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표지
‘제3의 물결’ 표지

지난 6월 27일 앨빈 토플러(1928~2016)가 영면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학자였다. 전 세계 언론들도 앞다퉈 그의 부음을 자세히 전했다. 그는 생전에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내가 ‘제3의 물결’에서 내다본 미래의 전망과 거의 일치한다”고 말하며 우리나라에 각별한 애정을 표하기도 했다.

그의 저작은 10여권에 달한다. 토플러는 그중에 ‘미래충격’(Future Shock·1970), ‘제3의 물결’(The Third Wave·1980), ‘권력이동’(Powershift·1990)이 3부작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세 권이야말로 그의 사상의 정수가 담긴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3부작의 마지막 저작인 ‘권력이동’에서 3부작의 성격을 각각 명쾌하게 설명했다.

“‘미래충격’은 변화의 ‘과정’, 즉 변화가 인간과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본다. ‘제3의 물결’은 변화의 ‘방향’, 즉 오늘날의 변화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력이동’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통제’, 즉 누가 어떻게 변화를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토플러는 대학 졸업 후 5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경험하고 문필가의 길로 들어섰다. 1965년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으로 ‘미래충격’이란 개념을 썼다. 그 후 5년 동안 이 화두를 붙들고 혼자 연구에 몰두한 끝에 ‘미래충격’을 발표했다. 이 책은 수백만 권이 팔리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그는 순전히 독학(獨學)으로 미래학의 일가(一家)를 일궈냈다.

오늘날(‘미래충격’ 발표 당시) 변화의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몇 년의 변화가 그 이전의 수백 년의 변화를 뛰어넘을 정도이다. 이런 사회의 대표적 특징은 정보 과부하(information overload)이다. 정보는 인간의 처리능력 이상으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의사결정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너무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변화로 인해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미래충격’이다.

‘미래충격’ 발표 후 10년 동안 그는 이러한 충격이 문명사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고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를 탐구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제3의 물결’이다. 그는 지금(‘제3의 물결’ 출간 당시)까지 인류가 커다란 물결을 두 차례 겪었다고 분석했다. 제1의 물결은 농업혁명이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안 사람이나 동물, 풍력이나 수력 등에 의존해 전개되었다.

제2의 물결은 산업혁명이다. 그것은 지난 300년 동안 석탄·가스·석유 등 화석연료를 통해 발전하였다. 그것은 제조(making)에 기반한 사회였다. 농업시대에는 정보가 구두로 전달되어도 충분했다. 그러나 산업시대에는 좀 더 넓은 범위에서 긴밀한 협업이 필요했다. 거대한 양의 정보가 기록을 통해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돼야 했다. 이로 인해 우편·전화·매스미디어 등 대량 전달수단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난무했다. 그러나 그는 좀더 냉정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발휘해, 개별 현상에 이끌려 감지하지 못했던 이면의 도도한 흐름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런 흐름을 정보혁명이라는 ‘제3의 물결’로 포착하고, 새로운 변화가 불과 수십 년 안에 완성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가 예언한 제3의 물결은 바로 정보혁명이다. 그것은 지식 기반의 서비스 중심 사회를 의미한다. 이제 지식정보는 단순한 매개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원재료이다. 그것은 이전의 원재료들과는 달리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정보사회는 생각(thinking)에 바탕을 둔다. 그의 예언은 20세기가 다 지나기도 전에 대부분 실현되었다. PC 확산이나 재택근무도 이미 그의 예언 목록에 포함돼 있었던 것들이다.

이처럼 ‘제3의 물결’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온 ‘문화충격’에 방향과 해법을 제공한다. 지식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짐에 따라 우리는 교육을 재구축하고 과학연구를 재정의하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재빠르게 제3의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제시한 대응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권력이다. 그의 3부작의 종결편인 ‘권력이동’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권력의 원천은 폭력·부·지식이다. 농업사회의 권력은 주로 근력이나 폭력에 의존한다. 산업사회의 권력은 주로 부나 자본에서 비롯된다. 이에 비해 정보사회의 권력은 지식에 기반하게 된다. 지식의 확산으로 인해 정보사회에서 절대적인 권력은 점차 소멸되고 있다.

‘권력이동’은 단순히 권력의 위치적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의 본질 자체가 변하며, 그 궁극적인 수단으로서 지식의 역할이 점점 증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 비추어 산업시대, 대중민주주의시대의 권력은 새로운 정보시대를 이끌어가기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그는 이미 ‘제3의 물결’에서 이런 현상을 ‘정치의 무덤’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수천 년 걸렸고,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300년 걸렸다. 반면, 제3의 물결인 정보혁명은 그의 예언대로 불과 20~30년 만에 이룩되었다. 그렇다면 곧 닥쳐올 제4의 물결은 무엇일까. 우리가 정확히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제4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인공지능, 생체 조작 및 복제, 로보틱스, 3D프린팅 등이 어렴풋한 단서이다.

제4의 물결은 속도나 규모 면에서 제3의 물결과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벌써 다양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얼마 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적 관심 속에 바둑 대결을 벌였다. 이미 여러 해 전에 황우석은 생명복제로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물결은 우리에게 완전히 다른 세계를 제시할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문명을 맞이할지, 강제로 끌려들어갈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수십 년 전에 ‘미래충격’으로 허둥댈 때 토플러는 우리를 안전하게 ‘제3의 물결’로 이끌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미래충격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의 부재가 새삼 허전하다. 그의 안식(安息)을 기원한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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