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섬의 실 베이에서 바다사자를 관찰하는 여행객들.
캥거루섬의 실 베이에서 바다사자를 관찰하는 여행객들.

지구촌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간혹 예상하지 못한 색다른 정취를 만나곤 한다. 그것이 오래된 문화유적이든 아니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든 여행자들은 순간적으로 큰 감동을 받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호주는 여행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심어줄 만한 요소를 많이 갖고 있는 여행지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밀림과 오지가 있는가 하면 오직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동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 까닭이다. 호주의 여러 섬 가운데서도 캥거루섬은 ‘생태계의 보고’라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에코투어 명소다.

‘툽텐 가초’라는 승려가 있다. 호주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삶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영혼이 보다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났고 마침내 1977년 정식절차를 거친 최초의 서양인 승려가 되었다. 그가 승려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이 바로 ‘티베트 승려가 된 히피 의사’다. 툽텐 가초는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가 2004년부터 3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던 곳이 호주의 캥거루섬이다.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캥거루섬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영혼이 자유롭고 싶은 승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캥거루섬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남호주의 주도인 애들레이드로 가야 한다. 애들레이드는 시드니, 브리즈번, 멜버른 등 호주의 유명 도시들과는 달리 일반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은 아니다. 이른바 ‘생태계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캥거루섬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나 한적하게 이국적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지는 도시다. 그런 만큼 애들레이드 시내 곳곳에서는 여유로움과 품위가 느껴진다. 견고한 석조 건축물과 세련된 현대 건축물, 울창한 숲, 그리고 곳곳에 조성된 크고 작은 공원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한결 따뜻하게 만든다.

애들레이드는 토렌스강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 있다. 강변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으며 데이트에 푹 빠진 젊은 연인들과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렌스 강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페스티벌센터다. 1960년부터 짝수 해마다 열리는 세계적 종합예술제인 ‘애들레이드 아트 페스티벌’의 주 행사장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다.

탐험가 매튜 플린더스에 의해 알려져

세계적인 생태낙원으로 유명한 캥거루섬은 애들레이드에서 남서쪽으로 110㎞쯤 떨어져 있다. 이 섬은 영국의 전설적인 탐험가 매튜 플린더스(Matthew Flinders)에 의해 1802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매튜 플린더스는 주로 호주의 해안과 섬, 오지 등을 여행한 탐험가로 ‘호주의 리빙스턴’으로 추앙받는 인물. 그의 이 같은 도전적이고 영웅적인 업적은 훗날 호주 사람들의 큰 귀감이 되어 기차역, 대학, 의료센터, 호텔 등의 이름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발견 당시 전혀 오염되지 않은 무인도였던 캥거루섬은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약 4500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명소가 되었다. 캥거루섬에서 일반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는 곳은 킹스코트, 페네쇼, 아메리칸 리버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킹스코트는 남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인 정착지의 하나로 오래전부터 낚시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캥거루섬은 세계의 유명 여행 잡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여행지다. ‘호주의 축소판’ 또는 ‘호주 최고의 여행지’라는 찬사를 듣는 캥거루섬에는 드넓은 초원, 울창한 숲, 고래들이 찾아오는 바닷가, 펭귄들의 보금자리 등이 섬 곳곳에 산재해 있다. 캥거루섬의 약 4400㎢에 이르는 원시림 대부분은 17개의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명소는 이른바 ‘야생동물의 낙원’이라 불리는 플린더스 체이스 국립공원이다.

플린더스 체이스 국립공원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로키 리버’라는 자그마한 마을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곳에 국립공원의 관문 역할을 하는 여행자 안내소가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여기서 관광정보도 얻고 캠핑허가도 받는다. 캥거루섬의 모든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에서는 숙소 예약서와 캠핑 허가서 없이는 일몰 이후에 머물 수 없다.

캥거루섬의 명물인 리마커블 록스.
캥거루섬의 명물인 리마커블 록스.

