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높은 바위 산에서 내려다본 ‘루사누 누네리 수녀원’
메테오라 높은 바위 산에서 내려다본 ‘루사누 누네리 수녀원’

메테오라를 넣을까 말까? 그리스 가족여행 일정을 짜면서 메테오라를 넣었다 뺐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일단 유럽 문명의 발상지인 크레타섬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히는 산토리니섬은 필수 코스로 넣었다. 또 신전들의 터가 산재한 아테네에서 이틀. 그러고 나니 일정 중 24시간이 비었다. 이 시간에 메테오라를 갈지 말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아테네에서 자동차로 4시간 반, 왕복으로 무려 9시간이나 걸리는데 꼭 봐야 하나 싶었다. 사진으로 보이는 메테오라는 뻔해 보였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위에 세워진 공중 수도원. 성지순례를 가는 것도 아닌데 그 수고를 들여서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 가면 후회할 뻔했다. 사진은 종종 진실을 왜곡한다. 때론 사진이 실제보다 훨씬 아름답고, 때론 실제의 황홀함에 한참 못 미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전자(前者)가 더 흔하다. 사진작가의 실력과 날씨, 조명의 삼박자가 빚어낸 그림 같은 사진을 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메테오라는 후자(後者)였다. 내가 본 그 어떤 사진도 메테오라의 장엄함을 담지 못했다. 지난해 tvN에서 ‘꽃보다 할배’ 그리스팀이 담은 메테오라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메테오라는 메테오라 한가운데에 서야지만 그 감동이 와 닿는다. 그 감동을 어떻게라도 담고 싶어 3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지만 하나같이 실패다. 그 어떤 사진을 봐도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것도 아닌데….’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에 자리한 메테오라는 은둔의 땅이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의 그리스어. 지금은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을 지칭하는 말이자, 공중 수도원들이 모인 지역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메테오라는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던 그리스정교회의 전통과 이슬람 세력을 피해서 산으로 산으로 피신해야 했던 그리스의 슬픈 역사가 녹아 있다. 11세기 이후, 그리스 전역을 장악한 페르시아제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스정교회는 접근 불가능한 곳으로 숨어들었다. 수도사들은 처음엔 바위동굴로 숨어들었다가 바위 절벽 위에 수도원을 짓기 시작했다. 하나둘 늘어난 절벽 위 수도원은 14세기에 들어 20여개까지 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불안정한 지반 때문에 점점 무너져내렸고, 현재는 6개만 남아 있다.

바위 수도원의 평균 높이는 암벽 포함 300m. 무려 80층짜리 건물의 높이다. 가장 높은 수도원은 550여m에 달한다. 수도원을 지을 당시에는 외부 세력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계단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밧줄과 사다리로만 왕래했다. 수백 년 동안 봉쇄수도원으로서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문이 여행객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바위 주변에 나선형으로 만들어놓은 돌계단을 따라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수도원들은 매주 1회 문을 닫는데, 문을 닫는 요일은 수도원별로 다르다. 우리가 방문한 일요일은 운 좋게도 6곳 모두 개방된 날이었다.

수녀원을 반대편에서 본 모습
수녀원을 반대편에서 본 모습

메테오라는 칼람바카 마을과 카스트라키 마을에 걸쳐 있다. 카스트라키 마을의 숙소를 예약한 우리는 밤늦게 도착했다. 카스트라키 마을의 밤은 정말 새까맣다. 그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졸린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있었던가. 줄잡아 천 개는 돼 보이는 별들이 쏟아져내릴 듯 빛나고 있었다. 인적 드문 마을 곳곳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들과 별밤이 빚어내는 향연은 신비로웠다. 하도 낯설어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창문을 열어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숙소 바로 앞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숙소에서 불과 30m 거리에 서 있는 바위였다. 시야를 돌려보니 마을 전체가 검회색 바위산 천국이었다. 메테오라 본격 여행에 나서기 전, 숙소 매니저로부터 세 개의 수도원을 추천받았다. 가장 큰 규모의 그레이트 메테오라, 그 시절 도르레가 여전히 작동하는 발람 수도원, 마을 초입에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성 스테파노 수녀원. 우리는 앞의 두 곳과 성 스테파노 대신 또 다른 수녀원인 루사누 누네리 수녀원 이렇게 세 곳을 가기로 했다. 매니저는 여섯 곳의 계단 수를 하나하나 적어줬다. 가장 계단이 많은 곳은 그레이트 메테오라로 300개, 가장 적은 곳은 성 스테파노로 70개였다.

