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부르크의 여행 중심지인 ‘작은 황금의 지붕’.
인스부르크의 여행 중심지인 ‘작은 황금의 지붕’.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는 동계올림픽을 두 번(1964· 1976)이나 치를 정도로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겨울은 물론이고 여름에도 근교의 몇몇 휴양지에서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인스브루크의 얼굴과도 같은 해발 2334m의 노르케르트 산은 한여름에도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다. 오래전부터 독일의 뮌헨에서 출발해 인스브루크를 거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베로나까지 가는 기차여행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여행 코스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다.

인스브루크 시내는 크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진다. 신시가지 입구에 있는 개선문은 계몽을 통해 군주제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에 의해 세워진 기념물이다. 이 개선문의 북쪽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남쪽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를 각각 담고 있다. 이는 1765년 인스브루크에서 치러진 둘째 아들 레오폴드 왕자의 결혼식 때 불행하게도 남편을 잃었기 때문이다.

개선문에서 구시가지를 향해 조금 걸어가다 보면 그림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이 거리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름답다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다. 전형적인 바로크식 건축물들, 거리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안나상, 그 뒤에 펼쳐진 만년설은 인스브루크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감동하는 멋진 풍경이다. 인스브루크 사람들이 ‘수호의 여신’으로 생각하는 안나상은 1703년 바이에른의 침입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세웠다.

1500년 역사 ‘작은 황금의 지붕’

인스브루크는 일찍이 알프스를 넘나드는 교통의 요충지로 발전한 도시다. 특히 막시밀리안 황제 치하에서 크게 번창했다. 15세기 무렵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은광산과 은주조공장, 그리고 소금광산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로 각종 광산물도 풍부했다. 이 같은 광산업의 발달은 인스브루크의 건축, 음악, 미술 등과 같은 예술의 각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15세기 무렵,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3세에게는 ‘막시밀리안’이라는 매우 총명한 아들이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지금의 프랑스 동북부 지방에 있던 브루군트왕국의 마리아 공주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이들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공주의 아버지인 브루군트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혼란한 틈을 이용해 브루군트의 영토를 탐낸 이웃 나라의 왕이 자신의 아들과 마리아 공주를 억지로 결혼시키려 했기 때문.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막시밀리안은 몇몇 부하와 함께 몰래 적진으로 들어가 공주를 구한 후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다. 막시밀리안의 용감한 이야기는 금세 유럽 전 지역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마침내 그는 ‘최후의 기사’라는 칭송과 함께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막시밀리안은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어 오랫동안 섭정을 베풀었다. 특히 그는 티롤 지방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지금도 막시밀리안과 관련된 많은 건축물들이 인스브루크 시내 곳곳에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1500년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황금의 지붕’이다. 구시가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황금의 지붕’은 인스브루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다. 인스브루크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한 ‘작은 황금의 지붕’은 막시밀리안 황제가 광장에서 열리는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만든 자그마한 발코니다. 그는 이 발코니에 서서 아담한 거리 풍경,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가끔씩 열리는 마을 축제 등을 감상하곤 했었다고 한다.

인스브루크의 아기자기한 명소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얘깃거리가 있는 명물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무엇보다 크다. 비록 규모나 문화적 가치가 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은 그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즐거워한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 가운데 하나다. 세계적 관광명소인 인스브루크에도 일반 여행자들이 놓치기 쉬운 재미있는 명소가 몇 군데 숨겨져 있다.

첫 번째 명물은 인스브루크 시내에서 가장 작은 건축물이다. 마치 숨은 그림처럼 커다란 건축물 사이에 자리를 잡은 이 건축물은 언제부턴가 인스브루크의 새로운 명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막아서 지은 듯한 이 작은 집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안나상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는 작지만 건물 바깥의 길 한가운데에다 탁자와 의자를 내놓고 당당하게 커피를 팔고 있다.

