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에 사는 20대 중반 직장인 전수빈씨는 케이무크(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를 통해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 교수의 ‘경제학 들어가기’ 강의를 들었다. 회사에서 재무파트를 담당하는 전씨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경제학을 심층적으로 배우고 싶었으나 쿠웨이트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케이무크는 신세계였다. 내로라하는 교수들의 강의를 듣고 싶을 때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었다. 전씨는 쿠웨이트에서 수업을 주로 영어로 들었는데, 언어도 문제될 게 없었다. 영어자막이 서비스되어서다. 무크를 통해 대학 진학의 꿈을 다시 찾은 그는 곧 미국 사이버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다.

부산에 사는 60대 중반 박해봉씨는 케이무크를 통해 서울대 김희준 교수의 ‘우주와 생명’, 연세대 손영종 교수의 ‘우주의 이해’를 들었다. IMF 이후 잦은 퇴직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고혈압으로 산재장애자가 된 박씨에게 케이무크는 빛이었다. 투병생활 중 시간의 의미와 원리에 천착하게 돼 뒤늦게 물리학에 관심이 생겼지만 신체적으로나 연령적으로 제약이 따른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케이무크 강좌는 크나큰 희망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교수들이 최고 인재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자신도 똑같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감격스러워한다. 케이무크에 대해 “삶의 의지를 강하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해 준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표현한다.

지금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가 대학의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중세 이후 대학 수업은 소수의 선택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강의실 안의 권리’였다. 이 강의실 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있다. 세계의 명문대들이 무크를 통해 자신들의 강좌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MIT, 베이징대, 칭화대, 도쿄대 등 해외 유수의 대학은 물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국내 명문대학 스타 교수들의 강의를 전 세계 누구나 수강할 수 있다. 그것도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한 수강료로 가능하다. 인터넷 접속만 하면 최고 수준의 고등지식을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한 무크가 지식전달의 혁명을 몰고 오는 중이다.

무크의 파괴력

무크의 확장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무크가 등장한 것은 2012년. 뉴욕타임스는 무크가 가져올 혁신적 변화를 예측하고 2012년을 ‘무크의 해’라고 명명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6년 현재, 4대 무크 플랫폼인 코세라(Coursera), 에덱스(edX), 퓨처런(FutureLearn), 유다시티(Udacity)에 등록한 학생 수는 4000만명을 넘어섰다. 무크에 제공 중인 강좌는 전 세계 550개 명문대학의 4000개가 넘는다. 전파는 기하급수적으로 빠르다. 미래학자들의 예측 속도를 앞지른다. 10년, 20년 후 대학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한국에서도 2015년 10월 ‘한국형 무크’인 케이무크가 문을 열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관장하는 케이무크 또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진흥원 측은 “시행 7개월 만인 지난 5월에 방문객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고, 7월 초 기준 누적방문자 수 130여만명, 수강신청자 수가 11만3000여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케이무크의 강좌 및 수강생 현황, 인기강좌 순위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로 다룰 예정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기영화 원장은 “무크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세시대와 현재 대학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이 앞에서 강의를 하고, 나머지는 책상에 앉아서 듣는 식이다. 대학과 고등교육 시스템은 역사상 변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크의 등장으로 대학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특정 대학의 소유였던 지식과 정보가 공유지에 올라가게 된 거다. 특권으로 인정받았던 교육이 물과 공기처럼 인간의 생필품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교육이 찬란한 영광을 위해 문을 여는 시기로, 인류사의 큰 전환점에 와 있다.”

무크가 확산되면서 변화하는 대학의 면면을 보자. 미국인 조너선 헤이버는 2013년 무크를 이용해 4년 과정에 해당하는 철학 전공수업을 1년 만에 끝냈다. 그는 무크의 문이 열리자 젊은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철학 공부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아예 그만뒀다. 2014년에 그는 하버드대학의 초대 연구원으로 초빙받았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은 신입생 교양과정에 해당하는 12개 강좌를 무크로 제공한다. 12개의 교양강좌를 강의실에서 교수가 일일이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아예 듣고 오라는 것이다.

조지아공대에서는 컴퓨터과학 온라인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이 과정을 이수하는 데에 드는 학비는 총 7000달러. 기존 4만5000달러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해 조지아공대는 이 과정을 통해 2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올해 등록생은 86개국 3000여명에 달한다. 무크 학위 졸업자는 기존 조지아공대 학생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학위도 동일하다. 일리노이주립대에서도 코세라 무크를 이용해 MBA학위 과정을 개설했다. 36개의 강좌가 6개 특별과정을 통해 선보이며 학비는 2만달러 수준이다.