카스트라키 마을을 출발하면서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수직으로 우뚝 솟은 거대한 회색 바위들은 저마다 표정이 있었다. 중간중간엔 구멍이 숭숭 뚫렸고, 구멍에서는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천 년 풍화작용을 겪어온 유기물들의 흔적이었다. 바위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는 생명체로 보였다.

바위들에 감탄하는 사이, 사진으로만 보던 바로 그 수도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먼저 보인 곳은 성 니콜라스 아나파프사스 수도원.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수도원이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바위 산에 딱 붙어 있는 수도원이 눈에 띈다. 바위색과 비슷해 수도원마저 자연의 일부로 착각하게 했다. 성 니콜라스 수도원이었다. 바위산 위에 거짓말처럼 얹혀 있는 수도원은 그저 경이로웠다. 그리스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위에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 수도원 건립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이 스며 있는 것일까?

영화 007의 배경으로 등장한 ‘트리니티 수도원’. 여섯 곳의 수도원 중 접근이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영화 007의 배경으로 등장한 ‘트리니티 수도원’. 여섯 곳의 수도원 중 접근이 가장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누네리 수녀원의 화가 수녀

자동차로 꼬불거리는 산등성이를 10여분 달리자 루사누 누네리 수녀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규모가 작아 인기가 많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 깊었던 수도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190개의 계단을 오르자 수도원 입구가 나타난다. 발코니처럼 돼 있는 공간에 서니 저 멀리 발람 수도원도 보였다. 작지만 공중으로 불쑥 솟은 좁은 바위 위의 수도원이라 어느 방향으로든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땅을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이 손톱보다 작게 보인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절대로 못 올 곳이 바로 이 메테오라다.

몇 계단 더 올라 수도원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수녀가 “헤이” 하고 불렀다. 입장료 내는 곳을 지나친 때문이다. 입장료는 3유로. 상당수 여행객들은 여기에서 그냥 돌아섰다. 이 3유로가 성(聖)과 속(俗)을 가르는 기준점이다. 까만 두건을 두른 수녀는 3유로를 받고 속세인들을 성스러운 공간으로의 진입을 허락했다. 그 성과 속의 묘한 경계에서 잠시 현기증이 일었다. 600~700년 전 철저하게 세상과 단절하기 위해 이 깊숙한 곳에 숨어든 수녀들, 그 엄격한 수행을 위해 봉쇄수도원을 만든 이들과 현재의 수녀들이 대비되면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부로 들어서자 의외로 넓은 공간이 펼쳐졌고, 벽 곳곳에 성화(聖畵)들이 걸려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수녀원 내부에서 흰돌멩이에 메테오라 그림을 그려넣는 수녀였다. 맨들맨들한 작은 돌에 섬세한 손놀림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을 하나하나 그려넣는 수녀. 나는 붓질이 채 마르지 않은 그 돌멩이 하나를 사버렸다. 내부 사진 촬영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수도원도 내부 촬영은 금지다. 그때 정적을 깨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를 파악 못 한 한 여행객의 실수였다. 마침 카리스마 있는 수녀 한 분이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봤다. 수녀는 “당신 거기서 뭐하는 거야?”라며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엄격한 규율로 다스려야 하는 그 고행의 여정이 짐작이 갔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발람 수도원. 거대한 바위산들이 운집한 한가운데 있어 가장 아름다운 수도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여성의 복장 제한이 있다. 스커트를 입지 않은 여성은 입구에 구비된 치마를 둘러야 한다. 이곳뿐 아니라 다른 남자 수도사들이 있는 수도원들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이 수도원에 들어서자 스피커에서 남자 수도사들의 송가(頌歌)가 경건하게 울려퍼졌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작동되는 도르레다. 도르레가 있는 곳은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쇠줄에 발라놓은 기름 냄새를 따라 가면 자연스레 도르레방에 가 닿는다. 쇠줄 도르레는 물건을 나를 때 지금도 사용되고, 수백 년 전에 사용하던 나무 도르레는 쇠줄 도르레 옆에 그 형태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내부 중앙에 있는 널찍한 정원.
‘그레이트 메테오라’ 내부 중앙에 있는 널찍한 정원.

