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 보로부두르사원. ⓒphoto 올리브매거진
세계 7대 불가사의 보로부두르사원. ⓒphoto 올리브매거진

지난 12월 1일 인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로 가기 위해 자카르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족자카르타로 가는 직항노선이 없어 자카르타공항에서 족자카르타로 향하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7시간 만에 자카르타공항에 내렸다. 한국에서는 영하의 추운 날씨 탓에 두툼한 코트를 입고 탑승했지만 자카르타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무더위에 코트는 짐이 되었다. 이곳의 기온은 33℃로 매우 후덥지근했다. 함께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한국 승객들 역시 더위에 입고 있던 외투를 하나둘 벗어 가방에 집어넣으며 손부채를 하기 바빴다.

자카르타공항은 테라코타(구운 흙)로 만든 기와 형식의 건물로 인도네시아 전통건물 양식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슬람 문화권답게 히잡을 두른 여성들과 인도네시아 전통의상인 화사한 무늬의 바틱(batik)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바틱은 파라핀으로 천에 방염한 후 무늬를 넣는 기법으로 화려한 무늬와 색이 특징이다. 족자카르타로 향하는 노선을 갈아타기 위해 1시간가량을 대기해야 했다. 자카르타공항에서는 서양 사람도 꽤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휴양지 발리로 환승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대기를 마치고 족자카르타로 향하는 국내선에 몸을 실었다. 족자카르타로 향하는 국내선은 100석이 조금 넘을 정도로 비좁았고, 대부분 현지인들이었다.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는 비행기로 1시간30분가량이 걸린다. 족자카르타공항에 내리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곳은 현재 우기(雨期)라 거의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은 아니지만 족자카르타는 과거 인도네시아의 수도였다. 여기선 ‘족자(족자카르타)’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를 430년 동안 식민 지배한 네덜란드에 맞서던 1945~1949년의 독립투쟁 기간 동안 족자는 임시 수도 역할을 했다. 16~17세기에는 마타람왕국의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족자 곳곳에서는 독립투쟁의 기록과 고대왕국의 융성한 역사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족자 시내에서 차량으로 30분가량 달리자 북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있는 힌두교 사원인 프람바난에 도착했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850년대쯤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지인들은 이곳을 ‘로로종그랑(아름다운 처녀)’이라고 부른다. 사원에 얽힌 설화 때문이다. 전해지는 설화의 내용은 이렇다. 한 왕자가 공주를 사랑해 결혼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결혼을 원하지 않던 공주는 왕자에게 1000개의 신전을 하룻밤에 쌓을 수 있다면 허락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왕자는 악마의 힘을 빌려 1000개의 신전을 순식간에 쌓아 올린다. 이것을 안 공주는 사람들에게 신전 하나를 몰래 무너뜨리라고 지시해 결국 999개의 신전에 그치고 만다. 이를 본 왕자는 공주를 석상으로 만들어 1000번째 신전을 완성한다. 바로 이 신전이 시바 요정 ‘두르가’상이다. 그녀를 만지면 예뻐진다는 믿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유독 이 두르가상만 새까맣게 손때가 묻어있는 까닭이다. 또한 이 사원 돌담에 부조된 쿠와라(kuwara)라고 불리는 부자의 신은 만지면 돈이 굴러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알려져 중국인들이 이곳을 오면 꼭 찾는 명소가 됐다.

신비로운 설화가 얽힌 프람바난사원

한때 이 사원은 16세기 대지진으로 모두 무너져 200년 넘게 방치되다가 1918년 인도네시아 정부가 뒤늦게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사원은 복원된 18개뿐이지만 장엄한 분위기는 사원을 가득 메운다. 사원 입구에 들어서면 아직 복원되지 못한 돌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여전히 한쪽에서는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이 사원의 일몰은 주변 경관과 어울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늦은 오후가 되자 사원 사이로 펼쳐지는 붉은 석양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일몰이 찾아오니 사원의 돌계단을 오르던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죽이며 걸음을 멈췄다. 사원 사이로 번지는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붉은 석양은 마치 사원에서 뿜어져 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높은 47m의 시바사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창조의 신, 왼쪽에는 수호신이 있다. 일몰이 절정에 달할 때 사원 안의 시바상은 마치 아우라를 내뿜듯 붉은 빛을 발해 신비스러움이 절정에 달했다. 시바상 주변으로 자연광이 들어오게끔 사원이 설계가 되었다.

힌두교 사원인 프람바난사원. ⓒphoto 올리브매거진
힌두교 사원인 프람바난사원. ⓒphoto 올리브매거진

극락세계로 가는 길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 프람바난사원이라면 일출일 때 탄성을 자아내는 사원도 있다. 바로 보로부두르사원이다. 이곳은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1814년 영국의 토머스 스탠퍼드 래플스가 발견하기 전까지 화산재에 덮인 채 방치됐던 곳이다.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조차 일출 때 이 사원에 오르고 싶어한다. 높이 약 31.5m의 10층으로 건축된 이 사원은 층계에 오를 때마다 생의 깨달음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다. 10개의 층은 각각 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다. 1~2층은 인과응보를, 3~7층은 속세를, 8~10층은 속세를 극복해야 도달하는 극락세계를 상징한다.

