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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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법, 상생법 개정할 때 재벌들은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호박씨 깠다(내숭을 떨었다). 네이버도 ‘네이버 규제법’에 대해 호박씨 까면서 뒤에서 로비할 것인가.”

“네이버의 주요 파트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상생협력기구를 잘 만들고 운영할 책임을 아는 만큼 진정성을 봐달라.”

2013년 9월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중소기업·소상공인과 네이버, 솔직히 말하는 대화’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당시 네이버는 네이버 부동산, 네이버 키친, 윙스푼(맛집 소개) 등의 서비스가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네이버 검색 결과가 불공정하다는 의혹과 섞여 이른바 ‘골목상권 침해 논란’은 한동안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결국 네이버는 7개 분야에서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3년. 이 분야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네이버는 과연 온라인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있던 것일까. 최근 카카오가 O2O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새로운 논란이 생기고 있다. 대리운전, 뷰티, 가사도우미 등의 분야에 이미 진출해 있던 스타트업은 카카오의 독과점에 우려를 표한다. 바로 3년 전, 네이버가 겪었던 일이다.

풍부해진 스타트업 생태계

통계청에 따르면 네이버가 부동산 서비스에서 철수한 이후 형성된 ‘부동산 모바일 앱’ 시장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 부동산 중개 앱의 종류만 250개가 넘는다. 대표적인 앱 ‘직방’은 2012년 출시 이후 누적 다운로드 수만 1200만건에 달한다. 그 뒤를 잇는 ‘다방’ 앱은 누적 매물 건수 50만건을 보유하고 있다.

앱 서비스는 물론 기술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수많은 모바일 앱 사이에서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직방’은 허위 매물을 단속하기 위해 ‘헛걸음보상제’를 도입했다. ‘다방’ 앱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방, 보증금이 적은 방 등 다양한 검색 기능을 제공한다. 아예 GPS 기능을 활용해 앱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부동산 매물을 검색해주는 기능을 탑재한 앱도 있다.

2013년 9월 철수하기 직전 네이버 ‘윙스푼’은 거의 독점적인 맛집 추천 서비스였다. 그러나 윙스푼이 서비스를 중단하고 인터넷 환경이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맛집 추천 모바일 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각각의 앱은 그 스타트업의 비전에 맞게 특색을 가지고 있다. ‘떡볶이 맛집 top 10’ ‘이태원 맛집 top 10’ 등의 콘텐츠를 통해 사용자를 유치한 ‘망고플레이트’나 원하는 날짜와 모임 목적에 맞게 레스토랑을 추천하는 ‘식신’ 앱은 누적 다운로드 수가 200만건이 넘었다.

만약 네이버가 독점하고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다. 네이버라는 독점적 지위의 거대한 플랫폼이 사라지자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이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다. 우선 네이버의 독점을 염려할 필요 없는 벤처캐피털의 투자 금액이 커졌다. ‘직방’을 운영하는 채널브리즈는 2014년 하반기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3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망고플레이트’는 67억원, ‘식신’은 80억원을 유치했다. 네이버의 철수 이후 경쟁에 뛰어든 한 스타트업의 대표는 “네이버가 있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독점적 지위의 포털이 장악하고 있다면, 접근성 때문에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널리 알려지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네이버가 철수하고 나서 시장 1위를 차지하려는 업체들의 선의의 경쟁이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네이버와 같은 대형 포털이 장기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은 검색과 정보 제공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이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을 찾는 것”이라면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자본과 기술력이 있는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먹을거리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산업으로 눈을 돌린 네이버

네이버가 당시 7개 분야에서 철수하며 손해 본 매출액은 15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봐서는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네이버 관계자의 설명이다. “O2O 사업에 집중하던 당시에는 타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네이버는 그 이후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 당장의 O2O시장이 아닌 미래 IT 기술에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네이버의 올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6% 늘어난 9373억원에 달했다. 이 중 해외 매출이 36%로 3355억원이다. 해외 매출이 늘어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SNS ‘라인’이 태국과 일본 등지에서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에서 독과점 논란에 휩싸이자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게 됐고, 결과적으로는 현재의 네이버 성장을 이끄는 주요 사업을 발굴하게 된 것이다.

최근 네이버는 포털의 기본 기능인 검색엔진 개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스스로 학습해가는 머신러닝 기술을 탑재한 인공지능 채팅 로봇 ‘라온’을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에 출시할 예정이다. 구글의 ‘나우’나 애플의 ‘시리’처럼 사용자와 대화하며 최적의 검색 결과를 내어놓는 ‘라온’은 축적된 빅데이터의 결과물이다. 동시에 수많은 사용자 경험이 쌓여 발전할 인공지능이기도 하다. 네이버의 지향점이 더 이상 당장의 수익 사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 IT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이끌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김상헌 네이버 대표도 지난 4월 28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체 연구소인 네이버랩스에서는 앞으로 5년간 스마트카, 스마트홈, AI 등 기술 분야에 투자해 실생활과 관련된 하드웨어와 융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버 관계자는 “네이버의 O2O 서비스는 네이버 쇼핑 윈도시리즈만 제외하고 모두 다 철수한 상황”이라며 “대신 발전된 AI 등으로 사용자에게 확장된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카카오가 O2O시장에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은 카카오라는 기업 하나로 보면 합리적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거래와 시장의 다양성을 위해 오프라인 시장에서 그렇듯 온라인 시장에서도 독과점을 규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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