300개의 계단 그레이트 메테오라

마지막으로 그레이트 메테오라. 이름 그대로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다. 관광객 규모도 엄청나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대형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계단만 300개에 이른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까마득한 계단도 그렇거니와 바위 꼭대기에 펼쳐진 수도원의 규모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충 둘러보는 데에만 족히 두 시간은 걸린다. 이미 두 개의 수도원에서 기력을 소진한 터라 계단에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도원 입구 앞에서 ‘외관만 보고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다. 계단 여기저기에서 다리가 아파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전의(戰意)를 잃었고, 앞의 두 수도원 내부가 유사한 것이 한 번 잃은 전의에 명분을 더했다. ‘수도원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마음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이 협조를 안 해준 탓에 터덜터덜 오르기 시작했다. 300개의 계단은 생각보다 많았다. 심지어 계단 중간에 동굴까지 나타났다. 그 동굴 천장에는 새 둥지가 있어, 수시로 새떼들이 여행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곳 역시 발람 수도원처럼 여성은 치마를 둘러야 입장 가능하다. 그레이트 메테오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볼거리가 많았다. 곳곳에 주변 산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고 목수 공방, 수도원 박물관, 예배당, 기념품 상점 등의 시설이 있다.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엌도 있었다. 이 자체로 하나의 작은 공동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놓치면 안 되는 곳이 있다. 바로 해골의 방이다. 이곳을 지키던 수도사들의 해골이다.

메테오라 주변엔 음식점이 없다. 수도원 세 곳을 돌며 발견한 유일한 음식점이라곤 그레이트 메테오라 앞에 서 있는 푸드트럭이 전부였다. 1.5유로짜리 샌드위치가 식사대용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 그레이트 메테오라를 왼쪽으로 끼고, 발람 수도원을 뒤로하고 길가에 앉아 점심으로 그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재료라곤 치즈 한 조각, 햄 한 조각이 전부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맛있었다.

방문하지 못한 나머지 세 곳 중 트리니티 수도원은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007영화 ‘포 유어 아이즈 온리’ 편에 등장한 바로 그 수도원이다. 영화 속에서 이 수도원은 아무도 찾지 못하는 궁극의 은둔지로 그려진다. 속세와 절연하고 싶은 한 사람이 숨을 수 있는 지구의 가장 깊숙한 곳.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본 외관도 그러했다. 원통형으로 우뚝 솟은 바위 위에 덩그러니 얹혀 있는 트리니티 수도원은 그 어떤 수도원보다 단절의 의지가 강해 보였다. 실제로 메테오라에 있는 수도원 중 가장 접근이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데, 이곳 역시 개방돼 있다.

메테오라는 메테오라다. 지구상 그 어떤 곳도 메테오라와 비슷한 곳이 없다. 메테오라를 첫 일정으로 그리스 여행이 계속 이어졌지만 메테오라의 그 장엄한 경이가 워낙 강해 다른 곳의 감흥이 덜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도, 아고라 광장의 그 거룩한 신전의 터도, 미로 속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이 살아 있는 크노소스 유적지에서도 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거대한 합작품인 메테오라. 그곳에 가야만 느껴지는 그 경이로움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레이트 메테오라’를 지키던 수도사들의 해골을 안치한 ‘해골의 방’.
‘그레이트 메테오라’를 지키던 수도사들의 해골을 안치한 ‘해골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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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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