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아로초(Mangiarozzo)를 찾아보면 될 것이다. 인터넷 시대와 정반대인 아날로그 가치관을 내세우지만 이탈리아인들이 주목하는 식당들이 많이 소개돼 있다. 나도 좋아하지만, 내 부모와 친척들이 한층 더 애용한다. 종이책은 물론 웹으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피렌체발 토리노행 열차 속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이탈리아 청년 자코보(Jacobo)로부터 들은 ‘중요한’ 정보다. 가방 안에 요리모자 같은 것이 눈에 띄기에 “요리사냐”고 물었더니, “정식 셰프는 아니고 피렌체호텔의 요리 견습생”이란 답이 돌아왔다. 너무도 기뻤다. 요리를 공부하는 젊은이란 점과, 뭔가 열심히 배우는 견습생이란 점이 한층 더 흥미를 끌었다. 3시간에 걸친 열차 속 대화를 통해 그동안 궁금했던 이탈리아 요리에 관한 것들을 전부 물어봤다.

“21세기 이탈리아 최고 요리의 기준이나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같은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나 웹사이트를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런저런 대화 끝에 던진,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형이하학적 질문이다. ‘만지아로초’는 그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곧바로 스마트폰을 뒤졌다. 5년 전부터로 알고 있지만, 세상과 담을 쌓은 듯한 이탈리아도 열차 내에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해오고 있다. 2.99유로를 내고 이탈리아 요리 길잡이인 만지아로초 디지털판을 애플 앱 가게에서 구입했다.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2분 만에 필자의 모바일 안으로 정보가 들어왔다.

‘만지아로초’는 음식점 수준을 평가하는 책이다. 이탈리아어로 ‘먹다(Mangiare)’라는 말에서 따온 신조어가 책의 이름이 됐다. 원래 요리도구와 음식 레시피를 소개해 오다가 내친김에 음식점 평가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요리는 물론 요리도구에 대해서도 남다른 정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탈리아인이다. 명필이 붓을 안 가린다는 것은 한국식 발상이다. 잘 쓸수록 한층 붓을 가린다. 둥근 병 하나로 뚝딱 해치우면 될 파스타 반죽 늘리는 도구도 굵기와 길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늘고 긴 봉(棒)에서부터 중간에 홈이 파인 두껍고 짧은 도구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류에 이른다. 부엌용 칼의 경우 보통 집에도 10여 종류는 걸려 있다. 씀씀이가 전부 다르다. 참고서가 많을수록 공부를 안 한다고 하지만, 수많은 요리도구를 전부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이탈리아 가정이다. 이탈리아 상식에 따르면 요리도구에 민감할수록 요리도 잘한다. 만지아로초는 그 같은 배경하에서 탄생했다.

01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의 보티그리에리아 제과점.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커피 한 잔에 1유로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경영이기 때문에 운영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br></div>02 이탈리아판 미슐랭에 해당하는 음식점 평가서 ‘감베로 로소’.<br>03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명물은 살라미와 푸로슈터다. 큰 접시 하나에 담아주지만 만지아로초 추천집의 가격은 10유로 내외다.
01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의 보티그리에리아 제과점.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커피 한 잔에 1유로를 유지하고 있다. 가족경영이기 때문에 운영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02 이탈리아판 미슐랭에 해당하는 음식점 평가서 ‘감베로 로소’.
03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의 명물은 살라미와 푸로슈터다. 큰 접시 하나에 담아주지만 만지아로초 추천집의 가격은 10유로 내외다.

