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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호] 2016.04.25

초등교과서에 한자 ‘병기’ 대신 ‘표기’ 추진한다

배용진  기자 

▲ 지난해 8월 충북 청주시 한국교원대에서 열린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관련 공청회 풍경.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은 공청회가 벌어지는 단상에 올라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photo 서효정 조선일보 인턴기자
지난해 초등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정책을 추진하다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힌 교육부가 학생들의 어휘력을 높이기 위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표기한다’는 내용의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한자어로 된 주요 학습용어를 설명하기 위해 교과서 본문에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대신, 본문 옆단이나 밑단에 한자의 음과 뜻을 표기(表記)해 한자를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보조장치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는 지난 4월 15일 홈페이지에 올린 ‘정책연구과제 신청서’를 통해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고시’에 따른 초등학생 수준에 맞는 교과서 한자어 풀이 방안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계획서 공모를 받는다”고 발표했다. 만약 연구계획서가 교육부 기획담당관실 주관과의 심의를 통과하면 현장적합성 연구 등을 거쳐 새 교과서에 반영되고, 연구 결과가 반영된 교과서는 2018년부터 현장에 배포된다. 교육부는 이 신청서를 통해 “현재 초등학생의 발달수준에 맞는 적정한 한자 목록과 한자어 풀이 방안이 없다”며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를 밝혔다.
   
   초등학교 교과서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 교과서정책과에 따르면, 현재 추진 중인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표기하는 방안의 핵심은 ‘병기’가 아닌 ‘표기’이다. 병기는 본문 한자어 옆에 괄호를 치고 한자를 쓰는 것을, 표기는 옆단이나 밑단에 한자어를 따로 빼내 풀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 표기 관련 정책연구를 담당하는 이지은 교육부 교과서정책과 연구사는 전화통화에서 “이번 공모 방안은 무분별한 병기가 아니라 일부 한자어만 풀어 학습 보조장치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례를 통해 병기와 표기의 차이점을 확인해 보자. 지난해 논의된 한자 병기 방안의 경우, 이등변삼각형이라는 용어를 풀이하기 위해선 교과서 본문에 이등변삼각형(二等邊三角形)이라는 한자어를 그대로 써야 한다. 공간이 절약돼 많은 한자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자어가 많아져 본문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한자 표기 방안은 이등변삼각형이라는 단어를 옆단이나 밑단에 빼 ‘둘 이’ ‘같을 등’ ‘가 변’이라는 한자의 음과 뜻을 풀이한 후, ‘두 변이 같은 삼각형’이라는 전체 뜻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한자 병기 방안에 비해 적은 숫자의 한자어를 설명할 수 있는 대신, 한자어의 뜻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문의 가독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지은 연구사는 “한자에 서투른 아이들에게 한자는 단순한 그림”이라며 “한자 표기는 학습을 돕는 보조장치로서의 역할에 한정하는 것이 현재 정책연구의 방향”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한자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가 많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실제로 2010년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2010년 국민의 언어의식 조사’에 따르면 ‘바람직한 한자교육 실시 시기’를 묻는 질문에 68.5%의 응답자들이 ‘초등학교부터’로 답했다. 교육부 담당자는 “특히 한자어가 많이 사용되는 사회나 수학 과목이 심각하다”고 했다.
   
   교육부는 한자 표기 정책연구를 위해 우선 한문교육용기초한자 1800자 중 초등 5~6학년 수준에 적합한 200~300자 내의 한자를 추출한다는 계획이다. 학습에 꼭 필요한 개념어 중 자주 교과서에 등장하는 한자가 우선적으로 선정된다. 이 연구를 위해 교육부는 교육학·국어교육·한문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진을 구성하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올 9월경 공청회도 열 계획이다.
   
   
   “한자 표기는 한자 교육 발전의 한 단계”
   
   지난해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문제를 두고 시민단체들은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거듭해 왔다. 지난해 4월 교육부는 설명자료를 내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에 대한 국가·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며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두고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 등 한자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은 ‘국어 단어의 70%가 한자에서 유래된 만큼 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한자 병기가 필수적이다’ ‘어릴 때부터 한자를 배워야 교육 효과가 크다’는 등의 주장을 내세워 한자 병기에 찬성했다.
   
   반면 교육 및 한글 관련 53개 단체로 구성된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은 ‘한자 병기는 1970년부터 이어진 한글전용 정책에 역행하는 움직임이다’ ‘한자를 가르치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난다’고 주장하며 한자 병기를 반대했다. 지난해 8월 국가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 주최로 열린 공청회에서는 찬성 측과 반대 측 간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자 병기를 반대하는 여론에 밀린 교육부는 9월 22일 개정 교육과정을 확정·발표하면서 초등학교 한자 교육과 관련해 “적정 한자 수 및 표기 방법 등 구체적인 방안은 정책연구를 통해 2016년 말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한자 병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한자 표기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의 이대로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초등교과서 한자 병기 주장은 일제강점기 교육의 잔재”라며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언어사대주의의 전형”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교육부가 추진 중인 한자 표기 정책에 관해서도 “어려운 한자어를 설명하겠다고 따로 빼 표기를 할 것이 아니라 아예 설명할 필요가 없도록 학습용어들을 우리 토박이말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자어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학술·법률 용어들을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근본적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한자어를 교육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표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진태하 인제대 석좌교수는 전화통화에서 “(한자 표기는) 편의상 (교육부가) 취한 한자 교육 발전의 한 단계로 봐야 할 것”이라며 “한자어를 제대로 교육하는 데는 병기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전남 함평교육청 교육장을 지낸 김승호 목상고 교장은 “우리말의 경우 한자용어가 많기 때문에 기본적인 한자를 습득하지 못한 학생들의 수업 이해도는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며 “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규수업에 보다 많은 학생이 참여하여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학습용어 이해 지도, 독해능력 향상 교육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10~20대의 어휘력 약화와 언어 파괴가 갈수록 심해지는 교육 현실에서 이들의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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