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어느 날 저녁 애플 매장. 거짓말처럼 한산하다.
2016년 6월 어느 날 저녁 애플 매장. 거짓말처럼 한산하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一紅)’.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 넘게 필 수 없다는 뜻이다. 인생무상과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아날로그적 세계관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통용될 수 있는 영원한 진리다.

무엇보다 애플을 보면 딱 들어맞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계절별로 들리던 애플에 관한 ‘참신한’ 소식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면서 신제품에 열광하던 글로벌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에 관한 소식도 흑백필름의 희미한 기억으로 와닿는다. 지난 6월 13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관한 뉴스도 일부의 관심만 끌었을 뿐 IT시장 전체를 흔들었던 과거의 권위나 영향은 찾아볼 수 없다.

눈에 확 들어오는 뉴스는 고사하고 시중에 떠도는 애플 관련 소식의 대부분은 어두운 톤으로 점철돼 있다. 지난 6월 17일 베이징(北京)발 뉴스로 전해진 아이폰6의 중국 특허권 침해 판정 소식은 애플의 내일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잣대다. 애플 아이폰 6가 중국 업체의 기술을 베꼈다는 것이 중국 법원의 최종 판결이다. 중국 최대 IT기업 중 하나인 화웨이(華爲)에 대한 미국 측 제재에 맞선 경제적 보복이란 측면이 강하다. 억울하겠지만, 중국 시장에 기대고 있는 애플의 미래는 안갯속에 휩싸였다. 권력도 꽃도 아닌 무색무취의 디지털 세계에서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명명된 아이폰, 아이패드 신화도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일까.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신문·방송·인터넷에서 전해지는 복잡한 정보보다현장의 분위기와 목소리를 통한 판단이 한층 더 정확하다. 2016년 초여름 애플은 과연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일까. 그 같은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들른 곳은 뉴욕 맨해튼 5번가 한가운데 있는 애플 매장이다. 2006년 5월 18일 설립 이후 이른바 전 세계 애플 신자들의 성지로 받아들여지던 곳이다. 애플 매니아들이 신제품에 열광하는 현장이 TV로 생중계되던 곳이기도 하다. 외관이 유리로 이뤄져 있어 ‘글래스애플(Glass Apple)’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애플의 이미지와 이념을 상징한다.

6년 전이던 2010년 10월 어느 날 밤 10시. 당시 애플 매장은 24시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6년 전이던 2010년 10월 어느 날 밤 10시. 당시 애플 매장은 24시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거짓말처럼 한산한 매장

글래스애플은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체제를 유지하는, 미국에서 드문 매장이기도 하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뉴욕 뉴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비싼 도시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노래 속 가사인 ‘나는 항상 깨어나고 싶다. 결코 잠들지 않는 이 도시 속에서(I want to wake up, in a city that never sleeps)’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가 바로 티파니 보석상과 인접한 글래스애플이다. 필자는 6년 전인 2010년 주간조선 기고 기사(2011호)를 통해 사람들이 열광하던 글래스애플을 조명한 적이 있다. 당시의 취재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곳을 한 번 더 되새김하자는 것도 이번 방문 의도에 포함돼 있다. 6년 전 필자는 ‘애플 매니아의 성지 뉴욕 5번가를 가다’라는 제목으로, 최고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 가방보다 신제품 아이패드에 소비자들의 시선이 한층 더 쏠리는 세태를 담았다. 당시의 애플 매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디지털 기기에 민감한 젊은층만이 아니라 인종·국적을 초월해 남녀노소 축제의 현장처럼 느껴지던 곳이다.