특히 3~7층의 돌벽에 부조된 부처의 생로병사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다. 세밀한 기술로 1500개가 넘는 돌에 하나하나 부처의 삶이 조각돼 있다. 마치 오랜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 빠져들게 만든다. 속세를 벗어나 극락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해가 떠오르면 심신(心身)이 치유된다고 현지인들은 굳게 믿는다. 그래서 새벽이면 어슴푸레한 사원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더듬더듬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아쉽게도 기자는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입장하느라 이 같은 기분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짧은 치마나 반바지는 남녀를 불문하고 입장이 안 되니 참고해야 한다. 만약 짧은 하의를 입은 경우라면 반드시 입구에서 긴 천을 빌려 달라고 해야 한다. 언덕 위의 이 층계식 사면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케 한다. 10개의 층과 6개의 정방형 단, 꼭대기에는 중앙의 스투파(stupa·돔 형상의 성소)로 이루어져 있다. 무려 200만여개에 이르는 화산석을 이용해 건축됐다. 중앙의 스투파는 종의 모습과 흡사하다. 꼭대기층에 오르면 다양한 자세의 불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중 목이 없는 불상도 더러 있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네덜란드인들이 훼손해 간 것이다. 아직 반환되지 못한 채 식민지 시절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마지막 10층을 향해 갈 때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가운데 가장 큰 스투파를 향해 가려면 주변의 작은 스투파를 거쳐 가야 한다. 이때 시계방향으로 홀수 바퀴를 돌아 큰 스투파에 당도하면 행운을 얻는다는 속설이 있다. 특히 7바퀴를 돌아서 도착했을 때가 가장 좋다고 한다.

불의 산 므라삐 활화산

인도네시아는 환태평양조산대 가운데서도 불의 고리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곳곳에 강력한 활화산이 아직도 많다. 족자에서 북쪽으로 30㎞ 떨어진 곳에도 ‘므라삐’라는 활화산이 있다. ‘불의 산’이란 뜻의 므라삐는 1년 내내 푸른 하늘을 향해 희뿌연 열구름을 내뿜고 있다. 이곳은 지프를 이용해 산 중턱까지 올라가는 관광 상품이 인기다. 지프에는 최대 4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모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가격은 두 시간 이용하는 데 50만루피아(약 4만3000원)다. 비포장 산길을 거침없이 오르면서 덜컹거릴 때는 아찔해서 손잡이를 잡은 손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지프로 한 30분가량 달리다 보면 산속에 박물관이 하나 있다. 이곳도 지나칠 수 없는 명소. 2010년 므라삐 화산이 대폭발 했을 때 마을 곳곳을 덮친 흔적들을 고스란히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동물 뼈, 열기에 녹아서 휘어버린 오토바이, 산산조각 난 각종 집기들이 당시 끔찍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산지기들의 사진 앞에서 관광객들은 두 손을 모으며 숙연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지프에 올라타 산 중턱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 다다르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하는 가파르고 깊은 협곡을 볼 수 있다. 이 협곡은 원래 큰 물줄기가 흐르는 겐돌강(gendol river)이었지만 화산 폭발 때 용암이 덮쳐 물이 모두 말라버렸다. 지금은 가파르고 깊은 협곡의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화산 덕분에 화산재 점토를 이용한 차진 흙으로 만든 도자기는 이 지역의 대표 상품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기 마을인 카송안이 족자에 있다.

족자는 인구 350만명 가운데 약 30%가 학생인 인도네시아 최고의 교육도시이다. 25개의 대학과 50여개의 전문학교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도 족자에 있는 가자마다대학교 출신이다. 낮의 족자거리는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가는 모습들로 넘쳐난다. 거리를 다니다가 히잡을 두른 한 학생이 기자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이 여학생은 “한국의 아이돌그룹 엑소와 탤런트 이민호는 이곳에서 매우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족자에서 가장 번화한 말리오보로 거리는 한국의 대학가와 흡사하다. 자전거택시인 베짝(becak)에 올라타고 시내를 돌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내 곳곳을 자세히 살필 수 있어 매력적이다. 가격은 3만~5만루피아(약 2500~4200원) 정도다. 이곳 현지인들의 표정은 늘 밝고 웃음이 넘쳤다. 족자에 밤이 찾아오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깊은 밤 길 주변으로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먹는 야식은 또 다른 별미. 먹거리 골목에서 새나오는 숯불에 구운 닭꼬치 냄새는 허기진 관광객의 발걸음을 잡는다. 나시고랭(볶음밥), 미고랭(볶음면), 사태아얌(닭 요리), 구라메(넙치과 생선) 등 인도네시아식 요리를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많은 오토바이가 도로가에 즐비해 있는 족자의 밤거리. ⓒphoto 김태형
수많은 오토바이가 도로가에 즐비해 있는 족자의 밤거리. ⓒphoto 김태형

족자의 낮과 밤

특히 족자는 구덱 요리가 발달했는데, 구덱은 잭프루트(jack fruit)로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과일이다. 크고 동그랗게 생긴 과일로 무게가 무려 10~30㎏에 달한다. 향긋하고 쫄깃한 맛이 일품인 이 과일은 각종 향신료와 코코넛밀크를 넣고 졸여 여러 가지 요리와 곁들여 먹는다. 짭짤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가격도 2만~5만루피아(약 1700~42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이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의 자랑 ‘빈땅’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면 열대야의 무더위는 말끔하게 해소된다.

족자의 사람들은 낮보다 밤에 더 활력이 넘친다. 특히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거리 곳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빈땅 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의 풍경은 이색적이다. 족자는 아직 때묻지 않았다. 세계적인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이 도시의 문명과 잘 어우러진 독특한 매력의 도시가 분명하다.

여행 정보

인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공항까지는 7시간이 걸린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은 인천~자카르타, 인천~발리 노선을 매일 운항한다.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까지는 항공편으로 1시간30분이 걸린다.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는 서울보다 2시간이 느리다. 화폐는 루피아를 쓰고 현재 환율 기준으로 1만루피아가 850원 정도다. 건기는 3~10월, 우기는 11~2월이다.

키워드

#여행
김태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