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재봉틀 강사’ 유진희(45)씨는 5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현재 그는 미술전문 인터넷 강의 사이트인 ‘도약아트’의 전문강사이다. 재봉틀 사용부터 침구류, 옷 등을 만드는 전문가 과정까지 재봉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관련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학원 한두 번 다닌 것이 전부였다. 취미로 만든 소품, 옷 등을 자랑하고 싶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 직업이 됐다.

유씨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 ‘코코지니의 재봉틀 놀이’는 하루 방문자가 2000~3000명에 이른다. 누적 방문자 수는 170만명이다. 지난 6월엔 대전 유촌동에 블로그와 같은 이름으로 공방도 열었다. 유씨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문 열자마자 수강 문의가 이어져 벌써 세 팀이 꾸려졌다”면서 “블로그 등을 통해 소문이 나서인지 계속해서 문의 전화가 오고 있다”고 했다. 출판사 제의로 책 출간도 준비 중이다. 유씨는 바느질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돈 욕심보다 좋아서 벌인 일인데 찾는 사람이 많아 정신이 없다. 본격적인 쇼핑몰이나 매장을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수입이 괜찮다. 남편이 제일 좋아한다.”

인천 서구에서 바느질 공방을 운영하는 ‘이지소잉’ 문선영(48)씨도 취미였던 바느질이 직업이 됐다. 옷을 워낙 좋아해 직접 옷을 만들고 싶었던 문씨는 20대 때 취업하고 시작한 일이 퇴근 후 복장학원 다니는 것이었다. 패턴을 구하기 위해 새 옷을 뜯을 만큼 옷 만드는 일에 푹 빠졌지만 결혼하고 아이 키우다 보니 재봉틀과 멀어졌다. 4~5년 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여유가 생겼다.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아까웠다. 주변에 재봉을 가르쳐주니 반응이 좋았다. 동네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우스 공방’을 시작했다. 수강생도 많아지고 집에서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3월 아예 작업실 겸 공방을 열었다. 당연히 자신의 옷은 전부 만들어 입는다. 문씨는 “백화점에서 수십만~수백만원 하는 겨울 코트의 경우 4만~5만원어치 원단만 사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재봉을 배워 공방을 열거나 집에서 강의를 하는 제자도 있다. 문씨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으니 아이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경단녀’를 위한 일자리 창출

3D프린터가 장기까지 찍어내는 시대, 아날로그의 대표적 유산인 재봉틀이 돌아왔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제품보다 핸드메이드가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재봉틀을 찾는 사람들도 급증했다. 유진희·문선영씨처럼 취미를 직업으로 만든 ‘재봉의 여왕’들도 쏟아지고 있다. 공방 창업, 파워블로그 운영, 온라인 소호몰 창업, 바느질 강사, 작가 등 재봉을 활용한 일도 다양하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30~50대 주부부터 취업 대신 창업을 꿈꾸는 20대까지 재봉 기술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이 문화센터, 공방마다 넘친다. ‘코스프레(게임·만화 속 주인공 따라하기)’에 빠진 10대들은 재봉틀 사서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 유행이다. 임산부들이 출산용품을 직접 만드는 태교 바느질도 인기다. 바느질 매니아를 위한 책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책꽂이 두 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느질 인구가 늘면서 원단 등 부자재 시장도 커졌다.

포털사이트에 ‘바느질’ ‘핸드메이드’ 검색어를 입력하면 관련 글이 넘쳐난다. ‘미싱으로 옷 만들기’ ‘봉틀이홈’ ‘행복한 여왕’ ‘뚝딱이네 바느질방’ 등 바느질 전문 온라인 카페나 ‘13월의 블루’ ‘클라라의 바느질하기 좋은 날’ 등 전문 블로그는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네이버 대표 카페인 ‘미싱으로 옷 만들기’의 회원 수는 20만명이 넘는다. 네이버 밴드나 스마트폰 카카오스토리에도 재봉틀 소리가 요란하다.

최근에는 자수 바람까지 더해져 자수 재봉틀 판매가 급증했다. 국내 재봉틀시장은 미국 브랜드인 싱거코리아와 브라더미싱 등 일본 제품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다. 수입물량이 재봉틀시장 전체 규모라고 보면 된다. 2015년 자수 재봉틀 수입물량은 13만2000대로 전년 대비 400% 이상 급증했다. 올해는 5월까지 수입한 물량만 10만대에 육박하고 있다.

