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은 알프스에서 시작해 알프스에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프스로의 여행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알프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따사로운 햇살이 산록 곳곳에 퍼지기 시작하는 5월에 찾으면 그 설렘은 더욱 배가된다. 본격적인 ‘알프스 시즌’이 시작되는 6월이 가까워지면 호기심 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아이거 북벽과 그린델발트.
아이거 북벽과 그린델발트.

알프스를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알프스 여행을 하려면 우선 융프라우 아래에 있는 인터라켄으로 가야 한다. 인터라켄은 두 개의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는 그 자체로도 멋진 경관을 자랑한다.

인터라켄이 오래전부터 낭만적인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 이유는 호수 말고도 이른바 ‘알프스의 3대 봉우리’라 일컬어지는 융프라우, 묀히, 아이거 등을 지척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인터라켄에 도착하면 굳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아도 기차로 주요 명소들을 매우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인터라켄에서 즐길 수 있는 기차여행 코스는 시간, 예산,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여러 코스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인터라켄을 출발해 그린델발트(해발 1034m), 클라이네 샤이덱(해발 2061m) 등을 경유해 융프라우 요흐(해발 3454m)까지 오르는 코스다.

인터라켄~융프라우 요흐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클라이네 샤이덱과 융프라우 요흐를 연결하는 12㎞ 구간이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아이거 글래시어(해발 2320m)까지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산악지역으로 운행되며 그 이후에는 바위를 뚫어서 조성된 긴 터널을 통과한다. 터널을 통과하는 구간에서는 5분씩 두 번을 정차한다. 첫 번째 정차역인 아이거반트(해발 2865m)에서는 그린델발트와 클라이네 샤이덱, 튠 호수 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두 번째 정차역인 아이스메어(해발 3160m)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빙하와 암벽들을 감상할 수 있다.

아이거 북벽 아래의 산간마을, 그린델발트

융프라우를 다녀온 후에 보다 가까운 곳에서 알프스를 느끼려는 사람들은 산간마을인 그린델발트를 찾아간다. 그린델발트는 아이거 북벽(北壁)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유명해진 알펜리조트다. 그동안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거 북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그린델발트. 악명 높은 아이거 북벽과는 달리 그린델발트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산간마을이다. 만년설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마을 주변에는 알프스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던 풍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2008년 독일에서 제작된 산악영화 ‘노스 페이스’는 1936년 독일의 산악인 토니 쿠르츠와 앤디 히토이서의 등정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알프스 3대 북벽’ 가운데 하나인 아이거 북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등정에 성공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2년 후인 1938년 마침내 아이거 북벽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등반대에 의해 정복되었다. 우리나라 산악인(윤대표, 허욱)은 1979년에 처음으로 아이거 북벽 등정에 성공했다.

그린델발트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대부분 일주일 이상 이곳에 머물며 근처의 명소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여행자들은 곤돌라를 타고서 서둘러 피르스트(해발 2168m)로 올라간다. 그린델발트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최고의 트레킹 명소가 바로 이곳 피르스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피르스트는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여름에는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명소다.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곤돌라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로 오르는 곤돌라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략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되고 있다. 총 길이는 4355m로 약 25분이 소요된다.

바흐 알프 호수의 평화로운 정경.
바흐 알프 호수의 평화로운 정경.

피르스트의 하이라이트, 바흐 알프 호수

피르스트의 트레킹 코스는 융프라우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명소다. 특히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무리를 지어 피어나는 알프스 시즌에는 산 전체가 온통 아름다운 꽃밭을 이룬다. 비교적 걷는 길이 평탄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자들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알프스 전망대가 있는 피르스트 산장에서 시작되는 트레킹 코스는 해발 2265m 지점에 위치한 바흐 알프 호수까지 이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길가에 핀 꽃의 종류도 조금씩 변하고, 전망이 좋은 곳에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군데군데 잘 마련되어 있다. 트레킹 코스는 알프스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피르스트 산장~바흐 알프 호수 중간쯤에는 갑자기 비가 내릴 경우 잠시 피할 수 있는 대피소도 마련되어 있다.