무크 강의는 전통적 대학 강의에 비해 호흡이 짧다. 일주일 강의가 1~3시간 정도의 분량이고, 영상은 대개 5~15분짜리로 나뉘어 있다. 강의 속도는 수강자가 조절 가능하다. 교수의 강의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되면 느리게,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면 빠르게 할 수 있다. 또 놓친 부분이 있으면 돌아가서 다시 들을 수 있고, 반복 재생도 가능하다.

일반 동영상 강의와는 달리 전통적 대학 강의처럼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무크의 특징. 수업 스타일은 플랫폼별로 다르다. 에덱스와 코세라는 정해진 기한 내에 수업을 들어야 하지만 유다시티는 좀 유연하다. 원하는 시점에 수업을 시작할 수 있고, 수업 속도 역시 수강생이 조절 가능하다. 숙제 제출에도 정해진 기한이 따로 없다. 피드백과 퀴즈 여부 또한 수업별로 다르다. 퀴즈를 풀고 정답률이 일정 수준이 되어야 다음 진도로 넘어가는 수업이 있는가 하면, 정답률에 상관없이 다음 진도로 넘어가는 강의도 있고 아예 퀴즈가 없는 강의도 있다. 수강의 목적에 따라 각기 선호하는 강연 형태가 다르다.

교수는 티칭이 아닌 코칭 역할을 할 것

무크의 등장을 방어적으로 보든 호의적으로 보든 상관없이 무크는 대학 교육의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무크를 제2의 구텐베르크 혁명에 비유하기도 한다.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지식과 정보 등이 급속도로 퍼져나간 것처럼 무크의 등장으로 고급지식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대학의 존폐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수의 강의는 비싼 등록금의 존재 이유였다. 하지만 무크의 등장으로 누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니겠느냐는 것이다. 무크 관계자나 사회학자 등은 대학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다. 대학 수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며, 대학의 역할 또한 바뀔 것이란 얘기다. 유다시티 창업자인 세바스천 교수는 잡지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50년 이내로 전 세계에서 10개 대학만이 대학 교육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극단적으로 내다봤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클레이턴 크리스텔슨 교수는 “무크가 비효율적 대학 다수를 사장시킬 것이며, 15년 이내로 미국 대학의 25~5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영화 원장은 “무크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10~15년 후가 아니라 당장 5년 후만 돼도 캠퍼스에 다니는 대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대학의 앤드루 응 교수는 코세라를 창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등교육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다.” 무크는 고등지식의 나눔 확산이라는 공적 취지로 시작한 것이다. 재벌이든 가난한 자든, 박사학위 소지자든 초등학생이든 같은 교육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가히 ‘교육 평등화’라고 할 만하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하버드대학생이나 서울대생이 강의실에서 듣는 내용과 똑같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공적 취지와는 별개로 비즈니스 모델로 확대시키려는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강의를 상품에 비유하자면, 전통적 대학에서는 소수에게 비싼 값으로 팔았던 상품을 무크에서는 다수에게 저렴한 값에 선보이게 됐다. 그 다수가 얼마만큼의 다수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교육의 질은 높으면서 가격은 싼 무크 시스템의 등장으로 인해 대학의 시스템이 대대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크의 등장으로 대학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대학의 기능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MIT 디지털학습연구소 소장 산제이 사르마 교수는 “전통적 대학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에는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본질적인 마법이 있으며, 이를 온라인에서 복제한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무크의 수업 효과 역시 전통적 대학 강의에 비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학재단(NSF)이 지원한 ‘무크 학점인정 프로그램’에 관한 평가에 따르면, 동일한 강의를 무크를 통해 들었을 경우 전통적 대학 수업에 비해 낙제율이 높았다.