미슐랭과 만지아로초의 이탈리아는 다르다

프랑스 음식이 개성과 창조를 내세운다고 할 때 이탈리아 음식은 신선함과 지역성이 키워드다. 이탈리아인들은 개성이나 창조보다 조상 대대로 먹어온 신선한 음식을 지역적 특성에 맞게 계속해 즐기자는 데 방점을 둔다. 변모를 거듭하는 프랑스 요리와 달리, 시간이 흘러도 큰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음식 평가에 관한 책이나 정보의 경우 이탈리아가 프랑스보다 월등히 앞서 있다. 이유는 지역성에 있다. 지역에 맞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상대 음식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음식점 평가서가 등장한다. 프랑스는 ‘미슐랭 레드 가이드’(이하 미슐랭) 하나를 중심으로 하지만, 이탈리아는 춘추전국시대에 비견될 수 있다. 많고 많은 음식점 평가서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크게 네 개 정도다.

먼저 미슐랭이다. 파리에 본부를 둔 미슐랭은 이탈리아의 음식까지 평가한다. 이탈리아인이 즐기는 양과 맛이 아닌, 프랑스인이 중시하는 질과 멋에 기초한 평가다. 원래 이탈리아인들과 무관한, 프랑스인이나 관광객들을 위한 책이었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관심이 폭증한다. ‘마스터 셰프(Master Chef)’라는 이탈리아 TV 프로그램을 통해 미슐랭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려졌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최후 승자나 심판이 미슐랭 관계자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요리만이 아닌, 프랑스 요리도 특별하다는 사실을 마침내 이탈리아인들도 알게 됐다. 그러나 저녁 한 끼에 1인당 100유로를 바치려는 이탈리아인은 아직 극소수다. 나폴리와 시칠리아 사람들을 멍청이로 여기는 북부의 이탈리아인이 즐기는 평가서일 뿐, 보통 정서와 동떨어진 평가서다.

두 번째는 최근 글로벌 차원에서 맹위를 떨치는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다. 2000년 미국에서 탄생된 이래 하루 1억7000만명(2015년 기준)이 정보탐색을 한다는 여행전문 웹사이트다. 필자도 애용하지만, 호텔 음식점 렌터카에서부터 실시간 현지 관광정보도 얻을 수 있다. 여행객 필수 사이트 중 하나다. 미국인이 외국에 나갈 때 반드시 검색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미식과 무관하다. 직접 봤지만, 프랑스 요리점에 가서도 코카콜라를 주문한다. 따라서 외국에 나가도 어디에 가야 할지 잘 모른다. 이때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난에 올라온 미국인들의 정보가 주효하다. 미국의 힘은 외교·군사·안보만이 아닌, IT 내의 리뷰나 댓글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미국인이 어떤 음식점에 대한 리뷰를 좋게 쓸 경우 미국인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관광객 심지어 현지의 젊은이들도 몰린다. 최근 유럽, 일본, 동남아시아 체류 중 알았지만 트립어드바이저 리뷰난 호평(好評)을 부탁하는 호텔이나 음식점 관계자가 엄청 많다. 올빼미 눈을 상징하는 트립어드바이저 로고를 미슐랭 스타와 같은 차원으로 받아들인다. 미국인만이 아니라 청바지 차림의 쿨(Cool)한 관광객들이라면 쉽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음식점 문에 붙은 트립어드바이저 로고다.

세 번째는 이탈리아판 미슐랭에 해당하는 ‘감베로 로소(Gambero Rosso)’다. 붉은 새우란 의미를 가진 말로, 1986년 로마에서 창간된 음식점 평가서다. 이탈리아 음식에 관한 한 필자가 가장 신뢰하는 정보지로, 인터넷판도 활용할 수 있다. 음식점의 수준은 포크 수로 결정한다. 포크 세 개는 미슐랭 별 세 개에 해당한다. 2015년 기준으로 이탈리아에서 포크 3개를 얻은 곳은 전부 21군데다. 미슐랭과는 다른 기준과 가치관에 의해 자국의 음식점을 평가한다. 따라서 미슐랭 스리 스타라도 감베로 로소의 포크를 못 얻을 수 있다.

