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4월은 생동감이 넘친다. 마침내 추운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 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개성 있게 꾸민 발코니에는 집안에 있던 화분들을 내놓아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도심을 벗어나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이처럼 평온한 풍경을 만나는 일 또한 독일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라인강의 진주’라 불리는 뤼데스하임(Rudesheim) 역시 독일을 대표하는 ‘예쁜 마을’ 가운데 하나다. 특별한 문화유적이 있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4월이 되면 세계 각국의 많은 여행자들이 뤼데스하임을 찾는다.
라인강변의 아름다운 마을, 뤼데스하임.
라인강변의 아름다운 마을, 뤼데스하임.

겨울 내내 을씨년스러웠던 라인강 언저리에 따사로운 봄볕이 내려앉는 4월. 드문드문 이어지던 여행자들의 발길도 이즈음이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라인강을 끼고 있는 쾰른, 코블렌츠, 뤼데스하임, 마인츠의 봄은 이렇게 라인강으로부터 찾아온다. 이들 도시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곳은 뤼데스하임이다. 뤼데스하임에 봄이 오면 긴 겨울 동안 운항을 중단했던 라인강 유람선이 운항을 재개하고 도시 자체도 활기를 띤다.

뤼데스하임은 프랑크푸르트에서 60㎞쯤 떨어져 있다. 작고 예쁜 골목길, 쉴 새 없이 화물선과 유람선이 오가는 라인강, 가파른 언덕에 펼쳐진 포도밭 풍경 등은 그 자체가 낭만이며 아름다운 풍경화다. 뤼데스하임은 유람선을 타려는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도시로서의 이미지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잠깐이라도 큰 길에서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여행자라면 뤼데스하임 특유의 소박하고 정감 어린 풍정에 금세 매료되고 만다.

뤼데스하임 최고의 명물은 이른바 ‘독일에서 가장 예쁜 골목길’을 자처하는 드로셀가세(일명 티티새 골목)다. 덩치 큰 두 사람이 겨우 비켜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브라스밴드의 경쾌한 폴카 연주와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뤼데스하임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골목길 이곳저곳을 걸어보는 게 제격이다.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 간단한 선물을 준비해도 좋다. 뤼데스하임의 권할 만한 기념품으로는 각종 가죽 제품을 비롯해 값이 싸고 색상도 다양한 스카프, 원목으로 만든 뻐꾸기시계, 독특한 모양의 뤼데스하이머 커피잔 등이 있다.

뤼데스하임에서 꼭 해봐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상큼한 과일 향이 나는 ‘뤼데스하임 와인’을 맛보는 것이다. 골목길을 걷다가 지치면 마음에 드는 카페로 들어가 와인을 마시거나, 뤼데스하임에서 만들어지는 브랜디인 ‘아스바흐 우어알트(Asbach Uralt)’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스바흐는 1892년부터 뤼데스하임에서 만들기 시작했으며 알코올 도수는 40도다.

뤼데스하임의 포도밭과 개인 와이너리.
뤼데스하임의 포도밭과 개인 와이너리.

세계적 화이트 와인의 명산지

뤼데스하임의 와인은 그냥 보통 와인이 아니다. 바로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슬링(화이트 와인)의 명산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 5대 품종’ 하면 샤도네이, 리슬링, 쇼비뇽블랑, 세닌블랑, 세미용 등을 꼽는데 뤼데스하임이 속한 ‘라인가우(Rheingau)’ 지역에서 고급 리슬링을 생산하고 있다. ‘라인강 유역의 와인 산지’를 의미하는 라인가우 지역은 호흐하임(Hochheim)부터 로르히(Lorch)까지 약 36㎞ 구간을 가리킨다. 그 중심에 있는 마을이 뤼데스하임이다.