피르스트 트레킹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바흐 알프 호수다. 깨끗한 수면에 비치는 만년설의 웅장한 자태를 마주하는 순간 누구라도 자연의 경이로움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호수에 비치는 만년설의 최고봉은 슈렉호른(해발 4078m)이다. 피르스트 산장에서 바흐 알프 호수까지는 약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피르스트에서 야생화 트레킹을 마치고 그린델발트로 내려올 때는 취향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냥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며 느긋하게 알프스의 산록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색다른 체험을 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일반적으로 피르스트~슈렉펠드 구간은 플라이어 체험, 슈렉펠드~보어트 구간은 곤돌라, 보어트~그린델발트 구간은 트로티 바이크 체험을 하는 방법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플라이어 체험은 쇠줄에 몸을 의지한 채 800m 거리를 약 45초 만에 내려가는 스릴 만점의 레포츠다. 한 번에 두 개의 라인을 이용해 두 명씩 내려가기 때문에 이용자가 많을 때는 30분 이상 기다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출발 전에는 조금 떨리기도 하지만 막상 출발선을 벗어나 허공을 가르게 되면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듯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트로티 바이크는 페달과 안장이 없이 특별히 제작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면서 알프스의 산록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는 레포츠다. 그러나 평지에서처럼 너무 속도를 내서 달리게 되면 자칫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출발 전에 브레이크 사용요령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안전헬멧은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쉬니케 플라테에서 브리엔츠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들.
쉬니케 플라테에서 브리엔츠 호수를 바라보는 사람들.

투박한 멋을 자랑하는 쉬니케 플라테

쉬니케 플라테 역시 그린델발트를 찾은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 트레킹 명소다. 현지 사람들이 ‘알프스의 정원’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쉬니케 플라테로 향하는 출발지는 빌더스빌이다. 빌더스빌 기차역에서는 쉬니케 플라테로 향하는 예스러운 등산열차가 오전 7시25분부터 오후 4시45분까지 약 4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 기차 안에서는 인터라켄 시내와 두 개의 호수(브리엔츠, 튠)가 한눈에 들어온다. 빌더스빌에서 쉬니케 플라테까지는 약 50분이 소요된다.

쉬니케 플라테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알프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멋을 보여주는 명소다. 투박하지만 깊은 맛을 간직한 알프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기차역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산장(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음)에서 쉬니케 플라테의 가슴 벅찬 트레킹은 시작된다. 트레킹 코스는 쉬니케 플라테에서 피르스트로 넘어가는 6시간 코스를 비롯해 모두 6개의 코스가 있어 시간이나 체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쉬니케 플라테의 트레킹 코스는 푹 파인 분지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도는 산책로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알프스의 평원이나 구릉지대에서 보는 야생화들과는 달리 키가 조금 큰 것이 특징이다. 그 종류도 다양해서 ‘어쩌면 이렇게 많은 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이다.

트레킹이 아닌 관광 목적으로 쉬니케 플라테를 찾은 사람들은 40분 정도 소요되는 ‘알펜 가르텐’ 코스를 돌아보는 것으로 일정을 마친다. 하지만 쉬니케 플라테의 진정한 멋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산장을 출발해 다우베(Daube), 오베르버그호른(Oberberghorn)을 거쳐 산장으로 돌아오는 2시간30분짜리 코스를 돌아봐야 한다. 중급자 코스라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트레킹을 마쳤을 때의 성취감을 기대하며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오베르버그호른을 지나 산장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야생화 꽃길로 이뤄져 있다. 밟고 지나가기 미안할 정도로 지천에 널린 앙증맞은 야생화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십 종류의 예쁜 야생화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 꽃길.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천상(天上)의 화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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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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