이번에 애플 매장을 찾은 것은 금요일 해가 넘어갈 때 쯤이다. 뉴욕은 1년 내내 사람들로 들끓는 곳이다. 지난해 뉴욕을 찾은 관광객은 무려 5640만명이다. 같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은 1323만명이다. 한국 전체 방문객의 4배로, 하루 평균 16만명이 몰려드는 도시가 뉴욕이다. 사실 뉴욕의 명소는 거의 대부분 정해져 있다.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글래스애플도 21세기 뉴욕 관광 코스의 핵심에 포함된다. 금요일 오후 애플 매장은 고객들의 안식처라 볼 수 있다. 애플 매장 방문을 전후해 건물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센트럴파크에 들르는 것도 일상적 풍경 중 하나다. 자동차를 매디슨애비뉴에 세워둔 뒤 애플 매장에 들른 것은 오후 7시10분이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놀란 것은 너무도 한산해진 글래스애플 주변 풍경이다. 애플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열중하던 관광객으로 뒤덮인 과거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글래스애플 주변은 모두가 쉴 수 있는 석조 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매장은 지하 1층에 들어서 있다. 애플은 역대합실 같은 탁 트인 공간을 디지털 세계의 플랫폼으로서 모두에게 제공한다. 그러나 이제 그 같은 환경을 즐기는 사람은 너무도 적다. 가장 많은 사람이 붐빌 금요일 저녁인데도 글래스애플 주변은 ‘거짓말’처럼 한산하다.

안으로 들어가자 텅 빈 매장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인의 깜짝 결혼 이벤트로 해외토픽에 올랐던, 1층으로 내려가는 글래스 엘리베이터도 거의 비어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적막하다. 애플의 상징인 아이폰은 물론 아이패드 전시 테이블도 한산하다. 드물게 신제품을 테스트하는 사람들이 보이지만 대부분 이메일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가죽으로 무장한 애플 워치 전시 테이블에는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없다. 필자 스스로가 그러하듯, 1000달러가 넘는 ‘에르메스-애플 워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입 밖에 내기를 주저하지만 애플 워치는 소문만 무성할 뿐 실패작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2010년 10월 애플 매장 앞 풍경. 사람들로 터져나간다.
2010년 10월 애플 매장 앞 풍경. 사람들로 터져나간다.

사라진 중국 고객들

전시 테이블을 찾는 사람들이 드문 상황에서 높은 연봉을 자랑하던 애플 직원들의 한가한 모습도 눈에 띈다. 제품 기능을 묻는 고객이 드물기 때문에 서로 모여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매장의 한쪽 구석에 들어선 수리 전용 테이블이다. 이곳만 유난히 사람들로 붐빈다. 아이폰·아이패드 수리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목적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공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 몰려든 외국 관광객들이다. 엄청난 용적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곳이 애플 매장이다. 인터넷 속도가 엄청 빠르다. 미국은 프라이버시 강국이다. 공짜 인터넷이 있다 해도 이용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스타벅스 커피숍이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도 공짜 인터넷 공간이기는 하지만 워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사진 한 장 받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애플 매장은 그런 불편을 전부 해결할 수 있는 뉴욕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역설적이지만 수리 전용 테이블에 수리를 원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은 애플 제품이 완벽하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애플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글래스애플을 찾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애플 매장 손님들을 보면서 주목한 것은 국가별 구성원이다. 과거와 크게 다른 점은 중국인이다. 길게 줄을 서서 애플 제품을 닥치는 대로 사모으던 중국인 행렬이 없다. 아니 아예 중국인이 눈에 띄질 않는다.

애플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얘기도 들어볼 겸 러시아 억양의 직원에게 다가갔다. 애플 매장에서는 1년 전부터 근무해왔다고 한다.

“예전보다 중국인 손님 수가 확 준 것 같은데.”

“중국에서도 아이폰을 구입할 수 있고, 구입가도 여기와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다. 과거에 여기서 싼값으로 구입한 뒤 중국에 돌아가 되파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없다.”

“전반적으로 손님 수가 줄어든 것 같다.”

“여기에 직접 들르는 손님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 애플 제품을 이미 보유하고 있고, 아이폰의 기능도 파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구입이 상대적으로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애플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는 생각보다 높다. 모두가 척척 알아서 사용한다.”

“요즘 손님들이 주목하는 제품은?”