리슬링은 라인강변의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이다. 하지만 충분한 햇볕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라인강변의 포도밭들은 대부분 급경사의 비탈면에 조성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라인가우의 리슬링은 다른 지역에 비해 향은 조금 약한 반면 깊은 맛을 지니고 있다. 입맛에 따라 다르지만 뤼데스하임을 찾아온 여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스위트한 리슬링을 선호하는 편이다.

뤼데스하임 주변에는 아이스 와인으로 유명한 슐로스 요하니스베르그를 비롯해 슐로스 폴라즈, 슐로스 라인하르트하우젠 등 많은 와이너리가 있다. 이 가운데 슐로스 폴라즈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이곳은 세계 곳곳에 현존하는 와이너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1211년에 와인을 만들어 수도원에 판매했다는 전표가 800년이 넘는 역사를 대변한다. 슐로스 폴라즈의 와인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직접 찾아와서 맛을 보고 그 후기를 남겼을 정도로 유명하다.

드로셀가세의 입구
드로셀가세의 입구

뤼데스하임에는 리슬링 말고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커피 특유의 쓴맛보다 톡 쏘는 맛이 더 강한 ‘뤼데스하이머 커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뤼데스하이머 커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테이블로 재료(아스바흐 미니어처 1병, 각설탕 3개, 커피, 휘핑크림)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는 잘록하게 생긴 커피잔에다 아스바흐 미니어처를 붓고, 각설탕을 넣은 후 불을 붙이고, 커피를 부은 후에 휘핑크림을 얹으면 순식간에 뤼데스하이머 커피가 완성된다. 커피의 쓴맛과 생크림의 단맛, 알코올 도수 40도의 아스바흐가 만들어내는 맛(?)은 과연 어떨까.

뤼데스하임의 중심가인 드로셀가세의 노천카페에서 흥겨운 시간을 보낸 여행자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골목에서 빠져나와 브렘저성의 와인박물관에 들르거나, 곤돌라를 타고 전망대인 니더발트까지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라인강의 절경을 감상한다. 곤돌라가 도착한 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아주 커다란 여신상을 만나게 된다. 38m 높이를 자랑하는 이 청동상의 주인공은 게르마니아 여신이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긴 프로이센 왕국의 빌헬름 1세에 의해 1877년에 세워졌다. 일종의 독일통일 기념탑인 셈이다. 니더발트 전망대에서 뤼데스하임 중심지까지는 포도밭 사이로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올라갈 때는 곤돌라를 타고, 내려올 때는 포도밭 사이로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 오솔길은 독일의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즐겨 걸었다 해서 ‘브람스의 길(Brahmsweg)’이라 불린다.

‘아름다운 골목길’로 유명한 드로셀가세.
‘아름다운 골목길’로 유명한 드로셀가세.

라인강 유람선 타고 로렐라이로

세계 각국의 수많은 여행자들이 뤼데스하임을 즐겨 찾는 이유는 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이네의 시로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라인강의 얼굴과도 같은 로렐라이는 뤼데스하임과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로렐라이’ 하면 강변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 134m의 암벽을 가리키지만 독일 가곡 ‘로렐라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독일의 후기 낭만파 시인인 브렌타노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삼은 ‘라인강 설화’가 ‘로렐라이’의 원조 격이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시를 쓰고, 프리드리히 질허는 곡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독일 가곡 ‘로렐라이’다.

‘프랑스인의 머리에 독일인의 마음을 가졌던 시인’이라 불리던 하인리히 하이네. 라인강변의 뒤셀도르프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라인강을 ‘마음의 고향’ 또는 ‘평온한 안식처’로 삼았다. 누구보다 라인강을 사랑했던 시인 하이네.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의 그의 묘석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

‘언젠가는 길에서 지칠 나그네의 마지막 휴식처는 어디일까/ 남국의 야자나무 그늘일까/ 아니면 라인강변의 보리수나무 아래일까’.

매시 정각에 ‘로렐라이’를 연주하는 종탑.
매시 정각에 ‘로렐라이’를 연주하는 종탑.