대체재 아닌 보완재

무크 등록자들 중에는 대학생 연령대가 적다는 것도 무크가 대학을 대체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경향으로 보면 무크는 성인교육이나 평생교육 프로그램 차원에서, 혹은 취미로 참여하는 청중들의 유인책으로서 더 매력적이었다. 즉 대학교육을 마친 사람들을 재교육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무크를 대학 학점으로 인정하는 강의가 많아지고, 정식 이수증이나 학위로 인정받는 분위기로 전환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크가 대학 기능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크의 등장으로 강의실 풍경은 어떻게 바뀔까. 일단 수업방식이 대대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일명 ‘거꾸로 수업’의 확산이 점쳐진다.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으로도 불리는 ‘거꾸로 수업’은 강의는 집에서 듣고 학교에서는 토론과 발표 등을 통해 심화시키는 수업을 말한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집에서 숙제를 했던 기존 수업의 순서를 바꾼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활성화한 수업이다. 무크를 통해 거꾸로 수업을 하게 되면 교수의 역할은 ‘티칭(Teaching)’이 아닌 ‘코칭(Coaching)’으로 바뀐다. 캠퍼스 풍경도 달라질 것이다. 일방적 강의를 하는 대규모 강의실 대신 학생과 교수 간 상호작용을 위한 연구실이나 친밀한 공간이 훨씬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무크 시행 4년이 지났다. 그간의 무크 이용 양상으로 봤을 때, 무크는 대학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대학교에서 이용가능한 콘텐츠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아직 단정짓기는 이르다. “집에 가서 하버드 다닐래요”라는 극단적 상황이 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무크는 수강자들의 각기 다른 필요성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자가증식 중이다. 그 속도도 빠르고 변화 방향도 예측하기 어렵다. 무크와 맞물려 있는 대학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인재상이 바뀌고 있다. 지식과 정보만으로 무장한 인재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됐다.

총장들이 말하는 ‘대학의 미래’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선 교육 “대대적인 교육개혁 필요”

지난 6월 13일 10개 사립대학 총장들이 모여 ‘미래대학포럼’을 출범시켰다.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가나다순)가 그 주인공. ‘문명사적 대전환’에 직면한 시대에 대학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출범한 자발적 포럼으로, 연세대 김용학 총장과 고려대 염재호 총장의 주도로 결성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 시절, SK그룹이 세운 한국고등교육재단의 해외유학장학프로그램에 뽑혀 나란히 유학 생활을 하게 된 두 사람은 37년간 교육계 동지로 지내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각각 모교의 총장이 됐고 한국 대학의 미래를 고민하는 포럼을 출범시키자고 의기투합했다. 제1회 미래대학포럼에서는 21세기 국제경쟁력을 갖춘 미래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오고갔다. 발제자로 나선 네 총장의 주요 발언이다.

- 김용학 연세대 총장

“(대학은)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역사적으로 큰 기로에 서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손가락 끝에 있다. 학생이 교수의 말을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교육을 지식으로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텍스트로 표현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식도 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서는 시대에는 단순지식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분명 ‘공감능력’ 분야가 생길 것이다. 향후 자본주의 시대에는 창의성과 공감능력이 중요해질 것이다.”

- 염재호 고려대 총장

“지금까지 개별 대학은 현실에 안주하며 한국 사회에서 작은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문명사적인 대전환기에 우리나라의 살길을 대학이 먼저 각성하고 깨어서 변화해야 한다.… 고려대는 작년부터 3무(無)를 시행 중이다. 출석부, 상대평가, 시험감독을 없앴다. 대학에서 성적에 대한 집착을 깨야 한다. 객관화된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정작 내재화된 지식을 어떻게 만들지 훈련받은 적은 없다. 강의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20년 전과 지금의 학생이 처한 환경이 너무 다르다. 대학은 학생들이 스스로 미래를 대비하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는 도전학기제, 자유설계전공을 만들고 문이과를 통틀어 모집하기 시작했다.… 도전학기제는 한 학기를 쉬면서 사회경험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학기이며 자유설계전공은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 스스로 배울 것을 조합해 만드는 전공이다.… 우리나라처럼 지형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 땅이 좁으면 대학 간 경쟁은 제 살 깎기다. 힘을 합치면 세계적 분야가 될 수 있다. 대학 간 경쟁보다 협업을 해야 한다.”

- 이영무 한양대 총장

“이제는 학생들이 가르쳐주는 방법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성적도 의미가 없다. 강의실뿐 아니라 강의실 밖의 자기주도학습을 중요시해야 한다. 미래사회는 엄청난 불확실성에 휘말려 있다. 어떤 전공이 최적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도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트레이닝이 훨씬 중요하다. 대학 전공만으로 살 수 없으며 다른 부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창업교육이 그 대안이다. 학생들이 글로벌 마켓에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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