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특별 공개강연에서 손정의 회장(오른쪽)과 유력한 후계자 니케시 아로라가 대담을 하고 있다. ⓒphoto 소프트뱅크 홈페이지
지난해 10월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특별 공개강연에서 손정의 회장(오른쪽)과 유력한 후계자 니케시 아로라가 대담을 하고 있다. ⓒphoto 소프트뱅크 홈페이지

“30년 뒤 소프트뱅크를 지금의 100배 규모로 키우려면 보통의 생각으론 불가능하다. 밖에 큰 인물이 있다면 데려와야 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0년, 창립 30주년 주주총회에서 밝힌 말이다. 한 달 뒤인 2010년 7월, 그는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열었다. 일명 ‘소프트뱅크 후계자 양성소’다. 300명 정원인 이곳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연령, 학력, 국적 불문이다. 실제로 이곳에는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의 후계자 후보가 속해 있고, 일본인이 대부분인 가운데 중국인, 미국인 등 외국인도 있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에는 한국의 젊은 경영인 두 명이 있다. 고승재(40) 넥스큐브코퍼레이션 대표와 김재현(34)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34)가 그들이다. 넥스큐브코퍼레이션은 자기주도학습을 돕는 ‘에듀플렉스’ 등 자기주도적 삶을 돕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고, 크레비스파트너스는 선한 의도를 가진 기업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 기업’이다. 고승재 대표는 2013년 5월에, 김재현 대표는 2014년 10월에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학생이 됐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기본적으로 ‘후계자 양성기관’이다. 후계자가 되기 위한 실전 교육을 하고, 교육과정 내내 ‘내가 소프트뱅크 CEO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도록 자극받는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전 세계의 팔딱거리는 젊은 인재의 두뇌를 훔치는 무대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아에서는 원생들에게 소프트뱅크그룹 운영 관련 프로젝트를 내주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도출된 아이디어를 실제로 경영에 반영하기도 한다.

손정의는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인재를 볼 때 역점을 두는 부분은 ‘눈빛이 빛나고 있는가’와 ‘높은 뜻을 가지고 있는가’다. 머리 좋은 사람과 장사에 재능 있는 사람은 널렸기 때문에 진정한 인재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다시 말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후계자 양성기관인 동시에 손정의식 인재 활용의 장(場)이기도 하다.

고승재·김재현 대표는 두 번째 경우다. 이들은 둘 다 손정의 후계자를 꿈꾸며 아카데미아에 지원한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지원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카데미아 지원 당시 소프트뱅크 임원들 앞에서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손정의 회장을 존경해왔다.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경영적인 테크닉 때문이 아니다. 정보혁명을 이뤄서 인류를 행복하게 하겠다는 마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존경한다. 아카데미아를 통해 그가 꿈꾸는 정보혁명에 동참하고 싶었고, 경영자로서 배우고 싶었다.”(고승재 대표)

“애초부터 소프트뱅크의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아카데미아를 통해 동아시아권의 다양한 정보나 금융흐름을 포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지원했다. 아카데미아에 지원하면서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다. 절실하면 오히려 낙방할 수 있다. 그들이 아니어도 잘될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들의 의향 같다. 아카데미아 학생과 소프트뱅크의 관계는 상호 여유 있는 관계다. 우리 회사의 업종인 ‘임팩트 투자’ 자체가 소프트뱅크의 지향점과 비슷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투자. 선한 의도를 내세우는 기업가가 한·중·일에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이런 면을 좋게 본 듯하다.”(김재현 대표)

김재현 대표의 기수에 함께 합격한 원생 중에는 와세다대학교 3학년 재학생도 있다. 수학과 물리 분야 수상경력이 화려한 중국인이다. 김 대표는 “경험이 많다고 아카데미아 합격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라며 “손정의의 20대, 30대, 40대 시절을 꿈꾸는 이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의 유력한 후계자는 이미 결정됐다. 구글 출신의 인도인 니케시 아로라가 그 주인공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5월 아로라에 대해 “아로라의 직책은 소프트뱅크 그룹 프레지던트”라며 “유력한 내 후보자”라고 밝혔다.

유력 후계자 아로라, 반년 급여 1480억원!

