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부터 3박4일간 연평도를 다녀왔습니다. 꽃게잡이가 시작되는 철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하루 전날인 3월 2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제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서해수호의 날은 북한이 벌인 세 가지 사건을 이유로 제정됐습니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이 그 계기입니다. 세 가지 중 두 가지 사건이 연평도와 연관이 있죠.

대연평도에는 곳곳에 북한이 감행한 도발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제1연평해전 전승비에서 안보교육장까지, 북한의 공격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 다양했습니다. 제2연평해전 때 피격된 우리 경비정 참수리 357호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을 짓는 공사도 한창이었습니다.

연평도는 맨눈으로 이북 땅이 보일 만큼 북한과 가까운 섬입니다. 2010년 11월 23일 발생한 북한의 포격 도발에서도 볼 수 있듯, 북한군이 바다 건너 진지에서 해안포를 쏘면 언제라도 포격이 닿는 거리입니다. 북한의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고 건물 54동이 파괴된 것이 불과 5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연평도는 이미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서해 5도 지역에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2020년까지 10년간 총 9109억원을 투입해 주거환경 개선 등 78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사업에 실제로 투입된 예산은 2011년 430억원 선에서 지난해 230억원 선으로 급감했습니다. 5년 새 거의 반토막이 난 셈입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의 ‘옥새 투쟁’ 등 공천 파동을 겪으며 당 지도부가 모두 ‘제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불참했고, 청와대는 이를 두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논평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모두 참석해 여당 지도부의 불참은 더욱 눈에 띄었습니다.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북한은 올 초부터 핵실험을 강행하고 ‘서울을 짓뭉개버리겠다’고 하는 등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제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이 끊임없이 불안과 위기감을 조장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갈등하고 국론이 분열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다”며 “국가 안보를 지키는 길에는 이념도 정파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따뜻한 봄날과 소란스러운 선거방송에 파묻혀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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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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