“아이폰이 주류지만 애플 맥북(MacBook)을 찾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아이폰·아이패드 이용자들이 맥북을 통해 정보의 일원화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스태프와의 얘기는 대충 그 정도에서 그쳐야만 했다. 세부적인 질문을 던지자 홍보 담당관 이메일을 주면서 직접 만나 정보를 얻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글래스애플 현장에서 느껴지는 한산한 분위기는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한층 더 확연히 실감할 수 있다. 바로 나스닥 주가다. 올해 1월 7일 애플은 마침내 주당 100달러 선에서 추락했다.(액면분할 액수 기준) 당시 애플 주가는 98.10달러였다. 2014년 8월 24일, 나스닥 전체 주가가 1000포인트 하락할 당시 애플의 주가도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러나 IT 최강자 애플만 당일 100달러 이상으로 반등했다. 올해 초 100달러 추락은 2년 전과 달리 애플 주가 하락이 본격화됐다는 의미다. 6월 29일 뉴욕 나스닥의 애플 주가는 94달러 선이다. 지난해 5월 22일 거의 정점을 찍었던 주당 평균 주가(132.54달러)에 비해 25% 정도 떨어졌다. 애플 주가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뉴욕 월스트리트의 고정 스토리다. 흥미로운 사실은, 추락하는 주가에도 불구하고 애플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호감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이유는 하버드대학 비즈니스스쿨의 가우탐 무쿤다(Gautam Mukunda) 교수의 분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애플의 문제는 (스티브 잡스와 달리) CEO 팀 쿡만이 갖고 있는 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팀 쿡은 애플 주식 보유자나 월스트리트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고, 거기에 맞춰가면서 비즈니스를 벌여간다. (애플이 보유한 엄청난 현금을 통해) 애플 주식을 고가로 되사는 식의 금융 전략을 통해 블루칩 기업으로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방식은 단기간에 유효할 뿐 장기적으로는 비관적이라 볼 수밖에 없다. 팀 쿡만이 아니라 애플을 단기 승자로 만드는 월스트리트 투자가가 한층 더 큰 문제다.”

2016년 6월 애플 매장. 저녁 7시인데도 예전과 달리 활기가 없다.
2016년 6월 애플 매장. 저녁 7시인데도 예전과 달리 활기가 없다.

파리 날리는 매장 앞 노점상

침몰하는 배에는 쥐가 없다고 하지만 하향세로 느껴지는 애플의 분위기는 입구에 들어선 노점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 긴 행렬로 붐비던 패스트푸드 노점상에 지금은 불과 1~2명만이 눈에 들어온다. 6년 전 들렀을 때 하루 최고 2000개까지 팔았다는 핫도그 노점상에 다시 들렀다. 뉴욕의 노점상은 개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식회사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운영한다. 3달러짜리 케밥, 핫도그를 사면서 요즘 장사가 잘되는지 물어봤다.

“뉴욕 최고의 명당이었던 곳이 여기지만, 예전의 말이다. 요즘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미키마우스와 수퍼맨 캐릭터가 넘쳐나는 타임스퀘어 광장이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5번가 글래스애플이 장사 명당 수위에 들었지만, 원래 명당이던 타임스퀘어로 다시 넘어갔다. 반년 전부터 여기를 맡고 있지만 요즘은 하루에 500개 정도 판다. 갈수록 손님 수가 줄어든다. 요즘 세상에 아이폰 안 가진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 올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당분간 애플이 주목하는 시장은 인도다. 2017년까지 10억달러를 투자해 아이폰 생산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인도 고객을 위한 200달러짜리 저가폰도 양산한다고 한다. 중국에 이어 인도로 시장을 넓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다. 차기 시장이 인도에 이어 아프리카로 이어질지 모르겠다. 애플의 현금 보유액은 장기 유가증권을 포함할 경우 553억달러에 달한다.(2016년 1월 기준) 미국 역사 자체인 디트로이트 자동차회사 하나 정도는 간단히 구입할 수 있는 자금력이다. 어디로 튈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아이폰·아이패드 충격에 버금가는 새로운 IT 신세계를 선보일지 전 세계가 아직도 애플을 쳐다보고 있다. 안타깝지만 뉴욕 5번가 글래스애플에서는 장밋빛 미래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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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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