재봉틀의 부활은 10~20년 전 집에서 커튼, 쿠션 등을 만들던 ‘홈패션’ 바람과는 다르다. 과거에는 수선비 아끼려고 재봉틀을 배웠지만 요즘엔 기성제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취미가 됐다. 분야도 리폼, 소품, 애견용품, 옷 만들기 등으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됐다. 핸드메이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공방들이 참여하는 ‘핸드메이드 코리아 페어’는 관람객 수, 참여업체가 5년 새 3배가 늘었다. 시장이 확대된 만큼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서 가능성도 충분하다. 특히 경력단절 여성들의 경우 집안일과 병행하면서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의 벽이 낮다.

‘소잉디자이너’에 도전하세요

바느질을 전문 직업군으로 만들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재봉기술개발원(대표 신현태)이 떴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비영리 사단법인 허가를 받은 한국재봉기술개발원은 민간자격증인 ‘소잉디자이너’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신현태 대표는 바느질을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자격증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봉제산업을 21세기의 문화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경력단절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고 미취업 여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소잉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바느질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공통적 불만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없다고 하더라. 숭실사이버대에 3개월 육성과정을 개설하고 실기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줄 계획이다. 8월 말에는 구체적 일정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재봉기술개발원은 이와 함께 최고의 재봉 고수를 가리는 ‘패브릭 핸드메이드 경진대회’도 열 계획이다. 리폼, 소품, 의류(일반·애견·베이비·코스프레) 등 부문별로 나누어 2~3시간 내에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해 심사할 계획이다. 참가자는 500여명 선으로 재봉기, 원단 등 제작에 필요한 부자재를 모두 제공하고 대상, 부문별 최고상 등 수상자에게는 부상과 함께 소잉디자이너 자격증이 따라간다. 한국재봉기술개발원은 오는 10월 대회 개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집안에 숨은 고수들을 밖으로 이끌어내고 꿈을 키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신 대표의 말이다.

힐링하고 돈 벌고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에서 ‘움직이는 공방 네모의 꿈’을 운영하는 김윤주씨는 공방창업 1세대이다. 공방창업과 컨설팅 강의를 주로 하는 김씨는 업계의 대표 스타이다. 공방에는 김씨를 창업모델로 찾아오는 수강생이 끊이지 않는다. 낮에 수업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밤 10시에 통화가 된 김씨는 재봉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최근 3년 새 부쩍 창업을 목표로 재봉을 배우러 온 수강생이 많아졌다. 공방을 10여년 하다 보니 재봉을 이용한 제품들도 특화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예를 들어 애견용품이나 패브릭 장난감 등도 유망한 시장이다. 1일 체험도 수요가 많다. 공장에서 소화하기에는 물량이 적은 샘플 제작 작업도 틈새시장이다. 60~70대가 대부분인 샘플 제작, 소량 제작 시장도 맥이 끊겨가고 있다. 그만큼 인력 수요가 많다.”

김씨 역시 시작은 취미였다. 김씨가 무엇보다 재봉의 장점으로 꼽는 것은 힐링 기능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며 집에 있다 보니 우울증이 왔다. 바느질을 배우면서 행복해지고 삶이 달라졌다. 머리를 쉬기 위해 바느질을 배우러 오는 직장인도 있다. 미술치료, 원예치료처럼 바느질치료도 앞으로 유망한 분야가 될 수 있다.”

면 생리대 만들어 사용하기 운동을 하고 있는 김씨가 요즘 마음을 쏟고 있는 일이 생겼다. ‘입양아를 위한 누빔 매트 만들어주기’ 운동이다. 동방사회복지회 입양아동들이 입양을 기다리며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곳이 매트이다. 많은 아이들이 매트 위를 거쳐 가다 보니 금세 낡고 해졌다. 소식을 들은 김씨는 공방 수강생들과 함께 2차에 걸쳐 100여장을 만들어 전달했다. 요즘 공방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보낸 택배가 계속 배달되고 있다. 누빔 매트 만들어주기가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바느질하는 사람들이 남은 조각천을 활용해 만들어 보낸 매트들이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등 택배상자에 적힌 문구들을 보면 매일이 감동이라고 김씨가 말했다. 싱거코리아도 뜻을 보태기로 했다. 7월 18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로에 있는 싱거코리아 후원으로 봉사자들이 모여 3차 매트 제작에 나선다. 김씨는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다”면서 “바느질만큼 행복한 직업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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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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