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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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글라스를 끼면 난 잭 니콜슨이다. 선글라스 없이는 뚱뚱한 60대 남자다.” 명배우 잭 니콜슨의 말이다. 영화배우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선글라스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잭 니콜슨처럼 패션의 완성을 위해 혹은 자외선이나 미세먼지를 차단을 위해 선글라스를 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다.

빠르게 성장 중인 선글라스시장이지만 정확한 통계는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선글라스시장을 4200억원에서 4700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절반 이상을 외국산 선글라스가 차지한다. 한국안광학산업진흥원이 지난 4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한 해에만 약 2억달러(약 2348억원)어치의 외국산 선글라스가 국내로 수입됐다.

불과 4~5년 전까지도 고가의 브랜드 선글라스시장은 외국, 특히 이탈리아 기업이 주도했다. 레이밴, 오클리 등의 브랜드가 속한 룩소티카그룹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2~3년간 상황이 바뀌었다. 토종 선글라스 브랜드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젠틀몬스터’와‘카린’이 대표적인 국산 브랜드다. 카린은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올해 들어 업계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제 두 돌이 된 브랜드가 레이밴 같은 브랜드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비결이 궁금했다. 카린을 생산하는 스타비젼의 박상진(43) 대표를 만나 세계 선글라스시장과 한국 브랜드의 위상에 대해 들어보았다. 박 대표는 한국 선글라스 브랜드 열풍에 대해 “한국의 안경 기술력에 디자인이 만난 결과”라고 답했다.

“안경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의외로 별로 없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뿐입니다. 동남아 국가나 터키도 자국 브랜드가 없어요. 한국의 안경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저가로 물량을 수주하는 중국에 비해 한국의 제품은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가 아직도 세계시장에 남아 있어요. 여기에 디자인이 만난 겁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의 디자인이 세계인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스타비젼은 안경과 콘텍트렌즈,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광학 전문기업이다. 지난해엔 25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예상 매출은 400억원이다.

시력교정수술 보며 사업 구상

서울 홍대앞에 있는 카린 선글라스의 플래그십 매장은 물건을 사는 안경가게라기보다는 휴식 공간처럼 보였다. 매장 곳곳에 여러 종류의 식물이 즐비했다. 아테누아타부터 탈레시아까지 흔치 않고 특색 있는 식물이 대부분이었다. 전문가의 작품인지 묻자 박 대표는 “회사 직원들이 직접 꾸민 것”이라고 답했다.

“회사 직원 70명 중 30명 이상이 디자인 인력입니다. 안경 디자인은 물론 인테리어 디자인, 웹 디자인, 사진 촬영 등 시각적인 부문은 대부분 회사 내부 인력이 담당합니다. 우리 것을 잘하려면 우리가 직접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되도록 외주화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의 업종을 ‘브랜드업’이라 봅니다. 제조업이나 유통업이 아니고요. 브랜드의 힘은 창의성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의 전공은 ‘안경’이다. 대학에서 안경광학을 전공하고 10여년간 안경점에서 안경사로 일했다. 왜 하필 안경을 택했는지 묻자 “고등학교 때부터 안경을 좋아해 서너 개씩 갖춰 놓고 번갈아가며 썼다”고 답했다.

사업가로 발을 디딘 계기는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가 한창 인기를 끌던 2005년, 박 대표는 미용렌즈를 주제로 한 카페를 만들었다. 개설한 지 1년 만에 2만명이 모였다. 오프라인 안경점에서 손님들을 만나는 틈틈이 온라인에서 2만명과 부대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미용렌즈 전문 매장 ‘오렌즈’다. 현재 전국에 178개 매장이 영업 중이다. 미용렌즈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후 박 대표는 ‘선글라스’에 진출하기로 결심했다. 안경시장의 변화를 지켜본 후 내린 결론이었다.

“예전엔 안경을 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력 교정수술이 대중화되면서 손님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어요. 라식이나 라섹수술을 하면 눈을 보호하려 선글라스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글라스의 수요는 계속 늘어날 거라 봤습니다. 2년간 준비 끝에 카린을 론칭한 이유입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안경을 고른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한국인은 안경을 고르는 기준이 확연히 다릅니다. 남이 봤을 때 예뻐 보이는 디자인을 고릅니다. 사각형 모양으로 각이 진 안경테를 보고 한국인은 ‘세 보인다, 날카로워 보인다’고 하는데, 유럽이나 중국에서는 ‘멋있다’고 합니다. 안경점에서 일하면서 ‘손님들이 각자 어울리는 다양한 디자인의 안경을 쓰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해 직접 디자인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박 대표가 직접 안경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착용감’이다.

“안경은 착용감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좌우되는 물품입니다. 하루 종일 쓰고 있잖아요. 안경점에서 일할 때, 브랜드 제품이라 믿고 팔았는데 손님이 써보니 불편하다고 찾아올 때 제일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브랜드에 책임을 져야지요. 오랫동안 써도 가볍고 편한 디자인을 고수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매장 한쪽에 차려져 있는 아담한 안경 공방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후속으로 방영될 ‘함부로 애틋하게’의 촬영 배경이 되기도 했단다. 책상 위에 도열한 빈티지한 디자인의 안경테와 안경 제작용 기구들, 선글라스용 렌즈가 눈에 띈다. 선글라스 렌즈를 고르는 기준이 있는지 물었다.

“흔히 노점상에서 파는 저가 선글라스의 대부분은 아크릴렌즈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자외선 차단 효과가 떨어지고 렌즈 자체에 불순물이 많아 눈이 아플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아크릴렌즈만 피하면 괜찮습니다.”

박 대표는 해외시장 진출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카린 선글라스는 현재 미국, 중국,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 30여개국에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미도(MIDO)’에 참여했다. 미도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광학제품 박람회다. 전 세계 주요 안경 관련 인사들이 다 모이는 자리다. 카린은 한국 브랜드로는 두 번째로 ‘디자인 랩’ 세션에 진출했다.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을 만드는 신흥 기업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박 대표는 “미용렌즈시장에 처음 뛰어들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미쳤다고 말렸지만 성공해냈다”며 “카린을 세계 정상급의 선글라스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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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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