뤼데스하임은 분명 고즈넉하고 멋진 여행지이지만 라인강 유람선의 주요 승선지로도 유명하다. 라인강은 독일을 대표하는 긴 물줄기다. 알프스 산자락에서 발원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지나는 라인강의 길이는 약 1320㎞. 이 가운데 약 700㎞가 독일에 속해 있다. 따라서 라인강 하면 가장 먼저 독일이 떠오르고 이어서 유람선 여행과 중세의 고성, 포도밭, 로렐라이 등이 연상된다.

라인강을 끼고 있는 라인계곡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중북부 라인계곡에 오래된 고성(古城)과 예쁜 마을이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은 2002년에 그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북부 라인계곡’은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빙엔에서 코블렌츠까지 약 65㎞ 구간을 가리킨다. 이 구간에 로렐라이 언덕이 있으며, 빙엔은 뤼데스하임의 이웃 마을이다.

강 언덕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포도밭, 협곡 곳곳에 세워진 중세의 고성들, 따사로운 햇살을 벗 삼아 유람선 갑판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여유로운 모습 등 어느 것 하나 낭만적이지 않은 게 없다. 독일 여행. 특히 뤼데스하임을 찾은 여행자라면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한 번쯤은 유람선을 꼭 타봐야 할 일이다. 오래도록 간직할 만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행 정보

가는길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인천~프랑크푸르트 구간 직항편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1시간40분(아시아나항공)~12시간5분(대한항공)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뤼데스하임까지는 2시간 간격으로 교외선 전철이 운행되고 있다. 약 1시간10분이 소요된다.

라인강 유람선 : 일명 ‘로맨틱 라인’이라 불리는 마인츠~코블렌츠 구간의 유람선 소요시간은 약 5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라면 뤼데스하임에서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까지의 구간을 선택해도 좋다. 이 구간에서는 ‘라인강’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로렐라이 언덕은 물론이고, 팔츠그라펜슈타인성과 슈탈레크성을 비롯한 많은 고성을 볼 수 있다. 뤼데스하임에서 장크트 고아르스하우젠까지는 약 30㎞이며, 유람선으로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유람선 안에서는 간단한 음식, 커피, 와인, 맥주 등을 판매하고 있다. 라인강 유람선은 여행의 특성상 매년 4월부터 10월 사이에만 운항한다. 그동안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KD라인에서 운영하는 유람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으나, 2015년부터 20%만 할인을 해주고 있다.

쾰른의 명물

기적의 물로 만든 향수 ‘오 드 콜로뉴’

라인강 유람선의 종점인 쾰른은 쾰른대성당, 초콜릿, 쾰쉬(쾰른 맥주) 등 유난히 명물이 많다. 향수인 ‘오 드 콜로뉴’도 널리 알려져 있다. ‘오 데 콜롱’이라는 프랑스어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오 드 콜로뉴’는 쾰른에서 생산되는 향수의 이름이다. ‘오 드 콜로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독특한 냄새가 나는 쾰른의 물에서 비롯되었다. 16세기 무렵. 쾰른 사람들은 쾰른 지방의 물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급기야 쾰른의 물은 18세기에 이르러 ‘기적의 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유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세기 초에 쾰른의 물을 의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기적의 물’은 화장수(향수)로 탈바꿈을 했다. 그 당시 글로켄거리 4711번지에 위치한 빌헬름 물헨스의 공장에서는 대량으로 ‘오 드 콜로뉴’를 만들어 유통시켰다. 마침내 1875년 ‘4711’이 상표로 정식 등록되면서 오늘날 ‘오 드 콜로뉴’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다. 지금도 클로켄거리 4711번지에서는 고풍스러운 청록색 병에 담긴 ‘오 드 콜로뉴’를 파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쾰른대성당 근처 호에거리 입구에도 ‘오 드 콜로뉴’를 파는 가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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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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