네 번째가 바로 만지아로초다. 기차에서 만난 자코보가 만지아로초를 추천한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이탈리아인이라면 동감하는, 4개항에 달하는 최고의 레스토랑에 관한 기준을 만지아로초를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지아로초는 선정 음식점을 지역에 따라 일렬로 나열할 뿐이다. 따로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미슐랭처럼, 별의 숫자가 아니라 만지아로초에 들어가 있느냐 여부가 관건일 뿐이다. 2016년도 만지아로초는 이탈리아 내 1000개의 음식점이 이하 4개항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미식처(美食處)라고 발표한다.

1. 스리 코스 저녁 요리라 해도 최고 45유로가 마지노선이다.(와인과 팁은 제외)

2. 그 지방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토속적 슬로푸드다.

3. 가족경영이 대부분이고, 주된 손님은 음식점 근처 지역주민들이다.

4. 레스토랑이 아닌, 트라토리아(Trattoria)와 오스테리아(Osteria)만을 대상으로 한 곳이다.

04 토리노를 대표하는 만지아로초 추천 음식점인 ‘테베라 델오카’. 주로 오리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집으로, 가족경영이다.<br></div>05 만지아로초가 추천한 피렌체 음식점 ‘트라토리아 마리오’의 명물 중 하나인 소혀 요리. 삶은 음식으로 소금을 뿌리지 않고 올리브오일 하나만 뿌려서 먹는다.
04 토리노를 대표하는 만지아로초 추천 음식점인 ‘테베라 델오카’. 주로 오리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집으로, 가족경영이다.
05 만지아로초가 추천한 피렌체 음식점 ‘트라토리아 마리오’의 명물 중 하나인 소혀 요리. 삶은 음식으로 소금을 뿌리지 않고 올리브오일 하나만 뿌려서 먹는다.

가격은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

여기서 보듯 가격은 음식점을 선택할 때 가장 중시 여기는 부분이다. 돈으로 한순간 왕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겠지만, 공화국 정신에 투철한 이탈리아인들은 왕의 음식 자체를 안 믿는다. 슬로푸드와 지역민이 사랑하는 음식점은 미식처로서의 기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세기 말부터 등장한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의 출발지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의 브라(Bra)다. 미국식 패스트푸드에 반하는 개념으로, 전통기법의 농작물 생산에 기초한 신선한 재료와 지역 내 농가 보호에 역점을 둔다. 100% 생태계 리듬에 맞추는 삶과 생활수칙을 중시한다. 슬로푸드가 지역주민과 결탁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역설적으로 설명하자면, 지역주민이 외면하는 음식점은 슬로푸드와 거리가 먼 곳이란 의미다. 만지아로초는 고가의 레스토랑은 평가 대상에서 아예 제외한다. 이탈리아 음식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품격 있는 고가 레스토랑, 캐주얼한 트라토리아, 간이음식점이자 싸구려 선술집인 오스테리아가 3개 영역이다. 고가의 레스토랑이 아닌, 중가의 트라토리아와 저가의 대명사 오스테리아가 주인공이다.

만지아로초의 기준에 따라 필자가 경험한 피렌체의 음식점들을 되살펴봤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10여년 전 우연히 발견한 이래, 피렌체에 머무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들른 ‘트라토리아 마리오(Mario)’가 추천 음식점 중에 포함돼 있다. 피렌체 중앙시장(Mercato Centrale Firenze) 바로 옆에 있는 50㎡(약 15평) 크기의 작은 음식점이다. ‘동물적 후각’에 기초한 판단이지만, 맛있는 집은 밖에서 봐도 표가 난다. 사람이 붐비고 특히 나이 든 현지인이 많다. 바(Bar)가 있을 경우 서 있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 트라토리아 마리오는 가족경영 레스토랑이다. 60대 셰프 아버지를 비롯해 아들, 손자, 사촌 등이 총출동해 식당을 경영한다. 10여명의 직원이 모두 가족이다. 모두 피렌체 상징 컬러인 보라색 상의를 입고 있다.

