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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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에 사는 이종애(79)씨의 보물 1호는 시어머니가 물려준 ‘싱거 미싱’이다. 이씨가 스무 살에 시집을 갔을 때 시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던 재봉틀이니 70~80년이 넘은 셈이다. 당시 재봉틀은 마을에 겨우 한 대 있을까말까한 귀한 물건이었다. 시어머니는 재봉틀로 마을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고 돈 대신 논일, 밭일 등 품을 받았다. 시어머니가 돌리던 재봉틀은 요즘에도 잘 돌아간다. 이씨의 취미는 그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엔 재봉틀이 쉴 틈이 없다. 시원한 인견으로 만든 잠옷은 자식들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다름 아닌 나의 어머니 이야기다.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엄마표 잠옷이 남매들의 단체복이 된다. 재봉틀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장 한 번 안 나고 지금도 잘 돌아가. 싱거가 왜 망했는지 알아? 고장이 안 나서란다.”

지난 7월 8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로에 있는 싱거코리아에서 김보경(46) 공동대표를 만났다. 회사 입구에는 105년 됐다는 재봉틀이 골동 작품처럼 전시돼 있었다. 김 대표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자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말도 마세요. 망하지도 않은 회사를 두고 그런 루머가 돌아 싱거코리아는 소송부터 하면서 시작했어요.”

싱거코리아가 2001년 한국 독점권을 따내고 영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소문이 문제였다. 진원지가 어디든 소문은 끈질겼던 모양이다. 조선일보 인기 칼럼인 고(故) 이규태의 ‘만물상’에도 관련 글이 등장해, 수정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싱거는 올해로 165년이 됐다. 미국인 변호사 이삭 메리트 싱거가 1850년 특허를 냈다. 2012년엔 독일 명품 파프(PFAFF) 등 프리미엄 재봉틀 회사까지 흡수 합병해 전 세계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싱거코리아 설립 스토리도 재미있다. 김 대표는 2세 경영인이다. 싱거코리아의 뿌리는 아버지 김철화(75) 공동대표가 1969년 설립한 태양상사였다. 일본 브라더미싱의 OEM 회사로 재봉틀을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을 했다. 1990년대 중국, 베트남 등으로 공장이 빠져나가면서 제조를 접은 후 재봉틀 유통으로 방향을 돌렸다. “싱거 제품이 필요해 연락해보니 일본 딜러가 한국 시장까지 맡고 있는 겁니다. 당장 미국 본사에 연락해 우리에게 한국 독점권을 달라고 했죠. 현재는 북한 빼놓고는 싱거가 안 들어가는 나라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2002년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싱거코리아는 재봉틀 최초로 홈쇼핑 시장을 공략했다. 인터넷 사용이 급증한 것과 때를 같이해 온라인 강의를 해주고 무료 체험교육도 했다. 전국 문화센터와 연계해 재봉틀을 구입할 경우 초급반 무료 강의권을 줬다. 2007년 싱거코리아는 미국 본사로부터 ‘베스트 성장률’ 상을 받았다. 싱거코리아의 성장은 재봉틀 시장 확대와 직결된다. “네이버 키워드 검색어의 경우 재봉틀 관련어 광고비가 과거 10~20원 하던 것이 최근에는 한 번 클릭에 5000~8000원에 이를 만큼 비싸졌어요. 그만큼 재봉틀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김 대표는 손기술 뛰어난 한국을 핸드메이드산업의 생산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여성 문화 산업을 키운다는 사명감도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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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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