아로라에 대한 손 회장의 신임은 전적이다. 손 회장은 2010년 창립 30주년 주주총회를 통해 “소프트뱅크 그룹의 CEO가 될 사람에게는 스톡옵션으로 100억엔 정도를 줄 생각이다”라는 통 큰 발언을 했는데, 아로라에게 실제로 지급된 급여는 이보다 훨씬 많다. 지난 2014년 9월부터 2015년 3월까지 6개월간 받은 아로라의 급여는 무려 165억엔(약 1480억원)에 이른다. 이로써 아로라는 연봉 왕에 올랐다. 일본의 연봉 왕을 장기 집권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의 2014년 연봉은 10억3500만엔(약 93억원). 반년간 아로라가 받은 급여만 따져도 카를로스 곤 회장의 15배에 달한다. 아로라의 급여에는 스톡옵션 20억엔과 계약 축하금 등이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기록적 급여다. 손 회장의 차기 후계자에 대한 비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도 가족 승계가 흔하다.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일본에서는 가족 DNA가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은 다르다. 손 회장은 애초부터 가족 승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손정의 회장에게는 두 딸이 있다. 그는 한 매체에서 “두 딸은 맞벌이 주부다. 성실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딸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인류 역사상 3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의외로 드물다. 중국의 청나라, 동로마 제국을 비롯해 11개국 정도다. 이들은 하나같이 장자 상속을 하지 않았다. 능력과 무관하게 큰아들이라서, 내 핏줄이라는 이유로 후계자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손 회장이 인재 영입에 들인 공은 상상 이상이다. 손 회장이 니케시 아로라를 처음 만난 것은 아로라가 구글에 근무할 때다. 협상 파트너로 만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손 회장은 질긴 구애작전을 폈다. 출장차 일본을 찾은 아로라를 자택으로 초청해 골프를 함께 치는가 하면, 아로라의 결혼식 직전에 전화를 걸고 이탈리아에서 치른 그의 결혼식에 몸소 찾아가기도 했다. “나는 구글을 사랑한다”며 내내 거절하던 아로라는 급기야 손정의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 배경에 대해 아로라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비전을 실현시키는 일을 좋아하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훌륭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해 왔다.… 멋진 일을 한다는 것은 세계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다. 손 회장에게 그런 비전이 있어서 나는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손 회장은 아로라에 대해 “그는 먹잇감을 좇는 능력이 있고, 높은 뜻을 이루기 위한 강한 기개가 있으며,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또한 갖췄다”고 평했다.

아로라가 사실상 후계자로 결정됐지만 유력한 후계자 후보생 5명 정도가 늘 거론된다. 아카데미아에서는 6개월마다 원생들의 등수가 공개되는데, 상위 5위까지가 유력한 후계자 후보다. 고승재 대표는 “아로라가 후계자라고 하면서도 5명 정도에 후보생에 대한 가능성은 늘 열어두는 것 같다”며 “경영은 변수가 많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대비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원생 고승재 넥스큐브코퍼레이션 대표. 또 한 명의 한국인 원생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며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원생 고승재 넥스큐브코퍼레이션 대표. 또 한 명의 한국인 원생 김재현 크레비스파트너스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며 사진 촬영을 사양했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손 회장은 교장 선생님

아카데미아에서 손정의 회장은 ‘교장 선생님’을 자처한다. 그는 종종 “교장 선생님이 되는 건 내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의 교장으로 죽고 싶다”며 “사장이나 회장으로 불리며 죽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라고 말해 왔다. 고승재 대표는 손정의 회장의 아카데미아 강연에 대해 “너무 재밌있다. 유머 감각이 넘치신다”며 최근엔 “오래전부터 60세에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지금 와 보니 은퇴를 너무 빨리 잡은 것 같다는 말을 농담식으로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현장의 긴장감이 상당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우리에게는 이웃 나라의 유명 경영인 정도이지만, 일본에서 손정의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위상에 필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아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고, 손정의 회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고 대표는 아카데미아 방식을 회사에 적용해 ‘아이디어 대회’를 열었다. “회사의 더 큰 발전을 위해서는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댔을 때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는 교훈에서다. 아이디어 대회는 2015년 한 해 동안 넥스큐브코퍼레이션의 에듀플렉스 직원들을 대상으로 적용했다. 전국 에듀플렉스 120개 지점 500명 임직원 중 300명이 참여했다.