저녁은 팔지 않고 점심때만 문을 연다. 휴일인 일요일을 제외하면 1주일 6일 장사가 전부다. 오전 11시30분 문을 여는 즉시 식당이 손님들로 꽉 찬다. 자리가 비는 것은 4시 문을 닫기 직전이다. 들어서는 즉시 지정해주는 곳에 가서 앉아야 한다. 일본의 라멘집처럼 합석이 일반적이다. 테이블 하나에 전혀 모르는 사람 4명이 앉아 식사를 한다. 묵묵히 먹는 사람도 있지만, 필자처럼 한 명씩 ‘신원조회’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음식점에 대한 소문이 일본 여행 가이드북에 이어 한국·중국 가이드북에까지 소개되면서 최근에는 손님의 70% 정도가 아시아인이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은 찾기 어려웠고 손님들 대부분이 이탈리아인이었다. 지역 내 좋은 음식점이 관광객으로 차게 되면서 미안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현지인이 주인인데, 외국인이 자리를 차고 앉아 있으니 안방을 뺏긴 셈이다.

아시아인 손님 대부분은 피렌체의 명물 스테이크를 시킨다. 피가 흐르는 5㎝ 두께의 스테이크를 전부 먹을 수 있는 아시아인은 극히 드물다. 필자의 경우 스테이크를 제외한 음식만을 전부 주문했다. 주문은 ‘투토 메조(Tutto Mezzo·All Half)’로 통일한다. 따로 주문표를 보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종류별로 절반씩 갖다 달라는 의미다. 물론 하우스 와인과 물도 큰 병의 절반씩 주문한다. 마리오의 명물인 콩수프 요리에서부터, 육해공(陸海空) 음식이 총출동한다. 소, 닭, 생선 모두 산과 바다에서 자유롭게 자란 순수 자연산이다. 요리도 중요하지만, 고기 맛 자체가 다르다. 음식에 앞서 치즈도 정량의 절반 정도만 제공된다. 흥미롭게도 피렌체 지방에서는 치즈를 식후가 아닌 식전의 애피타이저로 즐긴다. 전부 오직 피렌체에서만 먹을 수 있는 지역특산 요리다. 거의 매일 메뉴의 절반이 새롭게 바뀐다. 필자의 지금까지 신기록은 8개 코스 메조 요리다. 보통으로 치자면 4 접시분이다. 그래도 가격은 와인과 커피를 합해 40유로를 넘지 않는다.

한국판 만지아로초 기대

미슐랭 한국 진출이 곧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대상은 서울의 레스토랑으로, 올해 중에 한국어 책과 디지털판이 출간될 듯하다. 미슐랭 서울판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프랑스 파리보다 더 비싼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서울에 출현할 수도 있으리란 두려움과 고급호텔이나 강남을 제외할 경우 원 투 스리 스타로 나눌 만한 레스토랑이 서울에 과연 존재할까라는 걱정이다.

미슐랭 서울이 ‘뒤늦게’ 한국에 상륙하는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가격, 가족, 슬로푸드, 지역에 기초한 아날로그 음식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슐랭 관련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 필자 개인의 소회도 있지만, 미슐랭 서울은 5000년 한국 음식사(史)를 바꿀 계기가 될 것이다.

당장, 한국 식당 테이블의 이미지인 두루마리 화장지와 플라스틱 그릇들이 ‘박멸’될 수도 있다. 맛만이 아니라 멋, 즉 품격이 미슐랭이 따지는 레스토랑의 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품과 격은 따라 배우기 마련이다. 한 가지 바라고 싶은 것은, 프랑스 미식의 기준에 투철한 미슐랭과 더불어 가격, 가족, 슬로푸드, 지역에 기초한 한국적 맛과 멋에 관한 재고(再考)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골목대장용 한류 비빔밥이 아니라, 세계 모두가 공감하는 한국판 만지아로초 같은 발상과 실천이 하루빨리 정착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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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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