두 번째 명물은 수백 년 된 옛 골목길과 지혜의 분수다. 구시가지 ‘작은 황금의 지붕’ 왼쪽에 있는 오래된 골목길에는 상점의 간판이 없다. 그 대신 재미있는 조형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것은 안경 모양으로, 어떤 것은 빵 모양으로, 그리고 또 어떤 것은 맥주잔 모양으로. 이처럼 간판 대신 조형물을 걸어 놓은 것은 예전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 때문이다.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의 자그마한 공터에는 책 모양의 분수가 있다. 인근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 졸리면 이 분수에 와서 머리를 적시며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지혜의 분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책은 모두 네 권인데 이는 각각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의미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세 번째 명물은 구시가지의 상점 밀집지역에 있는 ‘사랑 고백 장소’다. 한 기념품 가게의 입구가 다른 가게와는 달리 기둥에 둥근 홈이 파여 있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먼 옛날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왕자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었지만 가슴이 떨려 도저히 사랑 고백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건물 입구에 있는 돌기둥에 홈을 판 뒤 뒤돌아서서 사랑 고백을 하는 방법이었다. 지금도 한 사람은 돌기둥에 귀를 대고 다른 한 사람이 반대편 돌기둥에서 작은 소리로 말을 해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다.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 실험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늘 즐거운 표정이다.

근교의 작은 마을, 풀프메스

인스브루크역에서는 근교의 산간마을로 떠나는 꼬마기차들이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두 칸짜리 꼬마기차가 가파른 산길을 따라 구석구석 아름다운 산간마을들을 연결하고 있다. 주로 학생이나 나이가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인스브루크에서의 색다른 체험을 원하는 여행자들도 눈에 많이 띈다.

인스브루크역에서 꼬마기차로 약 1시간20분 거리에 있는 풀프메스는 해발 1000m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다. 겨울에는 인근의 스키장을 찾는 스키어들로 붐비지만 봄과 여름에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라 일반 여행자들이 큰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마을이다.

꼬마기차의 종착역인 풀프메스역에 내리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티롤알프스의 한적한 마을이 눈앞에 펼쳐진다. 역에서 느린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로아스호프’는 편안하게 티롤알프스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펜션이다. 요들송을 잘 브루는 쾌활한 아내와 젖소밖에 모르는 남편이 늘 반갑게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미리 부탁하면 정갈하고 맛있는 오스트리아식 아침식사도 제공받을 수 있다.

로하스 산장의 3층에는 누워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방도 있다. 지붕의 일부를 유리로 대신해 놓아 날씨가 좋은 밤이면 침대에 누워 쏟아질 듯한 알프스의 별들을 바라보며 잠자리에 들 수 있다.

01  인스브루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하는 개선문.<br></div>02  사랑 고백 장소로 유명한 기념품 가게 입구.<br>03  사랑 고백을 듣고 있는 한 관광객.
01 인스브루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구분하는 개선문.
02 사랑 고백 장소로 유명한 기념품 가게 입구.
03 사랑 고백을 듣고 있는 한 관광객.

여행 정보

가는길 대한항공에서 주 4회(월·수·금·일) 인천~빈 구간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1시간15분이다. 빈에서 출발하는 인스브루크행 기차는 오전 6시36분부터 오후 7시36분까지 하루 14회 운행하고 있다. 약 4시간15분이 소요된다.

인스브루크의 금화(?) 도난사건 2000년에 인스브루크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작은 황금의 지붕’의 보수를 위해 2738개의 금화(?)를 떼어낸 후 다시 붙였는데 1개의 금화가 사라진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사라진 금화의 행방에 대해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며칠 후 신문에 금화 1개를 가지고 있다는 인스브루크 시민의 조그만 광고가 실렸다. 그는 이 광고를 통해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이 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소홀히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당연히 금화는 다시 돌아왔고 그 이후로 ‘작은 황금의 지붕’은 인스브루크를 대표하는 명물로 더욱 굳건히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작은 황금의 지붕’ 앞에는 자그마한 광장이 있다. 인스브루크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이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며 고풍스러운 중세의 정취를 마음껏 즐긴다. 티롤을 상징하는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기념품들을 구경하거나 느린 걸음으로 수백 년 된 골목길을 거닐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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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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