“우리 회사의 기치는 ‘라이프 매니지먼트를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다. 이런 일환으로 피트니스센터인 ‘스포플렉스’, 플래너인 ‘윈키아 플래너’를 만들었다. 어릴 때에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업가가 되려 했는데, 아카데미아를 통해 점점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해진다. 받는 것 이상의 가치를 고객들에게 전하는 회사를 만들어 가려 한다.”

고승재 대표는 손 회장에 대해 “대단한 전략가”라고 평했다. “손 회장은 미래의 흐름을 읽고, 액션을 취한 회사를 찾아내고, 그 회사 CEO의 눈빛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그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발상 자체가 다르다. 인재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방식도 그렇고, 투자한 회사가 1300여개나 되는 것도 놀랍다. 경영자로서 어떤 마인드로 임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세상의 흐름과 그 흐름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김재현 대표가 이끄는 ‘크레비스파트너스’는 쉽게 말해 좋은 일을 하는 회사를 골라 투자하는 회사다. ‘돈 벌어서 좋은 일에 쓴다’는 발상의 선후를 뒤집었다. 나무 심는 게임 ‘트리 플래닛’,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소셜다이닝 플랫폼 ‘집밥’ 등이 이들이 투자한 회사들이다. 김재현 대표는 자신과 회사가 노출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사진 촬영도 사양했다. 다만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의 좋은 취지를 널리 알리고, 한국에도 유사한 교육기관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소프트뱅크는 단지 일본 회사가 아니다. 한·중·일을 통틀어 가장 크고 담대한 벤처투자 회사다. 그런 점에서 가장 훌륭한 실행력을 갖고 있다. 이 내용을 학습하고 내재화할 수 있는 기회가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인이나 중국인, 인도인 등에게 개방돼 있다는 점을 높이 산다. 이런 개방성이 일본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저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선배 기업인들도 다양한 좋은 기회를 열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300명 정원, 후보자 상호 평가 통해 6개월마다 물갈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홈페이지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홈페이지

손정의 후계자를 양성하기 위해 2010년 7월 개원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만든 교육기관 ‘아카데메이아’를 본떴다. 고대 아카데메이아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지나지 말라”는 문구가 있듯,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문에는 “디지털 정보혁명에 뜻이 없는 자, 이 문을 지나지 말라”는 문구를 쓰고 싶다고 손 회장이 밝혔다. 이곳은 손 회장이 19세부터 구상한 계획이 현실화된 공간이다. 그는 “나는 열아홉 살 때부터 60대가 되면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주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돈이나 명예보다 사람을 남기고 싶다. 누군가를 통해 내 뜻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아카데미아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회사 직원뿐 아니라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국적, 성별, 소속, 나이 불문이다. 수업은 평균 한 달에 한 번, 대부분 수요일 저녁에 이루어진다. 정원은 300명. 200명 정도는 소프트뱅크 그룹 내에서, 나머지 100명은 외부에서 선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점점 그룹 내 학생은 줄고, 외부 출신이 느는 추세다. 프로젝트 등을 통해 눈에 띄는 원생이 있으면 후계자가 아니더라도 계열사에 스카우트되는 경우가 흔하다. 최근엔 이곳 출신의 IT회사 대표들이 늘고 있어 A급 인재의 요람으로 평가받는다.

경쟁은 치열하다. 6개월마다 5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하위 10%를 탈락시킨다. 한 조를 15~20명으로 나누고, 각자 5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한 후 원생 서로를 평가하게 한다. 예선을 통과하면 결선에서는 손 회장 앞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후계자는 10년 단위로 교체한다는 것이 손 회장의 복안이다. 차기 후계자를 미리 내정하고 충분한 경영수업 과정을 밟게 한다. 그는 지난 1월 1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바통을 이어받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며 “두 번째 주자는 속도를 올리면서 첫 번째 주자로부터 바통을 이어받고 전속력으로 뛰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일본 기업의 사장 이취임식에서 차기 사장이 ‘지명을 받아서’ ‘예상치도 못하게’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 차기 사장은 아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학생들의 지원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프트뱅크의 후계자를 꿈꾸며 오는 이도 많지만, 소프트뱅크의 경영 시스템과 손정의 회장의 경영철학을 배우기 위해 지원하는 이도 많다. 당장 후계자가 되지 않더라도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3, 4대 후계자를 꿈꾸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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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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