

#여행
최준석 선임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