야생동물의 낙원, 플린더스 체이스 국립공원

캥거루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친환경 탐방로.
캥거루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친환경 탐방로.

플린더스 체이스 국립공원에서는 야생 상태에서 보호되고 있는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등과 같은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할 수 있다. 플린더스 체이스 국립공원에서 야생 상태의 동물들을 만나는 일은 평생 잊지 못할 매우 감동적이고 가슴 찡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들 야생동물을 무턱대고 찾아나설 수는 없는 일. 이 동물들을 만나려면 반드시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특별히 교육된 전문 가이드는 일반적으로 10명 내외의 소수 인원과 함께 직접 숲이나 강, 바닷가 등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야생동물들을 관찰한다. 몇몇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는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묻은 이물질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곳도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이물질에 의해 혹시라도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플린더스 체이스 국립공원의 주인은 야생동물이다. 따라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들의 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다. 출입이 허용된 지역이라 할지라도 지정된 통로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동물들을 발견했다고 해서 큰소리로 떠들어서는 안 되며 숲속을 걸을 때도 가급적이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 어찌 보면 다소 불편하고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같은 약속을 통해 관광객들은 잠시나마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입구에서 신발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탐방객들.
야생동물 보호구역 입구에서 신발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탐방객들.

야생 상태의 바다사자들 만날 수도 있어

캥거루섬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명물은 서쪽 바닷가 언덕 위에 솟아 있는 리마커블 록스(Remarkable Rocks)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투구나 코끼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바위는 거센 파도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훌륭한 자연 걸작품이다. 바위의 황갈색 표면은 이끼가 시든 흔적이다. 주차장에서 리마커블 록스로 가는 길은 키가 작은 관목숲이 이어져 있다. 그 위로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캥거루섬 곳곳에 설치된 나무데크는 생태환경과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장애인들의 이동이 편리하고, 안전한 탐방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리마커블 록스 근처에 있는 ‘쿠위딕 곶’도 널리 알려진 명소다. 이곳에서는 1906년에 처음 불을 밝힌 예쁜 등대와 또 하나의 침식 예술품인 애드미럴 아치(Admiral’s Arch)를 둘러볼 수 있다. 애드미럴 아치에는 약 7000마리의 뉴질랜드 바다표범(New Zealand Fur Seal)이 서식하고 있다. 핸슨베이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는 야생 상태의 코알라와 캥거루(캥거루아일랜드 캥거루)가 살고 있다. 캥거루섬에 사는 캥거루는 갈색이 아닌 짙은 회색의 털을 가지고 있다. 호주 본토에 사는 캥거루보다는 몸집이 작지만 매우 다부진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야생 상태의 캥거루를 만나기 위해서는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최대한 소규모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캥거루섬에서 가장 이색적인 곳은 야생의 바다사자(Australian Sea Lion)들이 서식하고 있는 실 베이(Seal Bay)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 상태의 바다사자를 가까이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명소다.

캥거루섬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실 베이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만 출입할 수 있다. 바다사자에 3m 이내로 접근하는 것 역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여행 정보

가는 길 대한항공에서 매일 인천~시드니 구간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10시간30분이다. 시드니에서 애들레이드까지는 국내선 항공기로 약 2시간10분이 소요된다. 애들레이드와 캥거루섬 사이에는 경비행기가 운항되고 있으며, 애들레이드의 저비스항에서 캥거루섬의 페네쇼항 사이에는 페리보트가 운항되고 있다. 경비행기는 약 30분, 페리는 약 45분이 소요된다.

날씨 남반구에 위치한 캥거루섬의 6~8월 평균기온은 최저 9℃, 최고 16℃로 다소 쌀쌀한 편이다. 게다가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따뜻한 스웨터와 방풍용 점퍼, 장갑 등을 챙겨야 한다. 1년 중에서 야생동물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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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봉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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